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1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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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불쌍하고 불쌍한 올리버. 나약하고 어린 올리버를 유혹하고 옭아매는 악의 힘, 그 사이에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이어가는 삶. 죽음의 고비를 넘긴 올리버에게 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출생의 비밀이 어떻게 밝혀질지 2권이 무척 궁금해진다. 소년소녀동화로 읽은 디킨스는 진정한 독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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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남과 도상록

1934년 과학데이. 양자역학의 도입

1935년 조선 전역에 발명 붐이 일어나 ‘과학데이‘를 기점으로 특허 출원이 무려 5배나 증가하게 된다.
다음 해인 1936년 드디어 조선에 양자역학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를 소개한 주인공은 최규남과 도상록이었다. 1923년의 ‘상대성이론‘ 전국 순회강연도 그렇지만, 이 무렵 대중 과학 운동이 보급한 지식의 수준은 꽤 높았다. 그들은 교양 과학 뿐 아니라 당시 최신 과학 이론도 소개한 것이다. - P157

1920년대 상대성이론이 조선을 휩쓸었듯이 조선의 지식인 들은 새로이 떠오르는 양자역학 도입에도 과감했다. 대중 잡 지였던 《별건곤》이 1934년 1월 세계 과학계의 최대 존재는 아 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막스 플랑크의 양자론이라고 소개 한 이래 당시 신문들은 이를 둘러싼 논쟁도 보도했다. 1935년 7월 9일 《동아일보》는 ‘상대성원리의 비약‘에서 아인슈타인이 두 이론의 통합에 노력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이어 10월 4일 ‘양자론에 관한 논쟁‘ 기사에서는 그해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의 논쟁을 비교적 상세히 알렸다. - P160

1938년 1월 4일, 최규남은 ‘첨단 과학: 미래전의 신병기‘라는 장문의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무인비행기, 즉 드론을 소개하며 미래는 무인 기술이 지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무선 조종을 위한 전자기파 기술의 최신 동향과 여기서 파생된 초기 형태의 레이저도 소개한다. 특히 로켓 발전에 주목하며 3단 로켓이면 달 탐사가 가능하다는 것과 대륙간탄도미사일도 예측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기 불과 1년 전이었다. - P171

두 사람 모두 김용관이 주장한 ‘이화학 연구소‘를 꿈꾸었고, 두 사람 모두 《동아일보>의 ’나의 백일몽‘이라는 코너에 안타까움 을 남겼다. 발명학회가 1934년 ‘과학데이‘를 이끌고, 다시 그 해 여름 과학지식보급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김용관은 산학협동 기반의 ‘이화학 연구소‘ 설립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1935년 제2회 과학데이의 대성공으로 그의 주장은 더욱 강해졌지만 과학데이의 성공은 당국의 탄압을 불러왔고, 명망가들의 지원은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과학데이‘ 운동이 독립 운동임을 간파한 일제는 1937년부터 옥외 집회를 금지하고, 1938년 다섯 번째 ‘과학데이‘를 마친 김용관을 체포하면서 ‘과학지식보급회‘는 해체된다.52 또한 발명학회가 일본발명학 회의 지부로 흡수되면서 과학 대중화 운동은 위축되고 친일화되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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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례들 - 지참금 살해, 양수천자와 여아낙태, 강간, 공물로서의 결혼지참금, 희생자 이데올로기

5장 여성에 대한 폭력과 계속되는 자본의 원시적 축적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설명의 문제는 이들이 모두, 맑스주의자이아니건 간에 상관없이, 아주 협소한 자본주의적 ‘경제‘ 개념에 기초해있다는 점이다. 이 개념은 가사노동, 출산, 육아를 생산적 노동‘의 범주에서 제외하고, 여성을 소비 단위로 축소시킨다. 이 주장의 핵심에는여성을 ‘비생산적‘이고 의존적인 가정주부로 보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지참금 살해, 여아낙태, 강간, 어린 여아에 대한 방치 등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이 결국은 여성이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여성은 부담이자 짐이기 때문이라는 이론적 전제로 귀결된다. 이이론에 따르면 반여성적 경향은, 엥겔스의 유명한 말처럼 여성이 사회적 생산으로 다시 진입하게 되면, 즉 여성이 ‘돈 버는 취업을 하게 되면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인도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나 존재하는 현실을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최소한 여성의 40%가 집 밖에서 사회적으로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서구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내 구타와 여성에 대한 폭력은 모든 계급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취업을 해서 돈을 버는 여성뿐아니라 ‘한낱 가정주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소련에도(Women in Russia, Almanac, 1981 참조), 중국에도(Croll,
1983), 짐바브웨(성매매가 금지된 곳이다), 유고슬라비아 등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에도 있다. - P339

사실 등가교환의 법칙을 여성노동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여성노동은 (자본주의적) 경제에서 따로 분리되어 있으며, 은폐되어 있다. 여성은 가정에서, 들판에서, 공장에서 일을 그만둔 적이 없으며, 출산과 육아를 그만둔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노동을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으로 더 이상 여기지 않으며,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따라서 결혼지참금을 여성의 평생 생계비에 대한 보상으로 볼 수는 없다. 여성은 사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중심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산층 가정에서도 자주 목도되는 현실이다.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자본주의적으로 구분하는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남성이 여성 노동에 의존하는 것이 여성이 ‘부양자‘ 남성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 P341

결혼지참금은 대도시에서, IAS의 공무원, 의사, 엔지니어, 치과의사, 사업가, ‘진보적인‘ 자본가적 농장경영자 등 가장 선진적인‘ 남성 사이에서 가장 고액가로 관행화되어 있다. 여성에 대한 강간과 성희롱은 인도 농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대도시에서 더욱 증가하고 있다. 첨단의 근대 기술은 태아 성별테스트와 여아낙태에 이용되고 있다. 도시의 교육받은 중산층 사이에서 ‘문명화 과정‘을 가로막고 있는것은 ‘인도의 시골이 아니다. 그것은 ‘야만주의의 아버지‘인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문화 그 자체이다. 여성에 대한 잔혹행위는 자본주의와 별개가 아니다. 이는 자본주의의 기본적으로 사납고 약탈적인 특성이 발현된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한시도 사라진 적이 없다. - P345

나는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는 입법자와 남성 학자가 자신들이 만든 인류의 캐리커처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여성, 남성, 섹스에 대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이런 통속적인신화만은 아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이런 신화들 대부분이 권위 있는학자와 그들의 이론에 의해 등장하고,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구성되며, ‘증명‘된다는 사실이다. 모든 도서관에는 남성의 성적 욕망은 기본적으로 공격적이며 통제할 수 없고, 여성은 고유의 섹슈얼리티를 갖고 있지않으며, 남성의 공격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여성의 생물학적 운명이라는 점을 증명하려는 책들이 가득하다. 이들 학자와 학파 중 가장 유명한 예로 다윈을 들 수 있다. 다윈은 진화의 기초가 되는 것은여성을 성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경쟁에서 남성들이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본능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P349

강간은 동물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인 남성이 발명한 것이다. - P350

프로이트에 따르면 여성은 자신의 ‘타고난 여성적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서만, 즉 그녀의 ‘미숙한‘ 음핵(클리토리스) 섹슈얼리티를 포기하고 남성의 성욕을 만족시켜주는 데필수적인 질의 섹슈얼리티로 옮겨가는 것을 통해서만 완전히 성숙한 섹슈얼리티에 이를 수 있다. 프로이트와 같은 권위 있는 학자가 질의 오르가즘이 여성 섹슈얼리티의 ‘성숙한‘ 형태라는 이론을 강화시켰다고 하는 것은 놀랍다. 프로이트는 질에는 신경말단이 없기 때문에 오르가즘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이론을 주장했다. 그는 음핵이 여성의 적극적인 성기이며, 따라서 여성은질을 통한 삽입 없이도 오르가즘을 생산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남성 섹슈얼리티에 몰두했던 프로이트는 여성을 불완전하거나 거세당한 남성이고, 음핵은 작은 남근이며, 사회에서 종속적인 역할을 바꾸려는 여성의 시도는 남근선망의 결과라고 규정했다. - P351

공격자들은 종속된 이들이 상황을 자연이 부여한 것으로, 혹은같은 의미지만, 신이 부여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지 않으면, 자신이 정복하고 종속시킨 이들에 대한 통제를 영구적으로 유지할 수가없다. 남성에 대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창안자들은 여성에 대해서도 그에 어울리는 이데올로기를 창안해 왔다. 이는 영원한 희생자의 이데올로기, 자기희생의 이데올로기(근대 서구적 버전으로는 여성 피학성의 이데올로기)이다. 힌두교와 민간 신앙은 어머니와 빠띠브라따Pativrata 10 역할을 해내는 자기희생적인 여성을 이상화한다. 여성은 고유의 정체성을 갖지 않으며, 다른 이들에게, 주로 남편과 아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났다. 여성은 자신의 생명, 자신의 몸,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자율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녀는 수단이며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다. 사티, 시타 등 자기 희생적인 힌두 종교의 여성들이 지금도 소녀들에게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이들은 교과서, 영화, 소설 등을통해 널리 회자된다. 강간 희생자들이 반격을 하거나 자신을 변호하기보다는, ‘좋은‘ 여성이라는 ‘명예‘가 무너졌다는 이유로 자살을 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이 자신은 약하고, 남성의 보호가 필요하며, 맞서 싸울 수 없고, 혹은 맞서 싸우면 안 된다고 느끼는자기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 인식 속에서, 현실에서든 상징적으로든, ‘자기희생‘은 그들이 자신의 인간성을 되찾기 위해 거쳐야 하는 활동이 된다. - P352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압적인 노동관계를 통해 여성 노동을 갈취하는 것은, 따라서,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부분인 셈이다. 폭력은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 필수적인 것이지, 주변적인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 축적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가부장적 남녀관계를 이용하고, 강화시키고, 심지어 발명해내야 했다. 세계 모든 여성이 ‘자유로운 임금노동자, ‘자유로운 주체가 된다면, 이윤을 착복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제3세계에서부터 제1세계까지 가정주부, 노동자, 농민, 창녀 등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점이다.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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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어는 자선 학교 학생이긴 했지만 구빈원 고아는 아니었다. 또한 사생아도 아니었으니, 혈통과 출생의 근원을 분명하게 확인할 부모가 바로 근처에 살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세탁부였고, 아버지는 주정뱅이 퇴역 군인으로 한쪽 다리가 나무 의족이었으며 하루당 2.5펜스에 개미 눈곱만큼을 더한 금액을 연금으로 받았다. 동네 가게 점원 아이들은 오래전부터길거리에서 노어를 만나면 ‘가죽 바지‘ 또는 ‘자선 학교‘ 같은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그를 일컫는 습관이 있었는데, 노어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걸 견뎌 왔다. 하지만 이제 운명의 여신이 세상에서 가장 천한 자조차도 손가락질하며 경멸할 수 있는 이름 없는 고아 하나를 그의 앞에 던져 주었으니, 그는 자기가 받은 모욕을 이자까지 얹어서 이 고아에게 앙갚음했던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아주 흥미로운 사색거리를제공한다. 즉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온화하기 그지없는 심성이 높디높으신 귀족 나리와 천하디 천한 - P76

자선 학교 학생에게서 얼마나 똑같이 공평하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예다. - P77

"그래, 올리버." 함께 집으로 걸어가며 싸워베리가 말했다.
"오늘 일을 본 소감이 어떠냐?"
"꽤 괜찮은 것 같아요, 주인님,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한참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아주 좋지는 않지만요, 주인님."
"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다, 올리버." 싸워베리는 말했다. "일단 익숙해지기만 하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얘야."
올리버는 마음속으로 싸워베리 씨가 이 일에 익숙해지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어땠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는 게 좋겠다 생각했고, 그래서 그냥 가게로 돌아가면서 그날 보고 들은 것들을 하나하나 돌이켜 보았다. - P88

"세상에 이런!" 싸워베리 부인은 부엌 천장을 경건하게 올려다보며 외치듯 말했다. "이게 다 너그럽게 잘 대해 줘서 생긴 일이라니!"
싸워베리 부인이 올리버에게 베풀었다는 너그러운 대접이란 곧 아무도 먹지 않을 온갖 더러운 음식물 찌꺼기들을 아낌없이 던져 준 것뿐이었다. 따라서 부인이 범블 씨의 엄중한 비난을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은 엄청난 자기희생과온순함의 발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부인이 억울하지 않도록 사실을 말하자면, 그녀는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나 그런 비난을 받을 만한 짓을 조금도 한 적이 없었다. 피버 - P104

이날 이후로 올리버는 혼자 남는 경우가 거의 없이 거의 항상 다른 두 소년들을 상대하며 그들과 어울려 지내야 했는데, 이들 두 소년은 전에 유태인과 하던 놀이를 매일 반복했다. 이게 그들의 솜씨를 향상시키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올리버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는지는 페이긴만이 알 일이었다. 유태인 영감은 간혹 자기가 젊은 시절에 저지른 강도질 이야기를아이들에게 해 주었는데,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내용이 어찌나 많은지 올리버는 그러면 안 된다고 느끼면서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요컨대 교활한 유태인 영감은 올리버를 올가미에다 걸어둔 것이었다. 아이를 외롭고 우울한 상태에 빠지게 함으로써 황량한 그곳에서 혼자 슬픈 생각들을 벗하며 지내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사람이든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만든 다음, 이제 아이의 영혼에 시커먼 독을 서서히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영혼을 영원히 시커멓게 물들여 놓을 심산인 것이다. - P267

돌이 깔린 길바닥은 진흙탕이고 거리는 시커먼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손에 닿는 모든 것이 차갑고 끈적끈적했다. 유태인 영감 같은 존재가 돌아다니기에 딱알맞은 밤 같았다. 건물들의 담벼락이나 현관의 그늘진 곳에몸을 숨겨 가며 은밀하게 미끄러지듯 걸어가는 이 가증스러운 영감은 흡사 자신이 지나는 그 진흙탕과 어둠에서 태어난어떤 흉측한 파충류 같았다. 그래서 밤에 끼닛거리로 영양가높은 고기 찌꺼기 따위를 뒤지러 기어 나온 것처럼 보였다. - P269

"어떻게 하든 상관 마시오!" 싸익스가 대답했다. "그저 꼬마나 구해 오시오. 덩치가 큰 놈은 안 되오. 젠장!" 싸익스 씨는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굴뚝 청소부 네드의 그 꼬맹이 아들놈이면 딱 좋은데! 네드는 일부러 그 애를 못 자라게 만들어서 건당 얼마씩 받고 빌려줬지. 하지만 네드가 어쩌다 체포된뒤에 비행 청소년 선도 협회란 게 끼어들더니 그 돈 잘 버는일을 애가 못 하게 해 버렸소. 그러곤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서는 얼마 후 도제로 들어가게 한 거요. 게다가 그들의 그런 행태는 계속되고 있소." 싸익스 씨는 자신이 당한 손해를생각하고 분노가 치밀어 말했다. "그들의 그런 행태가 계속되고 있단 말이오. 그들이 자금만 충분하면 (다행히 하늘의 섭리로 충분하지 않지만) 일이 년 안에 우리 업계에는 일할 애가 여섯명도 남지 않을 거요." - P276

"난 이불을 걷어찼어." 자일스 씨는 식탁보를 휙 내던지고 요리사와 하녀를 매우 심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곤 침대에서 살며시 나와 벗어 놓은......."
"숙녀들 앞이오, 자일스 씨." 땜장이가 중얼거렸다.
"......신발을 신은 거요, 선생." 자일스 씨는 땜장이를 돌아보고 신발이라는 단어를 아주 크게 강조하면서 말했다. "그러곤 언제나 식기 바구니와 함께 내 방으로 들고 올라가는 장전된 권총을 집어 든 다음, 살금살금 걸어 브리틀스의 방으로 갔지. 그리고 그를 깨운 뒤에 이렇게 말했지. ‘브리틀스, 놀라지 말게!"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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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도쿄. 브나로드운동과 이태규, 지식인의 좌절

1907년생인 유카와 히데키는 1910년생 시인 이상과 동년배였다. 이미 100년 전, 일본은 이런 나라였다. 그렇기에 이상은 자신을 ‘박제된 천재‘라며 시대를 한탄했을 것이다. 이처럼 과학으로 시대를 극복하려던 지식인들은 한계를 절감할 수밖 에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뭔가를 해보려는 움직임은 여러 방면에서 시도되었고, 그중 단연 주목받은 것은 스포츠였다.
상하이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여운형이 체포된 것은 야구 시합 때문이었다.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여운형은 특히 야구를 좋아했는데, 1912년 한국 최초의 야구단인 YMCA 야구단을 이끌고 일본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 P148

당시 조선체육회의 가장 큰 이슈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할 조선인의 선발이었다. 이때 일장기를 달고 나가야 할지 망설이던 손기정은 여운형에게 조언을 구했고, 여운형은 반드시 참가하라고 격려했다. 손기정이 금메달을 따자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여운형이 사장을 맡고 있던 조선중앙일보는 자진 휴간했다가 폐간되었고,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 처분을 받고 여러 직원이 구속되는 고초를 겪은 뒤 겨우 속간될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여운형은 올림픽의 영향력을 실감한다. 하지만 조선체육회는 결국 강제 해산되었다. - P150

손정도 목사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김형직 부부와 친분이 있었다. 손 목사는 부부가 사망하자 그들의 어린 아들을 거두어 키우게 된다. 이 아들이 바로 김일성이다. 여기서 김일성은 손 목사의 자녀인 손원일, 손원태, 손인실을 만나게 된다. 특히 또래인 손원태, 손인실과는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이들의 운명은 엇갈린다. 손 목사의 장남 손원일은 해방 후 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해 한국전쟁에서 김일성에게 맞섰다. 친일파로 공격받아 해방 정국에 힘든 삶을 살던 안중근 의사의 아들 안준생을 거두어준 사람도 손원일 제독이다. 공병우의 타자기를 도입해 정전 협정문을 한글 타자기로 작성하게 만든 사람 역시 손 제독이다.
나중에 김일성은 1970년대 적십자회담에서 남한 대표단에 손인실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인실, 원태 두 사람의 소식을 찾던 김일성은 마침내 1991년 미국에서 의사로 지내던 손원태와 연락이 되자 평양으로 초청했다. 그 후 둘은 매년 평양에서 만났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정일은 상중임에도 한 달 뒤 8월, 아버지를 대신해 손원태의 80회 생일잔치를 평양에서 열었다. 같은 해, 손원일의 아들 손명원 쌍용 사장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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