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어는 자선 학교 학생이긴 했지만 구빈원 고아는 아니었다. 또한 사생아도 아니었으니, 혈통과 출생의 근원을 분명하게 확인할 부모가 바로 근처에 살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세탁부였고, 아버지는 주정뱅이 퇴역 군인으로 한쪽 다리가 나무 의족이었으며 하루당 2.5펜스에 개미 눈곱만큼을 더한 금액을 연금으로 받았다. 동네 가게 점원 아이들은 오래전부터길거리에서 노어를 만나면 ‘가죽 바지‘ 또는 ‘자선 학교‘ 같은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그를 일컫는 습관이 있었는데, 노어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걸 견뎌 왔다. 하지만 이제 운명의 여신이 세상에서 가장 천한 자조차도 손가락질하며 경멸할 수 있는 이름 없는 고아 하나를 그의 앞에 던져 주었으니, 그는 자기가 받은 모욕을 이자까지 얹어서 이 고아에게 앙갚음했던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아주 흥미로운 사색거리를제공한다. 즉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온화하기 그지없는 심성이 높디높으신 귀족 나리와 천하디 천한 - P76
자선 학교 학생에게서 얼마나 똑같이 공평하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예다. - P77
"그래, 올리버." 함께 집으로 걸어가며 싸워베리가 말했다. "오늘 일을 본 소감이 어떠냐?" "꽤 괜찮은 것 같아요, 주인님,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한참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아주 좋지는 않지만요, 주인님." "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다, 올리버." 싸워베리는 말했다. "일단 익숙해지기만 하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얘야." 올리버는 마음속으로 싸워베리 씨가 이 일에 익숙해지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어땠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는 게 좋겠다 생각했고, 그래서 그냥 가게로 돌아가면서 그날 보고 들은 것들을 하나하나 돌이켜 보았다. - P88
"세상에 이런!" 싸워베리 부인은 부엌 천장을 경건하게 올려다보며 외치듯 말했다. "이게 다 너그럽게 잘 대해 줘서 생긴 일이라니!" 싸워베리 부인이 올리버에게 베풀었다는 너그러운 대접이란 곧 아무도 먹지 않을 온갖 더러운 음식물 찌꺼기들을 아낌없이 던져 준 것뿐이었다. 따라서 부인이 범블 씨의 엄중한 비난을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은 엄청난 자기희생과온순함의 발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부인이 억울하지 않도록 사실을 말하자면, 그녀는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나 그런 비난을 받을 만한 짓을 조금도 한 적이 없었다. 피버 - P104
이날 이후로 올리버는 혼자 남는 경우가 거의 없이 거의 항상 다른 두 소년들을 상대하며 그들과 어울려 지내야 했는데, 이들 두 소년은 전에 유태인과 하던 놀이를 매일 반복했다. 이게 그들의 솜씨를 향상시키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올리버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는지는 페이긴만이 알 일이었다. 유태인 영감은 간혹 자기가 젊은 시절에 저지른 강도질 이야기를아이들에게 해 주었는데,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내용이 어찌나 많은지 올리버는 그러면 안 된다고 느끼면서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요컨대 교활한 유태인 영감은 올리버를 올가미에다 걸어둔 것이었다. 아이를 외롭고 우울한 상태에 빠지게 함으로써 황량한 그곳에서 혼자 슬픈 생각들을 벗하며 지내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사람이든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만든 다음, 이제 아이의 영혼에 시커먼 독을 서서히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영혼을 영원히 시커멓게 물들여 놓을 심산인 것이다. - P267
돌이 깔린 길바닥은 진흙탕이고 거리는 시커먼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손에 닿는 모든 것이 차갑고 끈적끈적했다. 유태인 영감 같은 존재가 돌아다니기에 딱알맞은 밤 같았다. 건물들의 담벼락이나 현관의 그늘진 곳에몸을 숨겨 가며 은밀하게 미끄러지듯 걸어가는 이 가증스러운 영감은 흡사 자신이 지나는 그 진흙탕과 어둠에서 태어난어떤 흉측한 파충류 같았다. 그래서 밤에 끼닛거리로 영양가높은 고기 찌꺼기 따위를 뒤지러 기어 나온 것처럼 보였다. - P269
"어떻게 하든 상관 마시오!" 싸익스가 대답했다. "그저 꼬마나 구해 오시오. 덩치가 큰 놈은 안 되오. 젠장!" 싸익스 씨는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굴뚝 청소부 네드의 그 꼬맹이 아들놈이면 딱 좋은데! 네드는 일부러 그 애를 못 자라게 만들어서 건당 얼마씩 받고 빌려줬지. 하지만 네드가 어쩌다 체포된뒤에 비행 청소년 선도 협회란 게 끼어들더니 그 돈 잘 버는일을 애가 못 하게 해 버렸소. 그러곤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서는 얼마 후 도제로 들어가게 한 거요. 게다가 그들의 그런 행태는 계속되고 있소." 싸익스 씨는 자신이 당한 손해를생각하고 분노가 치밀어 말했다. "그들의 그런 행태가 계속되고 있단 말이오. 그들이 자금만 충분하면 (다행히 하늘의 섭리로 충분하지 않지만) 일이 년 안에 우리 업계에는 일할 애가 여섯명도 남지 않을 거요." - P276
"난 이불을 걷어찼어." 자일스 씨는 식탁보를 휙 내던지고 요리사와 하녀를 매우 심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곤 침대에서 살며시 나와 벗어 놓은......." "숙녀들 앞이오, 자일스 씨." 땜장이가 중얼거렸다. "......신발을 신은 거요, 선생." 자일스 씨는 땜장이를 돌아보고 신발이라는 단어를 아주 크게 강조하면서 말했다. "그러곤 언제나 식기 바구니와 함께 내 방으로 들고 올라가는 장전된 권총을 집어 든 다음, 살금살금 걸어 브리틀스의 방으로 갔지. 그리고 그를 깨운 뒤에 이렇게 말했지. ‘브리틀스, 놀라지 말게!"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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