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이혼

그러나 결혼으로의 입장도, 이로부터의 퇴장도, 사회학자들의 관련 연구도 결혼이라는 제도와 그 기능, 그 존재 여부를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결혼은 분명 제도다. 그렇다면 이혼도 그러하다. 이 제도는 규칙을 따르며, 법전화되었고, 사회적인 규범과 형법상의 통제 대상이다. 그리고 이혼은결혼이라는 제도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래된 미국 영화‘를 보면 자신이 머물고 있는 나라에서 주된 이혼 동기가 무엇이 - P99

냐고 묻는 여자 주인공에게 변호사는 ‘결혼‘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이혼의 필수적인 조건(그리고 영화 속 농담에 따르면 충분조건)그 이상인 결혼은, 제도적인 차원에서 이혼과 반대되지 않는다. - P100

결론을 내리자면, 이러한 노동의 무가치성은 결혼 관계로 인해 제도적으로 발생하며, 결혼 계약은 곧 노동 계약이다. 더구체적으로는 가장인 남편이 가정 내에서일어나는 노동 전체를 전유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이다. 남편은 가내공업이나 상업의경우처럼 모든 노동을 마치 자신의 소유인양 시장에 내다 팔 수 있게 된다. 이와 반대로 아내의 노동은 시장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노동력이 남편에 의해서 전유되는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혼 여성 가운데 삼분의 일가량은 가정 밖에서도 일을 한다. 이는 산업 생산과 이에 따른 임금노동이 - P104

확대되고 가정 내 생산, 가내공업, 상업 활동이 줄어드는 경향과 궤를 같이한다. 시장에서의)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이 가정 바깥에서 임금노동의 양태로 이루어지게 되고남성이 가내에서 생산한 상품이 아닌 자신의 노동력을 팔게 되면, 여성의 무료 노동은더는 상품 생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경우여성의 노동은 자가소비를 위한 생산, 즉 가정내 서비스와 아동 양육에 활용된다. - P105

아내가 밖에서 일을 할 때 남편의 허가를 내아야 하는 법이 1965년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들은 남편의 동의가있을 때 그리고 남편이 아내를 계속해서 필요로 하지 않을 때만 일을 한다. 남편의 허가가 필수라는 형태로 법률상에 규정되어 있었다가 사라진 노동력 완전 전유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가사노동 ‘의무‘는 법조문 어디에도 그 자체로는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집안일‘에 대한 여성의 기여는 일종의 현물 지급에 해당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만약 지참금도 수입도 없는 여성이 이 의무를 위반한다면 결혼이라는 계약에서 부정적으로-이 - P107

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기재되고 제재를받을 수 있다. 이혼은 그 제재 중 하나다. - P108

결혼이 여성 착취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여성들이 결혼해야 한다는압박을 받는다는 사실 역시 사유해보아야 한다. 이 압박은 물론 문화적, 관계-정동적, 물질-경제적 측면의 다양한 방면에서 작용한다. 이중 마지막 측면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관적으로물질-경제적 압박을 가장 중요하게 느끼지않는다 해도, 이러한 압력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독신 상태일 때와 혼인 상태일 때 여성이 도달할 수 있는 생활 수준의 간극을 비교함으로써 측정이 가능하다. 이때 우리는 - P109

모순을 맞닥뜨리게 된다. 한편으로 결혼은 제도적인 여성 착취의 공간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이 착취 때문에, 그들의 잠재적인 상황(기혼 여성뿐 아닌 모든 여성의 상황에 해당한다)이 너무나 열악한 나머지 여성들에게 결혼이 경제적으로 그나마 가장 나은 경력이 되는 것이다. 기존의 상황이나 잠재적인 상황이 열악하여 뒤이은 혼인 상태는 이를 더욱 악화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결혼의 필요성이 강화된다. 경제적 압력, 달리 말해 잠재적인 독신의 삶과 결혼한 삶의 생활 수준 사이에 존재하는격차는 계속해서 커질 뿐이다. - P140

이를 통해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다. 결혼한 동안에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동 양육은 여성의 ‘무상‘ 노동으로 이루어지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게다가 결혼 기간에는 남편이 단독으로 혹은 부부가 공동으로 책임졌던 재정적 부양이 이혼하면서는 전부 (혹은 대부분) 여성의몫으로 돌아간다. - P121

이 같은 관점에서, 결혼과 이혼 간의관계는 처음에 말했던 바와 약간 달라진다. 사실상 남편에 의한 여성 노동력의 전유는 결혼이 끝날 때-남편이 아동과 그 부양의 - P128

수혜자로 남는지 아닌지에 따라 부분적으로혹은 완전히 끝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혼 안에는 결혼이 지속하지 않는다. 반면에 아동 양육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이혼 상황은 여성들에게 재혼에 대한 강력한 경제적 동기로 작동한다. - P129

이 글이 보여주는 혹은 보여주고자 시도하는 것은, 부부뿐 아니라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서 전사회적이고 비정치적이며 ‘생물학적‘이고 ‘자연스러운’ 결합으로 여겨지는 어머니-자식 관계 역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착취를 기반으로 하며 또 이를 실현하는관계라는 점이다. 이 이데올로기가 은폐하는 정치적 현실을 폭로하고 따라서 그 목적을 밝히는 분석은 이데올로기의 역사적 필요 - P134

성을 이해하고, ‘어머니와 아이‘의 이미지가번성하고 외적으로 혹은 내재화를 통해 어디든 존재하게 되는 동력을 설명할 수 있도록한다. 이러한 분석은 이 이데올로기를 짜깁기하고 채색하려는 모든 시도를 드러내고, 함정-이 함정은 외부의 프로파간다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의무를 내재화함으로써발생하는 죄책감과 향수에서 비롯한다-을 비켜갈 가능성을 만들어낼 것이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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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4-25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도화된 수렁들 읽고 있는데 크리스틴 델피 이번에 네 권중 이 책이 가장 좋아요!!

햇살과함께 2024-04-25 19:43   좋아요 0 | URL
저는 3권요!! 4권은 앞 부분 사회학적 분석에 살짝 어려웠고요.
 

대물림
신분과 계급의 구분의 모호성
능력주의와 교육
재산 상속과 지위의 대물림
고유한 지위 없음
비-소지자, 비계승자

유산 상속: 공공연한 불리의 세습

그러나 대물림이라는 행위 자체는 이상하리만치 어디서도 연구되지 않는다. 연구의 스펙트럼 가운데 한쪽 끝은 특정한 사회적 집단(특히 ‘원시‘ 사회)에서 대물림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매우 자세하게 다룬다. 친족 중 누가 상속권자인지나 친족 간 상속의결과, 양태, 의식 등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대물림이 어느 정도까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지, 어떻게 해서 느슨해지거나 결국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지를 연구한다.
그러나 대물림이 ‘무엇‘이냐는 핵심 질문은 거의 건드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 P10

사회의 연속성이 곧 그 존재를 규정하고 그 존재가 추상적이라고 할 때, 결과적으로 사회에서 개인이 점유한 위치가 해당위치를 점유한 개인을 앞선다. 사회는 따라서 개인의 총체이기 이전에 위치의 총체다.
구체적인 집단이기 이전에 하나의 구조다. 구조 내에는 구조보다 한정적인 집단을 매개로 하여 사회적 위치 간의 관계, 따라서 개인간의 관계가 조직되어 있다. 구조의 실제적인 구성 요소는 매개가 되는 집단이지 개인의 위치가 아니다. 그리고 이 집단 내에서 개인의 위치가 실현된다. - P14

이 질문은 여태까지 대물림이 연구대상으로 사유되지 않았던 문제의 핵심이며, 더 나아가서는 세대 영입이라는 사회 문제를 둘러싼 사회학적이고 정치적인 움직임의 감추어진 토대이기도 하다. ‘누가‘ ‘어떤‘
집단에, ‘어떻게‘ 들어가는가? - P29

이미 보았듯이 민주화의 정도에 대한이론적이고 정치적인 논의는 오직 세대 영입의 방식만을 언급한다. ‘기회의 평등‘은 출생 배경이 특정한 기능, 사회적 위치, 집단에접근하는 데 끼치는 영향을 배격한다. 하지만 이는 구체적인 영역에 한정되어 있다. 대물림의 정당성은 그 행위 자체로가 아니라부분적으로만 문제가 된다. 즉, 대물림의 원칙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대물림이 관여하면 안 되는 영역 혹은 절차를 정함으로써 그행위를 한정하는 것이다. 이는 암묵적으로대물림이 정당하게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을지정하는 역할을 한다. - P33

여기에서 대물림 외부의 체계란 바로 교육이다. 이 연구는 흔히 계급 체계에 대한 비판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 체계 자체를 공격하지는 않는다. 이 같은 주장이 결국 어디로 수렴하겠는가? 이 주장은 출생 배경과 관련된요인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드러낸다. 즉, 이 능력주의적 체계 내부에서도 상류층 문화와 대학 문화의 수렴을 수단으로 하여 대물림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 P34

그러나 문화와 재산이라는 두 영역이자 절차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하지 않는가? 오늘날 우리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는 완전히 정당했던 관행을 경악과 공포를 담아 바라보곤 한다. 예를 들어서 행정직혹은 사법직을 매수하는 일이 그렇다. 이는 ‘돈의 힘‘이 사회 외적인 질서에 속하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속성‘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오히려 각 시점과 각 시대에 경제력으로구입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정의하는 건바로 사회다. 직위를 구입할 수 있다는 건 물려줄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아버지가 법관이었다는 이유로 아들이 법관이 되는 일은 불공정하다고 치부된다. 이 판단은 해당 직책에의 접근이 개인이 증명한 직책 수행능력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철학에 근거한다. - P41

그러나 이 철학은 정말로 우리 사회의 기능을 지탱하는 원칙이 맞는가? 먼 과거로 눈을 돌릴 필요도 없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장관직은 매수되고 대물림된다. - P42

구제도에서는 법관이 되고자 할 때 개인 재산을 필요로 했다. 직업이 어떤 접근 체계에 속하느냐는 직업의 성질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가특정한 직업을 매수 가능한 영역과 대물림되는 영역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이에 특정한 직업이 사실상 재산을 요하기 때문에 대물림된다고 보는 것 역시도 잘못된 생각이다. 어떤 직업을 갖기 위해 재산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사회가 그 대물림을 금지하지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와 상속이 결합한 많은 타협안이 등장하긴 했지만 말이다. 가령 전문직은 자본과 학위를 동시에 요구한다.) - P44

그러나 대물림을 연구한다면 모든 측면을 고려해야 하며, 일부만 취하거나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토록 자명한 과제는 지켜지지 않는다. 지금부터 살펴볼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대물림의 어떤 측면 혹은 함의가 자체적인 맥락에서 임의적으로 추출되었는지, 어떻게 그 부분들이 대물림 전체에 해당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는지를 살필 것이다. - P55

우선, 대물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상을 그 계승자만으로 한정하고 비계승자를무시할 수는 없다. 계승자의 존재는 비계승자의 존재를 함축하고 있다. 대물림은 이상보적인 두 위치의 합으로, 하나는 다른 하나없이 존재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대물림은이 두 위치를 만들고 그 차이를 만드는 움직임즉 차별화의 과정이다. 그리고 대부분의아이가 비계승자가 되는 건 아버지의 경작지 전체를 그들 중 한 명이 계승하기 위해 치르는 가장 구체적이고 경제적인 의미의 대가다. 상속의 평등 혹은 비-평등 여부는 아버지의 위치를 계승하지 못한 이들에게 분 - P71

명 매우 다른 상황을 초래하며, 이는 계승의일관성이라는 상수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아니라 바로 그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우리는 아버지가 점한 고유의 위치가 한 아들에게만 온전히 상속되고, 공동체에 남아있는 형제들은 ‘자영농‘이라는 명목상 농부의 지위를 가지는 경우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베아른 체계 공동체에서는 비계승자 개인들의 상황이 매우 달라진다. - P72

이 상태가 이들의 지위를 정의하고 구성하며, 그 지위는 바로 ‘고유한 지위 없음‘이라 말할 수 있다. - P78

대물림과 계급 내부의 구성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한 상황, 남편과 아내가 처한 상황을 일반 사회학에서는 ‘성의 범주‘라 부르고 가족사회학에서는 ‘역할‘이라 부른다. 그러나 명백히 보았듯 성의범주는 계급의 범주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계급 내 지위의 범주다. - P87

대물림은 하나의 움직임에서 생겨나는 불가분의 두 가지 효과의 총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적 위치의 대물림을 설명할 때 ‘안정성‘이라는 용어를 지양해야 한다. 또한 대물림이라는 명칭을 그 두 - P91

효과 중 하나로 한정하지도 말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대물림은 계급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나 계급 간 개인들의 움직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계급 자체의 구성에 작용한다. 바로 계급 ‘내부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대립된 범주와 지위의 존재 및 그생성에 관여하는 것이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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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 나는 여러 번 자신에게 물었다. 절대적인 남자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놓고 왜 여자들은 자신의 역사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을까? 자신들의 언어와 감정들을 지키지 못했을까?
여자들은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하나의 또다른 세상이 통째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자들의 전쟁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바로 이 전쟁의 역사를 쓰고자 한다. 여자들의 역사를. - P18

회상이란 지금은 사라져버린 옛 현실에 대한 열정적인, 혹은 심드렁한 서술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거슬러올라간 과거의 새로운 탄생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창작물이다. 사람들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삶을 새로 만들어내고 또 새로 ‘써내려간다. 있는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를 ‘보태고 있는이야기를 ‘뜯어고친다‘. 바로 이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경계해야 한다. 동시에 고통은 어떠한 거짓도 녹여내고 없애버린다. 고통은 너무나도뜨겁기에! 확신컨대, 간호사나 요리사, 세탁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꾸미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 이들은 신문이나 책따위에서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는다.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삶에서 뽑아낸 진짜 고통과 아픔을 들려준다. 많이 배운 사람들의 감정과 언어는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시간에 의해 다듬어지기 쉽다. 흔히들 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본질이 아닌 부차적인 것들에 쉽게 물든다. 영웅심 따위에 어떻게 퇴각했는지, 어떻게 공격을 감행했는지, 어느 전선에서 싸웠는지는 ‘남자‘의 전쟁에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그것이 아니라 ‘여자‘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듣고 싶었고,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 삶의 영역이 저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 P19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다..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게 여겨지는 곳. 그곳에선 역사보다 더 강력한무언가가 사람을 다스린다. 내 글의 폭을 넓혀야겠다. 전쟁에 대한 진실만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을 담은 책을 써야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던진 물음. ‘사람은 자신 안에 또다른 자신을 몇 명이나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 다른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까?‘ 이 물음을 이제 나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악은 분명 매혹적이다. 그리고 선보다 솜씨가 뛰어나다. 마음을 더 잡아끈다. 내가 전쟁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세계에 점점 더 깊이 빨려들어가는 사이, 다른 것들은 모두 빛을 잃고 흐릿해지며 시들해졌다. 거대하고 무자비한 세계다. - P23

고통에 귀를 기울인다. 고통은 지난한 삶의 증거이다. 다른 증거따윈 없다. 다른 증거 같은 건, 나는 믿지 않는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우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게 했던가.
나는 비밀에 직접 잇닿는, 비밀에 대한 최상의 정보인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삶의 비밀을 간직한 고통을. 모든 러시아문학은 고통에 대해 말한다. 사랑보다 고통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리고 사람들도 내게 고통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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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 가족이라는 위계 집단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
크리스틴 델피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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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혹은 가정 내 노동의 정의 부재 내지 잘못된 정

가정 내 소비에서의 위계를 무시한 가족을 소비단위정의하는 문제


이 모든 지점은 분명 연결되어 있다그러나 가사노동이라는 문제가 관심을 유발하고 많은 글과 책질문이 이를 다루었음에도 근본적인 한 지점이 불명확하게 남아 있다바로 연구 대상인 가사노동의 정의 자체에 대한 것이다. - P9


가사노동의 특징적인 생산 관계가 가사노동에만 해당하지 않고 혹은 가사노동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른 종류의 과업과 노동 역시 특정 지으므로우리는 가정 내 노동이라는 개념으로 가사노동의 개념을 대체하기를 제안한다연구 대상은 분명 사회학적이고 광범위한 의미의 집에서 무료로 실시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가사노동에 대한 잘못된 정의는더 정확하게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의와 기술적 정의 그리고 생산 관계 연구 사이의 모순은 연구에 한계를 불러왔다. 가사 내 모든 과업에 대한 임금 지급요구가 그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비록 한계를 가장 심각하게 드러내는 사례는 아니나 이는 또 다른 문제다-라고 할 수 있다. – P46~47


희생을 굳이 사랑할 필요조차 없다희생은 두 번째 성정이 된다안주인은 아무 고민 없이 가장 작은 비프스테이크 조각을 먹고스테이크 양이 모두에게 충분하지 않다면 아예 먹지조차 않는다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원치 않아." ‘원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같다는 데 놀라는 사람은 없다그 자신도 물론이다마찬가지로 희생 이데올로기가 여성적 본성의 필연적인 부분이라고 스스로 되뇔 필요도 없다본인의 헌신과 너그러움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보편적인 원칙은 일상생활의 자동화만으로는 행동을 유도하기에 충분치 않게 되는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나 필요해지는 것이다. - P99


우리에게도 익숙하다밥상에서의 위계.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얘들아엄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지 않았어탕수육이 더 좋을 뿐.



이런 방식으로 가정 내에서 생산되는 서비스를 고려하면가족 소비의 회계적 계산 방식뿐 아니라 가족 생산-이런 서비스는 ‘자가생산되기 때문에ㅡ의 평가 방식도 크게 바뀌게 된다특히생산 차원에서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가족에 적용되는 ‘단위라는 용어의 의미에 문제를 제기한다이로써 우리는 경제적 제도로서의 가족이 갖는 내적인 기능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P106



흥미롭다. (잠시 쉬고) 계속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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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4-19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주인은 아무 고민 없이 가장 작은 비프스테이크 조각을 먹고, 스테이크 양이 모두에게 충분하지 않다면 아예 먹지조차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원치 않아.˝ ‘원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같다는 데 놀라는 사람은 없다. 그 자신도 물론이다>

아... 너무나 딥빡이 몰려오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휴..

햇살과함께 2024-04-19 09:56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빡치는 대목입니다….
 

가사노동 혹은 가정 내 노동

가사노동에 대한 문헌이 매년 점점더 풍부해지면서, 여러 ‘학파‘가 형성되기에이르렀다. 그러나 대부분이 여성인 저자들사이에는 가사노동의 주요한 경제적 특성에대한 공통의 합의가 존재한다. 하나는 가사노동이 노동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가사노동은 ‘고려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다른 한측면은 가사노동이 무료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를 노동으로 인정하는 일이 간단치않았고, 따라서 이는 학문적인 진일보이자발견이라 할 만하다. - P8

이 모든 지점은 분명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가사노동이라는 문제가 관심을 유발하고 많은 글과 책, 질문이 이를 다루었음에도근본적인 한 지점이 불명확하게 남아 있다. 바로 연구 대상인 가사노동의 정의 자체에대한 것이다. - P9

가사노동에 부여되는 경험적인 내용은 이에 대한 이론적인 해석과 무관할 수 없다. 만일 가사노동의 핵심적인 속성에 대한 동의가 이루어졌더라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은 가사노동 관련 논쟁들이 다른 끝을 보지 않았을까 싶다. 이 동의란 연구 대상인 가사노동의 내용에 대해서 더는 경험적이지 않은, 형식적 정의를 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가사노동의 중요한 속성은 경험적인 연구대상을 구조적·경제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에만 발견될 수 있다. - P11

흔히 가사노동이 무료인 까닭은 생산적이지 않기 때문이고, 생산적이지 않은 까닭은 ‘가치체계에 들어있지 않아서‘, 다시 말 - P24

해 시장을 통하지 않아서라고 주장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그 자체로 빈약하며, 특히 생산성에 대한 정의를 아리송하게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비시장적인 생산들, 즉 생산자들이 직접 소비하는 결과물들이 생산적인 것으로서 집계되고 처리된다는 걸 방금 확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을 통하지 않거나 교환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가사노동의 지위를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국내총생산의 규칙대로라면 가사노동이 생산적임을 밝혀냈다. 부를 증가시키는모든 것을 생산적이라 정의하는 한, 이 규칙은 합당하다. 이런 견해에 따르자면 가사노동은 ‘가정 내 자가소비‘라는 항목에서 집계된 생산과 마찬가지로 생산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자가소비의 과정은 사실 최 - P25

종적인 소비에 이르는 모든 행위가 생산적이거나, 어떤 것도 생산적이지 않거나 둘 중하나여야 한다(「주적」 참조). - P26

따라서 우리는 엄청난환원 논리를 맞닥뜨린다. 이는 분명 이론적인 교착점이다. 직업노동과 농장에 대한 공식적이고 경제적인 정의가 없다.(이 둘은 상호 되먹임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한쪽이 정의를 갖지 못하면 다른 한쪽도 가질 수 없다.)또한 직업노동이 경제적 정의를 가지지 못하면, ‘가사노동‘을 이로부터 공식적으로 구분하는 특징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가사노동 역시 정의될 수 없다. 그래서 분명 서로되먹임 상태에 놓여 있는 이 두 용어는 정의 - P31

되지 않은 채, 자신들이 속해야 하는 경제적논리 속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별개의 개념이아니라 그저 서로 반대되는 경험적 대상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 P32

우리의 가설에서는 가사노동이 생산적이라 여겨지지 않으며 집계되지도 않는이유가 그것이 - 가사의 영역에서 -무료로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본다. 가사노동은보수를 지급받지 않고, 일반적인 방식으로교환되지도 않는다. 그 까닭은 이 노동을 구성하는 서비스의 성격(이 모든 서비스를 시장에서도 찾을 수 있다)이나 이를 제공하는사람의 특성(가정에서 무상으로 갈비를 굽는 여성이 다른 가정에서 같은 일을 하면 곧장 보수를 받는다) 때문이 아니라, 아내라는 - P35

이름의 노동자가 가정에서 그의 ‘주인‘과 맺는 계약의 특수한 속성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노동의 무보수성은 가사노동만이 아니라 자가소비를 위해 이루어지는 모든 일에도 해당한다. 어떤 저자들은 가사노동이 생산적이고 필수적이며 보수를 지급받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우리가 자가소비를 위한것이라고 칭하는 모든 가사노동생산 자체를 위한 모든 노동-이, 부당하게 보수를 얻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무료라고 결론지었다(Dalla Costa, James 1973). - P36

가사노동의 특징적인 생산 관계가 가사노동에만 해당하지 않고 혹은 가사노동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른 종류의 과업과 노동역시 특정 지으므로, 우리는 가정 내 노동이 - P46

라는 개념으로 가사노동의 개념을 대체하기를 제안한다. 연구 대상은 분명 사회학적이고 광범위한 의미의 집에서 무료로 실시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에 대한 잘못된 정의는, 더 정확하게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의와 기술적 정의 그리고 생산 관계 연구 사이의 모순은 연구에 한계를 불러왔다. 가사 내 모든 과업에 대한 임금 지급요구가 그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비록 한계를 가장 심각하게 드러내는사례는 아니나 이는 또 다른 문제다-라고할 수 있다. - P47

가족과 소비

듀발(Duvall 1957)의 유명한 문장인 "가족은 생산에서 소비로 이동했다"라는 말은 이러한 방식의 사유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겠다. - P56

소비라는 단어의 사용은 개인의 소비를 연구한다는 함의를 갖고 있다. 소비-모든 소비와 가계와의 관계를 관찰할 때는, 반드시 분배가 연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분배를 다룬 연구 문헌이 무척 적다는것을 알 수 있다. 관련 연구가 존재하지 않을뿐 아니라 해당 주제는 이론적 측면에서조차 다루어지지를 않았다. 마치 분배에 대한연구가 쓸모없기라도 한듯, 전부 금지되다시피 했다. - P64

한편 공동체, 합의체, 가족 소비에 깃함의는 고려되는 가족의 소득이 낮을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이런 믿음은 구체적인분석에 근거하지 않으며, 대신 불평등이 ‘최저 생계비‘와 관련되었을 때보다 ‘잉여‘와 관련되었을 때 인간적으로 덜 잔인하다는 도덕적 감정에 근거한다.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생각해낼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생각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이 감정은 소비라는 제한된 틀을 벗어난다. 엥겔스(Engels 1972)와 이후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49)가 노동자 가족 내의 위계에서, 위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고 그저 - P74

본질적인 ‘불행 속의 평등‘평등은 불행을완화하며 유일하게 이로부터 경험적 사실을해석해내게 한다-을 퇴색시킬 뿐인 ‘난폭함의 잔재‘만을 보았다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도덕적 감정은 또한 가족이라는 틀에서도 벗어난다. 마르크스주의 저자들은 소위 ‘생계형 사회 내부에서 마주치게 되는 위계를 계급 즉 착취로 해석하기를 거부했고, ‘재분배 권력‘이라는 기능주의적인 개념으로 완곡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잉여와 사회적 불평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경험적인발견이 아니라 잉여의 발생이 불평등의 등장을 설명한다는 도그마의 한 요소다(Terray1972). - P75

소비 격차는 사실상 관습이나 다름없다. 이는 관계된 사람들이 그 제약을 내면화하고 마치 즉각적인 행동처럼 재생산한다는뜻이다. 수많은 격언, 속담, 신념이 각자가맡은 역할의 내용을 가르치고 그 역할을 정당화한다. - P83

‘크고‘ ‘작은‘ 노동의 분류 기준은 그것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이의 지위에 따른다. 남성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큰‘일로 여겨지는 특정 노동은 어떤 지역에서는 여성의몫이다. 그리고 이때 이 일은 중요성을 잃는다. 성별화된 많은 노동 가운데 극히 일부를예로 들자면 감자캐기, 사역 동물 관리 등이있다. - P88

희생을 굳이 사랑할 필요조차 없다. 희생은 두 번째 성정이 된다. 안주인은 아무 고민 없이 가장 작은 비프스테이크 조각을 먹고, 스테이크 양이 모두에게 충분하지않다면 아예 먹지조차 않는다. 그는 이렇게말할 것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원치 않아." ‘원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같다는 데 놀라는 사람은 없다. 그 자신도 물론이다. 마찬가지로 희생 이데올로기가 여성적 본성의 필연적인 부분이라고 스스로 되뇔 필요도 없다. 본인의 헌신과 너그러움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보편적인 원칙은 일상생활의 자동화만으로는 행동을 유도하기에 충분치 않게되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나 필요해지는 것이다. - P99

이런 방식으로 가정 내에서 생산되는서비스를 고려하면, 가족 소비의 회계적 계산 방식뿐 아니라 가족 생산-이런 서비스는 ‘자가생산되기 때문에ㅡ의 평가 방식도크게 바뀌게 된다. 특히, 생산 차원에서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가족에 적용되는 ‘단위‘라는용어의 의미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로써 우리는 경제적 제도로서의 가족이 갖는 내적인 기능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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