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아직 지구도 없던 때, 세상에는 차갑고 희박한 기체만 있었다. 기체는 원자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원자인 수소와 헬륨으로 이뤄졌다. 기체는 차츰 중력에 서로 이끌려서 구름을 이루었고, 구름은 빙글빙글 돌면서 차츰 평평해지고 밀도가 높아졌다. - P336

100년 넘게 흐른 지금도 마리 퀴리가 남긴 공책들과 요리책들은 그가 발견했던 방사능으로 은은히 빛난다. 1906년, 피에르 퀴리가 마차에 치여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리 퀴리는 이후 28년 더 살면서 연구하다가 66세에 재생 불량성 빈혈로 죽었는데, 아마도 방사능에 만성적으로 노출되었던 탓일 것이다. - P342

아인슈타인은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라고 불릴 미국의 향후 원자 폭탄 개발 계획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원자핵이 전쟁에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대통령에게 경고하기는 했다. 마지못해 서명하는 그의 손이 잠시 떨렸다.
전쟁이 끝난 뒤, 아인슈타인은 어느 기자에게 만일 독일이 원자 폭탄 개 - P351

발에 실패하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자신은 그 편지에 결코 서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P353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는 실라르드가 런던 산책 중 처음 떠올렸던 연쇄 핵반응을 개시할 화학적 도화선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은 자신들이 유례없는 파괴력을 지닌 폭탄을 만드는 것은 그것보다 더 위중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자신들의 정부는 믿을 수 있다고 믿었다. 다른 나라 정부들과는 달리, 자신들의 정부는 그런 무기를 선제 공격에 쓰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그 과학자들은 핵무기를 핵전쟁의 억지 수단으로 보는 관점을 처음 채택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원자 폭탄을 가진 히틀러에 대한 공포를 자신들의 일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독일이 항복하고 히틀러가 죽은 뒤, 폭탄 개발에 참여했던 수천 명의 연합국 과학자 중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은 한명뿐이었다. - P355

지금 우리를 이루는 원자들은 지구로부터 수천 광년 떨어진 곳에 있었던 별들에서 지금으로부터 수십억 년 전에 만들어졌다. 따라서 우리의 기원을 탐색하다 보면 자연히 우리 시대와 우리 세계를 벗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별의 물질로 만들어졌고, 나머지 우주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를 이루는 물질은 우주의 불길에서 탄생했다. - P367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우리의 혈통에는 광기가 흐른다.
이 악몽을 개시한 것은 과학자들이 쓴 세 통의 편지였다. 그런데 1955년에 또 다른 편지가 작성되었다. 이 편지는 인류에게 우리가 갖게 된 새로운 물리학 지식에는 새로운 사고 방식이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 서로의 다툼을 잊지 못해서 죽음을 택할 것입니까? 인간 대 인간으로 호소합니다. 여러분이 모두 한 인류라는 것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어 주십시오. 이 선언문은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쓰고, 조지프 로트블랫이 발표하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서명한 것이었다. 그 위대한 과학자가 공개적으로 지지한 최후의 성명서이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선언이 있고 며칠 후 죽었다.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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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 이런 과학적 태도, 이런 과학자의 태도 덕분에 기존에 진리라 믿었던 것들이 깨어지고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이 밝혀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과학이 우리에게 모호함을 참아내는 능력을 요구한다. 과학은 우리에게 자신의 무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도록 요구하고,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도록 요구한다.

그는 우리가 보는 사물의 어떤 면이 빛의 속성이고 어떤 면이 우리 신경이 만들어 낸 것인지 가려내고 싶었다. 색은 빛에 숨어 있을까, 아니면 우리 눈에 숨어 있을까?
앎의 열망에서, 뉴턴은 용기를 끌어모아 돗바늘을 집어 든 뒤 결연히 그것을 왼쪽 눈동자 아랫부분에 지그시 찔렀다. 그는 그림을 곁들여서 광학 실험 결과를 기록한 공책에 그 실험을 "눈에 압력을 주는 실험"이라고 태연히 적었다. 그리고 만약 빛이 가득한 방에서 그 실험을 하는 경우에는 자신이 눈을 감고 있더라도 눈앞이 좀 환해지면서 크고 "푸르스름한 원"이 떠올랐다고 적어두었다. 그가 겪었을 통증을 감안하자면 별로 대단한 결과가 못 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뉴턴은 그렇게 손수 고안한 단순한 실험들로 무지개를 처음 설명해 냈고 흰빛 속에 모든 색깔의 빛들이 다 담겨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뉴턴이 연구한 현상들을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원래 그런 것으로 여겼다. 사과는 원래 땅으로 떨어지는 법이고, 빚은 원래 그렇게 창문에 비쳐드는 법이라고, 뉴턴의 위대함은 마치 네 살배기 아이처럼 일상적인 현상에 "왜?" "어떻게?" 하고 묻는 데서 나왔다. - P304

그런데 토머스 영이라는 신출내기가 뉴턴이 반쯤 틀렸다고 증명한 셈이었다. 뉴턴이 자신만만하게 선언했던 것과는 달리, 빛은 늘 입자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과학에서 권위에 기댄 주장이 별로 무게 있게 여겨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연이, 오직 자연만이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은 부릴 줄 아는 재주가 아주 많으니, 어느 시점이든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완전하다고 믿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고서야 없을것이다. 뉴턴은 틀렸다, 부분적으로. 영은 옳았다, 부분적으로.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정말로 혼란스러운 대목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 P310

아이작 뉴턴과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둘 다 옳기도 했고 틀리기도 했다. 빛은 파동인 동시에 입자이고, 어느 쪽도 아니기도 하다. 게다가 이 현상은 광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아원자 입자가 이런 행동을 보인다. 광자든 전자든 다른 어떤 기본 입자든, 우리가 관찰하기 전에는 확률 법칙에 따르는 불확실한 상태로만 존재한다. 그랬다가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 전혀 다른 상태로 바뀐다. - P314

우리는 3차원이라는 아늑한 공간에서 산다. 이것보다 차원이 더 적은 세계를 상상하기는 쉽지만, 더 많은 세계를 상상하기는 몹시 어렵다. 0차원 세계는 점이다. 차원이랄 것도 없는 그냥 점 하나다. 1차원 세계는 모든 것이 선분인 세계다. 2차원 세계는 플랫랜드다. 3차원은 우리가 사는 세계다.
우리는 2차원 존재가 3차원 세계를 미처 상상하지 못하고 오리무중에빠지는 모습에 웃는다. 하지만 양자 현실로 오면, 우리가 바로 그 꼴이 된다. 차원이 다른 세계를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우리도 우리 나름의 플랫랜드에 살고 있다. - P317

인류는 과거에도 이런 경험을 한 적 있었다. 약 100만 년 전, 우리 선조들은 불을 길들였다. 불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활용해 문명을 건설했다. 양자 물리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양자 세계를 완벽하 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과학은 물론이고 그 밖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선조들이 불의 원리를 모르면서도 불을 이용했듯이, 우리는 복잡한 양자 역학의 미스터리에서 이 문제적 측면을 수십 년 동안 그냥 받아들여 왔다. - P323

우리는 광자가 어떻게 입자인 동시에 파동일 수 있는지 아직 모른다. 내가 과학에서 좋아하는 점 중 하나는 과학이 우리에게 모호함을 참아내는 능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자신의 무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도록 요구하고,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도록 요구한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변변찮으나마 이미 가진 지식을 활용해 현실의 새로운 언어들을 찾아보고 해독하는 일만은 문제없이 계속할 수 있다. - P330

이 방대한 코스모스에서 우리는 모두 플랫랜더다. 그런 우리가 위를 상상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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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장 우수한 능력 중에 하나인 던지기 능력과 결합된 돌팔매질은 인류가 사냥꾼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P75

화약과 총이 발명되기 전까지 활은 아주 오랫동안 가장 유용한 사냥과 전쟁의 도구였으며 대표적인 원거리 무기였다. - P77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왼손잡이는 약 11%, 열 명 중 한 명만이 왼손잡이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오른손만을 압도적으로 많이 쓰는 것은 모든 동물을 통틀어 인간뿐이라고 한다. - P88

결국 석기를 잘 만들기 위한 정교한 손동작은 좌뇌가 활성화되어야 더 수월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좌뇌의 운동조절기능의 영향을 받는 오른손잡이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 P90

다른 동물과 비교되는 사람만의 뛰어난 운동능력인 지구력은 커다랗고 튼튼한 엉덩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P105

그러나 인류 초기의 두 발 걷기를 시작한 고인류들이 알려주는 것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명석한 두뇌가 아니라 튼튼한 두 다리라는 것이다. 머리가 먼저 좋아지고 두 다리로 일어선 것이 아니라 두 다리로 일어서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니 뇌도 커지고 머리도 좋아진 것이다. 잔머리 쓰는 사람보다는 두 다리로 부지런히 열심히 돌아다니며 성심껏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인정받아야 하는 당위가 여기에 있다. - P113

오늘날 인류가 진화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 중에 하나가 고기를 먹게 된 것뿐만 아니라 고기를 구워 먹게 됨으로 더욱더 풍부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게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다. 고기를 굽게 되면 날고기에 남아 있던 각종 기생충이나 세균들로부터도 안전하게 되고 고기가 가지고 있는 영양분을 보다 더 완벽하게 흡수할 수 있다. 진화에 필요한 영양분들은 이제 불에 구운 고기로부터 충분히 섭취할 수가있게 되었다. - P117

루씨라는 이름은 이 화석의 발견을 축하하는 파티에서 흘러나왔던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루씨를 발견한 도날드 요한슨에게 루씨는 밤하늘에 떠있는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진짜 다이아몬드를 살 수 있는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에티오피아 현지어로 ‘당신은 아름답다.‘ 라는 뜻을 가진 ‘Dinenesh‘ 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 루씨는 도날드 요한슨에게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며 로또나 다름이 없었다. 루씨가 고인류학의 다이아몬드이자 로또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주 오래전 침팬지와 인류의 공통조상에서 현생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과도기적 형태의 신체구조 즉 두 발 걷기와 관련된 정보를 아주 잘 보존한 채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루씨는 도날드 요한슨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한 빛을 내는 불멸의 여인이다. - P128

털북숭이 틈 사이에 서서 털 없이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재는 호모 에르가스터다. 호모 에르가스터, 아프리카를 벗어난 최초의 인류로 알려지고 있는 고인류다. - P135

인류의 진화과정을 아주 짧은 말로 요약하여 표현하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 그리고 이 적응력을 무기로 지구의 구석구석에 퍼져 살게 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135

인간은 털이 없는 온몸을 냉각판 삼아 상대적으로 유리한 체온관리가 가능했다. 경쟁자들이 쉬고 있을 때도 사냥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쫓아가는 데는 당해낼 재주가 없었을 것이다. - P138

특히 이가 사람의 몸에 털이 없는 이유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 P138

동아프리카의 여러 유적들 가운데 올두바이 협곡은 찌개와 같은 투박한 석기들이 주가 되며 올도완 공작으로 불리는 가장 오래된 구석기공작이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다. - P141

호모하빌리스는 인류 최초로 석기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고인류다. - P142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그 유명한 루씨와 같와 같은 종의 고인류로 인류 진화의 초기단계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두 발 걷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P143

사람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 3가지를 꼽으라면 그것은 두발 걷기, 도구를 만드는 능력, 그리고 커다란 뇌다. - P146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유전인류학자 스반테 파보는 1997년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 미토콘드리아DNA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공통점이 없는 전혀 별개의 종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 P149

오늘날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유일한 사실은 네안데르탈인이 약 3만 년 전에 홀연히 우리 곁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고고학발굴의 증가로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오면 나올수록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원인에 대한 미스터리는 점점 더 풀리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 P153

하지만 호빗이라 불리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아주 작은 뇌를 가지고도 현생 인류와 함께 1만 2천 년 전까지 공존하고 있었다. 이들은 네안데르탈인처럼 현생인류와 함께 공존하다 멸종한 또 다른 인류일 가능성이 높다. - P158

수백만 년 전 동아프리카 일대에는 적어도 5~6종의 고인류들이 모여 살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복잡해서 외우다가 이내 포기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본 기억이 있으실 것이다. 여러 종의 고인류 집단들 중에서 변화하는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집단이 살아남아 호모 속이 되었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는 우리보다 앞서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홀로 남은 호모 속의 일원, 호모 사피엔스가 바로 나와 같은 사람, 우리들이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적자생존의 개념은 오해하기 쉬운데 보다 강한 고인류 집단이 약한 집단을 밟고 일어서는 것이 적자생존을 통한진화가 아니라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여 살아남은 집단이 적자가 되어 인류 진화의 무대에 계속 서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다윈은 ‘강한 자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자가 살아남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수백만 년 동안 여러 종의 인류가 나타났다 사라졌는데 그 가운데 발 빠르게 환경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여 살아남은 종들만이 살아남았다. 다행히도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 P163

데니소바인의 화석에 남겨진 유전자를 분석하는데 성공하면서 데니소바인과 우리 현생인류, 네안데르탈인이 꽤 오랜 기간을 함께 살았음을 알게 되었다. - P165

이런 연대측정이 가능한 것은 화산재에는 고유한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화산 기원물질의 경우에는 과학적인 연대측정법의 적용이 가능해서 화산재의 나이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일종의 유리 물질인 화산재는 폭발한 지점의 화학성분 및 폭발 당시의 상황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화산마다 각각 모양이 다르다. 빛을 산란하는 굴절률의 차이 등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물론 맨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현미경으로 자세히 관찰하여야 구별할 수 있다. 이런 화산재의 특성 때문에 지금까지 폭발한 화산에서 나온 화산재는 어디 출신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나이를 알고 출신지를 알 수 있다니? 고고학에서 화산재야말로 유물의 연대와 기원을 알아낼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이고 중요한 자료이다. - P172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똑바로 세워진 척추는 뇌는 물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강 내부의 해부학적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후두의 새로운 위치와 형태가 중요했는데 치아구조의 변화에서 수반되는얼굴구조의 변화를 통해 낼 수 있는 소리의 폭이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높낮이와 길이를 조절할 수 있게 된 목소리에 감정을 담으면서부터 풍부한 감성을 서로 간에 주고받았고 마침내 인간의 역사에서 위대한 음악적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노래와 언어는 함께 진화했으며, 노래의 진화야말로 언어의 비밀을 푸는 열쇠인 것이다. - P188

사실 고고학자들이 눈으로 보지 않은 사실들을 분석하여 물건의 용도를 짐작하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문화까지 해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 P205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가장 결정적인 특징을 두 가지만 들라고 하면 하나는 직립보행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술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발로 일어서는 직립보행의 발달 과정은 인류의 체질적인 진화과정을 보여주고, 동굴벽화를 그리거나 비너스 조각상을 새기는 예술 활동의 발전 과정은 인류의 문화적인 진화과정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 P241

인류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예술활동이 본격적으로 대폭 늘어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결국 기술의 발달과 예술의 발전은 밀접한 상호 관계가 있음을 알 수있다. - P243

박물관을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 인류의 진화는 믿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라는 점을 늘 강조하곤 합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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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생인류가 어느 날 갑자기 석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진화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오늘날 21세기 지구상의 지배자와도 같은 위치를 강점하며 살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인류 진화의 발자취는 석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인류가 진화함에 따라 석기도 진화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석기가 진화함에 따라 인류도 진화했다. 인류의 진화에서 극적인 과정들인 두 발로 일어서는 때, 본격적인 사냥꾼이 되어 아프리카를 벗어나는 때,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이 심해지던 때, 소위 인지혁명이라고 하는 지적능력 대폭발 등 중요한 시기마다 언제나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석기가 함께했다. - P33

조개는 훌륭한 영양공급원이었고 맛도 좋았다. 우리 사람이 어떻게 두 발로 걷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수많은 이론 중에 소위 수변적응설이 있다. 다름 아닌 이 조개를 잡기 위해 들어간 물속에서는 부력에 의해 허리를 쭉 펴고 일어서기가 땅 위에서 보다 쉬웠고, 물속에서 두 발로 똑바로 서게 된 인류는 오랜 시간이 흘러 육지에서도 두 발로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 P47

이때 등장한 바늘, 바늘귀가 달린 바늘로 꼼꼼하게 꿰맨 옷과 신발은 인류가 빙하기의 추위를 극복하게 해주었다. 이렇듯 바늘은 인류의 운명을 바꿔놓은 위대한 발명품이다. 이제 바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귀 달린 바늘의 이야기다. - P53

호모 사피엔스의 위대한 성공 뒤에는 인류역사상 최고의 혁신적인 도구들 중 최고 순위를 차지하는 바늘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바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구는 주먹도끼나 돌날 그리고 도구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불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의 고고학 증거로 볼 때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바늘이 있었지만 네안데르탈인들에게는 바늘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P55

귀 달린 바늘이 최초로 등장하는 시기는 대략 4만 년을 전후한 후기구석기시대로 생각되지만 고고학적으로 확인되는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귀 달린 바늘은 약 2만5천 년 전의 그라베티안 시기의 것들로 알려져 있다. - P55

그런데 한 가지의 재밌는 것은 실제 유적에서 발굴된 동물 뼈는 동굴벽화에 그려진 동물그림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순록, 말, 사슴, 노루, 멧돼지, 토끼처럼 비교적 작고 온순한 동물 뼈들이 주로 출토되며 대부분은 순록이 차지한다. 동굴벽화에는 커다랗고 힘센 들소나 사자, 코뿔소, 매머드, 곰같이 잡기 힘들고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대형 초식동물이나 맹수를 더 많이 표현하였다. 커다란 동물을 잡고 싶은 선사인들의 강한 욕망도 느껴지고 때때로 목숨을 노리는 사나운 맹수로부터 안전을 기원하는 간절한 소망도 읽을 수 있다. 능숙한 사냥꾼 구석기 사람들에게도 사냥은 쉽지 않았고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을 그들이 남겨놓은 동굴벽화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 P64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부터는 투박한 석기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짐작되며 호모 하빌리스 단계에서부터는 확실하게 의도적인 타격을 가해 돌을 깨서 만든 도구 즉 석기를 사용하였다. 이때부터가 구석기시대의 시작이다. - P66

나무로 만든 자루는 돌로 만든 도구와 결합하여 도구를 더 유용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 P69

물가에 서면 돌멩이를 집어 들어 물수제비를 뜨는 행위 역시 초기 인류의 생존 본능과도 가까웠던 돌팔매질의 유전자가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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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의 과학자, 구소련의 박해를 피해 가명으로 살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최후를 맞이한 유리 콘트라튜크(본명은 알렉산드르 샤르게이)의 달 왕복 탐사의 꿈은 끝나지 않았고 그가 자비출판한 책 “행성 간 공간의 정복”을 입수한 나사에 의해 아폴로11호의 달 탐사라는 성과로 이어진다. 그의 공을 기리도록 구소련에 부탁하는 닐 암스트롱. 마지막 장면은 뭉클하다.

지구에 발이 묶인 처지에서 천문학을 연구해야 했던 고대로부터 토성 하늘에 탐사선을 보내게 된 현재까지의 과정은 오랫동안 아무 일도 없다가 끝에 와서 짧은 기간 동안 열렬한 활동이 벌어지는 과학 활동의 전형적인 패턴을 잘 보여 준다. 아무 일 없던 시기가 끝난 시점은 갈릴레오가 처음 만든 망 - P277

원경으로 코스모스를 발견한 1609년이었다. 이듬해 그는 새 망원경으로 토성을 겨누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지금 본 어른거리는 빛이 뭐지? 갈릴레오는 토성을 하나의 점 이상으로 본 최초의 인간이었다. - P278

그로부터 40년 뒤, 네덜란드 천문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성능이 훨씬 더 개선된 망원경으로 토성을 관측했다. 하위헌스가 1655년에 목격한 토성도 여전히 흐릿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고리가 또렷하게 보였다. 하위헌스는 행성에 고리가 있을 수 있고 토성이 그런 행성이라는 사실을 처음 안 사람이었다. 그는 또 200년 뒤에 타이탄이라고 불리게 될 토성의 최대 위성을 발을 발견했다. 마침내 인류가 그 위성을 방문할 기회가 왔을 때, ESA는 그 우주선에 하위헌스의 이름을 붙였다. - P278

과학에는 가끔 갈릴레오,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수는 극히 적다. 그런데 그들과는 좀 다른 과학자들도 있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처럼, 새로운 그림을 혼자 다 그려 내지는 못하지만, 자연의 방대한 화폭에서 빈 공간을 한두 군데 이상 메우는 사람이다.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도 그런 과학자였다. - P278

카시니는 지구 위 두 지점의 거리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데 착안해서, 그 값을 토대로 기하학적 계산을 수행함으로써 화성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냈다. 그런데 우리가 행성들 사이의 거리비를 알 경우, 개중 어느 한 행성까지의 거리만이라도 알면 행성들 사이의 거리를 모두 계산해 낼 수 있다. - P280

책의 첫 문장은 그가 독자에게 지레 좌절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격려의메시지다. 콘드라튜크는 이렇게 썼다. "우선, 당신이 이 책의 주제에 겁먹지 않기를 바란다. 비행의 가능성으로 말하자면, 로켓을 우주로 보내는 일이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할 게 전혀 없다는 점만 기억하기 바란다."
이렇게 대담하게 장담한 뒤, 그는 달로 가는 현실적인 방법을 설명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런데 그 책에는 더 중요한 개념도 담겨 있었다. 콘드라튜크는 우주선이 행성에서 행성으로, 별에서 별로 이동할 때 쓸 수있는 수단도 제안했다. 중력 도움(gravitational assist, 스윙바이(swing-by)라고도 한다. ― 옮긴이)이었다. 우주선이 행성이나 위성을 근접 비행하면서 그 천체의 중력으로부터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 P286

콘드라튜크의 발상을 알고 한 일이었든 그저 우연의 일치였든, 아폴로11호는 콘드라튜크의 방법을 좇아서 아직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신화적인 업적으로 남아 있는 비행에 성공했다. 콘드라튜크의 기여는 우주선이 달에 착륙했다가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는 일에만 미치지 않았다. 그가 중력 도움을 발견했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 선조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했던 것처럼 우주선이 행성에서 행성으로 건너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처음 떠올린 사람이었다. 그러니 1973년 매리너 10호 이래 우주 시대의 모든 발견은 그에게 빚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카시니 우주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카시니 호는 금성, 지구, 목성의 중력 도움을 받아서 토성으로 날아갔다. - P291

카시니 호는 토성의 가혹한 대기 저항과 싸웠다. 그러다 곧 연료 탱크가 바닥났고, 싸움은 끝났다. 우주선은 부서지기 시작했다. 먼 행성의 유성우가 되어, 놀랍도록 생산적이었던 삶을 마감했다. 2017년 9월 17일, 지구의 제트 추진 연구소에서는 과학자들이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카시니 호의 공식 사망 시간을 기록했다. 세계시로 11시 55분이었다. - P298

카시니 호가 거둔 성과는 한둘이 아니었다. 카시니 호는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토성의 위성을 수십 개 발견했고, 위성 엔켈라두스에 액체 물이있다는 증거를 발견했고, 토성의 자기장과 중력장을 지도화했다. 카시니 하위헌스 탐사 같은 사업은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보기드문 사건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들을 놀랍도록 빠르게 개발하고 완성해 냈다. 인류가 스푸트니크 호에서 시작해 카시니 호의 자살까지 오면서 우주에서 여러 성과를 거두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60년이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앞으로는 코스모스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잔뜩 기대하게 만든다. - P298

누군가의 꿈이 그 사람과 함께 죽을 때도 있지만, 다른 시대의 과학자들이 그 꿈을 건져내어 달까지, 그리고 그보다 더 멀리까지 데려가는 때도 있다. 유리 콘드라튜크는 자칫 깡그리 잊힐 수도 있었다. 그가 정말로 우주 탐사에 이바 - P298

지했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따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를 기억하고 그가 합당한 공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애쓴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닐 암스트롱은 달 여행에서 돌아온 이듬해, 우크라이나에 있는 콘드라튜크의 허름한 오두막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암스트롱은 무릎을 꿇고, 떠내도 될 듯한 흙을 좀 떠냈다. 자신이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모스크바로 돌아간 뒤, 암스트롱은 당시 (구)소련이었던 그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부디 자신의 신화적인 비행을 가능케 해 준 콘드라튜크를 기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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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2-03-05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보니 칼 세이건도 우크라이나 이민자 가문에서 성장한 과학자군요.

햇살과함께 2022-03-05 21:0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이 책 6장에 나왔어요. 아버지가 5살에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민왔다고. 그새 잊어버렸는데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