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동산 다시 읽어보려 했으나, 오늘까지 반납기한이라 결국 못읽고 반납.

트리고린 어떻게 느끼느냐고요? 아무 느낌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잠시 생각하고 나서) 아마 두 가지 중 하나겠지요 - 당신이 내 명성을 과장하고 있거나, 아니면 명성이란 게 원래 나 자신이 느낄 수 없는 것이거나. - P50

떨칠 수 없는 어떤 생각 하나가 낮이나 밤이나 나를 사로잡고 있어요. 써야 된다, 써야 된다, 써야 된다……. 중편 소설 하나를 끝내기 무섭게 벌써 다른 걸 써야 돼요. 그러고 나면 세 번째, 세 번째 다음엔 또 네 번째………. 끊임없이 쓰는 겁니다, 마치 계속해서 말을 갈아타듯이. 달리 방법이 없어요. 거기에 도대체 무슨 멋지고 빛나는 게 있나요? 뭐 이런 형편없는 인생이 다 있냔 말입니다! 난 이렇게 당신과 함께 있으면서 마음이 들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끝내지 못한 소설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걸 매 순간 떠올립니다. 저기 피아노를 닮은 구름이 보이네요. 그러면 난 생각합니다, 피아노를 닮은 구름이 떠 있었다. 이걸 기억해 두었다가 소설 어딘가에서 써먹어야 될 텐데. 헬리오트로프 향기가 나네요. 바로 기억해야 돼. 들큼한 향기, 과부의 꽃, 여름날 저녁을 묘사할 때 잊지 말고 써먹어야지. 당신이나 내가 말하는 한 구절, 한 구절, 한마디, 한마디를 낚아채고, 이 모든 구절과 단어들을 나의 문학 창고 안에서 둘러 가둬 놓는 겁니다. 언젠가 써먹을 일이 있을 테니까! 일을 끝내면 극장으로 달려가거나 낚시를 하러 갑니다. 거기서는 숨을 좀 돌리고 일에 대해 잊어버렸으면 하지요. 그러나 웬걸, 머릿속에선 벌써 육중한 무쇠 포탄이 굴러다니고 있어요. 새로운 주제 말입니다. - P52

트리고린 (초조하게) 그럼, 그럼………. (생각에 잠기며) 이 순결한 영혼의 호소에서 왜 슬픔이 느껴지는 걸까. 그리고 내 심장은 왜 이리도 아프게 조여드는 걸까? "당신에게 내 생명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와서 가져가세요………." (아르카디나에게) 하루만 더 머무릅시다! - P70

(의사와 함께 책상으로 다가간다.) 의사 선생님, 종이 위에서 철학자가 되긴 쉽지만, 현실 속에서 철학자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네요! - P90

투르게네프의 작품에 이런 말이 있지요, "이런 밤, 자기 집 지붕 밑에 있는 사 사람은, 따뜻한 방 한 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난 갈매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자기 이마를 문지른다.) 내가 무슨 말을 했었죠? 맞아……. 투르게네프였지. "그리하여 신은 갈 곳 없는 모든 방랑자들을 도와주리라."……난 괜찮아요. (흐느낀다.) - P101

이제 난 예전과 달라요……. 나는 이제 진정한 배우예요. 나는 희열 속에 연기를 즐기면서 무대에 도취되고, 자신을 아름답다고 느껴요. 난 지금은 여기서 머무는 동안, 내내 걸어다녀요, 걸으면서 생각해요, 나의 정신력이 하루하루 자라나는 것을 생각하고 느껴요. 나는 이제 알아요, 그리고 이해해요, 코스챠,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건 소설을 쓰건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하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명예가 아니라, 내가 동경하던 그 눈부신 명성이 아니라, 참는 능력이라는 걸 이젠 알아요.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믿음을 갖는 거야. 나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괴롭지 않아, 그리고 나의 사명을 생각할때는 인생이 두렵지 않아.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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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 이건 돌아가신 엄마의 시계예요.
체부티킨 그렇겠지……. 엄마 것, 그래 엄마 것이겠지. 그런데 혹시 내가 시계를 깨뜨린 게 아니라 단지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그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고 실제로는 여기 없는 것일지도 몰라. 난 아무것도 모르겠어.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야. (문가에 서서) 뭘 보시오? 나타샤가 프로토포포프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 당신들은 보질 못하지……. 당신들이 여기 그냥 앉아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동안, 나타샤는 프로토포포프와 바람을 피우고 있어요……. (노래한다.) "이 대추야자 열매를 따 가지 않으시려나요………." (나간다.) - P279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즐거움도 없이 시간만 가고 있어. 진정으로 멋진 삶에서 점점 멀어져서 어떤 심연으로 자꾸자꾸 빠져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야. 이렇게 절망하고 있는데도 내가 어떻게 아직 살아 있는지, 왜 아직도 자살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 P287

투젠바흐 지나고 보면 우리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하잘것없고 어리석은 일들이 이따금 무슨 의미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 언제나처럼 그런 것들을 비웃으며 하찮다고 여기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 일에 매달리고, 또 그러면서 자신에게는 멈출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걸 느끼는 거야. 오, 이런 얘기는 하지 말자! 난 기뻐, 난 마치 난생 처음 이 전나무며 단풍나무며 자작나무들을 보는 느낌이야.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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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료니 나는 왜 그런지 알지.

모두 그를 바라본다.

왜냐하면 만약 역이 가까이 있다면 멀리 있을 수 없고, 만약 멀리 있다면 가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지. - P218

이리나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하시네요. 그런데 그냥 그렇게 보일 뿐이라면 어쩌시겠어요! 우리 세 자매에게 인생은 아름답기는 커녕, 마치 잡초들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숨 막히게 해 왔을 뿐이에요……. 눈물이 나네. 이러면 안 되지………. (재빨리 얼굴을 닦고 미소 짓는다.) 일을 해야 돼요, 일을, 우리가 울적한 이유는, 인생을 이토록 어둡게 보는 이유는 노동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노동을 업신여기는 사람들 속에서 태어났어요……. - P230

안드레이 모스크바에서 레스토랑의 드넓은 홀 안에 앉아 있으면 말이야………. 내가 아는 사람도 없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어. 그러면서도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질 않거든. 그런데 여기서는 모두가 아는 사람이고 모두가 나를 알아보지. 그런데도 낯설어. 낯설어………. 낯설고 외로워. - P240

투젠바흐 좋지요. 다음 세상에선 사람들이 기구를 타고 날아다닌다거나, 남자들 재킷 모양이 달라진다거나, 제6감의 비밀이 밝혀져서 그 감각을 신장시키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인생은 여전히 힘들고, 비밀로 가득 차 있으며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천 년이 지난 뒤에도 인간은 마찬가지로 한숨을 쉴 겁니다. "아 산다는 건 힘든 일이야!" 이러면서. 게다가 지금과 조금도 다름없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죽기 싫어할 겁니다. - P248

베르쉬닌 군사 아카데미로 진학하진 않았지만 나도 당신과 같은 학교를 나왔습니다. 책을 많이 읽긴 하는데, 고르는 안목이 없어서 어쩌면 제대로 필요한 책을 못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살면 살수록 더 많이 알고 싶어진다는 겁니다. 머리는 하얘져서 이제 영감이나 마찬가진데도 아는 게 너무 없어요, 정말 없어! 하지만 점점 더 분명해지는 생각은, 가장 중요하고도 절박한 사실을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겁니다. 증명이라도 하고싶을 지경입니다. 행복이란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는 행복이있을 수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다만 일을 하고 또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행복은 우리의 먼 후손들 몫이 되는 거죠. - P249

마샤 제 생각에, 인간은 신앙인이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신앙을 추구해야 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삶이 공허하지요, 공허해요……. 두루미는 왜 날아가는지, 아이들은 왜 태어나는지, 하늘의 별은 왜 빛나는지 알지 못하고 그냥 살 수도 있지만, 우리가 왜 사는지 알면서 살 수도 있잖아요…….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다 시시하고 별것 아닌지도 모르지요. - P251

마샤 고골이 그랬죠. "이 세상에서 산다는 건 따분한 일입니다. 여러분!"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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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여성들은 흔히 겪는 일인데 왜 우리는 제대로 공론화 하지 못했던 것일까. 대학 강의를 하면서 이런 주제로 토론을 하기 시작하면, 쏟아지는 여학생들의 제보에 처음에 남학생들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다 이야기가 조금만 더 길어지면 어김없이 남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우리를 다 가해자 취급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수업 시간마다 하도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 나는 남학생들에게 왜 그들의 친구보다 그 친구를 모욕한 낯선 사람에게 더 쉽게 동일시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잘못은 내가 아닌 다른 남자가 했는데도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느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도 남자니까, 나도 조금은 저런 행동을 하기도 하니까, 혹은 내 친구들이 저런 행동을 한 것을 알고 있으니까……. 여러 가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진짜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왠지 불편하다는 말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으므로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남자들 모두가 당연히 괴롭힘을 즐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는 말을 강조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일부 남자들에게만 해당된다는 말을 들으면 이런 불편함이 해소될까? 오히려 그런 말 때문에 변화를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이런 갈등에 대해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의 내용과 수준을 결정한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갈등을 쉽게 해소하려고 들지 않은 것, 그리고 갈등을 감정적 딜레마로 만들지 않은 것 말이다. - P172

P.S. 마지막으로 길거리 괴롭힘을 멈추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의 부록을 주의 깊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자기방어훈련을 배우고 가르친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이 책에서 제안하는 방법들 대부분은 매우 효과적이다. 말싸움에서 이기려고 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반복해서 얘기하고, 신체 언어를 명확하게 정돈하고, 상대방이 한 행동을 말로 그대로 묘사하는 등의 대응방안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실제 상황에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장면마다 구체적인 표정부터 목소리, 얼굴의 방향까지를 하나하나 몸에 익혀야 한다. 기회가 된다면 여성단체 등에서 주관한 자기방어훈련을 통해 혹은 혼자라도 이런 대응법에 대한 연습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방어훈련은 더 강해지기 위해서 하는 훈련이 아니라 내 몸의 한계와 가능성을 알아가는 훈련이다. 본인의 신체가 어떤 조건에 있든 간에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시작해보라. 늦지 않았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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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 - 수필가 배혜경이 영화와 함께한 금쪽같은 시간
배혜경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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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님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기는 영화 에세이. 봤던 영화도 다시 보고 싶게 만들고, 아직 보지 못한 영화도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추억을 소환하는 책이다. ‘타인의 삶이라는 영화와 관련하여 타자기를 추억함에 대한 글은, 특히, 잊고 있던 타자기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켰다. 언니가 상업고등학교를 다녀서 방학 때마다 타자기를 한 달 씩 대여해 왔었는데, 타자기에 전혀 관심 없던 언니와 달리, 타자기 장난감이 너무 신기해서 가지고 놀던 기억이 난다. 책을 꺼내 좋아하는 시나 소설 문장들을 타자기로 쳐 보는 게 너무 재밌었다. 글자가 종이에 찍히는 소리, 종이를 한 줄 넘기는 소리, 좌우에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글자 다리(?)의 움직임, 자판의 뻑뻑한 촉감도. 타이프체를 좋아하신다니 제목과 소제목의 타이프체가 새삼 다시 보인다. 타자기로 친 불균형한 글자와 불균질한 먹의 번짐을 나도 좋아한다.


영화관에 대한 추억도 떠오른다. 20대 때 즐겨 가던 종로의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극장 등등(이제 이름도 가물가물...). 특히나 좋아했던 대학로 동숭시네마텍. 좋은 영화 많이 봤었는데. 그리고 중구에 살 때 자주 갔던 충무로 대한극장. 찾아보니 여긴 아직 운영 중인 것 같네.


이 책을 덮고 나니 어찌 영화가 보고 싶지 않을 수 있나. 어찌 극장을 가지 않을 수 있나. 요즘 개봉 영화에 통 관심을 못 가져서 가장 최근에 극장에서 본 영화가 무려 작년 8월에 본 크루엘라’! - 이동진 평론가님 블로그에서 별점 좀 찾아보고 급하게 검색하여 코다를 볼까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볼까 스펜서를 볼까 하다 시간대가 가장 맞는 스펜서를 보았다. 크리스틴 언니 연기가 너무 좋다. 토요일 1130분에 영화가 끝나고 걸어서 집까지 오는 길이 바람도 따뜻하고 너무 충만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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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2 2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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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2 2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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