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은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경계가 모호한 아니 에르노의 책. 아버지의 자리와 나의 자리, 그 연결. 그 간극. 나도 언젠가는 말할 수 있을까. 죽기 전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페 겸 식료품점은 문을 닫는 일이 없었다. 그는 유급휴가를 가게에서 일을 하며 보냈다. 가족은 늘 다시 찾아왔고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주물공이나 철도청에서 일하는 매형에게 잘사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사람들은 뒤에서 그들을 부자 취급하며 욕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했다. 노동자보다는 상인으로 보이고 싶어 했다. 정유공장에서 그는 반장으로 승진했다. - P39

글을 쓰며 하류라 여겨지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 회복과 그에 따른 소외를 고발하는 일 사이에서 좁다란 길을 본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의 것이었고 심지어 행복하기도 했으며, 우리가 살던 환경의 수치스러운 장벽들(≪우리 집은 잘살지 못한다>는 인식)이기도 했으니까. 행복이자 동시에 소외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이 모순 사이에서 흔들리는 느낌이다. - P48

펄럭이는 원피스에 쭉 뻗은 팔은 나의 첫 자전거 핸들을 잡고 있으며, 한 발은 땅에 내딛고 있다. 그는 한 손은 늘어뜨리고 다른 한 손은 벨트를 붙잡고 있다. 배경으로 카페의 열린 문, 창가의 꽃, 그 위로는 주류 소매 허가증이 보인다. 우리는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것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가게, 자전거, 나중에는 르노 4CV, 그는 재킷을 과장되게 올리는 몸짓을 하며 자동차 지붕에 한 손을 올리고 있다. 어떤 사진 속에도 그가 웃고 있는 모습은 없다. - P49

예를 들면 프루스트는 프랑수아즈의 부정확한 표현들과 옛날말들에 황홀해하며 그것을 강조했다. 그가 오직 사투리의 미학적인 것만을 중요시했던 것은 프랑수아즈가 그의 하녀이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었기 때문이며, 그 자신도 입에서 이런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P55

부모와 자식 사이의 예의는 오랫동안 내게 미스터리였다. 교육을 잘 받고 자란 사람들이 그저 간단한 인사에도 극도로 친절함을 나타내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부끄러웠다. 그런 존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고, 내게 특별한 호의를 보이는 것이라고 상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매우 열렬한 관심을 보이는 얼굴로 던진 그 질문들과 그 미소가 밥 먹을 때 입을 다물고 먹거나 슬그머니 코를 푸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 P64

열일곱 살인 내가 돈을 벌지 못한다는 사실에 그는 가족과 손님들 앞에서 불편해했다. 아니, 거의 부끄러워했다. 우리 주변에는 내 또래의 거의 모든 여자애들이 사무실이나 공장에 나가 일하거나, 부모 가게의 계산대 뒤에서 물건을 팔았다. 그는 사람들이 나를 게으른 여자애로, 자신을 허세 부리는 사람으로 여길까봐 걱정했고, 이런 핑계를 댔다. ≪우리는 절대 강요한 적 없어요. 원래 그런 아이예요.≫ 그는 내가 잘 배운다는 말은 하지만, 열심히 한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노동이란 오직 두 손으로 하는 것이니까. - P72

몇 년 전부터 기다려왔던 것이고, 걱정 하나를 던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아무나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혹은 불안한 여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그는 자신이 모아 놓은 돈으로 이 젊은 신혼부부를 도울 수 있기를 바랐다. 한없이 베풀어서 그와 사위 사이를 갈라놓는 문화와 권력의 차이를 만회하길 바랐던 것이다. ≪우린 이제 필요한 게 별로 없어.≫ - P85

어머니는 <<다이어트를 조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아이는 정원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레망다랭을 읽으며 아이를 지켜봤다. 이 두꺼운 책을 읽다 보면 어떤 페이지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가 더는 살아 있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독서에 집중할 수 없었다. 손님들은 여전히 소식을 물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병이 심근 경색인지 혹은 일사병인지 정확히 알고 싶어 했고, 어머니의 모호한 대답이 의심을 일으켰다. 그들은 우리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병명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 사이 사이에 침묵으로 끊기는 노래를 하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나를 깨웠다. 종부성사였다. 나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불경한 것 마냥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어머니는 첫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사제장을 붙잡기 위해 일찍 일어났을 것이다. - P97

내가 교양 있는 부르주아의 세상으로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두고 가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일을 마쳤다. - P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 이순자 유고 산문집
이순자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처럼 추천사가 무용한 책이 있을까. 추천사는 군더더기일 뿐. 글 한편으로도 충분하다. 예순 아홉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글만 쓸 수 있다며,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쓴다.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라는 작가님의 결연하고도 행복한 미소가 보이는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단 위쪽에서 어머니가 보였다. 그녀는 점심 식사 후에 방으로 가지고 올라간 듯한 냅킨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끝났다.≫ 그 후 몇 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 뒤로 멀리 무언가를 응시하던 아버지의 눈과 잇몸 위로 말려 올라간 그의 입술만이 떠오를 뿐이다. 어머니께 아버지의 눈을 감겨드리라고 말했던 것 같다. 이모와 이모부도 침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시신이 굳기 전에 서둘러야 하니 아버지의 몸을 닦고, 면도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3년 전, 내 결혼식에 입었던 양복을 아버지에게 다시 입힐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장면이 매우 덤덤하게 흘러갔다. 비명도, 오열도 없이. - P11

사망을 확인해 준 당직 의사에 대한 기억은 없다. 몇 시간 만에 아버지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있었다. 오후가 끝날 무렵 방에 혼자 남겨졌다. 차양을 통과한 햇살이 장판 위로 슬며시 들어왔다. 그것은 더 이상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퀭한 얼굴에 코만 보였다. 흐물흐물한 파란색 양복에 감싸인 그가 마치 누워 있는 한 마리의 새처럼 보였다.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 남자의 얼굴은 그가 숨을 거두자마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다시 그 얼굴조차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 P13

장례식 전날, 장례식 후에 있을 식사를 위해 송아지 고기 한 덩어리를 익혔다. 장례에 참석해 준 사람들을 굶겨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 남편이 저녁에 도착했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을 한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슬픔에 불편해 보였다. 그에게는 그곳이 어느 때보다 더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우리는 집에 하나뿐인 2인용 침대에서 잤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 침대다. - P16

일요일, 돌아가는 기차에서 아이가 얌전히 있도록 놀아주려 애를 썼다. 일등석의 승객들은 시끄러운 것과 아이들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불현듯 ≪나는 이제 정말 부르주아구나>>라는 생각과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나중에 첫 발령을 기다리며 여름을 보내면서 ≪이 모든것을 설명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아버지와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춘기 시절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이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다. 계층 간의 거리나 이름이 없는 특별한 거리에 대해. 마치 이별한 사랑처럼. - P19

최근에서야 나는 소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질적 필요에 굴복하는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술적인 것, 무언가 ≪흥미진진한 것≫ 혹은 ≪감동적인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버지의 말과 제스처, 취향, 아버지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 나 역시 함께 나눴던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표적을 모아보려 한다.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을 것이다. 단조로운 글이 자연스럽게 내게 온다. 내가 부모님께 중요한 소식을 말하기 위해 썼던 글과 같은 글이. - P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데 갔다 이래 오래 있었누? 니 팔랑대며 드나들지를 않으니 밥맛이 다 없어지드라. 할아버이 밥 잡수라고 부르러가다가 보니 니 신발이 있길래 왔제."
며칠이나 살고 가려나 하시더니 할머니는 벌써 마음에 내가 앉을 의자 하나 놓으셨나 보다. - P16

그간 겪은 고통의 순도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것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고통은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끈끈하게 묶어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함께 가려면 우선 내가 건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우리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를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렇듯 사람은 고통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성장하게 된다. - P25

이 삶의 답답한 경계를 허물 수 없어 오늘도 글을 쓴다. 글은 나의 탈출구다. 나의 슬픔, 나의 한탄, 나의 목마름, 나의 안타까움. 하지 못한 많은 말을 글로 토해내며 글로나마 나를 위로한다. - P39

그때 우리는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고 겁 없는 젊음이었다. 명동성당에서 만난 친구들과 보낸 20대에 나는 내 자아를 완성했다. 그리스도 정신과 정의에 대한 신념과 겁 없는 젊음이 삼위일체가 되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뿔뿔이 헤어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그때 우리가 생각하고 실행했던 것들에 대한 가치가 아직 내 안에 살아 있다고믿는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담대함 또한 그때 형성된 게 아닐까?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고, 용기는 용기를 낳는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생각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정직성은 내 인생의 모토다. - P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