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은 우리가 쓴 시를 하나하나 읽어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더군요.
"부용이 쓴 시는 임금님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 있어 훌륭하고, 비취가 쓴 시는 은근한 멋이 있어 좋고, 소옥이 쓴 시는 술술 읽히다가 끝에 가서 묘한 맛을 내고, 자란이 쓴 시에는 깊은 뜻이들어 있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고 나서 덧붙였습니다.
"나머지 시도 다 잘되었는데, 운영이 쓴 시만은 뭔가 쓸쓸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들어 있구나. 그게 누구인지 알아내어 벌을 주어야 하겠지만, 글재주를 보아 오늘은 그냥 넘어가겠다."
저는 얼른 엎드려 울면서 아뢰었습니다. - P30

"시를 쓰다 보니 어쩌다 그런 말이 나온 것이지, 결코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대군마마 의심을 받느니 차라리 죽겠습니다."
대군이 저더러 일어나 앉으라 하고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글이란 마음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어서, 억지로 숨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 일에 대해 다시 말하지 마라."
그러고는 우리에게 상으로 비단 한 필씩을 내려 주었습니다. - P31

그날 밤, 평소 저와 가깝게 지내던 자란이 가만히 제게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어. 네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정말로 있는지 모르지만, 네 낯빛이 날로 야위고 핼쑥해져 가니 걱정되어 묻는 거야. 나한테숨기지 말고 말해 줄래?"
저는 눈물을 머금고 말했습니다.
"궁 안에 사람이 많아 누가 엿들을까 두려워 말을 못 했지만, 네가 진심으로 묻는데 어떻게 더 숨기겠니? 다 말해 줄게."
그날 밤, 자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지요. - P34

제 편지가 그리워하는 마음을 덜어 주기는커녕 점점 더 짙어지게 했으니, 제가 진사님께 죄를 지은 셈입니다. 아무튼 진사님은그날 밤 안에 답장을 써서, 제가 그랬던 것처럼 비단조각에 고이싸서 품에 간직하였다지요. 하지만 또한 전해 줄 기회를 얻지 못하여 애만 태울 뿐이었답니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마음속에 사무치면 병이 되나 봅니다. 진사님도 저도 똑같은 병에 걸린 것입니다. 잠도 못자고 음식도 못 먹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며 속만 태우는 병이요. 그러다 보니 몸은 날로 야위어 가고 얼굴은 핏기 없이해쓱해졌지요. 우리 둘 다 그랬답니다.
어떻습니까, 진사님? 그때 일이 생각나나요? - P47

꿈결처럼 한 번 눈길을 주고받은 뒤로, 마음은 들뜨고 넋은 떠나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날마다 궁궐을 바라보며 수없이 애를 태웠습니다. 어느날 뜻밖에도 벽 틈사이로 전해 준 옥같이 고운 글을 받아 보고는, 잊지 못할 그 목소리 귓가에 맴돌아 펴 보기도전에 먼저 목이 메었습니다. 가슴이 아려 와 절반도 채 못읽고눈물이 글자를 다 적셨습니다.
누워도 잠을 못 이루고 먹어도 음식이 넘어가지 않으니, 뼛속마다 병이 맺혀 백 가지 약도 듣지를 않습니다. 죽어서나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하루빨리 저세상에 가기가 소원입니다. 만약에 하느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신령님이 도우셔서 살아생 - P51

전 한번 만나 맺힌 원을 풀 수만 있다면, 이 자리에서 몸을 가루로만들고 뼈를 갈아서라도 천지신명께 바치겠습니다.
붓을 들고 종이에 글자를 써 내려가는 이 순간에도 자꾸만 목이 메니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예를 갖추지 못하고 서둘러 적습니다. - P52

여태 가만히 있던 보련도 나섰습니다.
"누구든지 말은 함부로 하지 말고 삼가야 한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하는 말을 들어 보니 그게 아닌 것같네. 자란의 말은 속뜻을 숨기고다 드러내지 않은 것 같고, 소옥의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 같지않고, 부용의 말은 애써 갖다붙인 것 같아서 모두 참되게 들리지 않아. 나는 이번 일에서 빠질 테야." - P62

"오늘 일은 그저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랐는데, 비경이 저렇게 우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괴롭구나."
하자, 비경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지낼 때 나는 운영과 단짝이 되어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맹세했어. 이제 남궁 서궁으로 서로 떨어져 살게 됐지만, 그렇다고 옛 맹세를 저버릴 수 있겠니? 이왕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내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다 말할게. 전에 운영이 나날이 야위고 핼쑥해질 때만 해도 영문을 몰랐는데, 이제 보니 그게 다 그리움 때문인 것 같아. 이대로 두면 운영은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 얘들아, 내가간곡히 빌 테니 우리가 운영을 도와주자. 자란이 이번에 소격서로 가자고 한 뜻을 나는 이미 짐작했단다. 자란이야말로 운영의 진정한 벗이라는 것도알았지. 우리가 다투다가 끝내 궁을못 나가면 운영이 어떻게 되겠니? 운영이 병들어 죽기라도 한다면 모든 원망은 남궁에 있는 우리에게 돌아올 텐데, 그래도 괜찮겠니? 이제 모두 고집을 거두고, 우리가 힘을 모아 줄을 목숨 하나 살려 보자꾸나." - P64

하지만 여자로 태어나 궁녀가 되었으니 그 재주를 어디에 쓰겠습니까? 제가 만약에 남자로 태어났다면, 가진 재주를 마음껏 펼쳐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나라를 위해서도 큰일을 할 수 있었을것입니다. 그런데 기껏 궁녀가 되어 감옥같은 궁궐 안에서 죄인처럼 갇혀 지내다가, 끝내 여기서 말라죽을 운명이니 어찌 슬프지않겠습니까? 이것을 생각하면 마음속에 한이 맺히고 원망이 머리끝에 차오릅니다.
그래서 방에 앉아 수를 놓다가도 수들을 던져 버리고, 등불 아래 비단을 짜다가도 천을 찢어 버리고, 거울 보며 머리를 매만지다가도 옥비녀를 빼내어 꺾어 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어쩌다 술한잔 마시고 뜰을 거닐다가도 돌 틈에 핀 꽃을 뜯어 버리고, 길섶에 난 풀을 뽑아 버리곤 했지요. 마치 미친 사람처럼요. 제 마음속에 깊이 맺힌 한을 억누르지 못한 까닭이었습니다. - P72

그 말을 들은 소옥과 비경이 눈물을 흘리며,
"한 사람 마음이 곧 열 사람 마음이고, 운영 마음이 곧 우리 마음이야.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서로 도우며 살자."
하고는 남궁으로 돌아갔습니다. - P77

그 말을 들은 김 진사가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를 해.
"우리 두 사람은 죽은 뒤 저승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저승 시왕*께서 저희 둘 다 죄 없이 일찍 죽은 것을 불쌍히 여겨 다시 인간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사양했습니다. 또다시 그 한 많은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세상은 아직도 사람을 차별하고 억누르며, 죄 아닌것을 죄로 만듭니다. 또 일삼아 남을 해코지하고 자기 욕심만채우는 나쁜 사람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오늘 밤 여기 와서 슬픔에 잠긴 것은, 그때 겪은 서러운 일이 다시 생각나서일 뿐입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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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반대로 보기
에밀리 브론테 지옥의 바이블 <폭풍의 언덕>
앞부분 <폭풍의 언덕>과 <프랑켄슈타인> 유사점 설명
설명은 어렵고, 인물들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서로를 향한 강렬하고 지독한 연결성은 기억난다.

이렇듯 다른 점도 있지만, 『프랑켄슈타인』과 『폭풍의 언덕』은 많은 중요한 점에서 유사하다. 한 가지는 둘 다 수수께끼 같고 당혹스러우며, 어떤 의미에서 총체적으로 문제적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각각의 경우, 소설의 미스터리는 (많은 비평적 논란의 중심이 된) 형이상학적 의도와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하나는 스릴러이고 또 하나는 로맨스인) 두 ‘대중‘소설은 많은독자들에게 소설의 카리스마 넘치는 표면적 이야기가 복잡한 존재론적인 심오함, 정교한 비유의 구조, 모호하지만 강렬한 도덕적 야망을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숨기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 점은 두 작품이 공유하는 좀 더 단순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두 작품 다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에서 ‘증거적 서사 기법‘이라고 불렀던 것을 사용하고 있다. 이 기법은 낭만주의적 이야기 구사 방법으로, 똑같은 사건을 보는 서로다른 관점의 아이러니한 괴리뿐만 아니라, 표면적인 드라마와 작가가 감추어놓은 의도 사이에 내재하는 아이러니한 긴장을 강조한다. 사실 이런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폭풍의 언덕』은 『프랑켄슈타인을 의도적으로 모사했다고 볼 수 있다. - P459

『폭풍의 언덕』과 『프랑켄슈타인』은 증거, 특히 문자화된 증거에 공통으로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대부분의 소설보다 훨씬 더 의식적인 문학성을 보여주며, 상징적이면서도 극적인 플롯 조성) 활동으로서 책과 독서에 가끔은 거의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 P460

메리 셸리를 연구할 때도 똑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울스턴크래프트-고드윈-셸리 집안처럼, 책을 매개로 현실에 접근하는 것, 친족의 책을 읽고 자신의 독서와 자신이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을 품는 것이 브론테 집안의 습관이었다. 따라서 외롭지만 야심에 찬 요크셔의 가정교사 세 명을 커러, 엘리스, 액턴이라는 엄연하게 양성적인 3인조로 변모시킨 것은 공동의 행동이자 가족정체성의 주장이었다. - P461

우리는 브론테 자매들에게 문학 활동과 문학적 증표 둘 다 매우 중요했다는 사실을 통해 그들이 메리 셸리와 공유했던 또다른 문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불안한 창조자처럼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와일드펠 홀의 거주자』를 쓴 저자들도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었다. 셸리처럼 에밀리와 앤 브론테도 너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들의 증언이나 문서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머니에 대해 알 수 없었다. 고아와 무일푼 상태를 강조하는 『프랑켄슈타인이 어머니가 없는 책인 것과 마찬가지로, 에밀리 브론테의 모든 소설도 어머니의 부재, 고아 신세, 결핍에 대한 강렬한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프랑켄슈타인』과 마찬가지로 『폭풍의 언덕』에서도 문학적 고아라는 문제는 작가로 하여금 증거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기원의 문제에도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따라서 가부장적 문화에서 은유적으로 고아라고 할 수 있는모든 여성 작가들이 ‘우리는 어떻게 추락했는가? 잘못된 법칙에 의해서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문학적인 해답을 찾고 있다면, 메리 셸리와 에밀리 브론테 같은 어머니 없는 고아들은 그질문에 대한 사실적인 답변을 대체로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소설들은 여성 특유의 문학적 강박관념을 강렬하게 재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 P462

『폭풍의 언덕』은 사실상 (『프랑켄슈타인이 형이상학적 스릴러인 것처럼) 형이상학적 로맨스이기에 때로는 사람이 아니라 힘이나 존재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 P463

위니프리드 제린에 따르면 밀턴은 패트릭 브론테가 즐겨 읽던 작가 중 하나였다. 따라서 셸리가 밀턴을 비판한 사람의 딸이었다면, 브론테는 밀턴을 찬양하는 이의 딸이었다. 그러니헤겔의 정/반의 법칙에 비추어보았을 때 셸리가 밀턴의 성 혐오적 이야기를 반복하고 재진술하는 길을 선택한 반면, 브론테는 그런 이야기를 수정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어울린다. 사실상 『폭풍의 언덕』과 『프랑켄슈타인이 공유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낙원』의 문제이고,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밀턴의 신화에 대한 작가들의 태도다. 셸리가 밀턴의 충실한 딸로서 그의 이야기를 명료하게 다시 말했다면, 브론테는 반항적인딸로서 밀턴의 신화적인 서사를 과격하게 수정(심지어 번복)한다. - P464

그것은 마치 에밀리가 샬럿에게 ‘너는 낭만적 사랑에서 남자가 지배적인 요소라고 생각하지? 지배적인 것은 여자임을 보여주겠어‘ 하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샬럿 자신은 에밀리의 수정적 성향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다. 래치퍼드보다 100년도 더 앞서, 『셜리』의 여자 주인공 (‘에밀리가 더행복하게 살았다면 그런 모습이었을‘ 이상적인 인물)은 밀턴에 대해 영국 소설에서 최초의 의도적인 페미니즘 비평이라 할 수있는 말을 한다. - P470

샬럿은 『폭풍의 언덕』 저자가 (브론테의 찬미자인 에밀리 디킨슨을 인용해 말한다면) ‘천국의 왕국을 찾아서 / 반대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470

이 문단은 심리극 같은 ‘연극‘이란 삶에 필요한 것임과 동시에 집안일처럼 일상적인 활동임을 제시한다. 다리미질과 대안적 삶의 탐험이란 똑같은 종류의 ‘업무‘다. 그것은 아마 앤 브래드스트리트와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환상을 쫓는 그 밖의 다른 주부들이 인정했을 법한 독특한 여성적 사고다. - P473

전체성, 존재의 충만함, 양성성 같은 말이 불가피하게 떠오른다. 앞으로 드러나겠지만 이 셋은 다 캐서린에게, 더 정확하게는 캐서린-히스클리프에게 적용된다. - P484

그럼에도 캐서린의 개인적인 천국은 밀턴의 에덴처럼 캐서린이 규정한 ‘지옥‘의 위협으로 둘러싸여 있다. 예를 들면 캐서린이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천국의 수평선에 떠 있던 유일한 구름인 어두운 가부장제의 멍에를 벗어던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늙은 언쇼의 죽음과 함께 에덴처럼 ‘다소 야만적이고 무모하고 자유로웠던‘ 캐서린의 소녀 시절도 끝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한때 양성적이었던 아이가 처음으로 ‘홀로 놓이게될’ 분열된 세계를 열어놓는다. 하지만 장자 상속이라는 가부장적인 법에 의해 아버지의 죽음은 진정한 상속인인 힌들리의 권력을 증대시켰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이 새로운 아버지는 소설 속에서 캐서린의(그리고 히스클리프의) 타락과 그로 인한 몰락을 불러온다. - P487

사춘기에 이른 아이들은 왜 부모를 의붓아버지, 의붓어머니처럼 보기 시작하는가? 사춘기의 위기를 다루는 동화에 양부모가 어김없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런 현상이 뿌리 깊게 널리 퍼져 있음을 시사한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성적인 존재로 의식할 만큼 성장하면 부모는 실제로 ‘본래‘ 부모 자신들보다 더 사납고 (힌들리와 프랜시스의 경우처럼) 좀 더 어려 보이기조차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캐서린 언쇼의 경험을 뒷받침해준다. 이제 진정으로 이해할수 있게 된 부모의 섹슈얼리티가 아이를 괴롭히는 만큼 아이 자신의 성적인 자각이 부모를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에 부모는 확실히 점점 더 위협적으로 (말하자면 더 ‘짜증내고‘ ‘폭군처럼‘) 되어간다. - P491

이 단순하지만 폭력적인 에피소드의 이미지들은 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 캐서린이 성숙한 여자의 섹슈얼리티로 내던져짐과 동시에 거세되었음을 암시한다.
어떻게 소녀가 ‘여성이 됨과 동시에 거세될 수(다시 말해서 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위의 이미지들이 의미하는 바가 상당히 프로이트적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바보 같은 질문이리라. 엘리자베스 제인웨이와 줄리엣 미첼이 말했듯, 프로이트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적 의미에서도 (음경 선망을 암시하는) 여성성이 거세를 의미한다는 주장은 매우 적절해보이기 때문이다. 제인웨이는 프로이트의 중요한 논문인 「여성의 섹슈얼리티」(1931)를 논평하면서, ‘어떤 여성도 음경을 빼앗기지 않았다. 여성은 처음부터 그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 P496

캐서린이 나중에 넬리에게 말하듯, 캐서린에게 히스클리프는 ‘나 자신보다 더 나같은‘ 사람이다. 히스클리프의 실질적인 굶주림은 더 위험한, 그래서 더 무서운 캐서린의 정신적인 굶주림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에서 캐서린이 당한 부상은 히스클리프의 건강과 힘에 가해진 치명상을 의미한다. 한때는 양성적이었던 히스클리프-캐서린은 이제 서로 격리된 채 가부장제가 합의한 힘, 즉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린턴 집안과 그들의 밀사인 하이츠의 힌들리와 프랜시스가 합의한 힘에 의해 정복당하기 때문이다. - P501

남성적 교양소설의 최종적인 목표가 성공적인 자아 발견이듯이, 여성 교육의 최종 산물은 불안한 자기 부정임을 브론테는 암시하고 있다. 캐서린, 혹은 모든 소녀들은 자기 이름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될 운명인지알 수 없다는 것만을 배운다. - P502

도덕성이란 유효한 선택의 기회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캐서린에게 유의미한 선택의 기회란 없다. 캐서린은 오빠의 결혼 때문에 워더링 하이츠에서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로 쫓겨난다. 캐서린은 그곳에서 이성과 교육, 예의범절의 아가리에 갇힌 채, 선택의 여지 없이 에드거와 결혼해야했다. 에드거 외에 결혼 상대는 없으며, 숙녀는 결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캐서린이 에드거에 대한 사랑을 정당화시키는 장면은 ‘나는 그의 발아래 있는 대지를, 그의 머리 위에 있는 공기를, 그가 만지는 모든 것을,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사랑한다‘[9장]) 우아하고 낭만적인 고백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 P503

이런 풍자는 캐서린이 받은 교육이 젊은 숙녀에게 적절한 문학적낭만주의를 주입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든 에너지를 아버지/연인/남편의 카리스마와 동일시하는연약한 ‘여성성’이 문학적 낭만주의다.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자신이 ‘격하될 것이라는 캐서린의 변명도 캐서린이 받은 교육의 불가피한 산물이다. 캐서린이 숙녀로 추락하는 동안 히스클리프 역시 여성의 무력함에 해당하는 위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여자 되기가 타락이라면 여자처럼 되기는 더 심한타락임을 정확하게 배운 것이다. 따라서 밀턴의 이브가 이미 타락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 있는 선택도 할 수 없었던 것같이 (물론 밀턴은 이브의 선택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캐서린에게도 진정한 선택이란 없다. 문화가 본질적으로 가부장적이라면 여성은 타락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그들은 타락할 운명이기 때문에 이미 타락한 것이다. - P504

앞으로 나오겠지만 히스클리프가 ‘천국 같은‘ 응접실 안으로 들여오는 사탄적인 반항은 가부장제에 해롭고 가부장제가 불편해하는 무시무시한 병원균을 가지고 있다. 그 병원균은 캐서린과 이저벨라 같은 여자들이 도주와 굶주림, 끝내는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자신들의 역할과 집 안에 감금된 상황에서 도망치게 하는 원인이다. - P509

『폭풍의 언덕』곳곳에 편재한 굶주림의 모티프와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이미지가 담고 있는 의미에 주목한다면, 에드거와 히스클리프의 핵심적인 대결이 부엌을 배경으로 벌어진다는설정은 우연 이상의 의미를 띤다. 어떻든 이 에피소드 바로 다음에 C. P. 생어가 캐서린의 ‘단식 투쟁‘이라고 부른 장면과 캐서린의 유명한 광기 장면이 나온다. 플라스의 또 다른 시행은자아 축소의 느낌을 묘사하는데, 이런 느낌은 자신이 하나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일종의 걸어 다니는 복장으로 축소되어버렸다는 캐서린의 깨달음과 일치한다. ‘나는 얼굴도 없다. 나는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광기의 장면에서 캐서린이 거울에비친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세상과 캐서린을 연결해주던 끈이 헐거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캐서린은 넬리에게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말하며 만일 자신이 미쳤다면 ‘나는 네가 정말로 시들어버린 노파고, 나는 페니스톤 절벽 아래있다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지금은 밤이고, 탁자 위에 있는 촛 - P512

불 두 자루가 까만 찬장을 흑석처럼 빛나게 한다는 걸 알고 있어‘라고 말한다. 그런 뒤 ‘이상해. 저기에 얼굴이 보여‘ [12장] 하고 덧붙인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에는 ‘까만 찬장‘이 없고 거울만 있을 뿐, 캐서린은 거울에 나타난 자신의 이미지를부인하는 것이다. 이제 캐서린의 분열은 히스클리프와 떨어져있을 때 겪었던 심리적 분열을 훨씬 넘어서 몸과 이미지(또는 몸과 영혼)가 분리되는 지경에 이른다. - P513

[1장] 가장 교양 있는 여자도 무력하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에 여자들은 록우드는 히스클리프든 똑같이 남자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 P523

건강하게 양육하는 넬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상적인 여자, (에밀리 브론테의 시각이 아니라 말하자면 밀턴의 시각에서) ‘일반적인 어머니‘로 보인다. 샬럿 브론테의 『셜리』에서 셜리/에밀리가 밀턴을 비판한 핵심 구절을 다시 살펴본다면, 우리는 틀림없는 넬리 딘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밀턴은 최초의 여자를 보려고 했다‘고 셜리는 말한다. ‘그러나 캐리, 그는 그녀를 본 것이 아니었어. […] 그가 보았던 것은 그의요리사일 뿐이야. […] ‘최상의 진미를 위하여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로 골치 아팠을 요리사일 뿐이야. - P527

히스클리프가 ‘여성적‘이라는 주장은 처음에는 미친 소리처럼, 또는 터무니없게 들릴 것이다.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듯, 히스클리프의 외형적인 남성성은 운동선수 같은 체격과 군인 같은 자세뿐만 아니라 숙녀다운 이저벨라에게 어필한 바이런적인성적 카리스마로도 확실하게 논증된다. 우리가 알고 있듯 에드거는 분명히 연약함에도 사실은 가부장적이지만, 히스클리프가차남의 남성성이나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이단아와 같은 대안적인 남성성에 해당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에드거가 기존의 천사의 방식으로 남성적이듯, 히스클리프도 분명 사탄적인 추방자의 방식으로 남성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좀 더 뿌리 깊은 연상의 측면에서 (차남, 서자, 악마 들이 여성들과 연합하여 천상의 폭정에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고아는 여성이고 상속자는 남성이라는 점에서, 육체는 여성이고 정신은 남성이며 대지는 여성이고 하늘은 남성이며 괴물은 여성이고 천사는 남성이라는 점에서) 히스클리프는 ‘여성적‘이다. - P531

사르트르적인 의미에서 여자의 남자와 자율적인 여성은 하나의 완전한 여자가 된다. - P533

소설의 후반부에서 히스클리프의 개략적인 목표는 합법성을 전복시킴으로써 문화에 자연의복수를 가하는 것이다. - P535

‘메리 셸리는 브론테가 전복시키려고 애썼던 밀턴의 여성 혐오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녀 또한 추방당한 사람의 의지가 내포하는 위험한 잠재력을 이해하고 있었다. 메리 셸리의 잃어버린 이브는 괴물이 되었고, ‘그’ 또한 사회 구조에 파괴적이었다. 19세기 후반에 다른 여성 작가들도 밀턴의 악령과 싸우면서, 이브의 억누를 수 없는 의지를 말살하겠다고 위협했던 가부장제와 그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 수단이었던 마녀 같은 분노를 검토했다. 예를 들면 조지 엘리엇은 『플로스강의 물방앗간』에서치명적인 양성성을 그리는데, 이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성취한, 죽음을 통한 사랑을 기이하게 패러디하는 것 같다. ‘죽음 - P552

을 통해’ 매기와 톰 털리버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들이 달성한 결합은 엘리엇이 그들을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것 중 유일하게 믿을 만한 결합이다. 왜냐하면 삶에서 매기는 단념의 천사가 되었고, 톰은 근면의 단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문화의 풍경 절반을 휩쓸어버리는 홍수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여성적인 자연은 저항하고 있으며 계속 저할 것이다. - P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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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해온 것은, 평생 원전 반대운동에 치열하게 헌신했던 세계적인 탈핵사상가 고(故) 다카기 진자부로(三郞) 선생이 간명하게 말했듯이, 원전이란 한마디로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든 다른 문제는 접어두고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원전은 만물의 지속적 생존의 토대인 생태계 내에서는 절대로 용납돼서는 안되는 ‘괴물‘이라는 것을, 사심 없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수긍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어왔다. - P330

성급한 판단일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장벽은 역시 오랫동안 이 사회를 지배해온 경제성장 이데올로기 혹은 경제중심주의적 사고의 끈질긴 영향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탈원전을 원하면서도, 당면 현안인 두 기의 원전 건설의 중단은 원치 - P330

않는다는, 공론조사의 일견 모순적인 결론 때문이다. 공론조사에 참여한 시민들 중 일부의 사후 소감을 들어보면,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역시 최종적인 판단 기준은 경제논리였던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이 경제논리의 안쪽에 있는 심리, 즉 원전을 포기하면 현재의 ‘안락한‘ 생활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암암리에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은 경제논리와 안논리의 경쟁에서 경제논리가 승리했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수 시민참여단에게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참사를 보고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 P331

아닌 게 아니라, 최근에 세계의 논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인도 출신 작가 판가지 미슈라가 강조하고 있는 게 바로 이 ’분노‘라는 현상이다. 미슈라에 의하면, 오늘날의 이 광범한 대중적 분노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것으로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최신저서 《분노의 시대》(2017)의 집필 동기를 언급하면서, 그것은 예컨대동의 테러조직 IS(이슬람국가)나 국민투표로 유럽연합으로부터의 탈퇴를결정한 영국의 ‘브렉시트‘, 그리고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기이한 현상을 좀더 깊이있게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고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일견 무관계한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현상들의배후에 공통한 ‘감정적‘ 뿌리가 있다는 관찰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그에 의하면, 이 감정적 뿌리는 자본주의적 산업발전을 통해서 이른바‘근대문명‘을 본격적으로 출범시킨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요점만 말하자면, 대서양 연안에서 시작된 근대문명은계몽주의적 이성과 합리적 제도의 구축, 그리고 과학기술의 힘으로 ‘진보’를 계속해 나감으로써 그 혜택은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것이라는 약속하에서 전개되었으나 실상은 수백 년의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실제로 혜택을 받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다수 대중은 언제 어디서나 근 - P339

중들이 이러한 희생을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느끼자 지금 보는 것과 같대화 혹은 진보를 위한 ‘제물‘이 되어왔을 뿐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이 지배층 엘리트들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과 분노가 폭발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P337

예를 들어, 그동안 자본주의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해온 근대적 ‘선거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보자. 이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확인해둘 필요가 있는 것은, 본시 민주주의는 ‘선거‘와는 결코 양립할 수없는 제도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아마도 민주주의는 바로선거를 뜻한다고 오랫동안 교육받아온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주의를 생각할 때 반드시 돌아봐야 할 원점, 즉 고대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과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통치의 시스템이었지,
특별히 뛰어난 인물에게 자기들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위임하는 시스템 - P337

이 결코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테네 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라고부를 수도 있으나, 실제로 모든 시민들이 동시에 같은 장소에 참석하여토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상, 그들은 민회 이외에 평의회와 민중법정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거기서 시민들의 대표자들이 국사에 관한 다양한 업무를 관장하고 재판을 하게 하였다. 그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였다. 그런데 이 대의제에서 특기할 것은 시민대표의 선정 방법이 ‘선거‘가 아니라 ‘제비뽑기‘였다는 점이다. 즉, 아테네인들은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선거란 필연적으로 명망가, 재산가특권층에게 권력을 내주는 방법이라는 것, 따라서 그 방법으로는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방법이 제비뽑기였던 것이다. - P338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지난 150년간 한반도를 비롯해서 동아시아가 겪어온 역사를 되돌아볼 때, 메이지유신은 또한 이 지역에서의 엄청난 ‘비극‘과 ‘재앙‘의 출발점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근대 일
‘본‘의 침략주의와 식민주의로 인해 참혹한 삶을 강요당했던 사람들의입장에서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오늘날 일본에서는 오히려 메이지유신이후 적어도 1931년 중일전쟁 개시까지를 ‘영광의 시대‘로 보는 사람들이 허다한 것도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메이지유신은 물론,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승리도 일본인의 자부심을 한껏 높여주는 획기적 사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키나와, 대만, 조선, 만주를 침략하고 식민화한 것은일본 자신이 서양의 식민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상황전개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대 일본의동아시아에 대한 침략과 지배는 이 지역이 ‘전근대‘ 사회로부터 ‘근대사회‘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의 지식사회에서도 존재하고 있는 게 오늘의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을 중계하던 미국인 방송저널리스트가 느닷없이 "한국인들은 오늘의 발전에 대해서 일본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라는 발언을 한 것은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 얼마나 널리, 그리고 깊게 퍼져 있는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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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자유로운 창의적 인지 상태를 장려하고 싶다면, 근로자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화면에서 떨어져 움직이라고해야 한다. 움직임이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은 강력하고, 이전에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새로운 아이디어 개발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교류할 수 있는 실내·외 공간이 있는 사무 공간과 건물이 장려되어야 하며,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과 영감을 쉽게 기록할 수 있는 수단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행동을 근무하면서할 수 있도록 합법화하고, 지원하고, 제도화하는 것이다. 지식기반의 근로자들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꽉 막힌 사무실에서복잡한 문제에 대해 심오하고 창의적인 해결 방안들을 생각해낼 것을 기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무력감을 주기도 한다. - P207

인간은 고도로 숙련된 전문 워커 Walkers들이다. 걷기는 몰 - P209

입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수단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걷기는 다른 두 가지 정신의 상태를 오가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마음을 비우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집중해야 할 특별한 생각이 없는 상태로 걸을 때 기억과 의미를 처리하는 뇌 영역전반에 거쳐 독특하면서도 창의적인 연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 P210

책 전반에 거쳐 살펴보았듯이 걷기는 우리를 또렷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벗어나 해결방안이 있는 곳으로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꿈에서 깰 때의 경계 또는 꿈꾸는 중의 상태와 비교할 수 있는 독특하고 놀라운 창의적 문제 해결 상태다. ‘한숨 자고 생각해보자 Sleep on it‘라는 표현은 수면의 재생과 창의의 힘에 대한 일상적인 증거이고, 수많은 작가들은 수면의 위대한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해 증언해왔다. - P211

내가 경험한 가장 좋은 산책은 친구와 가족과 함께 도시에서, 또 가끔은 시골에서 걸었을 때다. 기억에 가장 남는 산책들은 춥거나 화창한 날씨와 함께였다. 약간의 추위는 몸이 너무 뜨거워지는 것을 방지하고, 약간의 햇빛은 모든 것을 또렷하게 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진다. 나는 특히 밤 산책을 즐긴다. - P217

사회적 걷기는 여러 가지 긍정적이고 강력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조금 더 사적인 일대일의 관계뿐만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의 사회에서 사회적 응집력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은흔히 함께 하이킹을 하거나 특별한 목적지 없이 대화를 하며도시를 걷고 함께 시위행진에 참여한다. 함께 걷다보면 앉아서 대화를 나눌 때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깊이 대화가 진전된다. 마크 트웨인은 이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우아하게 표현했다.

보행의 가장 참된 매력은 걷기 그 자체나 경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데 있다. 걷기는입의 움직임의 타이밍을 맞추고, 혈액과 뇌에 자극을주어 활성화시킬 수 있는 좋은 도구다. 주변 경치와숲의 향기는 무의식적이고 특별하지 않은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오고, 눈과 영혼 그리고 감각에 위안을준다. 그러나 가장 큰 즐거움은 대화에서 비롯된다. - P221

이 책을 읽은 후, 이 가르침을 더 오래 기억하게 할 수는없을까? 한가지 방법은 워킹 앱Walking App을 사용하는 것이다. 알림 수신 설정을 하라. 오늘 몇 보를 걸었는가? 자신의 걸음수를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친구들, 동일 연령대, 나라 평균도 비교할 수 있다. 그리고 걷기를 조금 더 늘리기 위해 자동차를 목적지에서 조금 더 멀리 주차하고, 버스에서 한 정류장 더 일찍 내리고 가게와 학교로 걸어가는 것 같은 간단한 실천을 해볼 수도 있다. - P240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걷기는 우리의 사회적·심리적 그리고 신경 기능의 모든 면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또한 삶의 질을 개선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처방으로, 적든 많든 정기적으로 실행하고 적당한 속도로 매일매일 자연 속에서도 도심 속에서도 수행해야 한다. 걷기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 당장 나가서 걸어라. 얼굴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오후의 햇살과 밤의 가로등 불빛이 눈동자에 비춰 춤을 추고,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발 밑의 땅을 느껴라. 주변의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에게 말을 걸고, 걷기의 리듬에 맞춰 여유를 찾고, 마음과 정신이 떠돌고 고심하고 사색하고 과거로 여행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탐색하게 하라. 혹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라. 걷기는 우리의 깊은 진화론적 과거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이제 모두가 알게 되었듯이 걷기는 우리에게 무한한 도움을 줄 때문이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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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연령층과 성별에 무관하게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자연에 노출되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개인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소득과 교육 수준, 종교의 유무, 결혼의 유무, 봉사활동, 외적 매력과 같은 요인들에 못지않게 높다는 것이다. - P177

하비와 그의 동료들이 진행한 이 연구는 역대 진행된 연구 중 가장 큰 규모로, 참가자들 대부분이 선택한 운동은 걷기와 수영이었다. 그들은 "걷기와 사이클링처럼 매일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량의 증가를 장려하고 쉽게 접근하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공공보건정책이다"라고 말하며, 운동의 강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다시 말해 운동을 할 수 있게 옆구리를 슬쩍 찔러주는 듯한 환경 디자인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이 연구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할 때, 운동량의 증가는 향후 겪을 수 있는 우울증의 출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공중 보건 의사인그레고리 사이먼 Gregory Simon은 이러한 결과를 검토하며 주요 정신의학 관련 저널에 "운동은 안전하고 광범위한 효과가 있는 항우울제 처방이며 (………) 다양한 강도의 우울증 예방과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미래를 위한 중요한 정책을 제안했다. - P181

젊고 건강하더라도 오래 앉아 있는 생활은 건강에 결코 좋지 않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의 부피는 빠르고 쉽게 줄어든다. 더 나아가 근육량의 손실은 지속적으로 평생 새로운 뇌세포를 생산하는 뇌의 영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근육이 손실됨에 따라 뇌의 기능도 악화된다. 이와 함께 성격, 감정과 뇌 구조 자체에 유해한 변화도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자가 처방할 수 있는 치료제의 일종인 놀라운 자체 수정 메커니즘이 있는데, 이는 바로 운동이다. - P188

나는 다양한 이유로 걷기를 좋아한다. 그중 내가 최우선으로 꼽는 걷기의 매력은 머릿속의 소란함을 없애는 가장 좋은방법이라는 것이다. 걷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나 자신과 조용한 대화를 하며 천천히 심사숙고할 자유를 준다. 오래전부터 걷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져 왔다. 고대 그리스의 소요학파 철학자들은 이동을 하며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학파의 어원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걷는다‘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걸으며 생각한 것만이 가치가 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 P191

역설적으로 걷기는 일종의 활동적인 나태함이고, 의식과 연결된 몽상에 빠지게 만든다. 걷기는 목적을 가진 행동이며 집중을 요하지만 딴생각을 쉽게 할 수 있게 하며, 이때 그날 하루, 지나간 하루, 앞으로의 1년, 지난 10년, 얻었거나 잃은 기회들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한다. 《율리시스》에서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이것을 잘 표현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걸어서 통과한다. 강도를 만나고 유령들을 만나고 거인 - P196

도 만나고, 늙은이도 만나고 젊은이도 만나고, 아내와 사랑하는 형제들도 만나고, 이렇게 누군가를 만나면서 결국 자신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걷는 동안 자신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다른 이들과 소리 내어 대화를 할 수 있고, 또 음악, 오디오북, 팟캐스트 등을 들을 수도 있다. 다른 이들과 함께 걷는 장점은 정보의 교환을 돕고 이 정보를 자신의 기억과 생각, 감정과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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