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태 작가의 노동 에세이 3부작 중 3부. 회사 그만두면 뭐하며 살지? 청소일이나 할까. 식당일이나 할까. 하고 쉽게 말하지만 그 노동에는 모멸감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콜센터라는, 까대기라는 구조적으로 폭력적인 직업에서 나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전작처럼 처절함의 와중에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 글이다.
‘말하는 힘의 관성‘에 대해 생각했다. 한번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말하기를 시도한 사람들은 계속 말하게 된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자연히 안다. 부당한 일을 목격해 왔고, 차별과 혐오를 발견하는 시선이 생겼으며, 아주 조금씩이지만 세상이 바뀌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일이 그저 관성이라고 생각하니 어깨가 조금 가벼워지는 것같았다. 가볍게 더 멀리 미끄러질 수 있도록, 다른 건 제쳐 두고 다음엔 지민과 동숲 통신을 하기로 약속했다. - P29
변재원 작가의 책 <장애시민 불복종》에서 작가와 함께 술을 마시던 장애인 활동가는 "데모를 통해 중증장애인이 세상을 만나게 된다."라고 데모의 의의를 설명한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애를 지닌 몸 그 자체가 장애인 권리 보장의 유일한 근거가 되며, 그로 인해 "장애인은 자신의 몸을 더 아끼는 동시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라는 책의 설명이 떠올랐다.휠체어를 타면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다는, 넌 평생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성희가, 세상의 온갖 부조리한 일을 목격하던 성희가 그 진창 속에서 자기 몸으로부터 나오는 힘을 찾아냈다는 것이 좋았다. - P76
지우 갔다 오시니까 어땠어요?서윤 이제 무기울게 없다. 이거 뭐 이제 무서울 거 없다.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하고. 하기 싫은 거 있으면 안 하고, 못하는 거 있으면 두드려 보고, 안 되면 말고. 딱 진짜 정신 무장이 된 것 같더라고요.인터뷰어는 듣는 이로서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면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난 거리 두기에 늘 실패하고 만다. "또 갈 수 있겠는데?"라던 성희 언니의 말을 들었을때처럼, "이제 무서울 게 없다."라는 서윤 언니의 말에 거리를가늠하던 마음이 성큼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장애가 있는 여자들이 "직접 해 보니 할 수 있었다."라고말하는 게 왜 이리 좋을까. 자신의 성공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에게 가능성을 전달하는 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은아닐까. 언니들이 간 곳은 가 보지 않아도 가 본 곳 같고, 해낸일은 해내지 않아도 내 성취 같다. 먼저 해낸 언니들이 전하는 "할 수 있었다."라는 말은 나를 투과해 저 멀리 퍼져서, 비슷한 몸을 가진 이들을 연결하는 망이 된다. 그래서 난 하염없이 이 말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 P106
한 어머니는 내게 와서 "A가 혼자 외출한다는 건 상상이 안 돼요......."라며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나 역시 스무 살에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탔다. 별거 아닌 그 행동에도 터질 듯한심장을 진정시키면서, 홀로 무언가 해 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제야 깨달았다. 한 바퀴 더 굴러갈수록 세상이 넓어졌다. 나는 엄마 없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에서 동네를 누비고, 가족과 다른 공간에서 살고, 지구 반대편까지 갈 수 있는사람이 되었다.이제는 명확히 안다. 얼마만큼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알아야 내 세계가 커진다는 걸. 그러려면 길거리에서 넘어져도보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동네를 돌아다녀도 봐야 한다.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일탈도 해 봐야 한다. 아이를 걱정하는부모님의 고민을 들으면 나의 독립을 도왔던 문장 하나를 전해 드린다."애들 내보내세요. 안 죽어요. 다쳐도 병원 가면 돼요. 혼자 내보내세요."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총장의 말이다(그 역시 뇌성마비다). - P155
이 말이 우리 몸에서 살아 숨 쉬는유산과도 같이 느껴진다. 이 문장은 성희 언니에게서 "또 갈 수있겠는데?"라는 말로, 서윤 언니에게서 "이제 무서울 게 없다." 라는 말로 조금씩 바뀌어 흐른다. 그렇게 세상으로 한 바퀴 나간 언니들은, 그 순간을 혼자만의 성취로 간직하지 않고 자꾸만 다른 이들을 불러 모은다. 이 기분을 나만 느낄 수 없다고, 우리는 함께해야 한다고 말하며 운동을 하고, 모임을 만들고, 민원을 넣고, 사업을 한다.나도 그 움직임에 동참하고 싶다. 그게 내가 이 글을 쓰는이유다. 우리와 공명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이 글을 읽고있다면, 두려워서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얼른 이 보물같은 문장 "나, 갈 수 있구나."를 자신의 언어로 직접 만나라고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꾹꾹 힘을 눌러 담아 글을 쓴다. - P207
언니의 말에 괜히 기운이 났다. 온몸으로 내게 "계속하면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인권 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이 호소하는 감정 중 하나는 ‘소진감‘이다.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는 알겠는데, 현실에서끌어내기는 어렵고,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기에 자꾸만 실망하게 된다. 나 역시 종종 지쳤고 실망했다. 사실 지금도 그 상태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말하는 게 두려워졌고, 이전 같으면 분노하고 행동할 일에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나를발견한다. 그렇게 무던해진 나를 보고 또 실망하곤 했다.효선 언니는 흐릿해진 나를 보며 계속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계속하라고. 조금씩 쌓다 보면 분명 변하게 되어 있다고. 그러니 실망하지 말라고. 나를 실망하게 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먼저 길을 떠난 언니가, 수많은 변화를 목도했을 언니가 그렇게 말한다. 시야가 조금은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 P255
사람들은 흔히 몸으로 하는 일과 머리로 하는 일을 구분하곤 한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까대기는 몸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는거다. 몸으로 하는 일은 이삿짐을 나르거나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거다. 까대기는 남은 수명을 팔아서 돈을 버는 일이다. 자신의 육체 안에 - P140
품고 있던 생명력을 레몬즙 짜듯이 쥐어짜내서 그 대가로 먹고사는 일이다. 그렇게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 P141
나는 까대기를 하면서 노예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식으로서가아니라 신체에 와 닿는 감각으로서 말이다. 노예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킬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근무 중에 구타나 폭언은 없었다. 관리자들은 적당히 냉정했고 적당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폭탄차를끝내기 위해선 나 자신을 부정해야 했다. 누구나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버틸 수 있는 물리적 한계라는 게 있다. 하지만 이곳에선 매일같이 견고하지 못한 그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을 요구받는다. 일을 마치려면자신을 보호하려는 가장 기초적인 요구를 무시해야 한다. 우리가 들어야 할 짐의 무게, 양, 작업 속도 어디에도 인간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까대기는 직설적이다. 보통이라면 결혼하고 첫애 태어날 때쯤 간신히 고백할 만한 비밀을 소개팅 자리에서 질러버린다. 다른 평범한 일들이 에둘러 암시하고 마는 것, 육아휴가니, 산업안전보호법이니 하는 것들로 어설프게 감춘 것을 까대기는 노골적으로 까발린다. 너는 도구다. 회사가 필요한 결과를 만드는 데 필요한 망치나 드라이버 같은 거다. 그것들보다 다루기 어렵고 망가지지 않게 조심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본질은 도구다. 이 일이 우리의 존재에 일깨우는 감각이 그것이다. - P160
"나 처음 일한 날이었는데 새벽 내내 땀 뻘뻘 흘리면서 일하다가 다끝나고 밖에 나왔는데... 어떤 건지 알죠? 진짜 그지꼴로 간신히 서 있을 힘만 남아서... 근데 나가니까 햇빛이 막 쏟아지는데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게, 와아아 세상이 어떻게 그렇게 달라 보이냐. 오기 전엔나도 걱정 많이 했어요. 20대 때 노가다 좀 뛰었지만 그거야 30년 전 일이고 젊은 애들도 골골댄다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처음엔 좀 버벅댔지만 끝날 때쯤 되니까 할 수 있겠더라고. 나는 거뜬히 하는데 등치 막 이따만한 노랭이들이 힘들다면서 집에 가는 거 보니까 기분도 좋고 흐흐.그러면서 밖에 나왔는데... 노오오오란 해가 떠 있는 걸 딱 보고 있는데…. 그걸 뭐라고 할까, 아… 뭐라고 하면 좋을까…. 나 살 수 있겠다.... 충분히 살 수 있겠다.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게 참 희한해. 밤새술퍼마시다가 해 뜨는 걸 볼 때는 세상에 그렇게 비참한 게 없는데. 내가 너무 별 볼 일 없고 쓰레기 같고 이렇게 또 하루 사느니 그냥 콱 뒤져버리는 게 낫겠다 싶은데, 일 끝나고 해 뜨는 걸 보면 나도 뭔지 모르겠는데, 보고 있으면 그냥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 - P177
휴가도 3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1년 내내 집에만 있자 연금보다 먼저 우울증이 찾아왔다("퇴직하고 집에만 있는 애들은 다 어디가 아파").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이 없는 것만큼 그를 참담하게 만드는 것이 없었다. 그에게 은퇴는 꿈꿔왔던 ‘인생 2막‘이아니라 일종의 임사체험이었다. "사람은 두 번씩 죽는다.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죽음이 온다." - P272
"아저씨도 쟤네 쭉 보셨죠? 우리랑 똑같이 걷지 않았어요? 달리지도않고 서둘지도 않고. 근데 언제 쟤네들이 저렇게 앞에 간 거예요?"성재 아저씨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왜 우리가 너 계단 뛰어 올라갈 때 대단하다는지 알겠지? 젊은게... 젊은 게 초능력이야. 우리가 아무리 운동하고 영양제 챙겨 먹어도몸 쓰는 건 젊은 사람 못 따라가 더 힘이 세고 오래 버티고 그런 게 아니야. 그냥 차원이 달라. 너가 보기엔 쟤네들이 그냥 걸음이 빨라 보이지? 내 눈엔 쟤네들이 슈퍼맨으로 보여."60대 노인들이 40대인 내가 계단 오르는 걸 올려다볼 때의 막막함과인간인 내가 로봇이 유리를 닦고 물건을 나르는 것을 볼 때의 막막함 중어느 쪽이 더 암담할까? 어느 쪽일까? 우리가 잡담을 나누는 사이 교복입은 아이들은 점점 더 멀어졌다. 처음엔 왠지 오기가 나서 발걸음을 재촉해보기도 했지만 내가 그들을 따라잡기란 광견병에 걸린 개가 내 아름다운 대둔근을 노리고 달려오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것 같았다. 중년의육체로 10대의 육체를 따라잡기가 이 정도로 벅찬 일이라면, 쉽게 다치고 부서지는 육체로 늙지도 지치지도 않는 육체를 쫓아가는 것은 어떤것일까? 아무리 애를 쓴다 한들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란도저히 불가능해 보였기에 빠르게 저무는 하루가 내게는 조금 더 어둡게느껴졌다. - P351
그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똑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책은 그에게 일회용품이었다. 결말을 알면 끝이었고 두 번다시 꺼내 볼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책에도 줄거리 이상의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훌륭한 책은 도서관이 안겨주는 신비를 지면 위에서 되풀이해 보였다. 분명 한줄한줄 꼼꼼히 읽었는데도 다시 읽어보면 그전에 발견하지 못한 문장들이 보였다. 마치 그가 책장을 덮은뒤에 활자들이 자리를 바꿔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일 밤 그는 활자들 사이에서 기쁜 마음으로 길을 잃었다. 그는 자 - P360
신이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다. 고래의 몸속에 육지 동물의 신체가 남아 있듯이 이미 스스로를 절반쯤은 공무원으로 여기던 한승태의 내부에도 책과 글에 대한 열정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 P361
이것이 단순히 감상적인 시도만은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콜센터였다. 콜센터가 내 작가 경력에 남긴 최고의 성취는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묘비 문구를 결정짓게 도와준 것이다. 이름 옆에 딱 이렇게만 적을 생각이다."콜센터가 제일 힘들었다."뒤에서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매일매일 헤드셋을 통해 쏟아지는 모욕과 무시를 참아내느니 차라리 온종일 돼지 똥을 치우는 일이 더 편할 것같았다. 100여 년 전, 콜센터 상담사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사람들이있었다. 바로 전화교환수다. - P11
이 일이 유난히 힘들고 긴장되는 이유 하나는 나라는 존재가 불특정다수에게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데 있다. 누구나 우리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칠 수 있었고 실제로 곧잘 그렇게 했다. 전화 상담사라는 일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했다. 이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나는 고객의 말에 난타당해도 버텨낼 수 있는 심리적 맷집을 기를 수 있느냐에 달렸다.맷집이란 게 그렇듯이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저 두들겨 맞는 것밖에. 다만 권투 경기와 달리 우리는 상대가 방심한 사이 녹다운을 노리는게 아니었다. 맞는 것 자체가 목표였다. 강철 같다고 믿었던 내 정신 상태는 실제로 부딪혀보니 단단하기가 크로아상 수준이었다. 여기서 오래 일하면 내 월급의 상당 부분이 정신과 의사들이 제주도 별장 구입하는 데 들어가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 P50
그다음부터는 내가 스스로를 감시한다. 화장실에 가야겠다 생각이 들면 한승태 이름 옆에 표시된 ‘이석‘의 숫자가 올라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면 팀장이 눈치를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자리에 다시 앉는다. 괴팍한 고객에게 한참을 시달리고 잠깐 쉬고 와야겠다 하다가도 내가 받은 전화 수가 60이 넘었나 부족한가에 생각이미치면 바로 다음 전화를 받는다. 그렇게 계속해서 나 자신을 몰아붙인다. 만신창이가 돼서 튕겨져 나가버리거나 운이 좋게 관리자로 빠져나갈 때까지. "남부의 노예 감독 밑에서 일하는 것은 힘들지만 북부의 노예 감독 밑에서 일하는 것은 더욱더 힘들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노예 감독일 때다." - P60
매일 밤 그만둘 핑계를 궁리하며 밤을 지새웠다. 처음으로 양돈장에서 일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농장에서 도망칠 궁리만 했었다. 내게는 양돈장과 콜센터를 비교하는 것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전자가 항문으로 똥을 싸는 동물의 뒤처리를 하는 곳이라면 후자는 입으로똥 싸는 동물들의 뒤처리를 하는 곳이라 할 만했다. 그리고 두 종류의동물들과 모두 일해본 관점에서 말하건대 양돈장이 단연코 수월하다. - P62
"그냥 이 상품 화면에다 조그맣게 적어두면 안 돼요?"나도 얘기했고 고객도 얘기했고 관리자들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어째선지 절대로 그렇게 안 한다. 이런 측면에서 고객센터의존재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상담사는 땜장이다. 융통성 없는 업무 프 - P89
로세스와 엉성한 홈페이지 시스템의 틈새를 상담사의 사과로 덕지덕지발라 메꾼다. 그래서 대대적인 수리 없이 그냥저냥 굴러가게 만든다. 매운 닭발을 포식하면 그다음 날 항문이 대가를 치르듯이 시스템상의 수많은 허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는 최종적으로 콜센터에서 치른다. 그렇다, 나는 전화 상담사를 자본주의 사회의 항문 돌기에 비유한다! 맛을 보고 즐거워하는 건 저 위쪽의 기관이고 더럽고 치사한 꼴을 봐야하는 건 우리였다. 만약 콜센터업계에 정의란 게 이루어진다면 고객센터 대신 소비자들은 회사 경영진과 대주주, 본사 홈페이지 담당자들의연락처가 담긴 비상연락망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 P90
업종을 막론하고 콜센터 상담사들이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은 단연코 "죄송합니다, 고객님‘이다. 다음으로 많이 하는 말은 아마도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일 거다. 상담사와 고객이 맺는 관계의 진실이, 결코 자신의 문제일 수 없는 일을 자기 일처럼 대하길 요구받는 사람의 딜레마가, 밥벌이의 수단으로 친절을 사용해야 하는 일자리의 모든 것이 이 한마디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 상담사의 프로페셔널함은 고객을 대할 때관심과 정성을 쏟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대의 요구와 필요에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데 있다. - P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