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메 소세키 <마음>

"영업부에서는 할 일이 정해져 있었고, 기본적으로는 혼자서점을 돌면 됐거든요. 도달해야 할 목표가 명확해서 내가 노력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속 편하다고 하면 편한 쪽이었어요. 그런데 사전을 만드는 건 그렇지가 않아요. 전원이 같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작업을 분담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어디가 문제인거냐?"
"나는 생각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무엇을 생각했는지 남한테 설명하는 걸 잘 못해요. 단적으로 말해 사전편집부안에서 겉돌고 있어요."
다케 할머니는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미짱. 지금까지 네가 겉돌지 않은 적이 있었냐? 만날 책만읽고, 여기 친구나 애인 한 번 데려온 적 없잖아?"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와서 뭐 하러 겉도는 걸 고민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왜지? - P45

"우리는 사전에 전부를 걸어야 합니다. 시간도, 돈도, 생활을하기 위해 필요 최소한의 것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사전에쏟아야만 합니다. 가족 여행, 유원지. 말은 알고 있지만, 나는실제를 모릅니다. 마지메 씨, 그런 삶의 방식을 이해해 줄 상대인지 아닌지는 아주 중요한 일이랍니다."
마쓰모토 선생의 입에서 연애의 중요성, 그 찬란함에 대한얘기가 나오는 줄 알고 경청했던 일동은 맥이 풀렸다. 동시에 ‘과연 마쓰모토 선생님! 사전 만들기에 방해가 될지 안 될지를기준으로 연애를 얘기하시다니‘ 하는 놀라움에 선생에 대한 경애와 조금은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 P61

"싫습니다. 그런 낡아빠진 하숙집."
"유감이네요. 소세키의 《마음》을 현대에 되살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이라면………."
니시오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자세 그대로 걸었다.
"아아, 국어책에 실렸었죠. 유서가 별나게 길어서 진짜 웃겼어요."
"<마음>에 대한 감상이 고작 그거냐!"
니시오카의 발언이 또 아라키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다.
"너 정말로 왜 출판사에 다니는 거냐?"
"왜라니요, 붙었으니 다녀야지 어쩔 수 없잖아요."
니시오카는 당연하다는 듯이 팔짱을 꼈다. - P70

하나의 말을 정의하고 설명하려면 반드시 다른 말을 써야 한다. 말이라는 것을 이미지화 할 때마다 마지메의 뇌리에는 목제 도쿄타워 같은 것이 떠오른다. 서로 보충하고 서로 지탱하며 절묘한 균형으로 선 흔들리기 쉬운 탑. 이미 존재하는 사전 - P80

을 아무리 비교해도, 아무리 많은 자료를 조사해도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말은 마지메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위태롭게 무너져 실체를 무산시킨다.
마지메는 주말에도 소운장에 틀어박혀 말에 관해 생각했다. 서고로 쓰는 1층 구석방에서 바닥이 비좁게 책을 펼쳐 놓고 지혜를 짜냈다. - P81

관람차를 음식 섭취와 배설에 비유하다니 특이한 사람이다. 가구야가 말하는 허무함과 쓸쓸함은 사전 만들기와도 상통할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말을 모으고 뜻풀이를 하고 정의를 내려도 사전에 진정한 의미의 완성은 없다. 한 권의 사전으로 정리했다고 생각한 순간, 말은 다시 꿈틀거리며 빠져나가서 형태를 바꿔 버린다. 사전 만들기에 참여한 이들의 노력과 열정을 가볍게 비웃으며, 한 번 더 잡아 보시지 하고 도발하듯이.
마지메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끊임없이 운동하는 언어가지니고 있는 방대한 열량이 한순간에 보여 주는 사물의 모습을보다 정확하게 건져 내 문자로 옮기는 일이다.
아무리 먹어도 살아 있으면 반드시 공복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잡고, 또 잡아도 마치 실체가 없는 것처럼 말은 허공으로 흩어져 간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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