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6호에도 페미니즘의 투쟁이 언급되네요~

베버의 정의를 따르면 명령을 자발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것이 권위다. 권력(power; Macht)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라면, 권위(authority; Herrschaft)는 정당성이 인정되어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 내는 힘이다. 권력자와 명령 수행자가 매끄러운 협응을 하게 하며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힘이 권위다. 만일 권력에 정당성이 결여된다면 명령을 강제로 수행하는 쪽은 부당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권력자가 권력과 권위를 동시에 갖지 못하면 지배 관계는 지속되지 않는다. - P45

페미니즘 관점에서 발달 심리 이론을 연구한 심리학자 캐럴 길리건은 여성의 도덕성이 공감과 배려에 기반을 둔다고 주장한다. 남성이 이른바 정의를 지향하는 도덕성을 더 잘 습득하며, 그러므로 도덕성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임상적 결론에 이르는 콜버그의 도덕 발달 이론을 반박하면서 길리건은 관계의 상호성을 고려한 ‘돌봄의 윤리(ethics of care, 배려의윤리)’라는 새로운 도덕성 발달 단계를 제안했다. 이를 통해 여성이 타인을 돌보면서 내리는 결정들의 도덕적 가치가 재평가될 수 있었다. 이어 철학자 사라 러딕은 기존의 남성중심적 철학이 타자에 대한 폭력과 착취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전쟁이란 국가들이 대립하는 거대한 장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의 장에서 벌어진다고 주장했다. 러딕은 강자와 약자 간의 관계를 억압이 아닌 방식으로 재정의할 수 있는 모성적 사유(maternal thinking)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 P49

정희진에 따르면, 러딕의 모성적 사유란 현실의 모성을 참조하면서도 그로부터 분리되는 개념이다.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제도화된 관행(practice)이다. 모성과 모성적 사유는 다르다. (……) 단지 노동으로서 모성이 개념으로서 모성적 사유의 기반이 된"다. 가령 양육 관계에서 남성도 공동 어머니(co-mother)가 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은 의료의 근간을 이루는 돌봄의 실천을 간병이나 요양의 영역에 한정하여 구조적으로 주변화하는 양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9] 조영래 씨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비의료인의 노동에서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은 당연시되어 왔다. 전문적 의료와는 별개의 하위 영역을 설정하고, 일종의 내부 식민지로 만들어지속적으로 착취하고 있는 셈이다.
돌보는 일은 고도의 숙련과 심층의 지식을 요하는 일이며 무엇보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일이다. 조영래씨의 하루는 이 일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를 숨김없이 보여 주었다. 그의 손길, 그의 눈 맞춤, 그의 부름 속에서 이창엽 씨의 삶은 그저 죽어 가는 몸이 아니라 한사람의 존재로 생동할 수 있었다.

[9] 이러한 분업화에 기반한 주변화와 착취는 생산 영역과 재생산 영역의 분리와 그에 기반한 자본 축적의 전 과정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관련해서는 실비아 페데리치, 황성원 옮김, 『혁명의 영점』(갈무리, 2013)과 마리아로사 달라 코르타, 이영주·김현지 옮김, 『페미니즘의 투쟁』(갈무리, 2020) 등을 볼 것. 관련 논의는 함선유, 「돌봄을 정당하게 대우하라」, 《한편》 5호(2021)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P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의를 지키라는 말의 배후에 있는 정치권위의 문제를 성찰하는 것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권위주의적 일상을 되묻는 일이다. 민주적 권위의 영속성은 의례 정치로 구현되지 않는다. 우리는 개인들 간에 이루어진 아슬아슬한 약속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정치적 신체를 창조해야만 한다. 예의를 지키라는 말에 대한 대답으로 이 약속의 목록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예송의 종언은 찾아올 것이다. - P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위에 적용된 글꼴은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운 추유을 할머니가 곧은 획으로 눌러쓴 칠곡할매 추유을체입니다.

한국인의 반중감정에는 ‘아버지‘ 나라 중국의 권위에 대한 열등감과 시기, 미국이 상징하는 근대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갖는 우월감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 한편 중국의 반한감정을 한 겹 들추면 미국에 대한 응어리진 원한 감정으로서의 반미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중국, 미국 사이의 복잡한 감정들의 겹을 펼쳐 보면, 차가운 이성으로 한국이 놓인 국제 관계의 지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P14

‘아니오‘ 속에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전복적인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앤 보이어의 말대로 "이제 머리 위에 의자를 올리는 것부터 시도해 보자." (「아니오」) - P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는데 사람이 왔다." - P137

특히 이주의 여성화(feminization of migration)는 21세기에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지되는 지배적인 이주 흐름이다. 과거 여성의 이주는 앞서 언급한 영화에서 남편을 따라 서독으로 갔던 후세인의 아내 파트마처럼 주로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종속되어 ‘따라가는’ 형태의 동반 이주였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이후 생계 부양자로서 독립적으로 이주하는 여성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저개발국 여성들이 기존에 ‘여성의 일‘로 취급되던 가사·돌봄노동을 수행하기 위해 개발국으로 이동하는 성별화된 이주가 늘어나고 있다. - P141

국제노동기구(ILO)는 적절한 노동시간(decentworking time)이란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안전해야 하고, 가정친화적이어야 하고, 성평등을 증진하고, 기업 생산성을 높여야 하며, 일하는 사람 스스로가 노동시간에 대해 선택하고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를 견주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적절하고 적정한 수준의 일인지부터 묻는 것이 과로하는 삶에 대한 감각을 조금 더 균형 있게 만들 수 있다. - P170

산업재해인 과로죽음의 경우 명백한 사고 책임자가 있는 경우가 많고, 이런 구조를 방치하고 회사를 경영해 이익을 얻는 사람도 분명하다. 과로죽음의 피해자의 권리는 고인과 그 유가족이 그러한 죽음을 겪지 않고 살 권리‘부터, 과로죽음 가능성이 높은 노동자와 그 가족, 직장 동료와 친구, 예방 및 대응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들, 이 죽음을 목격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포함한다. 안전하지 않은 일터가 그대로 운영되도록 둔 자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말할 수 있을 때, 사회 전체의 진실, 정의, 안전, 기억과 회복의 권리가 보장된다. 과로죽음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지금 삶의 맥락에서 직접 경험하고 있는 과로의 경험과 그 원인이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해야 한다. 다그치기보다 공감하고, 참기보다 고쳐 나가야 한다. 이야말로 일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삶을 존중하는 방법이다. 적절하고 적정한 일이란 전략과 협상의 대상이 아닌, 지켜져야 할 삶의 원칙과 가치다. 우리의 일하는 삶이 안녕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P171

적절한 경계 설정도 필요하다. 경계란 다른 사람에게 내가 허용할 수 있는 행동의 한계선으로, 셀프 디펜스에서 경계 설정은 폭력을 예방하고 폭력에 대처하는 절차의 일부다. 경계는 모든 사회 관계망 속에 물리적 경계, 신체적 경계, 심리적 경계, 정서적 경계, 성적 경계 등으로 존재한다. 나이, 성별, 인종, 장애, 직급, 빈부,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서로의 경계를 존중해야한다. 직장 내 관계에서도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하지않아야 하고 사적인 대화나 관계를 강요하면 안 된다. 기본적으로 위계가 있으며 생계가 달려 있는 직장 내 관계에서는 하급자나 후배는 물론이고 동료들 사이에서도 스스로 거절과 거부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고 전제해야 한다. - P181

손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하고, 단순하고 짧게 말하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셀프 디펜스의 기술들을 배우는 것은 망치, 드라이버, 펜치의 사용법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사용법을 알고 도구를 사용해 보면 나사를 조이거나 못을 박는 일이 아주 어렵지 않은 것처럼 셀프 디펜스도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다. - P187

"선생님, 장백산은 중국 산인가요, 한국 산인가요?"
질문하는 학생의 얼굴로 보건대 이는 선생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우리반 학생들도 한국어 수준이 높았으므로 이 대화의 의미와 분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한국어 선생은 이런 시험을 겪는 일이 가끔 있다. 나는 대답했다.
"장백산은 중국 산이고, 백두산은 한국 산이죠."
내 말을 들은 옆 반 학생은 아무 대꾸 없이 자기 교실로 돌아갔고, 우리 반 학생들은 긴장했던 표정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 P2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동자들의 ‘진짜‘ 지옥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부르주아적이라고 여겨지는 ‘가짜‘ 슬픔, 즉 문학 작품 등의 허구적 이야기 속 슬픔을 경험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아! 늙은 단테여, 진짜 지옥을, 시가 없는 지옥을 여행해 보지 못한 너에게 작별 인사를!) - P91

예술은 노동이 아니거나 노동에 반하는 특질도 지니고 있다. 예술과 노동은 동일시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는 노동이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술노동론은 현재 노동이 여러 국면에서 ‘미학화’하는 현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예술 역시 더 이상 노동의 문제를 충분히 응시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이다. - P108

예술노동론은 예술노동과 임노동의 구분에 근거해 예술이 지닌 반노동 비노동적 속성을 보존할 때 자본주의의 반대편에 설 가능성을 미약하게나마 띠게 된다. 하지만 예술가가 작품을 상품으로 시장에 판매하는 것으로만 창작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확보하고자 할 경우, 예술노동 논의의 급진적인 가능성은 서서히 사라진다. - P110

이처럼 돌봄이 상대에 대한 존중과 신뢰, 애정을 기반으로 하기에 폴라 잉글랜드는 돌봄 제공자를 "사랑의 포로(prisoner oflove)"라고 표현했다. 돌봄을 주고받는 이들 간의 관계적, 이타적 특성들로 인해 돌봄노동이 다른 일과는 다른 속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돌봄은 상호 관계의 산물이기에, 돌봄 대상자뿐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 역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여러 연구들은 돌봄을 일로 삼는 이들이 여타 직종 노동자들에 비해 더 큰 보람과 긍지,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러한 돌봄노동의 속성은 노동자들이 낮은 보수를 받으며 고된 노동을 감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P122

모든 나라에서 아동이나 노인을 돌보는 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만, 돌봄직은 그 사회의 가장 낮은 처우를 감내하는 나쁜 일자리다. 돌봄에 종사하는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저평가되는 저학력에 경력이 단절되거나 이민자인 여성들이 대다수다. 그런데 동일한 교육수준과 연령, 경력을 가졌더라도 돌봄직 종사자들은 더 낮은 임금을 받는다. 통상 임금 격차의 합리적인 근거로 여겨지는 노동자들의 속성 차이로는 돌봄직의 낮은 임금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개인을 단위로 일자리의 경로를 추적한 조사를 분석해 보면 같은 사람이라도 다른 일을 하다가 돌봄 일자리에 진입했을때 임금이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이렇듯 합리적인 이유로는 설명되지 않는 돌봄 일자리 종사자의 임금 격차를 돌봄 불이익(care penalty)이라고 한다. - P123

이처럼 가족이나 친지가 제공하는 돌봄을 이제는 비공식 돌봄(informal care)이라 칭한다. 모든 인간이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 생존했음에도 그 돌봄은 비공식적이고, 대다수에게 공기처럼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비공식 돌봄 제공자의 희생은 모성이라는 이름의 숭고한 영역으로 미화될 뿐이었다. - P1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