그는 다만 그 문제에 관해 나의 의견을 들어 볼 생각이었다. 파리에다가 출장소를 설치하고 현지에서 직접 큰 회사들과 거래를하려고 하는데, 그리로 갈 생각이 있는지 나의 의향을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파리에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이고, 일 년에 얼마 동안은 여행을 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자넨 젊으니까, 그런 생활이 자네 마음에 들 것 같은데." 나는, 그렇기는 하지만 결국 이러나저러나 내게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이 생활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고, 또 이곳에서의 내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나는 대답했다. 그가 불만스러운 눈치를 보이며 하는 말이, 나는 대답을 한다는 것이 언제나 전이고 나에게는 야심이 없는데 그건 사업하는 데는 아주 좋지 못한 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하려고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의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학생 때에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그러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곧깨달았던 것이다. - P51

법정은 폐정되었다. 법원에서 나와 차를 타러 가면서, 나는매우 짧은 한순간 여름 저녁의 냄새와 빛을 느꼈다. 어두컴컴한호송차 속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던 한 도시, 그리고 이따금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던 어떤 시각의 귀에 익은 그 모든 소리들을, 마치 자신의 피로한 마음속으로부터 찾아내듯이 하나씩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이미 고즈넉하게 가라앉은 대기 속에서 들려오는 신문팔이들의 외치는 소리, 작은 공원 안의 마지막 새소리, 샌드위치 장수의 부르짖음, 시내 고지대의 급커브길에서 울리는 전차의 마찰음, 그리고 항구 위로 밤이 기울기 전 하늘에서 반향 되는 어렴풋한 소리, 그러한 모든 것이 나에게는 소경이더듬어 가는 행로와도 같은 것이 되어 주었다. 그것은 형무소로들어오기 전에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던 그 행로였다. 그렇다, 그것은 이미 오랜 옛날 내가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던 그런 시각이었다. 그러한 때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언제나 가볍고 꿈도없는 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인가 달라져 버린 것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일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이제 내가 다시 대면 - P108

한 것은 바로 나의 감방이니까 말이다. 마치 여름 하늘 속에 그려진 낯익은 길들이 죄 없는 수면으로 인도해 갈 수도 있고 감옥으로 인도해 갈 수도 있다는 듯이. - P109

미국판 서문

따라서 내가 보기에 뫼르소는 표류물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그는 가난하고 가식이 없는 인간이며 한 군데도 어두운 구석을남겨 놓지 않는 태양을 사랑한다. 그에게 일체의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뿌리가 깊은 정열이 그에게 활력을 공급한다. 절대에 대한, 진실에 대한 정열이 그것이다. 이것은 아직 소극적인 참으로 존재한다는진실, 느낀다는 진실이다. 그러나 그 진실이 없이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그 어떤 정복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을 『이방인』 속에서 읽는다면 크게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여전히 좀 역설적인뜻에서 한 것이지만, 나는 내 인물을 통해서, 우리들의 분수에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를 그려 보려고 했다는 말을한 적이 있다. 내가 설명을 할 만큼 했으니까 나의 이 말에는 그어떤 신성모독적인 의도도 담겨 있지 않고, 그저 한 예술가가 스 - P142

스로 창조한 인물들에 대해 느낄 권리가 있는 다소 얄궂은 애정만이 담겨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55년 1월 8일
알베르 카뮈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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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의 여행 ㅣ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빛소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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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라는 쇼츠를 보고 도서관에서 검색되는 츠바이크로 빌린 책. 중편 2편이 실린 빛소굴 출판사의 페이지터너스 시리즈인데 츠바이크 처음 읽는데 왜 읽어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지? 특히 2번째 소설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은 분명 읽어본 듯 하고 이미 결론이 뻔한데 장황한 설명으로 다소 지루했다. <초초한 마음>과 <어제의 세계>를 읽어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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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
홍진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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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시사인 기사를 훑어보다가(요즘 시사인 페이지 터너 수준이다) 이 책에 대한 기사를 흥미롭게 보았다(물론 꼼꼼하게 읽진 않았다). 도서관에 검색하니 책이 있어 예약대기를 해두었는데 예상 대출시점보다 일찍 대출이 되었다. 책을 받고 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책 분량은 150페이지인데 판형은 포켓북 수준이고 글자도 꽤 커서 빌리자마자 도서관에서 바로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책 값 15000원 너무 비싼 거 아닌가.


요즘 회사에서도 AI 활용을 엄청나게 강조하는데, 일하면서, 저연차 팀원들에게 일 맡기면서 많이 고민하던 문제라 그런가. 도발적(?) 제목에 비해 내용은 평이하달까. 생각은 AI에 외주하지 말고 인간 자신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경험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면서 AI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 지금 막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AI를 활용하게 되면 AI에 모든 걸 위임하고 AI가 토해내는 결과를 그대로 활용하는데 그들은 AI가 적절한 결론을 도출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경험이 없다. 경험이 없으니 거짓 정보나 잘못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다(이건 왜 그런 거야? AI가 그렇다고 했는데요……).


요즘 만나는 회사들에 중간급이 없는 경우가 있다. 예전엔 회사에 사원부터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단계적으로 업무를 밟아 나가는 팀원들이 있어 경험과 의견이 축적되었다면 지금은 부장급이 신입사원과 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신입사원도 보통 1년 내에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우스개소리로 지금은 부장이 신입과 일하지만 앞으로는 부장이 AI와 일하게 될 거라고. 차라리 그게 편하다는 슬픈 얘기도. 신입은 가르쳐야지, 제대로 했는지 확인해야지, 힘들지 않게 눈치 보며(?) 일 시켜야지, 또 퇴사해 버리지. 그런데 지금 부장급들이 퇴사하게 되면 그땐 일이 어떻게 될까. 자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일을 하면 어떻게 될까(뭐 어떻게든 세상은 굴러가겠지?!)


아무튼 이 책의 결론은 AI를 사용하며 진짜 경쟁력을 가지려면 스스로 질문하고, 논리를 세우고, 결과에 자기 이름을 걸고 책임질 수 있는 주체적 사고력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스스로 글쓰기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인간의 글쓰기란 AI처럼 매끄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쓰면서 고민하며 모호하던 자기 생각이 정리되고 고민들을 풀어내어 답을 찾는 창조적 활동 아니겠는가.


인간에게는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에게는 삽질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에게는 실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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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라 2026-10-12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부장급들이 퇴사하게 되면 그땐 일이 어떻게 될까. 자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일을 하면 어떻게 될까(뭐 어떻게든 세상은 굴러가겠지?!)
<------ 너무 공감합니다.

햇살과함께 2026-10-12 16:21   좋아요 0 | URL
그땐 일이라는 개념이,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지금과 많이 다르겠죠? 지금 신입들과 제가 대하는 일도 이미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단편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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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 대로 흘러가는 이야기들. 마지막 단편 이외에는 스토리가 없는? 중요하지 않는? 이야기들.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이라고 다를 리가. 이 책을 읽는 내 머리 속과 같달까. 이제 댈러웨이 부인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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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외주가 앗아가는 것들

이 변화는 단순히 AI라는 도구를 써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도구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도구가 대신 지나가버린 ‘인간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AI에게 번거로운 ‘일‘을 맡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 생각이 자라나야 할 가장 고통스럽고도 귀중한 구간을 조금씩 밖으로 넘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료를 찾는 수고, 상충하는 정보를 비교하는 지루함,
숫자를 직접 계산하며 느껴보는 불편함, 문장을 수차례 고치며 논리를 다듬는 고독한 시간. 겉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고 버려지는 시간 같지만 인간을 자라게 하는 거의 모든 것은 대개 이런 비효율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 P17

직접 통과한 경험에서 오는 감각, 틀린 뒤에 다시 고쳐 세우는 복원력,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은 내 이름으로내놓는 내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적 확신입니다.
그때 AI는 누구에게는 성장의 폭발력을 더해주는 ‘근육‘이 되지만 누구에게는 평생 스스로 걷지 못하게 만드는‘목발‘이 되고 맙니다. 진짜 격차는 AI를 쓰는 사람과 쓰지않는 사람 사이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차이는 AI를 통해자기 사유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사람과 AI에게 사유의 주도권을 조금씩 양도하는 사람 사이에서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 P22

니다. 이 과정이 반복될 때 우리의 ‘안쪽‘은 비로소 단단하게 확장됩니다. 기술이 인간의 바깥을 확장하며 효율을 극대화할 때 철학과 인문학은 ‘왜 확장해야 하는가‘와 ‘어디로가야 하는가‘라는 내부의 엔진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보수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정체성), 무엇을 원하는지(욕망), 그리고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윤리)를 끊임없이 묻고 언어화할 때우리는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기술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로 설 수 있습니다. 이 질문들에 스스로 답할 수 없다면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손에 쥐고 있어도 우리는 기술이 설계한 세계를 관성적으로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기술이 바깥의 세계를 무한히 확장하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것은 내면의 깊이를 응시하며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찾는 일입니다. - P67

AI 시대에 판단의 장치를 만드는 것은 속도를 늦추는연습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미 답이 너무 빨리 도출되는 환경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질문을 던지면 몇 초만에 구조화된 결론이 돌아옵니다. 흠 없이 정렬되어 있으며, 반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판단은 그 매끄러움 위에서 곧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멈춤은 고도의 인지 에너지를 소모하는 뇌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멈춤의 시간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 Negative Capability, 부정적 수용 능력입니다. 영국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가 말한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는확실한 근거나 이유를 찾으려 서두르지 않고, 불확실성, 미스터리, 의심 속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며,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어떤 전제 위에 서 있는가, 내가 놓치고 있는 변수는 없는가, 지금의 선택이 어떤 파장을 만들 것인가. 이 짧은 멈춤의 시간이 판단의 출발점이 됩니다. - P69

판단의 장치를 구축하는 두 번째 단계는 선택의 이유를 언어로 설명하는 훈련입니다.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진결정은 쉽게 흐려집니다. 그러나 그것을 문장으로 옮기는순간, 비어 있던 전제가 드러나고 감정과 욕망이 섞여 있던부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왜 이 선택에 끌렸는가,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했는가. 이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 나는무엇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답을 짧게라도 정리해보는 과정이 판단의 회로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설명할 수 없는 선택은 결국 내 것이 되지 못합니다. 반대로 설명을 통과한 선택은 비로소 나의 기준을 형성합니다.
세 번째는 결과를 감당하는 경험을 피하지 않는 일입니다. 판단은 이론 속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실제 결과와만나야 비로소 정교해집니다. 내가 내린 결정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을 때 그 실패를 구조적으로 복기할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 P70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불편함을 견디는 힘입니다. 우리는 흔히 빠르게 답을 찾는 능력을 실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상태를 잠시 유지할 수 있는능력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아직 모르겠다‘는 상태를견디지 못하면 우리는 가장 먼저 제시된 그럴듯한 답에 기대게 됩니다. 그러나 판단은 확실성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AI는 이 불확실성의 시간을 압축합니다. 그래서 판단의 장치를 유지하려면 의도적으로 여지를 남겨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즉각적인 결론을 유보하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보고, 반대 근거를 일부러 탐색하는 태도 말입니다. - P71

반대로 경험이 제한된 사람은 상상할 수 있는 재료 자체가 적습니다. 뇌가 재조합할 기억과 감정의 조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미 주어진 틀 밖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이때 AI가 제시하는 결과는 매우 그럴듯한 미래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어디까지나 AI가 학습한 과거의 평균값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험이 필요할까요.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은 있습니다. 뇌가 불편해지는 경험, 예측이 어긋나는 경험,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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