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연대자로서 내 욕망을 직시하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일’에 이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 거다. ‘할 수 있는 일’의범위를 확장하기, 내 자신을 드러내고 그만큼 커진 사회적 책임을 수용하기, 일을 크게 만들고 그 크기만큼 내 그릇도 넓혀가기, 내 역량이 미치지 못할 경우 주변에 조언을 구하고 조력을 받기. 그렇게 내 자신의 가능성에 제약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기획했다.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졌고, 결국 다양한 간접 연대를 해내고 있다. 없으면 만들고, 부족하면 채우고, 넘치면 덜어내면 된다. - P316

성폭력 피해로 생긴 부수적인 상실로는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진 것,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기 힘들어진 것 등이있다.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타인을 신뢰하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책임을 분담하는 일을 꺼리게 되었다. 또한 감각과 감정을 인지하고조절하는 일 모두 엉망이 되었고, 문화와 예술 등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일상에 부재하거나 결핍되면서 삶이 상당히 단순해졌다. 모난 인간, 재미없는 일상, 사라지지 않는 상흔, 홀로 멈춘 것 같은 기분. 피해 이후 일상이 무너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내 주변에는 누가 있었는지, 무엇에 흥미를 갖고 재미를 느꼈는지, 도통 모르는 것 일색이었다. - P334

전국 세미나는 2018년을 끝으로 그만두려고 했다. 시간과 비용등의 문제보다는 건강이 매우 나빠졌기 때문이다. 2018년 말에는 서울서부지법에서 재판 모니터링을 끝내고 이동하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독감도 겹치면서 휴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러나 연이어 터지는 사건들 때문에 결국 2019년에도 휴식을 포기했고, 전국 세미나도이어갔다. 6월에는 서울에서 12시간짜리 <마녀의 필리버스터〉를, 8월에 <마녀의 매뉴얼>을, 12월에는 <마녀의 사법 시스템 가이드>를 기획했다. 전국 세미나는 다시 2019년을 마지막으로 그만두려고 했기에,
특히 마지막 세미나 <마녀의 사법시스템 가이드>는 한 달 동안 12차례 열면서 그동안 방문하지 못했던 강릉 등도 포함해 전국을 돌았다.
2020년은 정말 쉬려고 했다.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더 이상 버티듣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개인 활동의 한계를 절감했기에 한 해쉬면서 수사·재판 절차별 매뉴얼과 체크리스트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2019년 말, 현직 판사들의 인터뷰에 응하면서 2020년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나는 시대 흐름을 읽어내는 것도 연대자의 자질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2019년 현직 판사들을 만나면서 이 기회를 살려보기로 결심했다. 내부에서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을 어렵게 만난 이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마녀‘라는 계정을 없애며 대대적으로작별인사를 해놓고, 2020년 다시 ‘연대자 D‘라는 계정을 만들어 연대활동을 지속했다. 계획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게 내 연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 P344

하지만 아무리 공개재판이고, 자신과 관련된 사건이더라도 피해자가 방청을 위해 평일에 매번 법원으로 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증인지원 절차가 따로 없는 공판 단계를 단순 방청하는 경우, 피고인과의 대면을 감수해야 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방청석에 앉아 재판을 지켜보기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대개 피해자는증인으로 출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법원에 찾아가지 않고, 피해자 변호사도 사선으로 선임된 것이 아닌 이상 재판에 출석하는 경우가 드물다. 비어 있는 방청석을 앞에 두고 ‘판사-검사-피고인 측‘이 재판을 진행하는 구도에서 피해자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게 연대자의 재판 방청이다. 2010년의 내게 현재의 내가 연대자로 있었다면 방청은 내가 할 테니 좀 쉬면서 회복하라고 했을 것이다. 막연한 불안과 공포 속에 혼자 내던져졌던 나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연대를 이어나가는 이유이다. - P349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선고 전 재판 과정에서 판사가 본인의 예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침묵을 택하는 것, 담당 사건에 대해 설득력 있는 판결로 그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 판결문 외의 설명이나 부연은 무의미하다는 것, 판사는 외부 세상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 등 다양한 해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이 법에 대한 해석들은 대개 법관의 독립과 재량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이를 시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려 한다.
나는 방청연대/재판 모니터링 교육을 할 때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라는 말을 꼭 언급하는데, 사법 시스템에 대한 감시·기록· 목격을 위해서는 판결문을 독해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 과정에 판결문을 검색하고 열람복사하는 방법,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판결서 열람제한을 신청하는 방법, 일반인의 입장에서 판결문을 분석하는 방법 등을 넣고 있다. 비전문가인일반인들이 분석하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는 말도 듣지만, 최소한 형 - P356

량을 정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반영된 각종 양형이유에 대해 검토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일반인들의 상식 수준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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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판형이 엄청 커서 깜짝 놀랐다(비교 사진 참조).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그래픽 노블. 저마다의 삶과 죽음에 대해, 각자 역사가 다름에 대해 말한다. 표범이 말했다. 그렇지만 표범 소피아의 말이 절대적인가? 각자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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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30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은 그림책 크기에 책의 내용 중심은 표범일 것 같은데...그림이 작네요 ^^

햇살과함께 2022-10-01 20:08   좋아요 1 | URL
그래픽 노블 사이즈라 생각했는데, 그림책 중 제일 큰 사이즈 수준이에요! 표범은 6개의 이야기 중 젤 마지막 이야기에 등장! 화룡점정! 안쪽 그림은 표지보다 큽니다

독서괭 2022-10-01 07: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책이 참 예뻐요! 찜합니다~

햇살과함께 2022-10-01 20:34   좋아요 1 | URL
그림이 독특해요~ 태초의 느낌? 원시적인 열대림? 사막? 이런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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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을 보고 벡델이 운동을 좋아하여 여러 운동을 즐기는 이야기인가 보다 했다. 전작들과 달리 깨끗한 흰색 표지에 화사한 색감으로.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운동이든, 그림 작업이든, 명상이든 녹초가 될 때까지 극한으로 스스로를 밀어붙이며 내면을 찾아가는 벡델의 여정을 10년 단위의 연대기 순으로 보여주는 그래픽 노블이다.


벡델의 내면 찾기 여정은 <펀 홈>에서부터 시작된다. 첫 책 <펀 홈>이 동성애자였으나 평생 커밍아웃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면, 두번째 책 <당신 엄마 맞아?>는 동성애자인 남편과 평생 살아온 엄마에 대한, 벡델 자신의 심리상담과 어우러진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번째 책인 <초인적 힘의 비밀>은 벡델 자신의 내면과 육체에 오롯이 중심을 둔 이야기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초인적 힘의 비밀>이 그래픽 노블의 측면에서 두 권의 전작과 다른 점은, 전작은 흑백 바탕에 단색의 채색(1편은 탁한 푸른 빛, 2년은 탁한 자주 빛)을 음영의 차이만으로 표현하여 책의 색감 자체가 어둠 속에 웅크린 심리를 묘사한 것 같다면, 이 책은 알록달록한 화려한 채색으로 표현하여 내용의 무거움을 상쇄하고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어준다. 내지를 보면 덱벨과 동성 결혼한 배우자인 화가 홀리 래 테일러가 채색 협업을 했다고 언급되어 있다(이 책 마지막에 등장하는 연인이다). 벡델이 내면을 찾아가는 작업을 통해 밝은 빛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픽 노블이 줄 수 있는 글과 그림, 색채의 조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책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작가들이 언급되어 있다. <펀 홈>에서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작가들(제임스 조이스, 알베르 까뮈, 스콧 피츠제럴드, 마르셀 푸르스트, 오스카 와일드 등)과 그들의 책이, <당신 엄마 맞아?>에서는 벡델이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읽는 정신분석 관련 책들과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즈, 에이드리언 리치, 베티 프리단 등 여성작가 책이 연결되어 있다. <초인적 힘의 비밀>에는 윌리엄 워즈워스와 여동생 도로시 월즈워스와 새무얼 테일러 콜리지의 관계(얼마 전에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집 안의 천사 죽이기>에도 언급), 랄프 왈도 에머슨과 마거릿 풀러(수전 손택의 희곡,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에 나온 반가운 이름)의 관계, 잭 케루악과 윌리엄 버로스 등의 우정인 듯, 우정을 초월한 듯한 관계들이 언급되어 있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벡델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데, 관련 책을 좀 더 읽어봐야 하겠다.


벡델은 운동으로 마치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 같다. 무엇이 이렇게 벡델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벡델은 내면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육체를 지치게 하는 것일까.


벡델은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라고 묻는 연인에게 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라고 망설이며 말한다.


그러나, 점차 깨닫는다. ‘인생을 변화시킨다는 것. 변화는 앞으로 나가간다는 뜻이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본질적으로 한 곳을 향하지. 무덤.’이라고


'초월할 것은 초월할 것이 있다는 생각 뿐이야.'


'마침내 이해했어'


'무덤으로 향한다는 사실!'



벡델 3부작은 순서대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1권부터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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