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토요일 이자람 판소리 <노인과 바다>를 보러 LG아트센터에 갔다. 이 공연은 7월 중순에 부지런히 조기 예매한 것으로(나 말고 공연 예매 담당 남편이가^^) 예매할 땐 당연히 역삼아트센터인 줄 알고 예매했으나, 나중에야 LG아트센터가 10월으로 마곡으로 옮긴다는 걸 알았다. 남편은 일정상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고, 남편 대신 늙은 이모랑 항상 잘 놀아주는 큰 조카랑 함께 공연을 보았다. 마곡은 서울식물원 생기고 나서 1년에 1~2번 갔는데, 아직은 나무가 풍성하지 않아 좀 휑하지만 5, 10년 지나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식물원 옆 수변 산책코스도 좋고.


LG아트센터 건물이 그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라고 해서, 공연 전에 미리 가서 건물 구경도 좀 하려고 공연시간보다 일찍 만났다. 마곡나루역과 연결된 지하철입구에서부터 꽃봉오리처럼 벌렸다 오므리는 특이한 장식조명이 보이고(사진이 없네), 건물에 들어 서자마자 강한 향기가 난다. 오픈 기념으로 콜라보 개발한 우디 향이다. 투박하고 심플한 실내 디자인이 좋았다. 외관은 추워서 자세히 보지 못했다. 내년 봄에 서울식물원 갈 때 다시 그 매력을 살펴보아야지(건물 구경보다는 공연 보기 전 졸음을 물리칠 커피가 더 절박했다 ㅎㅎ).







7월초에 나의 출퇴근 메이트 책읽아웃에 이자람님이 신간 에세이와 함께 나와서 그 방송을 들으며 이자람이란 사람 참 멋있구나 생각했고, 판소리 공연도 궁금했었는데, 마침 내가 좋아하는 <노인과 바다>를 판소리로 한다니 반갑기 그지없었고, 12월까지 그 궁금함을 참느라.


판소리 공연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조카가 혹시 눈물이 날지 모르니 하며 손수건을 꺼내길래, ?? 하면서도 나도 가져온 손수건을 꺼내지 뭐 했는데.


공연시간이 되고, 이자람 님이 고수와 함께 나와서 공연 시작 전 인사말을 소리로 하는데, 왜 시작도 하기 전에 벅차오르며 눈물이 나려는 건지.. 조명 이외에 아무 장치도 없는 망망대해 같은 무대에 오로지 부채를 든 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만이 소리를 내는 모습만으로 삶의 고독이 진하게 느껴져서 인지.


물론 공연은 아주 재미있기도 하다. 눈물이 나다 가도 갑작스럽게 빵 터지는 웃음을 준다. 판소리는 관객과의 호흡이 중요한 장르라고 설명해 주면서 자진모리 장단에 함께 맞추는 연습도 하고, 박수도 치고, 감탄사도 연발하고, 대답도 주고받으며, 계속 추임새를 넣게 된다. 클래식 공연을 볼 때의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고독한 소리꾼의 삶과 망망대해의 어부의 삶이 겹쳐진다. <노인과 바다>를 선택했는지 알 것 같다. 판소리와 너무 잘 어울린다.


노인이 3일 밤낮을 청새치와 대치하는 장면에서,

나는 왜 이 힘든 어부가 되었을까? 외치고,

나는 왜 이 힘든 판소리를 계속 하는 걸까? 외치고.

하다가도, 갑자기 청새치를 어르기 위해 춘향전의 사랑가를 패러디한다. ㅎㅎ


소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판토마임을 하는 것처럼, 낚시줄에 미끼를 끼우고, 청새치와 대치하듯 힘을 주다 끌려가기도 하고, 작살로 청새치와 상어를 찌르고, 이런 다양한 동작들을 달랑 손에 든 부채 하나만으로 멋지게 표현한다.


판소리에서 고수의 역할도 좋다. 북을 치면서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추임새를 계속 넣으면 소리꾼을 격려해 준다. ‘잘한다’ ‘아이구 잘한다를 연발하며. 너무 좋다. 혼자인 것 같지만 혼자이지 않다.


2시간의 공연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다.


공연이 끝나고 기립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이 공연은 다시 볼 것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노인과 바다>를 더욱 나의 인생책으로 만들어준 공연이다.










공연 본 후 전통 판소리도 너무 궁금해져서 검색해 보다가 1231일에 하는 안숙선 명창의 만정제 춘향가송년판소리 공연이 있어서 이것도 예매했다. 그런데 이 공연은 120분도 아니고 180분도 아니고 무려 210분이다! 앉아있기도 힘든 시간인데 이 시간 동안 홀로 소리 공연을 하신다고! 무려 일흔이 넘으셨는데!


출처: 국립극장 홈페이지


공연 이후 고픈 배는 닭갈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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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2-19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LG아트센터 다니면서도 건축가는 신경도 안 썼는데^^; 이자람님 근황에, 치즈 잔뜩 올라간 닭갈비 사진에 종합선물세트같은 포스팅 감사드려요^^

햇살과함께 2022-12-19 13:39   좋아요 0 | URL
얄라알라님 자주 가셨군요~
치즈 듬뿍 닭갈비는 맛없을 수 없는 메뉴죠^^

Falstaff 2022-12-19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솔이가 이렇게 잘 커서 이제 세계적으로 판소리 판을 깔아버리는 인물이 됐으니 그저 좋습니다. 언제나 ˝네˝하고 대답할 거 같았는데요. ^^

햇살과함께 2022-12-19 15:11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예솔이가 이렇게 멋지게 자라서 너무 좋네요^^

stella.K 2022-12-19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그럼 역삼은 그대로 잘 있는 건가요?
저도 LG 아트센터가 마곡에 있는 줄 몰랐네요.
근데 마곡이 서울에 있나요?
궁금하네요. 판소리 노인과 바다. 이제 예솔이도 제법 나이들어 보이네요.

햇살과함께 2022-12-19 21:34   좋아요 1 | URL
아니요 없어졌어요~ 마곡으로 옮겼어요. 마곡지구는 김포공항 근처에요 LG계열사들 많이 옮겼어요 노인과 바다 강추합니다 기회되심 꼭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