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의 ‘진짜‘ 지옥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부르주아적이라고 여겨지는 ‘가짜‘ 슬픔, 즉 문학 작품 등의 허구적 이야기 속 슬픔을 경험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아! 늙은 단테여, 진짜 지옥을, 시가 없는 지옥을 여행해 보지 못한 너에게 작별 인사를!) - P91

예술은 노동이 아니거나 노동에 반하는 특질도 지니고 있다. 예술과 노동은 동일시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는 노동이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술노동론은 현재 노동이 여러 국면에서 ‘미학화’하는 현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예술 역시 더 이상 노동의 문제를 충분히 응시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이다. - P108

예술노동론은 예술노동과 임노동의 구분에 근거해 예술이 지닌 반노동 비노동적 속성을 보존할 때 자본주의의 반대편에 설 가능성을 미약하게나마 띠게 된다. 하지만 예술가가 작품을 상품으로 시장에 판매하는 것으로만 창작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확보하고자 할 경우, 예술노동 논의의 급진적인 가능성은 서서히 사라진다. - P110

이처럼 돌봄이 상대에 대한 존중과 신뢰, 애정을 기반으로 하기에 폴라 잉글랜드는 돌봄 제공자를 "사랑의 포로(prisoner oflove)"라고 표현했다. 돌봄을 주고받는 이들 간의 관계적, 이타적 특성들로 인해 돌봄노동이 다른 일과는 다른 속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돌봄은 상호 관계의 산물이기에, 돌봄 대상자뿐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 역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여러 연구들은 돌봄을 일로 삼는 이들이 여타 직종 노동자들에 비해 더 큰 보람과 긍지,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러한 돌봄노동의 속성은 노동자들이 낮은 보수를 받으며 고된 노동을 감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P122

모든 나라에서 아동이나 노인을 돌보는 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만, 돌봄직은 그 사회의 가장 낮은 처우를 감내하는 나쁜 일자리다. 돌봄에 종사하는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저평가되는 저학력에 경력이 단절되거나 이민자인 여성들이 대다수다. 그런데 동일한 교육수준과 연령, 경력을 가졌더라도 돌봄직 종사자들은 더 낮은 임금을 받는다. 통상 임금 격차의 합리적인 근거로 여겨지는 노동자들의 속성 차이로는 돌봄직의 낮은 임금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개인을 단위로 일자리의 경로를 추적한 조사를 분석해 보면 같은 사람이라도 다른 일을 하다가 돌봄 일자리에 진입했을때 임금이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이렇듯 합리적인 이유로는 설명되지 않는 돌봄 일자리 종사자의 임금 격차를 돌봄 불이익(care penalty)이라고 한다. - P123

이처럼 가족이나 친지가 제공하는 돌봄을 이제는 비공식 돌봄(informal care)이라 칭한다. 모든 인간이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 생존했음에도 그 돌봄은 비공식적이고, 대다수에게 공기처럼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비공식 돌봄 제공자의 희생은 모성이라는 이름의 숭고한 영역으로 미화될 뿐이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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