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와 제목을 보고 벡델이 운동을 좋아하여 여러 운동을 즐기는 이야기인가 보다 했다. 전작들과
달리 깨끗한 흰색 표지에 화사한 색감으로.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운동이든, 그림 작업이든, 명상이든
녹초가 될 때까지 극한으로 스스로를 밀어붙이며 내면을 찾아가는 벡델의 여정을 10년 단위의 연대기 순으로
보여주는 그래픽 노블이다.
벡델의 내면 찾기 여정은 <펀 홈>에서부터
시작된다. 첫 책 <펀 홈>이 동성애자였으나 평생 커밍아웃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면, 두번째 책 <당신 엄마 맞아?>는 동성애자인 남편과 평생 살아온 엄마에 대한, 벡델 자신의
심리상담과 어우러진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번째 책인 <초인적
힘의 비밀>은 벡델 자신의 내면과 육체에 오롯이 중심을 둔 이야기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초인적 힘의 비밀>이 그래픽 노블의 측면에서 두 권의 전작과 다른 점은, 전작은 흑백 바탕에 단색의 채색(1편은 탁한 푸른 빛, 2년은 탁한 자주 빛)을 음영의 차이만으로 표현하여 책의 색감 자체가 어둠 속에 웅크린 심리를 묘사한 것 같다면, 이 책은 알록달록한 화려한 채색으로 표현하여 내용의 무거움을 상쇄하고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어준다. 내지를 보면 덱벨과 동성 결혼한 배우자인 화가 홀리 래 테일러가 채색 협업을 했다고 언급되어 있다(이 책 마지막에 등장하는 연인이다). 벡델이 내면을 찾아가는 작업을
통해 밝은 빛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픽 노블이 줄 수 있는 글과 그림, 색채의 조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책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작가들이 언급되어 있다. <펀 홈>에서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작가들(제임스 조이스, 알베르 까뮈, 스콧 피츠제럴드, 마르셀
푸르스트, 오스카 와일드 등)과 그들의 책이, <당신 엄마 맞아?>에서는 벡델이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읽는 정신분석 관련 책들과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즈, 에이드리언
리치, 베티 프리단 등 여성작가 책이 연결되어 있다. <초인적
힘의 비밀>에는 윌리엄 워즈워스와 여동생 도로시 월즈워스와 새무얼 테일러 콜리지의 관계(얼마 전에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집 안의 천사 죽이기>에도 언급), 랄프 왈도 에머슨과 마거릿 풀러(수전 손택의 희곡,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에 나온 반가운 이름)의 관계, 잭 케루악과 윌리엄 버로스 등의 우정인
듯, 우정을 초월한 듯한 관계들이 언급되어 있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벡델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데, 관련 책을 좀 더 읽어봐야
하겠다.
벡델은 운동으로 마치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 같다. 무엇이 이렇게 벡델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벡델은 내면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육체를 지치게 하는 것일까.
벡델은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라고 묻는 연인에게 “어… 나…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라고
망설이며 말한다.
그러나, 점차 깨닫는다. ‘인생을
변화시킨다는 것. 변화는 앞으로 나가간다는 뜻이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본질적으로 한 곳을 향하지. 무덤.’이라고
'초월할 것은 초월할 것이 있다는 생각 뿐이야.'
'마침내 이해했어'
'무덤으로 향한다는 사실!'
벡델 3부작은 순서대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1권부터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