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 휠체어 위의 유튜-바, 구르님의 유쾌하고 뾰족한 말 걸기
김지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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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님의 당부의 말에도 불구하고, 자꾸 눈물샘이 자극되어 눈시울이 붉어졌으나, 그래도 울진 않았다고 밝힙니다. 더 많은 ‘관종력’을 장착하여 다양한 활동과 영상에서 ‘뾰족한‘ 구르기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개그 시도도 재미있었으니 안심하고 자꾸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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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그리고 그 당시에는 페스트가 비교적 안정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리유가 계획했던 조직이 손이 모자라 쩔쩔매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기진맥진하도록까지 노력을 쏟고 있던 의사들이나 조수들이었지만 그 이상의 노력을 요하는 상황을 상상해볼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그들은 다만 규칙적으로 그 초인적인 일들을 계속해야만 했다. - P307

그들은 다시 옷을 주워 입고, 말 한마디 입 밖에 내지 않은채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들은 똑같은 심정이었고, 그날 밤의 추억은 달콤한 것이었다. 멀리 페스트의 보초병이 보일 때 리유는, 타루도 역시 자기처럼, 페스트가 조금 아까 잠시 동안이나마 우리들을 잊고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 또다시 시작이군,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335

진했다. 당국은 날씨가 추워지면 병세가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페스트는 며칠 동안 계속된 겨울의 첫추위에도 물러갈 줄 모른 채 기승을 떨었다. 더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사람이란 기다림에 지치면 아예 기다리지 않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도시 전체는 미래의 희망 없이 살고 있었다. - P336

"됐어요." 하고 그는 말하는 것이었다. "그놈들이 다시 나와요."
"누가요?"
"쥐 말이에요, 쥐!"
지난 4월 이후로 죽은 쥐는 단 한 마리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면 다시 시작된다는 건가요?"하고 타루는 리유에게 물었다.
노인은 손을 비비고 있었다.
"놈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꼭 봐야 한다니까요! 정말 기분만점이죠."
그는 살아 있는 쥐 두 마리가 거리로 난 문으로 해서 자기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웃 사람들의 말로는, 그들 집에서도 그놈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서까래 위에서 몇 달을 두고 잊고 살았던 바스락 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있었다. 리유는 매주 초에 실시되는 총괄적 통계의 발표를 기다렸다. 통계는 병세의 후퇴를 표시하고 있었다. - P345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미온적인 고찰 밑바닥에는 동시에 무절제한 희망이 걷잡을 수 없이 꿈틀대고 있었는데, 그 정도가 심한 나머지 시민들도 그 사실을 자각할 때가있어, 그럴 때면 그들은 부랴부랴 무절제한 희망을 지워 버리고 아무래도 해방은 오늘내일에 올 것은 아니라고 자신을 타이르는 것이었다. - P350

월요일에는 희생자의 수를 부쩍 늘려 놓았다가 수요일에는 거의 대부분의 환자를 다시 살려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처럼 숨을 몰아쉬거나 허둥지둥 서둘러 대는 꼴을 보면 마치 페스트는 신경질과 싫증으로 붕괴되고 있는 것 같아 보였으며, 그것 자체에 대한 자제력과 동시에 그의 힘의 바탕이었던 그수학적이며 위풍당당한 효율성마저 상실해 가고 있는 듯싶었다. - P351

아닌 게 아니라 가장 보잘것없는 것이나마 주민들에게 희망이란 것이 가능해진 그 순간부터 이미 페스트의 실질적인 지배는 끝났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P353

그러나 그런 예외들이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만족에 그 어떤 손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아마도 페스트는 아직 다끝나지는 않았으며, 페스트가 장차 그 사실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몇 주일을 앞당겨서 기차가 끝없이 긴 철로 위로 기적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고 선박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이튿날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이 진정되면 의혹은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당장에는, 도시 전체가 이제까지 돌의 뿌리를 박고 서 있던 그 어둡고 움직임 없는 밀폐된 장소를 떠나기 위해 부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마침내는 생존자들을 만재한 채 전진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타루와 리유도, 랑베르와 다른 사람들도, 군중 틈에 섞여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땅에 발이 닿지 않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 P356

그것은 페스트에서 해방된 밤이었다. 그리고 추위와 햇빛과 군중에게 쫓긴 질병이 시내의 어둡고 깊은 곳들에서 빠져나온 다음 이 따뜻한 방 속에 숨어들어 와서 타루의 맥없는 몸을 향해 최후의 맹공격을 가하고 있는 듯싶었다. 재앙은 더 이상이 도시의 하늘을 휘저어 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방안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 나직이 색색거리고 있었다. 리유가 몇 시간 전부터 듣고 있던 것이 바로 그 소리였다. 그는 그곳에서도 페스트가 멎고, 그곳에서도 페스트가 패배를 선언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 P372

그의 온몸은 발작적으로 경련하더니 이제는 그의 모습을 번쩍번쩍 비추던 번개도 점점 드물어졌고, 타루는 그 폭풍 속으로 서서히 표류해 가고 있었다. 리유 앞에는 미소가 사라진 채 이제는 무기력해져 버린 하나의 마스크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그에게 그렇게도 친근했던 그 인간의 모습이, 지금은 창끝에 찔리고 초인간적인 악으로 불태워지고 하늘의 증오에 찬 온갖 바람에 주리 틀리면서 바로 그의 눈앞에서 페스트의 검은 물결 속으로 빠져들어 갔지만, 그로서는 이 난파를 막는 데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빈손과 뒤틀리는 마음뿐, 무기도 처방도 없이 기슭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하는 눈물이 앞을 가려 리유는 타루가 갑자기 벽 쪽으로 돌아누워 마치 몸 한구석에서 가장 근원적인 어떤 줄 하나가 툭 끊어지기나 한 것처럼 힘없는 신음 소리를 내며 숨을 거두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 P376

타루는 아마 그렇게 살아왔던 모양이어서 환상이 없는 생활이 얼마나 메마른 생활인가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희망 없이 마음의 평화는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아무도 단죄할 권리를 인간에게주지 않았던 타루, 그러면서도 누구도 남을 단죄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심지어는 희생자가 때로는 사형 집행인 노릇을 하게 됨을 알고 있었던 타루는 분열과 모순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며, 희망이라곤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성스러움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봉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고 했던 것일까? 사실 리유는 그런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 P379

"그냥요. 그분은 그저 무의미한 말은 하지 않으셨어요. 어쨌든 나는 그분이 좋았어요. 그냥 그랬다 이겁니다. 딴 사람들은 ‘페스트예요. 페스트를 이겨냈다고요.‘ 하고 난리를 치죠. 좀더 봐주다간 훈장이라도 달라고 할 판이죠. 그러나 페스트가 대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그뿐이죠."
"찜질을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오! 염려 마세요. 나는 아직 멀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 죽는 것을 보고 죽을 거예요. 나는 살아남는 방법을 알고 있단 말입니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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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던 특수교육 담당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장애학생들과 실습을 나갔다 돌아오던 때를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학생을 집에 내려다주고 난 휠체어를 반납하려고 가 - P92

지고 돌아가는데, 다리가 너무 피곤해서 지하철에서 잠깐 휠체어에 앉아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 시선이 너무 많이 느껴지는 거야. 모든 사람이 지나가면서 한 번씩은 날 쳐다봤던것 같아. 너무 당황스럽고 부끄러워서 5분도 못 가서 다시 일어났어." - P93

‘정상성‘에서 벗어났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특히 그렇다. 누군가 내게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때 그것은 당신의 오해이며, 나는 정당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고, 옳은 일을 했다고 끊임없이 말해야 하는 삶이다. 그 ‘오해‘라는 것이 타인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않으려는 그저 힐난일지라도 흥분하지 않고 점잖게 ‘설명‘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면 곧바로 ‘피해망상‘이라든가 ‘예민‘이라는 말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경험과 감정은 자꾸 공적인 논의에는 포함될 수 없는 주관적이고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 P107

나는 어릴 때 어른이 되면 내 ‘병‘이 나을 줄 알았다. 장애가 있는 어른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와 닮은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커가면서 내 ‘장애‘가 낫지 않는다는 것, 장애와 함께 평생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마흔 살이 되면 스스로 죽을 거라고 말하곤 했다. - P112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에는 주변에 장애인이 전혀 없었다. 나는 늘 비장애인 사회 속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와 같은 몸을 가진 이는 없었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서야 나와 같은 몸,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인지를 처음 알았다. 장애인콜택시를 타면 허리가 울려서 아픈 것,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수학여행을 갈지 말지 고민하는 것등 평범하고 사소한 일이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감각. 여태살아오면서, 나는 비슷한 ‘몸‘에 대한 공감을 처음 느껴본 것이다. 짜릿했다. - P114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어서‘ 영상을 만드는 것도 맞지만, 이 문장의 어느 한켠에도 장애인의 자리는 없다. ‘사람 - P115

들‘이라는 말, 그러니까 예상 시청자에 장애인은 포함되지 않으니까. ‘장애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어서‘라는 말은 이상하다. 나는 여태 예상 시청자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이들을 위한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 P116

‘모두에게 따뜻한 세상‘을 외치는 ‘감동‘ 카메라 영상들은 정말 모두를 위한 영상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 영상들이 전체하는 시청자의 자리에 장애인은 없다. 장애인이 피부로감각하는 수치와 불안은 고려하지 않았으니까. 앞과 뒤의 일은 모두 편집해버리고, 단지 ‘영웅 비장애인‘의 모습만을 보여주니까. 정말로 그 상황 속에서 장애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자 한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원인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떤 사회구조를 바꿔야 비슷한 일이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지금 그대로의 평온한 일상이 뭔가 잘못되었으며 영상을 지켜보는 자신역시 그에 일조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불편한 장면은 없다.그것은 ‘보고 싶은’ 슬픔이 아니니까. - P121

또한 어떤 영상들은 장애인이 ‘나 자체‘로 살아가기 어렵게 만든다. 장애는 고난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경이라고생각한다는 말. 그 역경을 이겨내면서‘ 얻은 깨달음을 공유하는 이야기. 그 이야기에서 깨달음을 얻은 시청자들이 열광하는것은 영상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보다 언젠가 장애를 벗어던지고 일어날 허구의 인물이다. 댓글창에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제 앞 스크린에 비치는 인간이 ‘정상‘의 인간으로 회귀하기를 바란다는 말이 쏟아진다. 꼭 노래를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보게 되시면 좋겠어요, 건강해지세요. 그들의 마음이 너무 선량해서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 P123

"다음에 나랑 거기 가보자. 며칠 전에 갔는데 길도 넓고 차도 많이 안 다녀서 네 생각났어."
친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앞만 보고 걷던 주영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길의 울퉁불퉁한 정도, 가게의 턱, 인도의 마감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떠올렸다. 한 사람을알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시선을 배워가는 것이다. 생애 전체를 이해할 수는 없어도 세상을 마주하는 방법과 감각을 알아가고 서로에게 번져가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세계가 확장된다. - P129

‘장벽이 없는 극이란 무엇일까?‘ ‘이 모든 게 의미가 있는 일일까?‘ 하는 망설임이 우리 사이에도 있었다. 충분한 정보를모두에게 전달하겠다는 목표는 실패한 것일 수도, 애초에 허상 - P137

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판타지 안에서는 다양한몸을 상상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길 바랐다. 내가 느낀 안전함의 감각을 또 다른 타지의 몸들이 느끼길 바라면서. - P138

<소극장판-타지>는 막을 내렸다. 후련하다면 후련하고 아쉽다면 아쉬운 작품이었다. <소극장판-타지>는 국립극단의 첫장애연극, 나는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한 최초의 장애인 배우가 되었다. ‘첫‘이라는 타이틀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장애를 가진 이는 자꾸만 ‘최초‘ 혹은 ‘첫걸음‘이라는 메달을 목에 걸곤 하니까. 꾸준히 해도 자꾸 첫걸음만을 내딛게 된다고, 보름 연출은 말했다. - P138

그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전동 키트를 장착한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 혼자 이동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태도, 하고 싶은 일, 눈높이와 세상에 맞서는 마음가짐이 급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 휠체어를 움직이게 된 순간 세상이 확장되는 기분을 느꼈다. - P147

내가 몸을 생경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장애가 아니라 ‘여성‘의 몸에 관심을 가진 순간부터다. 어린이책 베스트셀러Why 시리즈는 《똥》 그리고 《사춘기와 성》 편만 유난히 닳아있다는 유머가 있는 것처럼, 나 역시 그러한 호기심 어린 발달 과점을 착실히 겪어온 어린이였다. 똥 이야기에 까르르 웃는 시기를 거쳐 가슴이나 생리 같은 것에 관심이 생긴 나는 <사춘기와 성》 편을 아주 (좀 많이) 정독했는데, 그 책에 나오는 여성의몸이 내 신체를 들여다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 P161

그러다 《어쩌면 이상한 몸》이라는 책을 만났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 그러니까 20년 전 장애인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많은 것들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장애가 있는 여성의몸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30대부터 60대까지의 ‘언니‘들 이야기였다. 이 책의 맨 앞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장애여성: ‘장애 여성’이라고 띄어서 표기할 경우에 ‘장애’가 ‘여성‘을 수식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장애여성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이야기하고, ‘수식어-명사‘라는 구분이 하나로 연결된 언어로 이해될 수 있도록 붙여서 ‘장애여성‘으로 표기했다. - P171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의 오해였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기록으로 남기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해야 했던 ‘치료‘가 어떤 목적이었든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은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다음 치료 자세로 넘어갈 때마다 "지우야, 선생님이 잠시 여기에 손을 올릴게"라고 내가 확인할 수 있도록 전달한 이후 동작을 이어가는 치료사들을 만난 뒤 나의해석을 좀 더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수혜자와 피수혜자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치료 과정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 맺음이란 그런 것이다. - P180

혼자만의 질문으로 간직하기엔 물음표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나는 이 경험과 문제의식을 담아 영상으로 만들었다. 영상 속 나는 화재 대피 훈련으로 불 꺼진 텅 빈 교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있다. 이 영상이 업로드된 이후 우리 학교는엘리베이터가 비상시에도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담임선생님은 내게 사과의 말씀을 전해주셨고, 나는 12년만에 처음으로 다음 비상 대피 훈련부터 아이들과 함께 참여했다. 소방청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대피 매뉴얼을 전달해주기도 했다. 나 말고도 모든 이가 ‘상식‘에 포함되는 대피 방법을 숙지할 수 있기를. - P206

"야, 뭘봐!"
소리를 친 것은 주영이었다.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주영을 바라보았다. 주영은 나를 오랫동안 응시하던 사람에게 정확히 시선을 두고 화를 내고 있었다. 붐비는 곳이었고 서로를 지나치는 상황이었기에, 날 쳐다보던 이는 이내 시선을 피하고갈 길을 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떤 균열을 느꼈다. 화를 내도 된다는 것, 불쾌한 시선의 원인은 내 몸에 있지않고 허락 없이 쳐다보는 저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 마음에 단단히 새겨지는 기분이었다. 야 뭐해, 싸움 나면 어떡해. 그 애를 말리는 척했지만 그 호통에 누구보다 신난 사람은 나였다. - P217

나의 소중한 공동체, 사회학과 ‘악반‘에서 ‘당연한 내자리‘를 찾는 경험도 했다.
"행사 진행 시 고려해야 할 신체적 특성이나 식이 지향 등의 사항이 있을까요?"
새내기 안내 전화를 받았을 때 내게 닿은 질문이었다. 이것이 나와 이상한 공동체, 악반의 첫 만남이었다. 장애를 언제 밝혀야 할지 망설이고 있던 나는 "네, 제가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요. 행사 장소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했다. - P244

너무나 당연한 일. 가고 싶을 때 가고, 가고 싶지 않을 때가지 않는 것은 내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는데, 그 순간 내게도 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함께하려면 뭔가 ‘더‘ 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세상의 많은 것이, ‘더‘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 이제까지 ‘덜‘ 준비해왔던 일인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덜‘들을 찾아 모두가 당연한 자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충하는 일이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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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콤플렉스는 외국인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존재로 보지 않게 한다. 외국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매우 선택적이고, 심지어 차별적이다. 우리의 서양 콤플렉스와 강자숭배주의가 얼마나 기막힌 수준까지와 있는가는 네팔 여성 찬드라 꾸마리 구릉이 겪은 참혹한 이야기에서선명하게 볼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일하던 찬드라 구릉이어느 일요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돈을 내지 못했다는 죄때문에 경찰에 연행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행색이남루하고, 경찰이 알아들을 수 없는 괴상한 말을 한다는 이유로 주거불명의 정신병자로 오인되고, 그 후 6년 반 동안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정신병원에서 갇혀 지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 P156

아마 찬드라 구릉이 영어를 말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터무니없이정신병자 취급을 받지는 않았을 게 틀림없다. 우리가 찬드라의 이야기에서 큰 절망을 느끼는 것은 설령 경찰이나 정신병원에서 시초에 본의아닌 오인이 있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 여성이 적어도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밝혀졌을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오래 방치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찬드라가 수용되어 있던 병원 쪽에서는 얼마 있지 않아 이 여성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였고, 그래서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문의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병원에서 잘못 파악한 이름ㅡ찬드라 고름 - 이 법무부에 비치되어 있는 외국인 노동자 명부에 보이지 않는다는 컴퓨터 조회의 결과 때문에 다시몇 년을 허무하게 정신병원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찬드라 고름‘이 ‘찬드라 구릉‘을 잘못 발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약간의섬세한 배려만 있었던들 이 여성과 딸의 행방을 몰라 애태우던 네팔의가족들의 비극은 좀더 일찍 마감될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 P157

문제는 가난이 아니라, ‘풍요로운‘ 소비문화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경제성장 없이는 인간다운생활을 할 수 없으리라는 어리석은 착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박멸해야 할 바이러스처럼 가난을 무조건 혐오해왔다. 그 결과 ‘품위있는‘ 가난과 그 의미에 관한 성숙한 인식은 이 사회에서극도로 축소되었고, 우리의 삶은 외형적인 풍요에도 불구하고-혹은그 때문에-내면적으로는 심히 병들고 공허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극적인 것은, 자립적인 생존의 기반이자 도덕적 삶의 원천인농경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감각이 상실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식량자급률 25퍼센트 수준 - 그나마도 석유에 의존해서 - 이라는 한심한 농업현실로는 한 사회공동체의 장기적인 존속이 명백히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목전의 이윤추구에 혈안이 되어, 마치 내일이 없는사람들처럼, 땅을 죽이는 일에 광분하고 있다. - P162

그들이 그렇게 되었던 것은 그들이 현상을 넘어 볼 수 있는 비전이나상상력을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텐데, 그러한 상상력의 결핍은그들이 엘리트로서의 자각 이전에 당대의 밑바닥 풀뿌리 민중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었던 점에 연유했을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신채호나 한용운의 경우, 최초에 얼마간의 사상적 혼란기가지난 다음에 그들이 끝끝내 사회진화론의 함정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자신이 늘 민중과 함께 있겠다는 철저한 평등주의 사상, 혹은 근원적 자유의 사상을 획득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P168

아마도 밑바닥에서도 가장 밑바닥으로 밀려난 소외의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 어머니에게는 "근대적인 교육이 가져다준 지식이나 이론은 없었지만 근대적인 개념에 지배당하지 않는 지혜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서경식은 말하고 있다. 요컨대, 그 어머니의 삶을 이끈 것은 흔히 지식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근대, 전근대,
탈근대 따위의 관념적 언어로써는 절대로 포착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본능적인 감각과 의식이었을 것이다. - P169

이 경쟁지상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출산과 보육과 교육 과정에서 단계단계마다 부모나 자식이나 어김없이 겪을 엄청난 시련과 스트레스를 사전에 조금이라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떤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를 엄두를 내겠는가. 이것은 결코 출산장려금 따위로 해소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지금 출산율 저하라는 현상은 사람들이 대부분 무의식중에 행하는 ‘보이콧‘ 행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 보이콧은 그동안 한국의 경제적발전의 성과를 긍정하고 미화해온 무수한 ‘교육받은‘ 엘리트들의 논리가 한마디로 허위이며 거짓말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 P171

일찍이 간디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정치적으로 해방되더라도,
만약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생존양식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그것은인도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 지배자의 피부빛깔이 달라진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간디의 정치적 후계자 네루는 간디의 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네루는 산업주의적 생산양식은 시대의 필연적인 추세라고 생각했고, 그의 지도 밑에서 인도는 현대적인 산업국가가 되기 위한 수많은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대형 댐이 아직도 건설 중인 국가가 되었고,
교육받은 소수 엘리트들과 대다수 민중 사이의 소득 및 생활수준의 격차는 갈수록 심화되어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독립이전보다도 풀뿌리 민중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이 참담한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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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장애인 대표로서 어떤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나?"라고. 나는 그 질문에 늘 당황하고 만다. 대표 자리에 올라가본 적도, 그럴 마음도 없는데 자꾸만 누군가는 나를 그 자리에 앉혀버리곤 한다. ‘대표‘의 자리에 쉽게 올려지는 것은 대단한 권리인 동시에, 사회적 소수자에겐 그 자체로 소수자성을 재확인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평범한 이야기를 했을 뿐임에도 사회에서 잘 들리지 않는 이야기라는 이유로(그것은 대부분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또는사회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뿐이다) 대단한 용기를 가진 대표의 말하기가 되는 것이다. - P8

이 이야기는 대부분의 순간 운이 좋아서 어떻게든 우당탕탕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다. 글을 읽다가 자꾸만 울고 싶거나 성찰하고 싶다면 책을 덮고 잠깐 산책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개그를 해본답시고 쓴 건데 재미가 없거나(그렇다면 사과한다) 아니면 이제까지 ‘대표‘의 글을 소화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서 사회적인 관념이 자꾸만 당신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일 테니까. 누군가를 일깨우거나 반성하게 만드는 역할에는 이제 신물이 난다. 많은 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앉지 않고 책갈피 사이로 들어오길 희망한다. - P9

현미는 어떤 아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어디라도 찾아 나섰다.

**장애는 완치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닌데, 어떻게 ‘나아’질 수 있을까? 장애가 있는 아이가 ‘나아진다‘는 말은, 종종 ‘비장애인과 비슷해진다‘는 욕망을 함축할 때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애에서 ‘나아짐‘이라 함은 ‘걷게 됨‘이었다. 내가 받은 여러치료의 목적이 ‘조금 더 예쁘게 걷기, 오래 서 있기’에 맞춰져 있던 것처럼. 그때 현미와 나에겐 그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한 발자국 더 걸으면, 조금 더 예쁘게 서 있을 수 있게 되면 그것보다 기쁜게 없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고, 내 몸을 좀 더 오래 쓸 수 있도록 치료를 받는다. 걷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연습한다. - P18

그렇게 현미는 서른의 시작부터 마흔을 훌쩍 넘어서까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았다. 그런 현미에게 언젠가 나는 ‘좋아지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더는 걷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오랜 시간 내 몸과 마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내가 걸음을 연습하는 것보다, 걷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게 우선이라고 느꼈다. 이미 60대의 그것이 된 관절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력하고 몸을 바꿔가며 혼자 걷게 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현미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다. 조금이라도 걸어야 하지 않겠냐고, 나중에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조금 화를 냈다. - P19

하지만 난 정말 더는 걷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두 다리로 서 있는 것보다 휠체어에 앉아있을 때 해낼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비장애인 되기‘에서 벗어나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며 운동하고 싶었다. - P20

나 때문에 거부를 경험한 비장애인은 전 애인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인생 거부의 시초에 현미가 있었다. 나는 순진하고 어렸을 20년 전의 현미를 떠올린다. 갑자기 삶에 떨어진 ‘장애‘를 가진 나로 인해, 이전까진 경험해보지 못한 거부를 온몸으로 감내했을 그를 상상해본다. - P22

때로는 창피하고 무서워서 내가 엉엉 울며 말리더라도 현미는 일단 싸우고봤다. 나를 키우는 건 싸움의 연속이었다. 현미는 원하지 않았는데도 활동가가 되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 - P23

그때 현미가 말했다.
"어우 씨, 진짜 한 대 칠 뻔했네."
그렇게 그 문장은 내 마음속에 남아 부당함을 마주할 때 튀어나오곤 한다. 현미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장애를 숨기거나 집 안에 있게 한 것이 아니라, ‘한 대 때릴‘ 기백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 말은 내게 숨을 필요 없다고, 여차하면 그냥 ‘한 대 때리면서‘ 살아가면 된다고, 잘못은 내 존재에 있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 P25

현미 허락받고 가지 않았나? 몰라, 몰라. 기억이 안 나. 이런 거 쓰면 안 된다. (잠시 정적) 술도 몰래몰래 닭발이랑 시켜가지고 받아서 먹기도 하고. 엄마 술 걸려서 뺏기기도 하고 그랬어. (함께 웃음) 근데 알면서도 눈감아주고 그런 간호사들도 있었지. 왜냐하면 엄마들이 정말 애들한테 거의 매여 있으니까, 하루 종일 그러니까 "안 걸리게 잘하세요" 뭐 이런 간호사 선생님도 있고…… 하여튼 이런 거 쓰면 안 될 텐데. 보바스(병원이름)에서는 골뱅이 요리 잘하는 애가 있어서 골뱅이 무치고 쫄면 해서 나눠 먹고. 저녁 시간에 같이 둘러앉아가지고. - P35

카카오 웹툰 <열무와 알타리>와 네이버 베스트도전 <제제와 함께>처럼, 장애아와 함께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에 자꾸만 눈이 간다. 그들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안에 납작한 인물은 없다. 또 확실한 비극이나 희극도 없다. 그저 살아남고,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있을 뿐이다. 분명 누군가는 그들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읽고 또 살아갈 것이다. - P37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그 ‘관계‘로만 삶이 설명될 때가 많다. 장애인의 엄마, 장애인의 형제, 장애인의 친구처럼. 물론 관계로서의 인간도 아주 중요하지만, 종종 그것에 너무나 매몰되기도 한다. 그래서 관계로 다 설명되지 않는 개인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곤 한다. 나 역시 이번 인터뷰에서 그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현미의 용기와 사람을 살리는 살림력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현미는 나를 빼고도 충분히 다른 존재들을 살릴 수 있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다. - P39

나 역시, 연구소에서 제품을 개발하면서
수없이 들었던 그 낯익은 단어가
귀를 울리고 가슴을 찢어놓는 거 같았다.
ABNORMAL, Abnormal, abnormal
어쩌란 말인가,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우리 가족은 abnormal한 삶 속으로
빠져야 한다는 말인가?
이 abnormal한 case를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 건지…….….
난 정말 알수가 없었다.

abnormal, abnormal, abnormal 작성자 태균 2005.04.25 - P45

태균은 같은 맥락에서 언젠가 내가 몸에 대해 절망하고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때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여러 번 시뮬레이션도 해봤지만 결국에는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아쉽게도(?) 태균이 내게 사과하는 날은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내 몸에 대해 절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태균이 모르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내가 ‘만약‘이라는 단어에 갇혀 원망할 대상을 찾아다녔던 순간을 하지만 결국에는 그 단어를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평화를. - P50

어쩌면 장애인들은 ‘만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갈등에 빠지는 것을, 자신의 장애에 대해 절망하는 행위를 강요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갈등과 절망을 경험하는 게 장애인의 삶에서 마치 일생일대의 분기점이라도 되는 것마냥 미디어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만약‘이라는 말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만 빛을 본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 달콤하면 달콤할수록 극대화되는 환상 같은 단어다. 나는 장애에 대해 절망할 시간에 구겨진 책을 다시 소중히 펴고 다른 이야기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 P54

어쩌면 걸음은 내게 그저 두 발이 교차하며 지면을 밀어내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정상‘으로써의 갈망일 수도 있겠다. 여전히 ‘비장애인처럼 보일‘ 수록 좋다는 가치 평가가 만연하기에, 보행이 가능한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졸업하고 목발이나 지팡이를 짚고, 혹은 걸음을 보조하는 로봇을 차고 걷길 권유받는다. 그것이 자신의 생활과 몸에 잘 맞는 경우도 있겠지만, ‘휠체어를 탐‘과 ‘걷는 것을 포기함‘이 대응하는 것처럼 여겨져 휠체어를 타지 않거나 그러길 강요받는 이들도 있다. - P58

"그래서 항상 나를 인식할 때, 그리고 유튜버로서의 나를 생각할 때 힘들어질 때가 많아요. 어쩌면 ‘보기 좋은 장애인‘이 아닌가 하고요"라고 내가 말했다. 이 고민은 유튜브를 시작하면서부터 날 괴롭혔다. ‘보기 좋은 장애인‘, ‘잘 팔리는 장애인‘으로서 영상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듣기 좋을 정도의 말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모습만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평생을 비장애인 사회 속에서 살아온, 적당히 학력도 좋고 적당히 상냥해 보이는 착한 장애인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고 일을 할수 있는 건 그 때문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과 답답함이 늘 마음속에 존재했다. - P59

태균은 대답했다. "아빠는 그래서 지우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구분 짓는게 아니라 그 사이를 연결하는 사람이면 좋겠어." - P59

글을 슬프게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지원은 나의 결심을 쉽게 망가뜨리는 인물이다. 게다가 비극의 끝도 너무나 상투적이었다. 현미는 엉엉 우는 나를 안아주고, 전화기를 다시 바꿔 "지원아, 엄마랑 언니 네 밤만 더 자고 갈게. 할머니랑 잘 지내고 있어"라고 달랬다. 완벽한 대사다. 고전소설에 등장해도 될 것만 같은 이야기다. - P64

지원을 떠올리다 보면 자꾸만 어릴 적 순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애는 격하게 부정하지만 나는 꽤 좋은 언니였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동생의 눈높이에 맞춰 그 애를 돌봤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멋지게 써두었는데, 그냥 같이 기어 다녔다는 말이다. 지원이가 막 뒤집기에 성공하고 ‘네발’로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의 이동 방식 역시 네발 기기였다. 덕분에 우리 집 바닥에는 기어 다니는 6개월과 일곱 살이 있었다. - P67

그리고 이런 건 절대 지도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또 어떻게든 환승을 하고,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 뒤 리프트를 타거나 휠체어로 한 정거장을 굴러 다음 역에서 타든 하면서 대충 살아간다. 그래서 도통 계획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나도 1분 1초를 귀하게 쓰고 싶은데, 이 세상이 자꾸만 나를 리듬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만든다. - P83

지하철은 ‘대중교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꾸 대중이라는 말 안에 장애인이 있는 것은 까먹는 모양이다(버스는 아예 모르는 게 확실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혜화역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불법시위‘(역사 안내문의 말을 빌리면 휠체어 승하차)를 막는답시고 역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막아버렸다. 만약 내가 오늘 혜화역에 갈 일이 있었다면, 나는 혜화역에 내렸다가 영문도 모르고 다시 전 역으로 돌아가 한 정거장을 휠체어로 건너고, 지각을 사과하느라 연신 굽신거려야 했을 것이다. - P85

그런데 승강장에 도착해서야 휠체어 리프트를 연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휠체어 리프트는 탑승 30분 전까지 요청해야 하며, 그마저도 연결되는 칸은 휠체어석이 있는 칸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KTX를 개통한 지 20년이 넘었다는데, 어느 칸에나 휠체어 리프트를 연결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관계자는 단 한 명도 없는 걸까?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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