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베티 프리단이 틀린 것과 맞는 것

베티 프리단 <여성성의 신화>
집단3 ‘가정, 그다음에 일자리’의 순서로 ‘연쇄적으로 펼쳐지는 삶’을 계획
이른 결혼, 이른 출산과 다산
아동 돌봄 서비스 부족
어린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여성 노동력 수요 증가
게임 플랜 -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 다시 일자리 복귀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는 그럴 만하게도 대대적인 환호를 받았다. 수백만 권이 팔린 이 책은 2세대 여성운동에 불을 지핀책으로 꼽힌다. 여기에서 프리단은 TV속 여성들이 꼭 허구라기보다실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프리단에 따르면, 이 시기의미국 여성들은 커리어우먼이 존재했던 이전 시기와 달리 가정으로후퇴하며 뒷걸음쳤다. 프리단은 1950년대의 대졸 여성들이 "진정으로 여성다운 여성은 커리어, 대학 교육, 정치적 권리를 원하지 않는법"이라는 말을 누누이 들어왔다고 지적한다. - P145

프리단은 주로 최고 명문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프리단의 메시지에서 핵심은, 뛰어난 능력과 매우 높은의지를 타고난 여성들이 "여성다움에 대해 잘못 알려진 신화"를 추구하느라 꿈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프리단은 최고 학벌을 가진 소수의 대졸 여성들로만 논의를 한정함으로써 이들의 야망이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았다. 이것 자체는 좋은 방법론일 수 있는데, 문제는 프리단의 분석이 틀렸다는 데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래드클리프 졸업생 중 전문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7% 정도였는데 1950년대 초 졸업생 중에서는 12%, 1950년대말 졸업생 중에서는 18%로 늘었다 "여성다움에 대한 신화"가 팽배했다는 시대에 명문대를 졸업한 여성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높은 비중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P147

하지만 그들이 가정을 더 우선순위에 놓았던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프리단의 분석이 옳다. 이들 대부분은 졸업 직후에 결혼을 했고, 곧이어 아이를 낳았다. 대부분 졸업 직후에 직장도 가졌지만 아이가 생기면 거의 모두가 노동시장을 떠났다. 하지만 아이가생겼을 때 가정으로 들어간 것과 아이들이 학교 갈 나이가 되었을 때노동시장에 돌아온 것 모두 신중하게 세운 인생 계획에 따른 결정이었다. 〈아빠는 다 알아〉나 〈비버는 해결사> 같은 드라마만 보면 으레갖게 되는 고정관념과 달리, 이 여성들은 영구히 가정에 묶여 있거나 안주해 있지 않았다. - P148

이는 이들이 이전 집단보다 (더 적은 선택지가 아니라)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들은 가정을 먼저 갖고 그다음에 일자리 (때로는 커리어)를 갖기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1950년대가 완벽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혀 완벽하지 않았다. - P149

이들의 노동시장 참여가 저조했던 것은 구매 가능한 가격대에서 양질의 아동 돌봄 서비스를 구할 수 없었다는 점과도 관련이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미취학 아동이 있으면 어지간히 높은 임금을 받지 않는 한 아이 봐주는 사람에게 돈 주고 소득세 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다.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합리적인 가격대에서 좋은 베이비시터를 구할 수 있었다면 둘째가 태어난 뒤에도 일을 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내가 버는 돈이 베이비시터에게 다 들어가는 상황이라면 바깥일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죠."
하지만 40세 정도가 되면 이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이 급격히 오른다. 이 나이대에서는 10명 중 7명꼴로 보수를 받는 노동에 종사하고 있었고 대부분 전일제였다. 막내가 초등학교에 가고 나면 대부분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했다 - P150

제2차 세계대전 중과 전후 시기에 여성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교육 수준을 막론하고 모든 여성이 여기에 영향을받았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학업을 더 이어갈 것인지를 결정할 때 많은 여성에게 대학이 예전보다 더 좋은 선택지로 보이게 되었다. 대졸 여성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고 결혼도 할 수 있었고 아이도 가질 수 있었다. 결혼한 여성들에게 대학 졸업장은 벽에거는 장식품을 훨씬 넘어서는 유용성이 있었다. - P153

1950년대에 대학 졸업장은 여성에게 여러 형태로 이득을 가져다주었는데, 대부분의 이득은 고용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졸업 후 곧바로 일자리를 잡는 데서도 그랬지만 대학교육이 줄 수 있는 이득의 상당 부분은 미래에 발생했다. 대학 졸업장(과 교사 자격증)은 결혼 생활이 예기치 않게 파경에 이를 때를 대비하는 보험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널리 쓰이던 표현으로, 일자리는 "뒤로 넘어질 때 받쳐 줄 안전장치"였다. 이혼, 장애, 사망은 어느 집에나 예기치 않게 올 수 있었으므로 남편에게 불시에 무슨 일이 닥치지 말란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1957년 졸업생인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결혼한 여성에게 교육은 일종의 보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여성은 교육을 "안전망"이라고 표현했다. - P154

《여성성의 신화》 시대의 대졸 여성은 프리단이 묘사한 것보다는 물론이고 일반적으로도 이전 세대의 대졸 여성들보다 주체적 역 - P155

랑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계획했다. 고용 장벽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혼한 여성도 다양한 직군과 지위에서71-7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제약이 있었다. 특히 아이가 어린데도 바깥일을 하는 여성은 사회적으로 크게 비난받았다. - P156

전후에 경제가 호황을 맞으면서 미국의 젊은 층과 중장년층 모두가 새로이 삶을 조정하기 시작한 무렵, 향후 수십 년간 미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될 일련의 인구통계학적 변화들이 일어났다. 너무나 대대적인 변화여서 오늘날에도 미국 경제와 사회에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 베이비 붐은 다른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친 것처럼 대졸여성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베이비 붐의 원인에 대해 많은 가설이제시되어 왔지만 정확히 왜 결혼 연령이 급감했는지, 왜 출산율이 급중했는지, 왜 이 변화가 그만큼의 기간 동안 지속되다가 갑자기 끝났는지에 대해 여전히 우리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 P156

전후 미국에서 벌어진 주요 인구통계학적 변화 중 첫 번째는 결혼 연령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 P157

전후의 대대적인 인구통계학적 변화 중 두 번째는 여성의 첫 출산 연령이 낮아진 것이다. 또 아이를 더 이른 시기에 낳았을 뿐 아니라 더 많이 낳기도 했다. - P158

장래에 일자리를 잡을 생각이 없었다면 왜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특정한 직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전공을 택했겠는가? 교사가 될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왜 60%가 넘는 여성이 교사 자격증을 땄겠는가? 문학, 예술사, 외국어, 음악 같은 전공이 어쩌면 더 흥미로웠을지도 모르지만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 대부분은 가정 생활과 양립 가능한 종류의 직장을 잡을 수 있는 전공을선택했다. 집단에 속하면서 석사 학위를 가진 한 여성은 "교직은 가정도 갖고 싶은 여성에게 완벽한 커리어였다"고 말했다. "나는 13년동안 일을 쉬었다가 아무 불이익 없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33일반적으로 말해서 1950년대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이 장기적인 ‘커리어‘를 추구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미래 어느 시점에 노동시장에 들어올 수 있기 위해 준비했고 실제로 대부분 노동시장에들어왔다.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은 ‘가정을 먼저 꾸리고나서 그다음에 일자리를 갖기로‘ 계획했고, 대체로 계획대로 되었다. - P161

종전 시기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인들이 전업주부가 있는 가정을 찬미했다는 점에서는 베티 프리단의 분석이 맞았다. - P161

하지만 전문직을 향한 대졸 여성들의 야망이 이전 시기에 높아졌다가 이 시기에 후퇴했다고 본 데서는 프리단이 틀렸다. - P162

그런데 왜 프리단이 개진한 많은 주장이 정확하지 않았을까? 한 가지 이유는 프리단이 1950년대 대졸 여성의 성취를 더 이른 시기 대졸 여성 중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었던 여성들하고만 비교했기 때문이다. - P162

프리단의 책이 너무 일찍 출간되어서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이 앞으로 일구게 될 성취까지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프리단은 이 여성들이 짠 게임 플랜이 결실을 맺는 것을 관찰할 수 없었다.
노동 연령이 끝날 무렵이면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은 커리어 면에서도 1900년대 초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커리어와 가정을 결합하는 데서는 훨씬 더 성공적이었다. 이들의 생애는 많은 국면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프리단은 이들의 생활이 가정에 한정되어 있던 국면에서만 이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 국면에서 많은 여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좌절과 한탄을 책에 담았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시간 안에 응결되어 있지 않았다. 대부분은 프리단이 그 책을 출간하기 한참 전부터 그 생활에서벗어날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다. - P163

이들에게 가장 큰 제약은, 아이가 어릴때는 마땅히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하고 엄마가 일을 하면 아이에게 "해롭다"고 보는 사회적 규범이었다. - P166

그런데 어쩌다가 우리는 이 여성들을 마거릿 앤더슨이나 준클리버와 비슷했을 것이라고 여기게 됐을까? 이제까지 보았듯이 195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이 가정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1964년에 이뤄진 조사에서 1961년 졸업생 중 결혼을 하고 전일제 일자리도 갖고 있었던 여성의 37%가 여전히 자신을 "주부"라고 묘사했다. - P173

이것은 당대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생각이었다. 엄마가 늘 집에 있지 않으면 미취학 연령대의 어린아이에게 해가 된다고 본 당대의 믿음이 어린아이가 있는 여성들이 일하는 것을 가로막은 주요인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돌봐 주는 시설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또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시설들은 수요가 충분하지 않아서 충분히 존재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였다. 엄마가 일하면 어린아이에게 해롭다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서는 돌봄 시스템에 커다란 변화가 필요했다. - P174

집단의 여성을 가장 크게 제약한 것은 엄마가 ‘이기적인 커리어 우먼‘이면 어린아이에게 피해가 간다는 통념이었을 것이다. - P178

이 세대 여성들이 느낀 공허와 좌절이 바로 베티 프리단이 그의베스트셀러에서 드러내고자 한 주제였다. 그 책에서 프리단은 "이게다야?"라는 말로 이를 잘 요약하고 있다. 하지만 가정에 묶여 있어야하는 상황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가정, 그다음에 일자리‘의 순서로 ‘연쇄적으로 펼쳐지는 삶‘을 계획했다(소수는 ‘가정, 그다음 ‘커리어‘의 단계를 밟을 수 있었다).
집단3 여성들의 삶에 교육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프리단의 분석이 맞았다. 하지만 이들의 열망에 대해서는 틀렸다. 프리단의 책은 여성들이 더 큰 성평등과 더 큰 부부간 공평성을 향해 나아가는 경로의 중간 지점에서 나왔다. 프리단은 대졸 여성에게 더 좋았던 시기를 찾고자 과거로 돌아갔다. 하지만 과거는 이들에게 더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프리단이 책에서 묘사한 바로 그 여성들도 이 변화의 이득을 일부 누릴 수 있었다. 프리단이 한 공헌은 독립을 향한 여성들의 열망에 불을 붙이고 그들에게 현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것이다. 이 연료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졸업생들이 미국의 삶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바꾸게 될 조용한 혁명을 일구는 데 일조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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