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여성에 대한 폭력과 계속되는 자본의 원시적 축적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설명의 문제는 이들이 모두, 맑스주의자이아니건 간에 상관없이, 아주 협소한 자본주의적 ‘경제‘ 개념에 기초해있다는 점이다. 이 개념은 가사노동, 출산, 육아를 생산적 노동‘의 범주에서 제외하고, 여성을 소비 단위로 축소시킨다. 이 주장의 핵심에는여성을 ‘비생산적‘이고 의존적인 가정주부로 보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지참금 살해, 여아낙태, 강간, 어린 여아에 대한 방치 등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이 결국은 여성이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여성은 부담이자 짐이기 때문이라는 이론적 전제로 귀결된다. 이이론에 따르면 반여성적 경향은, 엥겔스의 유명한 말처럼 여성이 사회적 생산으로 다시 진입하게 되면, 즉 여성이 ‘돈 버는 취업을 하게 되면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인도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나 존재하는 현실을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최소한 여성의 40%가 집 밖에서 사회적으로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서구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내 구타와 여성에 대한 폭력은 모든 계급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취업을 해서 돈을 버는 여성뿐아니라 ‘한낱 가정주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소련에도(Women in Russia, Almanac, 1981 참조), 중국에도(Croll, 1983), 짐바브웨(성매매가 금지된 곳이다), 유고슬라비아 등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에도 있다. - P339
사실 등가교환의 법칙을 여성노동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여성노동은 (자본주의적) 경제에서 따로 분리되어 있으며, 은폐되어 있다. 여성은 가정에서, 들판에서, 공장에서 일을 그만둔 적이 없으며, 출산과 육아를 그만둔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노동을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으로 더 이상 여기지 않으며,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따라서 결혼지참금을 여성의 평생 생계비에 대한 보상으로 볼 수는 없다. 여성은 사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중심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산층 가정에서도 자주 목도되는 현실이다.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을 자본주의적으로 구분하는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남성이 여성 노동에 의존하는 것이 여성이 ‘부양자‘ 남성에게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 P341
결혼지참금은 대도시에서, IAS의 공무원, 의사, 엔지니어, 치과의사, 사업가, ‘진보적인‘ 자본가적 농장경영자 등 가장 선진적인‘ 남성 사이에서 가장 고액가로 관행화되어 있다. 여성에 대한 강간과 성희롱은 인도 농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대도시에서 더욱 증가하고 있다. 첨단의 근대 기술은 태아 성별테스트와 여아낙태에 이용되고 있다. 도시의 교육받은 중산층 사이에서 ‘문명화 과정‘을 가로막고 있는것은 ‘인도의 시골이 아니다. 그것은 ‘야만주의의 아버지‘인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문화 그 자체이다. 여성에 대한 잔혹행위는 자본주의와 별개가 아니다. 이는 자본주의의 기본적으로 사납고 약탈적인 특성이 발현된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한시도 사라진 적이 없다. - P345
나는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는 입법자와 남성 학자가 자신들이 만든 인류의 캐리커처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여성, 남성, 섹스에 대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이런 통속적인신화만은 아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이런 신화들 대부분이 권위 있는학자와 그들의 이론에 의해 등장하고,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구성되며, ‘증명‘된다는 사실이다. 모든 도서관에는 남성의 성적 욕망은 기본적으로 공격적이며 통제할 수 없고, 여성은 고유의 섹슈얼리티를 갖고 있지않으며, 남성의 공격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여성의 생물학적 운명이라는 점을 증명하려는 책들이 가득하다. 이들 학자와 학파 중 가장 유명한 예로 다윈을 들 수 있다. 다윈은 진화의 기초가 되는 것은여성을 성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경쟁에서 남성들이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본능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P349
강간은 동물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인 남성이 발명한 것이다. - P350
프로이트에 따르면 여성은 자신의 ‘타고난 여성적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서만, 즉 그녀의 ‘미숙한‘ 음핵(클리토리스) 섹슈얼리티를 포기하고 남성의 성욕을 만족시켜주는 데필수적인 질의 섹슈얼리티로 옮겨가는 것을 통해서만 완전히 성숙한 섹슈얼리티에 이를 수 있다. 프로이트와 같은 권위 있는 학자가 질의 오르가즘이 여성 섹슈얼리티의 ‘성숙한‘ 형태라는 이론을 강화시켰다고 하는 것은 놀랍다. 프로이트는 질에는 신경말단이 없기 때문에 오르가즘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이론을 주장했다. 그는 음핵이 여성의 적극적인 성기이며, 따라서 여성은질을 통한 삽입 없이도 오르가즘을 생산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남성 섹슈얼리티에 몰두했던 프로이트는 여성을 불완전하거나 거세당한 남성이고, 음핵은 작은 남근이며, 사회에서 종속적인 역할을 바꾸려는 여성의 시도는 남근선망의 결과라고 규정했다. - P351
공격자들은 종속된 이들이 상황을 자연이 부여한 것으로, 혹은같은 의미지만, 신이 부여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지 않으면, 자신이 정복하고 종속시킨 이들에 대한 통제를 영구적으로 유지할 수가없다. 남성에 대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창안자들은 여성에 대해서도 그에 어울리는 이데올로기를 창안해 왔다. 이는 영원한 희생자의 이데올로기, 자기희생의 이데올로기(근대 서구적 버전으로는 여성 피학성의 이데올로기)이다. 힌두교와 민간 신앙은 어머니와 빠띠브라따Pativrata 10 역할을 해내는 자기희생적인 여성을 이상화한다. 여성은 고유의 정체성을 갖지 않으며, 다른 이들에게, 주로 남편과 아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났다. 여성은 자신의 생명, 자신의 몸,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자율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녀는 수단이며 대상이지, 주체가 아니다. 사티, 시타 등 자기 희생적인 힌두 종교의 여성들이 지금도 소녀들에게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이들은 교과서, 영화, 소설 등을통해 널리 회자된다. 강간 희생자들이 반격을 하거나 자신을 변호하기보다는, ‘좋은‘ 여성이라는 ‘명예‘가 무너졌다는 이유로 자살을 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이 자신은 약하고, 남성의 보호가 필요하며, 맞서 싸울 수 없고, 혹은 맞서 싸우면 안 된다고 느끼는자기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 인식 속에서, 현실에서든 상징적으로든, ‘자기희생‘은 그들이 자신의 인간성을 되찾기 위해 거쳐야 하는 활동이 된다. - P352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강압적인 노동관계를 통해 여성 노동을 갈취하는 것은, 따라서,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부분인 셈이다. 폭력은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 필수적인 것이지, 주변적인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 축적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가부장적 남녀관계를 이용하고, 강화시키고, 심지어 발명해내야 했다. 세계 모든 여성이 ‘자유로운 임금노동자, ‘자유로운 주체가 된다면, 이윤을 착복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제3세계에서부터 제1세계까지 가정주부, 노동자, 농민, 창녀 등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점이다.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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