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의 과학자, 구소련의 박해를 피해 가명으로 살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최후를 맞이한 유리 콘트라튜크(본명은 알렉산드르 샤르게이)의 달 왕복 탐사의 꿈은 끝나지 않았고 그가 자비출판한 책 “행성 간 공간의 정복”을 입수한 나사에 의해 아폴로11호의 달 탐사라는 성과로 이어진다. 그의 공을 기리도록 구소련에 부탁하는 닐 암스트롱. 마지막 장면은 뭉클하다.

지구에 발이 묶인 처지에서 천문학을 연구해야 했던 고대로부터 토성 하늘에 탐사선을 보내게 된 현재까지의 과정은 오랫동안 아무 일도 없다가 끝에 와서 짧은 기간 동안 열렬한 활동이 벌어지는 과학 활동의 전형적인 패턴을 잘 보여 준다. 아무 일 없던 시기가 끝난 시점은 갈릴레오가 처음 만든 망 - P277

원경으로 코스모스를 발견한 1609년이었다. 이듬해 그는 새 망원경으로 토성을 겨누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지금 본 어른거리는 빛이 뭐지? 갈릴레오는 토성을 하나의 점 이상으로 본 최초의 인간이었다. - P278

그로부터 40년 뒤, 네덜란드 천문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성능이 훨씬 더 개선된 망원경으로 토성을 관측했다. 하위헌스가 1655년에 목격한 토성도 여전히 흐릿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고리가 또렷하게 보였다. 하위헌스는 행성에 고리가 있을 수 있고 토성이 그런 행성이라는 사실을 처음 안 사람이었다. 그는 또 200년 뒤에 타이탄이라고 불리게 될 토성의 최대 위성을 발을 발견했다. 마침내 인류가 그 위성을 방문할 기회가 왔을 때, ESA는 그 우주선에 하위헌스의 이름을 붙였다. - P278

과학에는 가끔 갈릴레오,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수는 극히 적다. 그런데 그들과는 좀 다른 과학자들도 있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처럼, 새로운 그림을 혼자 다 그려 내지는 못하지만, 자연의 방대한 화폭에서 빈 공간을 한두 군데 이상 메우는 사람이다.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도 그런 과학자였다. - P278

카시니는 지구 위 두 지점의 거리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데 착안해서, 그 값을 토대로 기하학적 계산을 수행함으로써 화성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냈다. 그런데 우리가 행성들 사이의 거리비를 알 경우, 개중 어느 한 행성까지의 거리만이라도 알면 행성들 사이의 거리를 모두 계산해 낼 수 있다. - P280

책의 첫 문장은 그가 독자에게 지레 좌절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격려의메시지다. 콘드라튜크는 이렇게 썼다. "우선, 당신이 이 책의 주제에 겁먹지 않기를 바란다. 비행의 가능성으로 말하자면, 로켓을 우주로 보내는 일이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할 게 전혀 없다는 점만 기억하기 바란다."
이렇게 대담하게 장담한 뒤, 그는 달로 가는 현실적인 방법을 설명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런데 그 책에는 더 중요한 개념도 담겨 있었다. 콘드라튜크는 우주선이 행성에서 행성으로, 별에서 별로 이동할 때 쓸 수있는 수단도 제안했다. 중력 도움(gravitational assist, 스윙바이(swing-by)라고도 한다. ― 옮긴이)이었다. 우주선이 행성이나 위성을 근접 비행하면서 그 천체의 중력으로부터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 P286

콘드라튜크의 발상을 알고 한 일이었든 그저 우연의 일치였든, 아폴로11호는 콘드라튜크의 방법을 좇아서 아직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신화적인 업적으로 남아 있는 비행에 성공했다. 콘드라튜크의 기여는 우주선이 달에 착륙했다가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는 일에만 미치지 않았다. 그가 중력 도움을 발견했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 선조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했던 것처럼 우주선이 행성에서 행성으로 건너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처음 떠올린 사람이었다. 그러니 1973년 매리너 10호 이래 우주 시대의 모든 발견은 그에게 빚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카시니 우주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카시니 호는 금성, 지구, 목성의 중력 도움을 받아서 토성으로 날아갔다. - P291

카시니 호는 토성의 가혹한 대기 저항과 싸웠다. 그러다 곧 연료 탱크가 바닥났고, 싸움은 끝났다. 우주선은 부서지기 시작했다. 먼 행성의 유성우가 되어, 놀랍도록 생산적이었던 삶을 마감했다. 2017년 9월 17일, 지구의 제트 추진 연구소에서는 과학자들이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카시니 호의 공식 사망 시간을 기록했다. 세계시로 11시 55분이었다. - P298

카시니 호가 거둔 성과는 한둘이 아니었다. 카시니 호는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토성의 위성을 수십 개 발견했고, 위성 엔켈라두스에 액체 물이있다는 증거를 발견했고, 토성의 자기장과 중력장을 지도화했다. 카시니 하위헌스 탐사 같은 사업은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보기드문 사건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들을 놀랍도록 빠르게 개발하고 완성해 냈다. 인류가 스푸트니크 호에서 시작해 카시니 호의 자살까지 오면서 우주에서 여러 성과를 거두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60년이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앞으로는 코스모스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잔뜩 기대하게 만든다. - P298

누군가의 꿈이 그 사람과 함께 죽을 때도 있지만, 다른 시대의 과학자들이 그 꿈을 건져내어 달까지, 그리고 그보다 더 멀리까지 데려가는 때도 있다. 유리 콘드라튜크는 자칫 깡그리 잊힐 수도 있었다. 그가 정말로 우주 탐사에 이바 - P298

지했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따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를 기억하고 그가 합당한 공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애쓴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닐 암스트롱은 달 여행에서 돌아온 이듬해, 우크라이나에 있는 콘드라튜크의 허름한 오두막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암스트롱은 무릎을 꿇고, 떠내도 될 듯한 흙을 좀 떠냈다. 자신이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모스크바로 돌아간 뒤, 암스트롱은 당시 (구)소련이었던 그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부디 자신의 신화적인 비행을 가능케 해 준 콘드라튜크를 기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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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2-03-05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보니 칼 세이건도 우크라이나 이민자 가문에서 성장한 과학자군요.

햇살과함께 2022-03-05 21:0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이 책 6장에 나왔어요. 아버지가 5살에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민왔다고. 그새 잊어버렸는데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