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위쪽에서 어머니가 보였다. 그녀는 점심 식사 후에 방으로 가지고 올라간 듯한 냅킨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끝났다.≫ 그 후 몇 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 뒤로 멀리 무언가를 응시하던 아버지의 눈과 잇몸 위로 말려 올라간 그의 입술만이 떠오를 뿐이다. 어머니께 아버지의 눈을 감겨드리라고 말했던 것 같다. 이모와 이모부도 침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시신이 굳기 전에 서둘러야 하니 아버지의 몸을 닦고, 면도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3년 전, 내 결혼식에 입었던 양복을 아버지에게 다시 입힐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장면이 매우 덤덤하게 흘러갔다. 비명도, 오열도 없이. - P11

사망을 확인해 준 당직 의사에 대한 기억은 없다. 몇 시간 만에 아버지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있었다. 오후가 끝날 무렵 방에 혼자 남겨졌다. 차양을 통과한 햇살이 장판 위로 슬며시 들어왔다. 그것은 더 이상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퀭한 얼굴에 코만 보였다. 흐물흐물한 파란색 양복에 감싸인 그가 마치 누워 있는 한 마리의 새처럼 보였다.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 남자의 얼굴은 그가 숨을 거두자마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다시 그 얼굴조차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 P13

장례식 전날, 장례식 후에 있을 식사를 위해 송아지 고기 한 덩어리를 익혔다. 장례에 참석해 준 사람들을 굶겨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 남편이 저녁에 도착했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을 한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닌 슬픔에 불편해 보였다. 그에게는 그곳이 어느 때보다 더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우리는 집에 하나뿐인 2인용 침대에서 잤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 침대다. - P16

일요일, 돌아가는 기차에서 아이가 얌전히 있도록 놀아주려 애를 썼다. 일등석의 승객들은 시끄러운 것과 아이들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불현듯 ≪나는 이제 정말 부르주아구나>>라는 생각과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나중에 첫 발령을 기다리며 여름을 보내면서 ≪이 모든것을 설명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아버지와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사춘기 시절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이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다. 계층 간의 거리나 이름이 없는 특별한 거리에 대해. 마치 이별한 사랑처럼. - P19

최근에서야 나는 소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질적 필요에 굴복하는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술적인 것, 무언가 ≪흥미진진한 것≫ 혹은 ≪감동적인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버지의 말과 제스처, 취향, 아버지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 나 역시 함께 나눴던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표적을 모아보려 한다.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을 것이다. 단조로운 글이 자연스럽게 내게 온다. 내가 부모님께 중요한 소식을 말하기 위해 썼던 글과 같은 글이.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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