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조용한 혁명

피임약
글로리아 스타이넘, 잡지 <미즈>
잡단4는 커리어 지향적인 직종에 대거 진출
직종의 변화와 커리어 지향에서의 변화

<메리 타일러 무어 쇼The Mary Tyler Moore Show>의 주인공 메리 리처즈는 ‘조용한 혁명‘의 전위라 할 만하다. 극 중에서 메리는 1970년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미니애폴리스로 가서 지역 TV방송국 저녁뉴스의 보조 프로듀서로 꿈꾸던 일자리를 얻는다. 메리는 30세의 미혼 대졸 여성이고 싱글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메리의 목표는 연애도활발하게 하면서 커리어도 성공적으로 일구는 것이다. 메리는 두 영역 모두에서 훨훨 난다. 메리는 재능과 의지와 매력이 있다. 여기에 더해 비밀 무기까지 있는데, 바로 피임약이다. - P183

그 화 방송에서 메리의 부모가 메리가 사는 아파트에 들른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메리의 엄마가 문을 나서며 [아빠와 메리가 있는] 거실 쪽을 보고 말한다. "약[pill] 먹는 거 잊지 마!" 그러자 메리와아빠가 동시에 대답한다. "알았어." 메리는 당황하고 아빠는 뭔가 못마땅한 얼굴로 메리를 바라본다. 피임약이 처음으로 시트콤에서 언급된 이때는 1972년이었다[영어에서 일반적인 알약을 뜻하는 pill에서 p를대문자로 표기한 Pill이 피임약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옮긴이]. - P184

‘피임약의 어머니‘는 두 명을, ‘피임약의 아버지‘는 적어도 네 명을 꼽을 수 있지만 오랫동안 피임약은 고아 신세였다. 어느 업체도생산을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생산되고 나자 모두가 피임약을 원했고, 일단 소비자들이 받아들이고 나자 제약회사들이 수익을 노리고 앞다투어 피임약 시장에 들어왔다.
먹는 알약으로 임신을 막는다는 개념은 산아제한 운동의 개척자이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미래주의적 개혁가 마거릿 생어 Margaret Sanger의 꿈이었다. 1916년에 생어는 브루클린에 산아제한을 돕기 위한 진료소를 열었다가 체포되었다. 피임 제품을 널리 전파시키지 못하게 한 주 법을 직접적으로 위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어는 위축되지 않았고 길었던 평생에 걸쳐 모든 인종의 여성들이 피임을 할 수 있게 하는 데 헌신했다(생어의 삶이 온전히 고결하지만은 않았다). - P185

1949년에 생어는 캐서린 덱스터 매코믹Katharine Dexter McCormick을 설득해 꿈의 알약 개발에 연구 자금을 대도록 했다. 매코믹이 피임약의 두 번째 어머니다. 1904년에 MIT에서 생물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고 농기계 업계의 거물인 매코믹 집안 사람과 결혼했다.
1947년에 남편의 사망으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된 매코믹은 그중 일부를 그레고리 핀쿠스Gregory Pincus 의 피임약 연구에 후원했다. - P186

‘조용한 혁명‘은 행복의 공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피임약은 더 시끄러운 종류의 혁명에서 여성들이 목청 높여 요구했던 여성 해방의 한 부분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집단4의 여성들이 법조계, 의학계, 학계, 금융계, 경영계 등 경력 초기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먼저 투자해야 하는 종류의 커리어에 진입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 P187

집단4의 젊은 여성들인 우리는 훨씬 더 잘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새로운 비전이 있었다. 우리는 커리어를 가정보다 앞 순서에 둠으로써 자아실현을 하고 소득도 많이올리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전문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릴 참이었다. 우리는 높은 사회적 지위와 높은 소득을 가질 수 있는직종, 늘 남성들이 가졌던 직종에 이전 어느 세대 집단보다도 많이 진출할 것이었다. 이 말은, 학부 졸업 직후의 시기에 맹렬한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다시 이는 결혼을, 더 중요하게는 출산을미뤄야 한다는 의미였다. 집단인 우리는 이것이 가능했다. 집단의여성들에게는 없었던 것, 바로 경구피임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우리는 피임약을 젊은 미혼 시절에 구할 수 있었고, [결혼과 출산을 미뤄서] 전문직 진출을 위한 교육과 학위 과정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다. - P189

피임약이 가져다준 여러 이득 중 하나는 결혼 연령을 높임으로써 이혼 가능성을 낮춘 것이다. 또 다른 이득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연기하면서 엄마가 되기 전에 석박사 학위나 전문 학위를 받고 커리어의 토대를 다질 수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여성들에게 일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새로이 주어지면서 여성들의 역량도 강화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집단4의 여성들에게 그 시간에 기한이 있다고 경고해 주지 않았다. 아직 의학계에서는 35세가 넘으면 임신 가능성이 급감한다는 우려가 나오지 않았다. 노산으로 선천성장애아 출산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생각은 아직누구의 머릿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집단4의 여성들은 임신을 막는게 문제였지 임신을 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은 엄마가 되는 것은 나중으로 미뤄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P193

이혼율의 증가, 특히 이른 나이대 이혼의 증가와 첫 결혼 연령의 상승이 결합해, 여성의 일생 중 결혼 상태가 아닌 기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집단3 세대의 여성들[대졸, 비대졸 포함]은 25-50세 사이의 기간 중 80%를 결혼한 상태로 보냈는데, 집단4의 후기가 되면 그 25년 기간 중 65%만 결혼한 상태로 보내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성의 정체성이 가정과 가족 중심으로 형성되던 데서 직업 세계와 훨씬 더 밀접하게 관련되는 쪽으로 달라지게 했다. - P198

‘미즈Ms.‘라는 호칭이 받아들여지고 널리 쓰이게 되면서 1970년대 초의 여성들은 자신의 원래 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미즈‘의 사용은 1952년으로도 거슬러 올라가지만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1972년에 잡지 <미즈>를 펴내면서였다. - P199

이들의 경로는 역사적 진전의 논리적인 전개를 보여 준다. 미래의 고용에 대한 예상, 여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 여성의 삶의 만족을 결정하는 요인, 이 각각이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폭풍의 끝을 알리는 무지개처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알리는 신호였다. ‘조용한 혁명‘의 일원인 집단의 여성들은 역사의 긴 행진에서 새로운 목표를 형성했다. 그런데 그 목표를성취하기 위해서는 결혼과 출산을 미룰 필요가 있었다. 연애와 성생활을 활발히 하면서도, 또 여전히 결혼의 전망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결혼과 출산을 미룰 수 있게 해 준 결정적인 한 가지가 딱 적시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조용한 혁명‘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 P200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의 시끄러운 혁명은 어떤 방식으로 조용한 혁명에 영향을 미쳤을까? 시끄러운 혁명은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방식을 통해서는 아니었을지라도 여성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여성들의 공동의 의식을 확장함으로써 조용한 혁명을 촉진했을 것이다. 석유지질학자로 뒤늦게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된 집단4의 일원 베티 클라크Betty Clark 는 이렇게 언급했다. "페미니즘은 [우리에게] - P203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효과적인 피임 수단은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 P204

하지만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진 것 자체는 조용한 혁명의 주된 결과가 아니었다. 직종의 변화와 커리어 지향에서의 변화가 여기에서 진정한 변화였다. 사실 고용률 자체의 추세에서는 커다란 단절이 없었다. 한 가지 예외는 영아가 있는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이 1970년대 초부터 1990년대까지 급증한 것이다. 어린아이가 있는, 심지어 영아가 있는 여성들도 바깥일을 하게 되었다. 여성들이보수가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고 이런 종류의 직업은 단절 없이장기간 일할 때 보상이 컸기 때문이다. 이것이 조용한 혁명의 본질이었다. - P206

1955년에는 대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크게 뒤처져 있었다. 여성들은 고등학교에서 남학생들이 듣는 수학 과목의 70%만 들었다. 하지만 1970년 무렵이면 80%를 들었고 1990년 근처가 되면 남학생과 동일한 수학 과목을 들었다. 과학 수업에서도 남학생과의 격차가 좁혀졌다.
수업만 더 들은 것이 아니라 수학과 읽기에서 남학생 점수 대비 여학생 점수의 비율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1990년 무렵이면 고등학교 졸업반 여학생들은 남학생과의 수학 점수 격차를 크게 줄인 상태였고 읽기에서는 상당히 앞서 있었다. 경쟁력 있는 수학 점수, 전보다 더 다양하게 이수한 과학 과목, 더 월등한 읽기 점수로 무장했으니 여학생들은 대학 진학률과 졸업률에서도 남학생과의 격차를크게 줄일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1940년대 말경 출생자부터 시작해서(집단4의 시작점이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이 변화는 너무나 대대적이어서, 이전까지 압도적으로 존재했던 대학 진학 및 졸업에서의 남녀 격차가 빠르게 사라졌고 1980년대 초면 남녀가 역전되었다. - P211

커다란 변화 하나는 집단4의 여성들이 커리어 지향에 맞게 전공과 수업을 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집단4 여성들이 막 대학을 졸업하기 시작한 1970년에는 여성 졸업자의 3분의 2가량이 교육학과 자유교양(각각 40%와 22%) 분야를 전공했다. 남성의 경우에는 둘 - P212

을 합쳐서 24%였다. 하지만 1982년이 되면 남성과 여성 모두 교육학과 자유교양을 벗어나 경영 쪽으로 이동했다. 1967년에는 여성 졸업자의 5%만 경영을 전공했는데 1982년에는 이 숫자가 21%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변화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매우 빠르게 일어난 변화였음에는 틀림없다.
여성들은 ‘일자리‘ 위주이고 ‘소비‘ 위주인 전공을 벗어나 ‘커리어‘ 지향적이고 ‘투자‘ 위주인 전공 쪽으로 옮겨갔다. 집단4의 여성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나중에라도 읽을 수 있지만 회계학은 시기를 놓치면 공부하기 어려울 수 있었다. 교사 자격증은 나중에도 딸 수 있지만 과학자가 되거나 공인회계사가 될 기회는 다시 갖기 어려울 수 있었다. - P213

이러한 변화의 타이밍과 관련해, 교육 영역에서 차별 금지 관련법이 제정되고 그러한 법을 정부가 실제로 집행하게 된 것이 주된 요인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요인이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는 탄탄한 실증 근거는 얻기 어려웠다. - P214

집단4의 젊은 여성들에게 지평이 넓어지고 정체성이 달라지면서, 일의 세계와 커리어에 대해 준비를 더 잘 갖추게 되었다. 커리어 지향적인 전공과 석박사 학위는 소득에도 반영되었다. 1950년대부터 내내 정체되어 있었던 남성 대비 여성의 소득 비율이 1980년 정도부터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증가의 상당 부분은 여성들이 직무경력을 쌓게 된 것과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종류의 역량을 획득한 것 덕분이었다. 매년 직무 경력이 늘어갈 때마다 그들은더 많은 보수를 받았다. 여성들이 직무 경력을 통해 역량을 쌓을 수 있고 승진 기회가 있는 종류의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노동시장 경험은 더욱 가치 있는 것이 되었다. - P217

출산을 미뤘던 많은 이들에게 생물학적 시간이 다하고 말았다.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커리어를 더 많이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은 가정을 꾸리는 일이 나중으로 밀려났다는 의미였다. 집단4의 여성들은 가정을 꾸리는 것(그들의 또 다른 꿈)을 ‘미루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미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들은 (그리고 다음 세대 여성들도) 뒤늦게야 이것을 깨달았다. "믿을 수가 없어. 아이 갖는 걸 까먹다니!"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유명한 그림에 나오는 여성은 이렇게 한탄한다. 1964년에 완성된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는 집단4의 여성들을 상징하는 포스터가 되었다. 집단4의 우리들은 집단3의 여성들보다 잘해 나갈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리고 많은 면에서 실제로 그렇게 해 나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아이 갖는 걸 까먹고‘ 있었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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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베티 프리단이 틀린 것과 맞는 것

베티 프리단 <여성성의 신화>
집단3 ‘가정, 그다음에 일자리’의 순서로 ‘연쇄적으로 펼쳐지는 삶’을 계획
이른 결혼, 이른 출산과 다산
아동 돌봄 서비스 부족
어린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여성 노동력 수요 증가
게임 플랜 -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 다시 일자리 복귀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는 그럴 만하게도 대대적인 환호를 받았다. 수백만 권이 팔린 이 책은 2세대 여성운동에 불을 지핀책으로 꼽힌다. 여기에서 프리단은 TV속 여성들이 꼭 허구라기보다실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프리단에 따르면, 이 시기의미국 여성들은 커리어우먼이 존재했던 이전 시기와 달리 가정으로후퇴하며 뒷걸음쳤다. 프리단은 1950년대의 대졸 여성들이 "진정으로 여성다운 여성은 커리어, 대학 교육, 정치적 권리를 원하지 않는법"이라는 말을 누누이 들어왔다고 지적한다. - P145

프리단은 주로 최고 명문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프리단의 메시지에서 핵심은, 뛰어난 능력과 매우 높은의지를 타고난 여성들이 "여성다움에 대해 잘못 알려진 신화"를 추구하느라 꿈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프리단은 최고 학벌을 가진 소수의 대졸 여성들로만 논의를 한정함으로써 이들의 야망이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았다. 이것 자체는 좋은 방법론일 수 있는데, 문제는 프리단의 분석이 틀렸다는 데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래드클리프 졸업생 중 전문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7% 정도였는데 1950년대 초 졸업생 중에서는 12%, 1950년대말 졸업생 중에서는 18%로 늘었다 "여성다움에 대한 신화"가 팽배했다는 시대에 명문대를 졸업한 여성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높은 비중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P147

하지만 그들이 가정을 더 우선순위에 놓았던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프리단의 분석이 옳다. 이들 대부분은 졸업 직후에 결혼을 했고, 곧이어 아이를 낳았다. 대부분 졸업 직후에 직장도 가졌지만 아이가 생기면 거의 모두가 노동시장을 떠났다. 하지만 아이가생겼을 때 가정으로 들어간 것과 아이들이 학교 갈 나이가 되었을 때노동시장에 돌아온 것 모두 신중하게 세운 인생 계획에 따른 결정이었다. 〈아빠는 다 알아〉나 〈비버는 해결사> 같은 드라마만 보면 으레갖게 되는 고정관념과 달리, 이 여성들은 영구히 가정에 묶여 있거나 안주해 있지 않았다. - P148

이는 이들이 이전 집단보다 (더 적은 선택지가 아니라)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들은 가정을 먼저 갖고 그다음에 일자리 (때로는 커리어)를 갖기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1950년대가 완벽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혀 완벽하지 않았다. - P149

이들의 노동시장 참여가 저조했던 것은 구매 가능한 가격대에서 양질의 아동 돌봄 서비스를 구할 수 없었다는 점과도 관련이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미취학 아동이 있으면 어지간히 높은 임금을 받지 않는 한 아이 봐주는 사람에게 돈 주고 소득세 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다.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합리적인 가격대에서 좋은 베이비시터를 구할 수 있었다면 둘째가 태어난 뒤에도 일을 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내가 버는 돈이 베이비시터에게 다 들어가는 상황이라면 바깥일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죠."
하지만 40세 정도가 되면 이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이 급격히 오른다. 이 나이대에서는 10명 중 7명꼴로 보수를 받는 노동에 종사하고 있었고 대부분 전일제였다. 막내가 초등학교에 가고 나면 대부분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했다 - P150

제2차 세계대전 중과 전후 시기에 여성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교육 수준을 막론하고 모든 여성이 여기에 영향을받았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학업을 더 이어갈 것인지를 결정할 때 많은 여성에게 대학이 예전보다 더 좋은 선택지로 보이게 되었다. 대졸 여성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고 결혼도 할 수 있었고 아이도 가질 수 있었다. 결혼한 여성들에게 대학 졸업장은 벽에거는 장식품을 훨씬 넘어서는 유용성이 있었다. - P153

1950년대에 대학 졸업장은 여성에게 여러 형태로 이득을 가져다주었는데, 대부분의 이득은 고용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졸업 후 곧바로 일자리를 잡는 데서도 그랬지만 대학교육이 줄 수 있는 이득의 상당 부분은 미래에 발생했다. 대학 졸업장(과 교사 자격증)은 결혼 생활이 예기치 않게 파경에 이를 때를 대비하는 보험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널리 쓰이던 표현으로, 일자리는 "뒤로 넘어질 때 받쳐 줄 안전장치"였다. 이혼, 장애, 사망은 어느 집에나 예기치 않게 올 수 있었으므로 남편에게 불시에 무슨 일이 닥치지 말란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1957년 졸업생인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결혼한 여성에게 교육은 일종의 보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여성은 교육을 "안전망"이라고 표현했다. - P154

《여성성의 신화》 시대의 대졸 여성은 프리단이 묘사한 것보다는 물론이고 일반적으로도 이전 세대의 대졸 여성들보다 주체적 역 - P155

랑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계획했다. 고용 장벽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혼한 여성도 다양한 직군과 지위에서71-7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제약이 있었다. 특히 아이가 어린데도 바깥일을 하는 여성은 사회적으로 크게 비난받았다. - P156

전후에 경제가 호황을 맞으면서 미국의 젊은 층과 중장년층 모두가 새로이 삶을 조정하기 시작한 무렵, 향후 수십 년간 미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될 일련의 인구통계학적 변화들이 일어났다. 너무나 대대적인 변화여서 오늘날에도 미국 경제와 사회에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 베이비 붐은 다른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친 것처럼 대졸여성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베이비 붐의 원인에 대해 많은 가설이제시되어 왔지만 정확히 왜 결혼 연령이 급감했는지, 왜 출산율이 급중했는지, 왜 이 변화가 그만큼의 기간 동안 지속되다가 갑자기 끝났는지에 대해 여전히 우리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 P156

전후 미국에서 벌어진 주요 인구통계학적 변화 중 첫 번째는 결혼 연령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 P157

전후의 대대적인 인구통계학적 변화 중 두 번째는 여성의 첫 출산 연령이 낮아진 것이다. 또 아이를 더 이른 시기에 낳았을 뿐 아니라 더 많이 낳기도 했다. - P158

장래에 일자리를 잡을 생각이 없었다면 왜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특정한 직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전공을 택했겠는가? 교사가 될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왜 60%가 넘는 여성이 교사 자격증을 땄겠는가? 문학, 예술사, 외국어, 음악 같은 전공이 어쩌면 더 흥미로웠을지도 모르지만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 대부분은 가정 생활과 양립 가능한 종류의 직장을 잡을 수 있는 전공을선택했다. 집단에 속하면서 석사 학위를 가진 한 여성은 "교직은 가정도 갖고 싶은 여성에게 완벽한 커리어였다"고 말했다. "나는 13년동안 일을 쉬었다가 아무 불이익 없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33일반적으로 말해서 1950년대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이 장기적인 ‘커리어‘를 추구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미래 어느 시점에 노동시장에 들어올 수 있기 위해 준비했고 실제로 대부분 노동시장에들어왔다.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은 ‘가정을 먼저 꾸리고나서 그다음에 일자리를 갖기로‘ 계획했고, 대체로 계획대로 되었다. - P161

종전 시기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인들이 전업주부가 있는 가정을 찬미했다는 점에서는 베티 프리단의 분석이 맞았다. - P161

하지만 전문직을 향한 대졸 여성들의 야망이 이전 시기에 높아졌다가 이 시기에 후퇴했다고 본 데서는 프리단이 틀렸다. - P162

그런데 왜 프리단이 개진한 많은 주장이 정확하지 않았을까? 한 가지 이유는 프리단이 1950년대 대졸 여성의 성취를 더 이른 시기 대졸 여성 중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었던 여성들하고만 비교했기 때문이다. - P162

프리단의 책이 너무 일찍 출간되어서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이 앞으로 일구게 될 성취까지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프리단은 이 여성들이 짠 게임 플랜이 결실을 맺는 것을 관찰할 수 없었다.
노동 연령이 끝날 무렵이면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은 커리어 면에서도 1900년대 초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커리어와 가정을 결합하는 데서는 훨씬 더 성공적이었다. 이들의 생애는 많은 국면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프리단은 이들의 생활이 가정에 한정되어 있던 국면에서만 이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 국면에서 많은 여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좌절과 한탄을 책에 담았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시간 안에 응결되어 있지 않았다. 대부분은 프리단이 그 책을 출간하기 한참 전부터 그 생활에서벗어날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 - P163

이들에게 가장 큰 제약은, 아이가 어릴때는 마땅히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하고 엄마가 일을 하면 아이에게 "해롭다"고 보는 사회적 규범이었다. - P166

그런데 어쩌다가 우리는 이 여성들을 마거릿 앤더슨이나 준클리버와 비슷했을 것이라고 여기게 됐을까? 이제까지 보았듯이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이 가정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1964년에 이뤄진 조사에서 1961년 졸업생 중 결혼을 하고 전일제 일자리도 갖고 있었던 여성의 37%가 여전히 자신을 "주부"라고 묘사했다. - P173

이것은 당대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생각이었다. 엄마가 늘 집에 있지 않으면 미취학 연령대의 어린아이에게 해가 된다고 본 당대의 믿음이 어린아이가 있는 여성들이 일하는 것을 가로막은 주요인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돌봐 주는 시설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또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시설들은 수요가 충분하지 않아서 충분히 존재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였다. 엄마가 일하면 어린아이에게 해롭다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서는 돌봄 시스템에 커다란 변화가 필요했다. - P174

집단의 여성을 가장 크게 제약한 것은 엄마가 ‘이기적인 커리어 우먼‘이면 어린아이에게 피해가 간다는 통념이었을 것이다. - P178

이 세대 여성들이 느낀 공허와 좌절이 바로 베티 프리단이 그의베스트셀러에서 드러내고자 한 주제였다. 그 책에서 프리단은 "이게다야?"라는 말로 이를 잘 요약하고 있다. 하지만 가정에 묶여 있어야하는 상황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가정, 그다음에 일자리‘의 순서로 ‘연쇄적으로 펼쳐지는 삶‘을 계획했다(소수는 ‘가정, 그다음 ‘커리어‘의 단계를 밟을 수 있었다).
집단3 여성들의 삶에 교육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프리단의 분석이 맞았다. 하지만 이들의 열망에 대해서는 틀렸다. 프리단의 책은 여성들이 더 큰 성평등과 더 큰 부부간 공평성을 향해 나아가는 경로의 중간 지점에서 나왔다. 프리단은 대졸 여성에게 더 좋았던 시기를 찾고자 과거로 돌아갔다. 하지만 과거는 이들에게 더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프리단이 책에서 묘사한 바로 그 여성들도 이 변화의 이득을 일부 누릴 수 있었다. 프리단이 한 공헌은 독립을 향한 여성들의 열망에 불을 붙이고 그들에게 현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것이다. 이 연료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졸업생들이 미국의 삶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바꾸게 될 조용한 혁명을 일구는 데 일조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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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34 Freedom for South America

Simon Bolivar: The Liberator
Simon Bolivar, Venezuela, the creole, a Spaniard born in the colonies

Freedom, But Not Unity
He wanted the South American colonies to become states, each with its own own elected congress and a president. And then those states could join together, like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nto a huge, strong country - a new world power!
When he died, his country was free of Spanish rule - but still divi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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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그림자 보리 어린이 그림책 14
김규정 지음 / 보리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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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감 너무 좋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색감.
노을 하늘 들판 바다 산 강 별 밤.
새 그림자의 새로운 세상 만나기, 자아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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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4-10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예쁩니다...T.T 잘 봤습니다!

햇살과함께 2023-04-10 22:53   좋아요 1 | URL
실물은 더 이뻐요^^ 굿밤되세요!
 

4장 중간 다리 집단

집단2는 집단1과 집단3의 중간 다리 집단
테크놀로지의 발달, 다양한 노동 절약형 도구의 등장, 중앙난방, 상하수 시스템 등으로 가정 노동 시간 단축
화이트칼라 사무직 일자리 증가로 노동 여건 개선, 노동 수요 증가
1930년대 대공황으로 다시 기혼 여성 고용 금지 규제 확대

《그룹》의 여성들은 대졸 여성들이 밟아 온 한 세기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기에 존재했다. 그들은 집단1(낮은 결혼율과 더 낮은 출산율)과 집단3(높은 결혼율과 높은 출산율)의 중간 다리 집단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삶의 한복판에 대공황이라는 경제적 재앙이 닥쳤다. 소설속의 대졸 여성들은 삶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그들이 꿈꾸었던 것보다 음울하고 따분한 무언가로 타협해야 했다. - P112

하지만 아직 세상은 어린아이가 있는 대졸 워킹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룹》의 등장인물 거의 모두가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다. 그리고 대부분이 커리어 목표를 (적어도 우리가 소설에 - P112

서 볼 수 있는 한) 옆으로 제쳐 둔다. 그렇긴 해도, 그들은 결혼을 한 뒤에도 일할 수 있는 역량을 이미 획득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 역량은 대공황이 닥치기 전에 화이트칼라 사무직 일자리가 대거 생겨난 덕분에 가능했다.
집단2의 여성들이 보이는 삶의 양상은 굉장히 편차가 크다. 집단2의 초기에 해당하는 여성들은 집단의 여성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즉 이들은 결혼율과 출산율이 낮았다. 그런데 집단2의 후기에 속하는 여성들의 삶은 집단과 비슷하다. 이들은 결혼도 많이 했고 아이도 많이 낳았다. 1912년에 태어난 메리 매카시는 딱 중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기에 태어난 많은 여성처럼, 그리고 그 이전에 태어난 많은 여성과는 달리, 메리는 아이가 있었다(그리고 네 번 결혼했는데 물론 이것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 P113

집단2는 ‘낮은 결혼율, 낮은 출산율‘의 세대에서 ‘높은 결혼율, 높은 출산율‘의 세대로, 또 여성 참정권을 쟁취해 낸 세대에서 베이비 붐 엄마들의 세대로 이어지는 중간 다리에 해당한다. 이렇게 극적인 변화는 설명이 필요하다. 무엇이 달라졌길래 대졸 여성들이 가정 - P115

밖에서의 정체성을 목표로 삼으면서 가정을 갖는 것도 함께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일까? - P116

기업, 소비자, 정부는 새로운 제품을 구매했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 그 결과 경제가 특정한 방향으로 변화했고 성장했다. 여기에서 정부 규제는 여성의 고용을 확대하거나 사회적 규범의 제약을 없애는 데 기여한 바가 별로 없다. 정부가 한 것이 있다면, 지역 당국이 1930년대에 기혼 여성 고용 금지를 오히려 더 확대한 것이었다. - P116

‘사무실에서의 산업 혁명‘은 사무직 일자리의 수와 노동 수요를 크게 증가시켰다. 이제는 더 이상 한 명의 ‘비서‘가 회사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 않았다. - P118

19세기 중후반에 기계화와 복잡한 분업화가 진전되면서 미국의 제조업 [공장]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이것은 대량생산 방식에 획기적인 혁신을 가져온 미국에서의 산업혁명이었다. 그리고 20세기초에 이와 비슷한 기술적 전환이 사무실, 유통매장, 그 밖의 수많은 영역에서도 벌어졌고 마찬가지로 혁명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 P119

사무직과 유통 분야에서 노동 수요를 크게 증가시킨 경제적 혁명은 문해력과 수리력이 시장에서 갖는 가치를 크게 높이는 결과도 가져왔다. - P120

화이트칼라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농촌의 초등학교나 8학년까지만 있던 19세기 도시의 초등학교 수준을 넘어서는 교육에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노동시장에 생겨난 새로운 수요와 맞물려 ‘고등학교 운동high school movement‘이 벌어졌다. - P120

‘좋은‘ 사무직 일자리가 급격히 많아지면서 합리적인 수준의 교육을 받은 여성은 이전 세대 여성들의 주된 일터였던 공장이나 가내서비스업보다 육체적으로 덜 힘들고 여러 면에서 더 안전한 일자리 - P121

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사무직의 노동 환경은 공장보다 깨끗하고 편안했다. 사무직의 모든 것이 덜 더럽고 덜 위험하고 덜 혐오스러웠다. 게다가 보수도 일반적으로 더 높았다. - P122

20세기 초입에 대학을 졸업한 집단의 여성들은 결혼을 독립의 상실이라고 여겼고,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하지만 10-20년이 지나서 1920년대에, 그리고 그 이후에 졸업한 여성들은 결혼을 다른 각도로 보게 되었다. 이들은 결혼 후에도 적어도 한동안은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화이트칼라 직군이 전반적으로 팽창하면서, 교육 수준이 가장 높은 여성들까지 포함해 거의 모든 여성에게 게임의 장이 달라졌다. - P123

하지만 1930년대에 미국에는 먹구름이 드리워 있었다. 이 먹구름은 거의 모든 미국인의 고용에 타격을 입히게 되며, 결혼한 여성의 고용 전망이 특히 어두워진다. 가장 전망 있었던 여성들이라 해도마찬가지였다. 실업률이 두 자릿수가 되었고 때로 앞자리가 2로 올라가기도 했다. 미국은 이렇게 높은 전국 실업률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다행히 그 이후로도 이 정도의 전국 실업률은 겪어 본 적이 없다. 코로나시대의 실업률은 2020년 4월에 15%까지 치솟았다가 빠르게 내려가서 2021년 겨울에는 6% 정도가 되었다).
단순히 일자리가 부족한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공황은 기혼 여성들의 고용 추세에서 시계를 거꾸로 돌려 버렸다. 결혼한 여성, 특히 교육 수준이 높은 기혼 여성들이 고용에서 진전을 이루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기혼 여성의 고용을 금지하는 규제가 확대되었다. 여성의 고용 전망이 확대되고 있었고 교직에서 기혼 여성에 대한 고용 제약을 없애야 한다는 여론도 커지는 중이었지만, 갑자기 이 모든 것이 과거의 일이 되었다. - P125

집단1과 집단2의 유색인종 대졸 여성은 결혼율과 고용률이 백인 여성과 매우 상이한 모습을 보인다. 이 시기 흑인 대졸 여성들은일을 했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가졌다. 세 가지 모두 함께 말이다. 집단1의 백인 대졸 여성들이 대체로 일을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중 하나를 선택했고 둘 다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 P129

기혼 대졸 여성의 고용이 흑인과 백인 사이에 차이나는 한 가지 이유는 흑인의 가구 소득이 더 낮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여러 이유에서 흑인 남편들은 백인 남편들보다 훨씬 돈을 덜 벌었고, 따라서 아내들이 돈을 벌어야 가구의 생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요인은 결혼한 사람 중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만 설명할 뿐이지 결혼한 사람이 왜 많은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다른 이유는 흑인 여성들이 늘 일을 해왔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 P130

인종 분리가 행해지던 남부 지역에서 기혼 여성 고용 금지가 훨씬 덜 두드러졌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 P131

집단2의 대졸 여성들은 생애의 각 국면에 각기 다른 유형의 삶을 ‘연쇄적으로‘ 살았다. 그들의 엄마들이 대체로 한 가지 유형의 삶만 살았던 것과 대조적이다(엄마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다). 여기에서 엄마와 딸 들은 메리 매카시의 《그룹》에 나오는 두 세대다. 앞으로 보겠지만, 다음 세대인 집단의 여성들은 ‘일자리 -결혼-아이-다시 일자리‘의 연쇄적인 삶을 의도적으로 계획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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