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여성들은 흔히 겪는 일인데 왜 우리는 제대로 공론화 하지 못했던 것일까. 대학 강의를 하면서 이런 주제로 토론을 하기 시작하면, 쏟아지는 여학생들의 제보에 처음에 남학생들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다 이야기가 조금만 더 길어지면 어김없이 남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우리를 다 가해자 취급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수업 시간마다 하도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 나는 남학생들에게 왜 그들의 친구보다 그 친구를 모욕한 낯선 사람에게 더 쉽게 동일시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잘못은 내가 아닌 다른 남자가 했는데도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느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도 남자니까, 나도 조금은 저런 행동을 하기도 하니까, 혹은 내 친구들이 저런 행동을 한 것을 알고 있으니까……. 여러 가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진짜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왠지 불편하다는 말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으므로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남자들 모두가 당연히 괴롭힘을 즐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라는 말을 강조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일부 남자들에게만 해당된다는 말을 들으면 이런 불편함이 해소될까? 오히려 그런 말 때문에 변화를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이런 갈등에 대해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의 내용과 수준을 결정한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갈등을 쉽게 해소하려고 들지 않은 것, 그리고 갈등을 감정적 딜레마로 만들지 않은 것 말이다. - P172

P.S. 마지막으로 길거리 괴롭힘을 멈추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의 부록을 주의 깊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자기방어훈련을 배우고 가르친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이 책에서 제안하는 방법들 대부분은 매우 효과적이다. 말싸움에서 이기려고 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반복해서 얘기하고, 신체 언어를 명확하게 정돈하고, 상대방이 한 행동을 말로 그대로 묘사하는 등의 대응방안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실제 상황에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장면마다 구체적인 표정부터 목소리, 얼굴의 방향까지를 하나하나 몸에 익혀야 한다. 기회가 된다면 여성단체 등에서 주관한 자기방어훈련을 통해 혹은 혼자라도 이런 대응법에 대한 연습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방어훈련은 더 강해지기 위해서 하는 훈련이 아니라 내 몸의 한계와 가능성을 알아가는 훈련이다. 본인의 신체가 어떤 조건에 있든 간에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시작해보라. 늦지 않았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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