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34 Martin Luther’s New Ideas
Martin Luther’s List
Martin Luther made list of ninety-five reasons why indulgences were wrong. in 1517
Henry VIII’s Problem
1 Catherine of Aragon - sent away, daughter Mary
2 Anne Boleyn - beheaded, daughter Elizabeth
3 Jane Seymour - died, son Edward
4 Anne of Cleves - left
5 Catherine Howard - beheaded
6 Catherine Parr - a good nurse, watched over 3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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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

엘렌 식수 - 메두사의 웃음
루스 이리가라이 - 우리 두 입술이 함께 말할 때
쥘리아 크리스테바 - 한 정체성에서 다른 정체성으로
버지니아 울프 - 올랜도

프랑스 출신 아닌 ’프렌치 페미니스트‘ 언니들 이름도 어렵고 ‘포스트’도 어렵고 ‘구조주의’도 어렵다.. ‘몸과 언어는 함께 수렁에 빠져있고(- 232p)’는 지금의 나의 상태를 말하는 건가.

독자들은 특히 울프의 『올랜도』와 크리스테바의 글이 읽기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해서 오로지 분노와 체념을 느낄 뿐이다. - 237p
올랜도는 읽기 쉽지 않네요. 다락방님 잘못 아님 ㅋㅋㅋ

"프렌치 페미니즘"의 "프랑스성"에 문제가 있다면,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를 페미니스트라고 분류하는 것도 실은 문제가 있다. - P198

세 사람 모두, 페미니스트라는 용어에 불편함을 표현해왔다. 부분적으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프랑스의 맥락에서 페미니스트의 의미가 그들 맘에 들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그들은 페미니스트가 남성적 사유의 부분을 구성한다고 믿기 때문에 별로 유용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199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가 공유하는 뭔 가가 있다면, 그것은 국가, 젠더, 정체성 개념들이 잠재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감각이다. 국가, 젠더, 정체성 개념에대한 회의적인 접근은 구조주의와 구분된다. 구조주의는 개념들이기본적으로 안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페르디난드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언어, 친족 관계, 정신 심리에 있어서 구조 관계 자체가 의미를 결정한다고 보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뭔가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제했다. - P199

그러므로, 구조주의 언어학이 기저에 존재하는 대립쌍을 밝혀냄으로써 언어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포스트구조주의는 언어의 최종적 의미는 항상 고정되지 않고 미끌어진다고(elude)고 주장한다.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 모두 그들의 저서에서 말장난, 인유, 인용, 신조어, 복합어, 시어들을 장치로 사용한다. 그 목적은 단어 혹은 개념이 다른 대립되는 단어나 개념과의 관련 하에서 ‘구성‘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항상 해체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어의 의미는 끊임없이 다른 의미를 생산해내기 때문에 절대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원적 대립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대립쌍의 위계가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예로 되돌아간다면, 여성성은 특정한 종교적 혹은 신비적 담론에서와 같이 언제든지 남성성보다 더욱 우세해질수 있다). 혹은 제 3의 뭔가가 나타나서 대립쌍의 구분을 넘어서면서 불안해질 수 있다. - P201

라캉의 "상징계"란 그가 "아버지의 법"이라고 명명했던 것, 바로 상징적 "팔루스"(phallus)에 의해 지배되는 어른의 세계, 규범적이고 이성적인 가부장적 세계를 의미한다. 상징계는 자아와 타자(특히 엄마)가 분리되고, 언어를 습득하고, 욕망이 만들어지는 특징을 지닌다. 상상계는 전외디푸스단계와 동일하다. 이 단계에서 아이는 자아와 타자와의 구분을 알지 못하고, 언어도 없고, 상실감도 없다. 따라서 욕망도 없다. 정체성의 형성은 언어를 습득하고 상징계로 진입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런 과정은 상상계의 한 부분을 형성하는, 엄마와 하나였던 느낌, 바로 그 느낌을 억압함으로써 무의식이 함께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징계에 진입하더라도 상상계는 쉽게 극복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은 상상계와 상징계를 직선적인 연속의 과정으로 보는 대신, 다른 대립쌍들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고 주장한다. - P203

데리다와 라캉 모두에게, 여성성은 ‘배제된 것’이고, 동시에 어떤 본질이다. 데리다는 여성성을 언어학적 불고정성에 대한 비유로 사용한다. 라캉은 여성을 상징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타자(엄마)에 대한 욕망을 억압함으로써 무엇보다 상징계를 창조해낸 그 무엇으로 여긴다. - P204

‘대립’(opposition)과 ‘차이’(difference)를 구분하는 것은 참 중요하다. 정신분석학은 여성이 단지 팔루스가 없다고 말하면서, 여성 몸의 진짜 차이들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부장제 기계(patriarchal machinery)의 기능을 방해하고 변화시키려면 바로 긍정적인 차이들이 여성적 글쓰기에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추방된 것처럼 글쓰기로부터 추방당했다. 여성은 여성 자신을 글로 써야한다. 여성에 대해서 써야 하고, 여성을 글쓰기로 도입해야 한다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법으로, 똑같은 치명적인 목표를 가지고" (244). 식수는 가부장제가 남성들에게 제공했던 권리와 특혜를 여성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자유주의 혹은 개혁주의 아젠다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여성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식수가 여성의 몸과 여성의 글쓰기를 동일선상에서 비유하는 목적은 성별화된 몸의 신체적/물질적 사실이 글이나 문화와 언듯 무관해 보일지라도, - P206

사실은 함축적으로 (여성의 몸의 경우) 문화를 창조하는데 여성들이 배제되는 근간으로 늘 작용하고 있다는 역설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 P207

대신에 언어와 사회 모두 서로 상호 침투하는 담론이며, 언어와 사회 모두 텍스트로써 읽고 해석하고 다시 쓰기하는 과정에 열려 있다. 쓰기와 문화가 서로 간섭하게 되면 결국 불가피하게 사회가 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둘을 분리하는 것은 잘못된 대립이기 때문이다. 전설 속 남자들을 돌로 변하게 만들었던 메두사는 프로이트 같은 남성에게 거세 불안의 메타포였다. 그런 메두사를 다음과 같이 씀으로써 식수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메두사를 보려면 그냥 똑바로 보기만 하면 된다. 메두사는 무섭지 않다. 그녀는 아름답게 웃고 있다" (255). - P210

식수의 첫 시작을 보자. "나는 여성의 글쓰기에 대해 말할 것이다. 여성의 글쓰기가 무엇을 할지에 대해 말할 것이다"(식수 245). 그런가 하면 이리가라이는 "우리가 함께 똑같은 언어를 계속해서 말한다면, 우리는 똑같은 역사를 재생산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 P211

식수와 이리가라이의 주요한 차이는 이리가라이가 레즈비안적 사랑을 환기한다는 점이다. 이리가라이의 에세이에서 말하는 목소리는 특정되지 않은 "너"에게 말한다. "너"는 화자와 욕망, 쾌락, 감정적 접촉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두 사람의 성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특정되지는 않지만, 이리가라이는 두 개의 입술이라는 이미지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두 개의 입술이란 말 그대로 입술일 뿐만 아니라, 여성 질의 입술을 의미하고, 자신과 다른 여자의 입술을 의미한다. - P212

식수나 이리가라이와 마찬가지로, 크리스테바는 언어에 대한 재현이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또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 혹은 ‘쓰는 주체‘ (writing subject)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이 에세이가 쓰인 1975년 가장 영향력 있는 언어 이론이었다. 크리스테바의 목적은 구조주의 언어학이 예상 외로 과거의 언어 이론과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크리스테바가 보기엔 그들 사이에 분명히 공통점이 있다. 왜냐하면, 구조주의 언어학은 아직도 "단정적인" (thetic) 주체와 언어라는 전통적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정적인" 주체와 자아란 자체 안에 들어있는 다름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아다. 즉, "단정적인 주체는 단일성, 정체성, 행위할 수 있는 능력, 언어학적으로 말해서 서술할 수 있는 능력(긍정하고, 거부하고, 주장할 수 있는 능력), 진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런 의미의 주체와 언어 개념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언어의 그런 측면이 사회적 힘을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 P215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처럼 울프는 몸과 언어는 함께 수렁에 빠져있고, 그러므로 언어는 정치적 무기가 되어 단순히 재현하거나 은유하는 기능 이상을 수행하는 것이다. 올랜도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법이라는 단정적 언어를 통해서 언어학적으로 결국 확인된다. "나의 성은 반박의 여지없이 여성으로 결정되었다"(243). 올랜도가 성을 바꾼 후 곧바로 대명사가 변화하는 것은 "우리는 전통을 위해서 ‘그의’(his)를 위해 ‘그녀의‘(her)로 바꾸고, ‘그‘를 위해서 ‘그녀‘로 바꿔야한다"(133)) 이원론적 젠더 시스템의 만들어내기 위해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해 준다. - P232

비슷하게 올랜도』의 위반적인 측면은 오로지 그것을 찾는 사람에게만 보였다. 즉, 아이러니는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 P235

모호하고, 반어적이고, 복잡한 언어가 독자들에게 생산적인 질문을 만들어낸다는 견해에도 문제가 있다. 독자들은 특히 울프의 『올랜도』와 크리스테바의 글이 읽기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해서 오로지 분노와 체념을 느낄 뿐이다. 이 장에서 논의되는 네 명의 작가들은 모두 특히 남성적인 문학적, 철학적, 문화적 유산을 폭넓게 논의할 때엔 특히 난해한 언어를 사용한다. 남성들의 유산에 대해 존경심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아도 원전을 모르는 상태에서 농담을 알아듣기는 힘들다. 정신분석학적 선조들 [프로이트와 라캉]을 다룰 때 특히 그렇다. 프로이트와 라캉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의 어휘를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 그들이어휘가 얼마나 유희적이고 창의적으로 이전의 교리를 혁신하는지이해하는 것은 참 어렵다. - P237

이것은 정확하게 『올랜도』에서 동성애에게 할애되는 위치와 닮아있다. 즉 동성애는 양성성이나 여성 해방과 같은 명시적인 서사 아래 감춰져 있을 뿐이다. 식수,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가 동성애를 모성과 연결시키고, 모성을 강조하는 것은 거세게 비판되어 왔다.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모성적 몸은 모든 의미화의 감춰진 근간이거나, 모든 문화의 암묵적인 원인도 아니다. 오히려 모성적 몸은, "여성의 몸은 필시 엄마가되어야 한다는 시스템, 모성은 자아의 본질과 욕망의 법이라고 규정하는 섹슈얼리티 시스템이 만들어낸 영향과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 버틀러는 이렇게 말한다. 문화적으로 ‘타자‘로 구성된 것은 ‘여자‘가 아니라 ‘레즈비안‘이라고 말한다. 레즈비안은 정신/물질, 젠더/섹스의 구분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의 상징 질서에 필수적인 구분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여성 동성애는일단 전략적 효과가 목표(몇몇 논평가들이 지적하듯이 이리가라이는 최근이성애적 사랑에 목표를 둔다")에 도움이 되면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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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1-19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세!! 내 잘못이 아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01-19 17:11   좋아요 0 | URL
올랜도가 잘못 했네요 ㅋㅋㅋ
버지니아 울프 다 읽을 계힉인데, 올랜도는 젤 마지막에 읽는 것으로 ㅋㅋㅋ
 
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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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이론과 비평>(아직 이 책 이름을 완전하게 외우지 못함;; 자꾸 페미니즘 문학의 어쩌구~ 한다;;) 1장에 나오는 [19호실로]를 읽기 위해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도리스 레싱은 15년 전에 <런던 스케치>를 읽었(다고 나의 기록이 말하고), 그 몇 년 후 <다섯째 아이>를 읽고 10년만에 이 책으로 읽게 되었다. <런던 스케치>도 단편집인데, 물론, 당연하게,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섯째 아이>는 너무 강렬한 내용이라서, 대략적인 내용이나마 머리 속에 남아 있다. 특히,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에게는(그 당시 둘째가 돌이 안된 아기였다), 충격과 공포! <다섯째 아이>의 충격이 너무 커서인지 도리스 레싱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은 듯하다....


<19호실로 가다이 책도 첫 단편부터 만만치 않다. 첫 두 단편인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옥상 위의 여자]에 나오는 찌질남들 때문에 짜증으로 시작하게 된다. 지들이 처한 능력적 한계, 환경적 제약 등을, 자기의 작업(?)을 받아주지 않는 여성에게 이입하고, 여성을 정복하고자 하고, 모욕하고자 하는 찌질남들. 현실에 많을 것 같아 더 우울해진다. 이 짜증 때문에 리뷰도 쓰기 싫다는 (변명이)…


[19호실로]는 겉으로는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단란한 중산층 가정주부인 한 여성이 파국에 이르는 이야기다. 초반에 수전과 매슈가 결혼을 하고, 네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에서 <다섯째 아이>가 생각났다. 이 단편 <다섯째 아이>의 모티브 인가.


읽으면서 내가 수전이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반강제적으로(?) 결혼과 출산에 관계없이 계속 일을 하고 있지만, 만약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당연히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시대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때도 나에게 책이 위로가 되었을까.


그러면서도, 자꾸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하게 되는 나란 사람은 저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자꾸 왜냐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묻게 될 것 같고, 아니 수전의 남편처럼 묻고 싶지 않을지도. 수전, 친구 없어요. 수전, 하고 싶은 일 없어요. 수전, 좋아하는 일 없어요. 수전, 가정부도 있는데 아이들도 컸는데 나가서 재밌게 놀아요.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그러면 안되요.


그녀를 파국으로 이르게 한 남편을 원망하게 된다. 왜 그녀가 스스로 나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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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1-18 19: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섯째아이 정말 충격과 공포죠!! 잊기 힘든 작품입니다.
19호실로는 읽으면 정말 생각이 많아질 것 같아요. 친구없어요. 하고 싶은 일 없어요… 하시는 말씀이 맘 아프네요 ㅜㅜ

햇살과함께 2023-01-18 21:19   좋아요 1 | URL
읽는 내내 너무 마음이 무거웠어요.. 제가 왠만한 책은 다 잊어버리는데 다섯째 아이는 잊혀지지 않네요!

바람돌이 2023-01-18 2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19호실 읽으려고 책 폈습니다. ㅎㅎ <다섯째 아이> 진짜 강렬하던데 이 단편집의 19호실로도 그런가보네요. 저도 열심히 읽어볼게요. ^^

햇살과함께 2023-01-18 21:20   좋아요 0 | URL
19호실로는 강렬하다기 보다 맘이 무거운.. 첫 두 단편이 강렬하게 빡칩니다!!
 

Ch. 33 Spain, Portugal, and the New World
The Slave Trade - 잔인하고 슬픈 역사
Cortes (Spanish adventurer) and Montezuma (the king of the Azte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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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정신분석 페미니즘

줄리엣 미첼 - 정신분석과 페미니즘
내시 초도로우 - 모성의 재생산
마가렛 애트우드 - 레이디 오라클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과의 결합은 종종 "불행한 결혼"‘으로 불리지만, "불행한 결혼"은 어쩌면 정신분석과 페미니즘의 결합에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레이첼 보울비(Rachel Bowlby)도 비슷한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 P159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외디푸스 단계다. 프로이트의 모델인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시작은 여아와 남아 모두 첫사랑의 대상인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엄마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아빠를 경쟁자로 의식하는 것이다. 남아는 결국 엄마를 소유할 수없음을 알게 되고 포기한다. 그때 아이는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고, 그에 따라 성공적으로 ‘정상적‘인 성심리적 삶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은 거세 컴플렉스에 의해 진행된다. 즉, 남아가 엄마를 욕망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을 거세함으로써 엄마와 다른 여자들처럼 된다는 두려움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거세 컴플렉스와 외디푸스 컴플렉스를 해결하는 길은 아이가 아버지와 동일시함으로써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가부장제 권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관습을 받아들이는데, 받아들인관습을 ‘초아‘ 혹은 ‘양심‘의 형태로 내면화하게 된다.
그러나 여아들의 과정은 훨씬 복잡하다. 프로이트는 남자의 성장모델만을 정상으로 여기면서 이에 초점을 맞춘다. 이 점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겐 문제로 인식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여아는 자신과 엄마가 거세되었고, 지위가 열등함을 알아차린 후에는 사랑의 대상이었던 엄마를 버리고 아버지에게 욕망을 전이하게 된다. - P162

여아의 페니스 선망은 먼 훗날 아들을 낳게 됨으로써 충족될 수 있다고 한다. 여아는 남아와 같은 거세 컴플렉스를 거치지 않는 까닭에(여아는 "이미" 거세되었기 때문에 거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가부장제의 법에 의해 혜택을 받을 일이 없고, 법에 의한 권력을 휘두를 일도 없다), 여아는 남아와 비슷한 ‘초아‘나 ‘양심‘을 발전시키지 않는다. 대신에 여아는 수동적인 여성적 역할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 P163

그러나 프로이트 이후페미니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신분석학자은 역시 자크라캉(Jacques Lacan)이다. - P164

초도로우에 따르면 정신분석만이 젠더 정체성의 획득을 자본주의 핵가족이라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제대로 답할 수 있다고 본다. 즉, "가족이라는 구조가 남녀에서서로 다른 관계적 필요와 능력을 만들어내서, 여성에게는 엄마로서461재생산 영역을 담당하도록 만든다"(51)고 설명한다. 초도로우는 남아와 여아가 전외디푸스 단계와 외디푸스 단계를 서로 다르게 경험하기 때문에 여성이 기본적인 양육자의 지위를 재생산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여아는 같은 성 누군가의 양육을 받아 성장하게 되기 때문에 남아와 달리 전외디푸스단계를 더 오래 갖게 되고, 따라서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남아들처럼 효과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다른 사람과의 연결에서 남성들보다 유동적이고, 관계적이며, 서로 공감하는 감각을 발달시킨다. 남아들은 외디푸스 단계에서 어쩔 수 없이 엄마를 포기하고 아버지와 동일시하면서 분리와 개성화(individuation)를 발달시키고, 여아들보다 더 확고한 자아 경계(ego boundary)를 갖게 된다. 바로 이런 심리적 차이로인해서 여성들이 엄마로서 보살피는 경험에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 P169

그러므로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를 바꿔야만, 남녀의 심리적 구조가 변할 것이라고 초도로우는 말한다. 여성과 남성이 양육을 기본적으로 함께 함으로써만 여성을 억압하는 성적 노동 분업을 극복할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렇게 해야만 아이들은 아래와 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남녀 모두에게 의존할 수 있게 되고, 부모 모두와의 관계에서 개성화된 자아 감각을 확립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남성성은 의존을 거부하지 않게 되고 여성을 평가절하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여성적 인격은 개성화에 너무 집착하지 않을수 있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엄마의 무소불위적 권능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성 특유의 자기희생을 기대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되고, 여성을 부차적이고 힘없는 존재로 여기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성들이 지나치게 관계에 몰입함으로써 잃어버렸던 자율성을 발달시킬 수 있을 것이다. (218) - P170

앳우드의 소설은 어떤 ‘정상적‘인 젠더 정체성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앳우드는 정신분석을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조롱한다. 『레이디 오라클』은 다양한 욕망과 언어를 포용하고, 어떤 욕망과 언어가 여성 해방을 위한 새로운 페미니스트 기획의 기반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기를 촉구한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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