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꿈이 아니었다. 그건 온몸이 떨릴 만큼 환희에 가득찬 전율이 빚어낸 환상이거나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내안의 시적 본성이 급작스러운 창의성의 형태로 드러난것일지도 모른다. 호메로스가 트로이의 평야를 보고, 단테가 죽은 자들의 도시를 보고, 밀턴이 지구로 도망치는유혹자의 모습을 본 것도 그러한 방식이었으리라. 아니면 내 몸속의 병마가 신경을 더욱 각성시킨다든가 하는 바람직한 변화를 일으켜서 발생한 현상일까?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종종 읽었다. 적어도 몇몇 소설에서. - P26

그러나 단지 그런 까닭에 호감이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버사가 베일에 싸인 덕분에 나의 열정이 서서히 커진것만큼은 사실이었다. 버사는 예지력이라는 끔찍한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신비한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 P43

흔히 인간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계약을 할 때 자신의 피로써 서명을 한다고 전해진다. 이는 그 계약의 효과가 나중에야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인간 곁에는 언제나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하므로 야만성을 이기지 못하고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충동적으로 악마의 잔을 들이켜고 만다. 현명함을 얻는 데에는 지름길도, 전용 선로도 없다. - P48

살아있고 또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붙잡더라도, 그 생생한 순간조차 일단 기억의 일부가 되어 버리고 나면 그저 관념으로 변해서 아무 쓸모 없는 창백한 그림자가 되고 만다. - P50

우리는 우리 안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쉽사리 녹아 사라질 거라고, 그저 지식의 편협함만이 우리의 관대함과 경외심, 인간적인 경건함 사이에 숨어서 동료들의 감정과 기분에 대한 우리의 엄연한 무관심을 드러나게 하는 요소라고 믿고 싶어한다. 인간의 자기중심주의가 최고조에 달할 때 우리의 안일함과 포기 또한 강해지는 것 같다. 우리의 승리는 다름아닌 타인의 상실이다. 따라서 승리가 어느 순간 갑자기찾아왔을 때 우리는 그것이 죽음의 차가운 손으로 얻어 낸 몫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몸서리치게 된다. - P50

그로써 나는 또 하루의 유예를 얻게 될 것이다. 유예의 긴장감이란 두려움에 떠는 인간 정신이 희망의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했다. - P51

아마도 절망에 빠진 젊음과 열정의 비극은 절망에 빠진 노년과 속된 바람의 비극보다는 덜 비참하리라.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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