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테레사
존 차 지음, 문형렬 옮김 / 문학세계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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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필링스‘를 통해 알게 된 차학경, 테레사 차의 비극적인 죽음과 재판, 그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 테레사의 오빠 존 차 작가가 쓴 동생 테레사를 온전하게 보내기 위한, 지극한 애정과 애도가 담긴 책이다. 천재 예술가의 비극적인 죽음을 애도하며. 그녀의 ‘딕테‘를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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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11-18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복을 빕니다...

햇살과함께 2022-11-18 17:47   좋아요 1 | URL
너무 안타까운 죽음이에요…
 

비 오는 날의 인사

중략

"여기는 윤동주 선배님의 조용한 안식처입니다. 담배 꽁초를 버리지 맙시다."
오늘은 비가 지독하고
팻말은 풀숲 속에 쓰러진 채 비에 젖어 있었지만
후배들은 여기서 담배 따위는 피우고 있지 않아요
여기 올 때마다 조그마한 꽃다발이 놓여 있습니다.
"시인이 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당했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라고 일본의 한 뛰어난 여성 시인이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신에 대해서입니다.

중략 - P13

서울

사람이 어깨만이 돼서 거리에 넘친다.
버스 기사님이 어깨만이 돼서 우리를 싣고 달린다
연인들이 어깨만이 돼서 타박타박 걸어간다.

이 거리는 어깨만으로 남아 서 있다.

사람들이 어깨만이 돼서 부딪쳐 간다.
버스 기사님이 어깨만이 돼서 우리를 버리려 달려간다
연인들이 어깨만이 돼서 넘어져 간다

이 거리는 어깨만 남아 짖는다.
어깨 너머 잊힌 달이 헐떡거린다.

이 어깨에는 그림자가 없다. - P28

등심(燈心)

촛불에 있어서 등심이 그렇듯
소중한 것은 아주 가녀리다.
꼭 있어야만 할 것은 참 가녀리다.
그것 없이 아예 존재 못할 때

그리고 아예 존재함에는 형체가 없다.
촛불 하나가 방 안을 밝힐 때
빛에 형체가 없듯
어떤 모양이든 방 안을
구석구석까지 다 밝힐 때 - P53

눈보라

2
수업이 심심하게 느껴지는 겨울날 오후에는 옆자리애랑 내기하며 놀았다. 그것은 이런 식으로 하는 내기이다. 먼저 창문 밖에서 풀풀 나는 눈송이 속에서 각자가 눈송이를 하나씩 뽑는다. 건너편 교실 저 창문 언저리에서 운명적으로 뽑힌 그 눈송이 하나만을 눈으로 줄곧 따라간다. 먼저 눈송이가 땅에 착지해버린 쪽이 지는 것이다. "정했어." 내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나도"하고 그애도 말한다. 그 애가 뽑은 눈송이가 어느 것인지 나는 도대체 모르지만 하여튼 제 것을 따라간다. 잠시 후 어느 쪽인가 말한다. "떨어졌어." "내가 이겼네." 또 하나가 말한다. 거짓말해도 절대로 들킬 수 없는데 서로 속일 생각 하나 없이 선생님 야단 맞을 때까지 열중했다. 놓치지 않도록, 딴 눈송이들과 헷갈리지 않도록 온 신경을 다 집중시키고 따라가야 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나는 한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났다. 아직도 눈보라 속 여전히 그 눈송이는 지상에 안 닿아 있다. - P65

손톱

달동네 한복판에
어깨처럼 완만한
언덕 중턱에
눈이 남아 있다.
집들이 철거된 그 자리에

거기에만 땅이
남았으니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다.
몽땅 가져갔고,
땅만 남았으니

달동네 한복판에
도장으로 찍을 만한
조그마한 하얀 표가 있다.
"인정 안 해"라고
하얀 인주로 찍을
도장처럼 - P66

서울에서 내가 한 것이 있다면 그건 오로지 무언가를 보는 일, 그것뿐이었다. - P95

것이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만큼 많은 시가 "나왔"고, 또 그러기 위해서 어떤 힘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마 이런 일은 일생에한번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당시 한국의 공기 중에 뭔가 시를 유발하는 성분이 포함된 것 같았다. 사실 그후 2011년의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를 제외하고 나는 한번도 시를 쓰지 않았다. (이 책의 말미에 그것들도 수록했다.) - P95

내 한국어 실력은 높지 않았다. 만약 한국말이 유창했더라면 오히려 시를 안 썼을 것이다. 눈으로 본 것, 마음에 떠오른 것을 말하고 싶어도 제대로 못했던 답답함이 시를 쓰게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나중에 외국어로 시를 쓴다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시니까 가능했던 것이다. 논문이나 신문기사를 써보라 하면 할 수 없었을 테니까.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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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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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봄 유일하게 챙겨 읽는 수상작품집이다. 개인적으로 작년보다 좋았다. 김병운 작가의 게이 정체성 화자가 에이섹슈얼 친구에게 갖는 편견 이야기는 시스젠더 헤테로에게 신선한 해방감(?)을 준다. 요즘 뜨는 김지연 작가의 진한 현실감도 좋고, 마지막 서이제 작가의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실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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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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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읽었다. 이제야 읽을 용기가 났던 건가. 자식을 어이 없는 사고로 먼저 보낸 부모를 투사로 만드는 나라. 세월호 관련 책이 매년 나오고 있다.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매년 봄에는 세월호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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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17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식잃은 부모앞에서 짐승같았던 그들이 미워서 분노도 했고 ㅠㅠㅠ 저도 기억하겠습니다.
 

아니, 꿈이 아니었다. 그건 온몸이 떨릴 만큼 환희에 가득찬 전율이 빚어낸 환상이거나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내안의 시적 본성이 급작스러운 창의성의 형태로 드러난것일지도 모른다. 호메로스가 트로이의 평야를 보고, 단테가 죽은 자들의 도시를 보고, 밀턴이 지구로 도망치는유혹자의 모습을 본 것도 그러한 방식이었으리라. 아니면 내 몸속의 병마가 신경을 더욱 각성시킨다든가 하는 바람직한 변화를 일으켜서 발생한 현상일까?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종종 읽었다. 적어도 몇몇 소설에서. - P26

그러나 단지 그런 까닭에 호감이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버사가 베일에 싸인 덕분에 나의 열정이 서서히 커진것만큼은 사실이었다. 버사는 예지력이라는 끔찍한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신비한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 P43

흔히 인간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계약을 할 때 자신의 피로써 서명을 한다고 전해진다. 이는 그 계약의 효과가 나중에야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인간 곁에는 언제나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하므로 야만성을 이기지 못하고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충동적으로 악마의 잔을 들이켜고 만다. 현명함을 얻는 데에는 지름길도, 전용 선로도 없다. - P48

살아있고 또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붙잡더라도, 그 생생한 순간조차 일단 기억의 일부가 되어 버리고 나면 그저 관념으로 변해서 아무 쓸모 없는 창백한 그림자가 되고 만다. - P50

우리는 우리 안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쉽사리 녹아 사라질 거라고, 그저 지식의 편협함만이 우리의 관대함과 경외심, 인간적인 경건함 사이에 숨어서 동료들의 감정과 기분에 대한 우리의 엄연한 무관심을 드러나게 하는 요소라고 믿고 싶어한다. 인간의 자기중심주의가 최고조에 달할 때 우리의 안일함과 포기 또한 강해지는 것 같다. 우리의 승리는 다름아닌 타인의 상실이다. 따라서 승리가 어느 순간 갑자기찾아왔을 때 우리는 그것이 죽음의 차가운 손으로 얻어 낸 몫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몸서리치게 된다. - P50

그로써 나는 또 하루의 유예를 얻게 될 것이다. 유예의 긴장감이란 두려움에 떠는 인간 정신이 희망의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했다. - P51

아마도 절망에 빠진 젊음과 열정의 비극은 절망에 빠진 노년과 속된 바람의 비극보다는 덜 비참하리라.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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