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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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없는(?) 스포일링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애정하는 겨울서점의 작년 연말 실시간 라이브 방송 이었던가. 가물가물한데. 겨울님이 12월말에 이 책을 읽고, 2021년 올해의 책이 바뀌었다는(또는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더랬다. 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렇지만 응? 물고기? 하고 그냥 지나갔다. 그리고 2월인가 다시 해당 책에 대한 추천 영상. 그러나 책을 추천하는데 책에 대한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책 추천 영상으로. 그냥 믿고 끝까지읽어보라는(이때라도 읽었어야 한다). 1개월 뒤에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상을 다시 올리겠다는 얘기와 함께.


그리고 북플의 라로님, 다락방님, 잠자냥님, scott님 등등의 추천, 리뷰. 이러니 읽지 않을 수 없으나 그때 이미 나는 스포일드된 상태. 책 내용도, 리뷰도 보지 않았으나, 이러 저러한 믿는 분들이 이렇게 강추한다는 사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절대 미리 책 정보를 보지 말라는 충고, 중반을 넘어가야 이 책의 진가를 알게 된다는 강조, 반전이 있다는 언급 등등으로 책 내용은 1도 모르지만, - 아니, 어떤 남자 물고기 학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알았지만 - 이미 이러한 상황만으로 상당히스포일드된 상태였다.


그러므로 나의 기대감이 천정부지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그러므로 먼저 읽으신 분들보다 감동이 못미칠 것은 읽기 전부터, 아니 책을 사기 전부터도 뻔했고,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읽거나 아예 읽지 않거나.


그러므로 반전이나 감동에 대해서는 스포일드되어 충분히 전하지 못하겠고(민들레는 지하철에서 읽으면 안 된다, 과알못에게 마지막 반전은 상당한 충격이다), 확실한 것은 룰루 밀러는 정말 정말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것이다. 에세이를 이렇게 쓰는 책을 이전에 읽어본 적이 없다. 마치 잘 짜여진 한편의 추리소설, 스릴러소설을 읽은 것 같다. 에세이에 반전이라니. 작가가 굉장히 섬세하게 책의 전체 구조를 짜고 앞에서 밑밥을 깔고 뒤에서 하나씩 수거해 나가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한 것이다. 사랑의 상실에서 출발해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집착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의 그 목적성, 동기부여의 측면이 나에게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이런 구조의 허점인지, 작가의 의도적 설정인지 잘 모르겠다.


룰루 밀러라는 멋진 작가를 알게 된 것으로도 큰 수확이다. 다음 책도 기다려진다. 곱슬머리 남자에서 현재의 배우자로 이어지는 룰루 밀러의 다음 이야기도 더 듣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다윈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에 종의 기원을 추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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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4-11 19: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앗 제 이름이!!!^^;;
저도요!! 저도 이 책 읽고 다윈의 종의 기원을 꼭 읽어야지 했어요. 어쩄든 저 책 추천 잘 안 하는데 이 책은 그냥 하게 되더라구요.^^;; 리뷰를 읽어 내려오면서 이 책에 대한 분석(?)을 잘 해주셔서 자연스럽게 다시 기억이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04-12 09:2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라로님 책 취향이 저랑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라로님 읽는 책들에 계속 관심 중입니다 ㅎㅎ

mini74 2022-04-12 15: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북플님들 추천으로 읽게됐고 움 역시!하며 읽었어요 *^**

고양이라디오 2022-04-12 18:19   좋아요 2 | URL
저도요^^!

햇살과함께 2022-04-12 21:58   좋아요 2 | URL
왜 개미지옥에서 맛있는 먹이 나눠먹는 개미가 생각나죠? ㅎㅎ
 

다윈은 《종의 기원》의 거의 모든 장에서 "변이"의 힘을 칭송한다. 그는 다양성이 있는 유전자 풀이 얼마나 건강하고 강력한지, 서로 다른 유형 개체 간의 이종교배가 그 자손에게 얼마나 큰 활력과 번식력"을 만들어주는지 심지어 완벽하게 자기 복제할 수 있는 벌레들과 식물들까지도 새로운 변이형을 만들어낼 수 있게끔 유성생식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사실들은 정말로 이상하구나!" 하고 경탄을 금치못했다. "이따금이라도 서로 다른 개체와 교배하는 것이 유리하거나 필수 불가결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사실은 아주 간단히 설명된다! - P188

인간의 지력으로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생태의 복잡성에 대한 이러한 조심스러움과 겸손함, 공경하는 마음은 사실 대단히 오래된 것이다. 이는 때로 "민들레 원칙"이라고도 불리는 철학적 개념이다. 민들레는 어떤 상황에서는 추려내야 할 잡초로 여겨지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경작해야 하는 가치 있는 약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 P189

데이비드의 정서적 해부도를 쫙 펼쳐놓고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원흉은 그 스스로 상당히 자랑스러워했던 두툼한 "낙천성의 방패"가 아닌가 싶다. - P202

그것은 지독히도 방향 감각을 앗아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혼돈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
- 내가 어려서부터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던 바로 그 세계관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개미들과 별들과 함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느낌.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내부에서 바라본, 차마 마주 볼 수 없을 만큼눈부시고 가차 없고 뚜렷한 진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진실을 흘낏 엿본 바로 그 느낌일 것이다. - P207

계속 차를 몰고 가다가 하늘이 어둠으로 통통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그들이 또 다른 증거의 가닥들, 그들의 아파트 벽 너머 훨씬 멀리까지 뻗어 있는 가닥들도 함께 보여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P225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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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는 자연에서 피난처를 찾는 그 오래된 기술로 자신을 달랬을지도 모른다. - P40

실제로 아가시가 쓴 글을 보면 그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의 작업은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 P43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혼돈이라는 막무가내인 힘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자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라고 말이다.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절대 잊지 마라." 데크 아래 솔잎들이 쌓인 땅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말했다.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하지는 않아." 당신 머릿속에 존재하는 위계의 지도를 들여다보느라 아버지는 여기서 잠시 말을 멈췄다. - P55

아버지가 정확히 저 단어들을 사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거의 20년 뒤 천문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우리는 점 위의 점 위의 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을 때 나는 아버지의 단언과 똑같은 말을 들었다고 느꼈다. - P56

나는 평생 광대 신발을 신은 허무주의자 같은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려 노력해왔다. 우리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고, 그런 무의미함 때문에 오히려 행복을 향해 뒤뚱뒤뚱 나아가려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항상 그런 일을 잘했던 건 아니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는 내게 종종 아버지와는 다른 효과를 냈다. - P58

어쩌면 그는 무언가 핵심적인 비결을 찾아냈을지도 몰랐다.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음을 갖는 비결 말이다. - P66

다윈은 이렇게 썼다. "이종교배한 종들은 무조건 생식능력이 없다고도, 불임성은 창조주가 부여한 특별한 자질이자 창조의 신호라고도 주장할 수 없다." 이윽고 다윈은 종이, 그리고 사실상 분류학자들이 본질적으로 불변의 것이라 믿었던 그 모든 복잡한 분류 단계(속, 과, 목, 강 등)가 인간의 발명품일 뿐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끊임없이 진행되는 진화의 흐름 주위에 인간이 우리 편리하자고 유용하지만 자의적인 선들을 그었다는 것이다. 그는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이라고 썼다. 다윈에 따르면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 없다. - P67

데이비드는 이렇게 썼다. "나는 아이에게 꼬리를 붙들려 카펫 위로 끌려가는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진화론자들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 P68

아가시는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그 시점에 이는 과학적으로 바보라는 표시였다), 자연에 위계가 있다는 믿음을 동력으로 과학사에서 가장 큰 혐오를 담고 있고 가장 파괴적인 오류 중 하나를 주창했다. - P82

나라면 이 지점에서 포기했을 것이다. 신성이 훼손되고, 꿈이 박살 났으며, 수십 년 동안 끈기 있게 해온 일이 헛수고로 돌아갔다면, 나라면 지하실로 내려가 패배를 인정했을 것이다. - P113

"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학문이다. 아무런 노동이나 수고 없이도 습득할 수 있으며, 정신에 우울함이 스며들지 못하게 해주니 말이다." - P125

그는 갈수록 더욱더 내 아버지와 비슷한 소리를 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매번 숨 쉴 때마다 자신의 무의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거기서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 P125

마침내 나는 가장 유의미한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손에 넣었다. 그것은 《절망의 철학》이라는 제목의 작고 검은 책이다. 그 책에서 데이비드는 과학적 세계관이 골치 아픈 점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그 세계관이 보여주는 것은 허망함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우리가 붙인 불은 숯을 남기고 죽는다. 우리가 지은 성들은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 강은 바닥을 드러내고 사막의 모래만 남긴다. (…) 어느 쪽으로 눈을 돌리든 생명의 과정을 묘사하려면 기운빠지게 하는 은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 P126

그리하여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은 몇 차례에 걸쳐 수정되었다. 몇 가지는 건강하지 않은 특징들 항목에서 건강한 특징들 항목으로 옮겨졌다. ‘기만‘이라는 용어는 ‘긍정적 착각‘이라는 중립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말에 이르자 약간의 자기기만은 강한 정신력에 더 유익하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 P139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 P141

로빈스와 비어는 그들이 스스로 실망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즉 "단기적으로 혜택을 얻는 대신 장기적으로 비용을 치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서 기만은 나중에라도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장밋빛 렌즈의 힘에는 한계가 수반된다. 그리고 그 힘이 떨어지면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정말로 따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 P148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은 이렇게 썼다. "쉽게 말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 거창한 자기상을 확인받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비판당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며 자기를 비판한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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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이 그 사람을 집어삼킬 것이다. - P15

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 P18

것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죄악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 P19

"작은 것들은 아름답지는 않아도, 단 한 종류의 큰 꽃 백 송이보다 내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미적 관심과 구별되는 과학적 관심을 보여주는 특별한 증거는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이다." - P28

‘루퍼스가 죽은 이후 데이비드의 일기장은 색채들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들꽃, 고사리, 아이비, 나무딸기 등 이 세계에서 뜯어올 수 있는 자연의 모든 파편을 꼼꼼하게 스케치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림의 기교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그 그림들은 문질러 번진 연필 얼룩, 잉크 자국, 지우개 자국, 지나치게 열심히 그리려다흘린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그 미숙함 속에는 그의 집착과 필사적인 마음, 자신도 모르는 것들의 형상을 붙잡아두기 위해 근육의 온 힘을 동원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 P30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뮌스터버거가 지적하듯, 유일한 위험은 여느 강박과 마찬가지로 수집 습관이 "신나는 일"에서 "파멸적인 일"로 바뀌는 어떤 지점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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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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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꿈의 지도에서 출발하는, 칼 세이건이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 지구 생명과 우주를 존중하는 마음, 무지와 겸손을 바탕에 둔 과학적 태도, 새로운 발견에 기여한 여러 과학자들의 사연이 무척 흥미롭다. 내년에는 두 코스모스를 재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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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4-01 2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햇살님, 다큐 추천 합니다

앤드루얀 멋지게 늙어 가는 모습이 알흠 ^ㅅ^

햇살과함께 2022-04-01 23:33   좋아요 1 | URL
다큐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앤 드루얀은 칼 세이건과 다른 매력이 있어요.
말씀대로 멋지게 나이드는 모습^^

scott 2022-04-01 23:40   좋아요 1 | URL
선덴스 상 받은 보이저 추천합니다
앤 드루얀 과학 다큐 명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