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정신분석 페미니즘

줄리엣 미첼 - 정신분석과 페미니즘
내시 초도로우 - 모성의 재생산
마가렛 애트우드 - 레이디 오라클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과의 결합은 종종 "불행한 결혼"‘으로 불리지만, "불행한 결혼"은 어쩌면 정신분석과 페미니즘의 결합에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레이첼 보울비(Rachel Bowlby)도 비슷한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 P159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외디푸스 단계다. 프로이트의 모델인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시작은 여아와 남아 모두 첫사랑의 대상인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엄마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아빠를 경쟁자로 의식하는 것이다. 남아는 결국 엄마를 소유할 수없음을 알게 되고 포기한다. 그때 아이는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고, 그에 따라 성공적으로 ‘정상적‘인 성심리적 삶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은 거세 컴플렉스에 의해 진행된다. 즉, 남아가 엄마를 욕망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을 거세함으로써 엄마와 다른 여자들처럼 된다는 두려움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거세 컴플렉스와 외디푸스 컴플렉스를 해결하는 길은 아이가 아버지와 동일시함으로써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가부장제 권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관습을 받아들이는데, 받아들인관습을 ‘초아‘ 혹은 ‘양심‘의 형태로 내면화하게 된다.
그러나 여아들의 과정은 훨씬 복잡하다. 프로이트는 남자의 성장모델만을 정상으로 여기면서 이에 초점을 맞춘다. 이 점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겐 문제로 인식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여아는 자신과 엄마가 거세되었고, 지위가 열등함을 알아차린 후에는 사랑의 대상이었던 엄마를 버리고 아버지에게 욕망을 전이하게 된다. - P162

여아의 페니스 선망은 먼 훗날 아들을 낳게 됨으로써 충족될 수 있다고 한다. 여아는 남아와 같은 거세 컴플렉스를 거치지 않는 까닭에(여아는 "이미" 거세되었기 때문에 거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가부장제의 법에 의해 혜택을 받을 일이 없고, 법에 의한 권력을 휘두를 일도 없다), 여아는 남아와 비슷한 ‘초아‘나 ‘양심‘을 발전시키지 않는다. 대신에 여아는 수동적인 여성적 역할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 P163

그러나 프로이트 이후페미니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신분석학자은 역시 자크라캉(Jacques Lacan)이다. - P164

초도로우에 따르면 정신분석만이 젠더 정체성의 획득을 자본주의 핵가족이라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제대로 답할 수 있다고 본다. 즉, "가족이라는 구조가 남녀에서서로 다른 관계적 필요와 능력을 만들어내서, 여성에게는 엄마로서461재생산 영역을 담당하도록 만든다"(51)고 설명한다. 초도로우는 남아와 여아가 전외디푸스 단계와 외디푸스 단계를 서로 다르게 경험하기 때문에 여성이 기본적인 양육자의 지위를 재생산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여아는 같은 성 누군가의 양육을 받아 성장하게 되기 때문에 남아와 달리 전외디푸스단계를 더 오래 갖게 되고, 따라서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남아들처럼 효과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다른 사람과의 연결에서 남성들보다 유동적이고, 관계적이며, 서로 공감하는 감각을 발달시킨다. 남아들은 외디푸스 단계에서 어쩔 수 없이 엄마를 포기하고 아버지와 동일시하면서 분리와 개성화(individuation)를 발달시키고, 여아들보다 더 확고한 자아 경계(ego boundary)를 갖게 된다. 바로 이런 심리적 차이로인해서 여성들이 엄마로서 보살피는 경험에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 P169

그러므로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를 바꿔야만, 남녀의 심리적 구조가 변할 것이라고 초도로우는 말한다. 여성과 남성이 양육을 기본적으로 함께 함으로써만 여성을 억압하는 성적 노동 분업을 극복할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렇게 해야만 아이들은 아래와 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남녀 모두에게 의존할 수 있게 되고, 부모 모두와의 관계에서 개성화된 자아 감각을 확립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남성성은 의존을 거부하지 않게 되고 여성을 평가절하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여성적 인격은 개성화에 너무 집착하지 않을수 있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엄마의 무소불위적 권능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성 특유의 자기희생을 기대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되고, 여성을 부차적이고 힘없는 존재로 여기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성들이 지나치게 관계에 몰입함으로써 잃어버렸던 자율성을 발달시킬 수 있을 것이다. (218) - P170

앳우드의 소설은 어떤 ‘정상적‘인 젠더 정체성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앳우드는 정신분석을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조롱한다. 『레이디 오라클』은 다양한 욕망과 언어를 포용하고, 어떤 욕망과 언어가 여성 해방을 위한 새로운 페미니스트 기획의 기반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기를 촉구한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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