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 가족이라는 위계 집단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크리스틴 델피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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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혹은 가정 내 노동의 정의 부재 내지 잘못된 정

가정 내 소비에서의 위계를 무시한 가족을 소비단위정의하는 문제


이 모든 지점은 분명 연결되어 있다그러나 가사노동이라는 문제가 관심을 유발하고 많은 글과 책질문이 이를 다루었음에도 근본적인 한 지점이 불명확하게 남아 있다바로 연구 대상인 가사노동의 정의 자체에 대한 것이다. - P9


가사노동의 특징적인 생산 관계가 가사노동에만 해당하지 않고 혹은 가사노동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른 종류의 과업과 노동 역시 특정 지으므로우리는 가정 내 노동이라는 개념으로 가사노동의 개념을 대체하기를 제안한다연구 대상은 분명 사회학적이고 광범위한 의미의 집에서 무료로 실시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가사노동에 대한 잘못된 정의는더 정확하게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의와 기술적 정의 그리고 생산 관계 연구 사이의 모순은 연구에 한계를 불러왔다. 가사 내 모든 과업에 대한 임금 지급요구가 그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비록 한계를 가장 심각하게 드러내는 사례는 아니나 이는 또 다른 문제다-라고 할 수 있다. – P46~47


희생을 굳이 사랑할 필요조차 없다희생은 두 번째 성정이 된다안주인은 아무 고민 없이 가장 작은 비프스테이크 조각을 먹고스테이크 양이 모두에게 충분하지 않다면 아예 먹지조차 않는다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원치 않아." ‘원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같다는 데 놀라는 사람은 없다그 자신도 물론이다마찬가지로 희생 이데올로기가 여성적 본성의 필연적인 부분이라고 스스로 되뇔 필요도 없다본인의 헌신과 너그러움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보편적인 원칙은 일상생활의 자동화만으로는 행동을 유도하기에 충분치 않게 되는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나 필요해지는 것이다. - P99


우리에게도 익숙하다밥상에서의 위계.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얘들아엄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지 않았어탕수육이 더 좋을 뿐.



이런 방식으로 가정 내에서 생산되는 서비스를 고려하면가족 소비의 회계적 계산 방식뿐 아니라 가족 생산-이런 서비스는 ‘자가생산되기 때문에ㅡ의 평가 방식도 크게 바뀌게 된다특히생산 차원에서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가족에 적용되는 ‘단위라는 용어의 의미에 문제를 제기한다이로써 우리는 경제적 제도로서의 가족이 갖는 내적인 기능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P106



흥미롭다. (잠시 쉬고) 계속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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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4-19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주인은 아무 고민 없이 가장 작은 비프스테이크 조각을 먹고, 스테이크 양이 모두에게 충분하지 않다면 아예 먹지조차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원치 않아.˝ ‘원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같다는 데 놀라는 사람은 없다. 그 자신도 물론이다>

아... 너무나 딥빡이 몰려오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휴..

햇살과함께 2024-04-19 09:56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빡치는 대목입니다….
 

가사노동 혹은 가정 내 노동

가사노동에 대한 문헌이 매년 점점더 풍부해지면서, 여러 ‘학파‘가 형성되기에이르렀다. 그러나 대부분이 여성인 저자들사이에는 가사노동의 주요한 경제적 특성에대한 공통의 합의가 존재한다. 하나는 가사노동이 노동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가사노동은 ‘고려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다른 한측면은 가사노동이 무료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를 노동으로 인정하는 일이 간단치않았고, 따라서 이는 학문적인 진일보이자발견이라 할 만하다. - P8

이 모든 지점은 분명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가사노동이라는 문제가 관심을 유발하고 많은 글과 책, 질문이 이를 다루었음에도근본적인 한 지점이 불명확하게 남아 있다. 바로 연구 대상인 가사노동의 정의 자체에대한 것이다. - P9

가사노동에 부여되는 경험적인 내용은 이에 대한 이론적인 해석과 무관할 수 없다. 만일 가사노동의 핵심적인 속성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졌더라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은 가사노동 관련 논쟁들이 다른 끝을 보지 않았을까 싶다. 이 동의란 연구 대상인 가사노동의 내용에 대해서 더는 경험적이지 않은, 형식적 정의를 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가사노동의 중요한 속성은 경험적인 연구대상을 구조적·경제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에만 발견될 수 있다. - P11

흔히 가사노동이 무료인 까닭은 생산적이지 않기 때문이고, 생산적이지 않은 까닭은 ‘가치체계에 들어있지 않아서‘, 다시 말 - P24

해 시장을 통하지 않아서라고 주장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그 자체로 빈약하며, 특히 생산성에 대한 정의를 아리송하게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비시장적인 생산들, 즉 생산자들이 직접 소비하는 결과물들이 생산적인 것으로서 집계되고 처리된다는 걸 방금 확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을 통하지 않거나 교환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가사노동의 지위를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국내총생산의 규칙대로라면 가사노동이 생산적임을 밝혀냈다. 부를 증가시키는모든 것을 생산적이라 정의하는 한, 이 규칙은 합당하다. 이런 견해에 따르자면 가사노동은 ‘가정 내 자가소비‘라는 항목에서 집계된 생산과 마찬가지로 생산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자가소비의 과정은 사실 최 - P25

종적인 소비에 이르는 모든 행위가 생산적이거나, 어떤 것도 생산적이지 않거나 둘 중하나여야 한다(「주적」 참조). - P26

따라서 우리는 엄청난환원 논리를 맞닥뜨린다. 이는 분명 이론적인 교착점이다. 직업노동과 농장에 대한 공식적이고 경제적인 정의가 없다.(이 둘은 상호 되먹임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한쪽이 정의를 갖지 못하면 다른 한쪽도 가질 수 없다.)또한 직업노동이 경제적 정의를 가지지 못하면, ‘가사노동‘을 이로부터 공식적으로 구분하는 특징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가사노동 역시 정의될 수 없다. 그래서 분명 서로되먹임 상태에 놓여 있는 이 두 용어는 정의 - P31

되지 않은 채, 자신들이 속해야 하는 경제적논리 속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별개의 개념이아니라 그저 서로 반대되는 경험적 대상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 P32

우리의 가설에서는 가사노동이 생산적이라 여겨지지 않으며 집계되지도 않는이유가 그것이 - 가사의 영역에서 -무료로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본다. 가사노동은보수를 지급받지 않고, 일반적인 방식으로교환되지도 않는다. 그 까닭은 이 노동을 구성하는 서비스의 성격(이 모든 서비스를 시장에서도 찾을 수 있다)이나 이를 제공하는사람의 특성(가정에서 무상으로 갈비를 굽는 여성이 다른 가정에서 같은 일을 하면 곧장 보수를 받는다) 때문이 아니라, 아내라는 - P35

이름의 노동자가 가정에서 그의 ‘주인‘과 맺는 계약의 특수한 속성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노동의 무보수성은 가사노동만이 아니라 자가소비를 위해 이루어지는 모든 일에도 해당한다. 어떤 저자들은 가사노동이 생산적이고 필수적이며 보수를 지급받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우리가 자가소비를 위한것이라고 칭하는 모든 가사노동생산 자체를 위한 모든 노동-이, 부당하게 보수를 얻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무료라고 결론지었다(Dalla Costa, James 1973). - P36

가사노동의 특징적인 생산 관계가 가사노동에만 해당하지 않고 혹은 가사노동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른 종류의 과업과 노동역시 특정 지으므로, 우리는 가정 내 노동이 - P46

라는 개념으로 가사노동의 개념을 대체하기를 제안한다. 연구 대상은 분명 사회학적이고 광범위한 의미의 집에서 무료로 실시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에 대한 잘못된 정의는, 더 정확하게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의와 기술적 정의 그리고 생산 관계 연구 사이의 모순은 연구에 한계를 불러왔다. 가사 내 모든 과업에 대한 임금 지급요구가 그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비록 한계를 가장 심각하게 드러내는사례는 아니나 이는 또 다른 문제다-라고할 수 있다. - P47

가족과 소비

듀발(Duvall 1957)의 유명한 문장인 "가족은 생산에서 소비로 이동했다"라는 말은 이러한 방식의 사유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겠다. - P56

소비라는 단어의 사용은 개인의 소비를 연구한다는 함의를 갖고 있다. 소비-모든 소비와 가계와의 관계를 관찰할 때는, 반드시 분배가 연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분배를 다룬 연구 문헌이 무척 적다는것을 알 수 있다. 관련 연구가 존재하지 않을뿐 아니라 해당 주제는 이론적 측면에서조차 다루어지지를 않았다. 마치 분배에 대한연구가 쓸모없기라도 한듯, 전부 금지되다시피 했다. - P64

한편 공동체, 합의체, 가족 소비에 깃함의는 고려되는 가족의 소득이 낮을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이런 믿음은 구체적인분석에 근거하지 않으며, 대신 불평등이 ‘최저 생계비‘와 관련되었을 때보다 ‘잉여‘와 관련되었을 때 인간적으로 덜 잔인하다는 도덕적 감정에 근거한다.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생각해낼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생각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이 감정은 소비라는 제한된 틀을 벗어난다. 엥겔스(Engels 1972)와 이후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49)가 노동자 가족 내의 위계에서, 위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고 그저 - P74

본질적인 ‘불행 속의 평등‘평등은 불행을완화하며 유일하게 이로부터 경험적 사실을해석해내게 한다-을 퇴색시킬 뿐인 ‘난폭함의 잔재‘만을 보았다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도덕적 감정은 또한 가족이라는 틀에서도 벗어난다. 마르크스주의 저자들은 소위 ‘생계형 사회 내부에서 마주치게 되는 위계를 계급 즉 착취로 해석하기를 거부했고, ‘재분배 권력‘이라는 기능주의적인 개념으로 완곡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잉여와 사회적 불평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경험적인발견이 아니라 잉여의 발생이 불평등의 등장을 설명한다는 도그마의 한 요소다(Terray1972). - P75

소비 격차는 사실상 관습이나 다름없다. 이는 관계된 사람들이 그 제약을 내면화하고 마치 즉각적인 행동처럼 재생산한다는뜻이다. 수많은 격언, 속담, 신념이 각자가맡은 역할의 내용을 가르치고 그 역할을 정당화한다. - P83

‘크고‘ ‘작은‘ 노동의 분류 기준은 그것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이의 지위에 따른다. 남성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큰‘일로 여겨지는 특정 노동은 어떤 지역에서는 여성의몫이다. 그리고 이때 이 일은 중요성을 잃는다. 성별화된 많은 노동 가운데 극히 일부를예로 들자면 감자캐기, 사역 동물 관리 등이있다. - P88

희생을 굳이 사랑할 필요조차 없다. 희생은 두 번째 성정이 된다. 안주인은 아무 고민 없이 가장 작은 비프스테이크 조각을 먹고, 스테이크 양이 모두에게 충분하지않다면 아예 먹지조차 않는다. 그는 이렇게말할 것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원치 않아." ‘원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같다는 데 놀라는 사람은 없다. 그 자신도 물론이다. 마찬가지로 희생 이데올로기가 여성적 본성의 필연적인 부분이라고 스스로 되뇔 필요도 없다. 본인의 헌신과 너그러움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보편적인 원칙은 일상생활의 자동화만으로는 행동을 유도하기에 충분치 않게되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나 필요해지는 것이다. - P99

이런 방식으로 가정 내에서 생산되는서비스를 고려하면, 가족 소비의 회계적 계산 방식뿐 아니라 가족 생산-이런 서비스는 ‘자가생산되기 때문에ㅡ의 평가 방식도크게 바뀌게 된다. 특히, 생산 차원에서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가족에 적용되는 ‘단위‘라는용어의 의미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로써 우리는 경제적 제도로서의 가족이 갖는 내적인 기능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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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1 : 주적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크리스틴 델피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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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의 사용가치가 사실상 교환가치로 환원될 수 있음에도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되는 것은 여성들의 ’생산‘이 아닌 ’경제 행위자로서의 여성들‘이 (교환의) 시장으로부터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가부장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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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유물론은 계급 차원에서의 사회적 대립에 대한 분석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때 계급은 생산 과정에서의 위치로 정의된다. 그러나 여성의 여성으로서의 상황에 대한 연구에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려 하면서도, 여성이 생산과 맺는 구체적인 관계에 대한 분석은 간단하고 완전하게 누락하고 말았다. 계급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 P6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노선의 존재는 결과적으로 운동에 방해물이 되는데, 이는 자명하게도 우연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의 목적은 여성들 자신에 의해서 해당 노선이 채택된 기제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며 여성억압에 자본주의 계급 이외의 객관적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는 주장에 추가적인 증거를 대기 위함도 아니다. 그저 마르크스주의 노선이 여성 해방을 객관적으로 방해하는 역할을 하며, 따라서 여성의 예속에 이해관계가 결부된 집단의 행위로 볼 수밖에 없고, 비과학적으로 이런 예속을 합리화하는 마르크스주의의 탈을 쓴 이론, 즉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말하는 정도로 충분하겠다. - P9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마르크스주의 노선을 하나하나 점검하려는 게 아니다. 이 절차는 다른 때에 행해지게 되겠지만, 당장의 목적은 지금 운동에 가장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데 있다. 바로 여성 억압의 유물론적 분석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 P10

앞서 언급한 글들은 여성 억압을 분석할 때 여성이 생산(재생산만이 아니라)에 참여하는 구체적인 내용에 집중한다. 이들은 가정 내 노동과 아이 양육에 주목하며 이를 생산적 과업이라고 분석한다. 그리하여 이 글은 마르크스주의 원칙에 근거한 급진적 페미니즘 분석의 배양토가 된다. 가정이 다른 무엇보다 자본주의적 착취를 간접적으로 옹호하고 그 경제적 기능은 간과하는 이데올로기를 ‘미래의 생산자들‘에게 교육하는 장소라고 여기는 유사 이론을 거부하는 이 글들은 가정이 여성에 대한 경제적 착취의 공간임을 조명한다. - P11

‘사회주의적‘ 사회를 비롯해, 현재 모든 사회는 자녀 양육과 가정 내 봉사라는 여성의 무급노동에 기초한다. 이 서비스는 남편이라는 개인과의 특정한 관계하에서만 제공된다. 이 서비스는 교환의 영역에서 배제되고, 따라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이 서비스는보수를 지불받지 못한다. 여성이 받는 수당은 제공한 노동과 독립적이며, 노동에 대한교환으로, 즉 임금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권리가 아니라 증여로 취급된다. 남편의 유일한 의무-그에게 이익이 되는것이 자명한는 아내의 필요를 충족시키는것으로, 달리 말하면 아내의 노동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 P13

우리는 이와 반대로, 여성들이 행하는 노동의 성격이 여성들의 생산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관계야말로 여성들의 노동이 가치의 세계에서 배제되었음을설명한다는 주장을 견지한다. (교환의) 시장으로부터 배제된 것은 경제 행위자로서의여성들이지 그들의 생산이 아니다. - P15

지배 계급이 생산적 노동이 자신의 지배 아래 있는 계급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 P17

전형적인 농민 경제에서는 가정 내에서 소비되는 재화의 상당량이 가정에서 생산된다. 가정이 스스로 생산한 결과물의 일부를 직접적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산물은 상품화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교환 가치와 사용 가치 간에 구분이 없는 것이다. 가족에 의해서 소비되는, 그렇기 때문에 사용가치를 갖는 재화는 시장에서 교환될 수도있기에 교환 가치 역시 갖는다. 한편 자가생산되지 않는 재화의 경우에는 시장에서 구매한 동등한 재화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 P25

요약하자면, 여성과 남성이 함께 만들어내는 사용 가치는 다음과 같다.
① 사용 가치는 사실상 교환 가치다. 여성과 남성은 소비와 교환에 필요한 우유, 달걀, 농작물 등을 생산해낸다. 얼마나 소비하고 얼마큼의 현금을 얻기를 원하느냐가 시장에 도달하는 생산물과 자가소비되는생산물을 결정한다.
② 사용 가치는 생산으로 집계된다.(국내총생산에 포함된다.)
③ ‘생산적‘인 사용 가치는 ‘비생산적‘ 즉 전적으로 가사노동에 의해 발생하는 사용 가치와 다르지 않다. - P29

노동의 무보수성이 노동의 성격에 의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여성들이 가정밖에서 이 노동을 제공하면 급여를 받는다는 데서 증명된다. - P32

외부의 노동은 가정 내 노동을 면제하기는커녕, 가정 내 노동에 해로운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따라서 여성의 자유는 약간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이중 노동을 제공한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 P43

제공한 노동과 무관하게 보상받기 때문에, 여성들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유일한 해결책은 더 부유한 남성에게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상향혼을 향한 경주는 여성 노동의 무가치성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 P51

결혼 관계에 깃든 노동 전유와 착취는 모든 여성이 경험하는 공통의 억압이다. - P54

앞선 논증에 비추어 보면 부르주아의아내를 부르주아라고 부르는 것은 플랜테이션 농장주의 노예를 농장주라고 부르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일상적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아내와 (여성) 노동자도 흔히 혼동된다. 이는 여성에 한해서는, 그들이 속한 계급이 때로는 계급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인 정의-생산에 대한 관계ㅡ에 의해, 때로는 아내를 남편의 재산 혹은 남편의 연장으로 보는 시각에 의해결정된다는 뜻이다. - P56

즉각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주장은 가부장제의 생산 및 재생산 체계를 총체적으로 파괴하지 않고는 여성 해방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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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0 : 서문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크리스틴 델피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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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정치경제학에서 다루어지지 않던, 비-경제로 정의된 가정 내 경제, 유산, 상속을,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된 가정 내 노동을 ‘발견‘하고, ‘성별’이라는 계급을 통해 가부장제에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연구할 출발점을 명료하게 알려준다. 계속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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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4-03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서문은 벌써 끝내신겁니까!! 꺅 >.<
저도 곧 시작할게요!

햇살과함께 2024-04-03 17:04   좋아요 0 | URL
80페이지에 판형도 작고 글자도 대빵 크구요^^ 날로 먹는 책 한 권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