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앤터니 비버 지음, 김원중 옮김 / 교양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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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혁명운동사에서 소비에트를, 그리고 스탈린주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전세계 인민들에게 유토피아와 악몽을 동시에 주었던 그 공과 과를 과연 누가 평가할 수 있을까..

 

스페인 내전의 경과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점은 프랑코의 칼이 공화국을 둘로 가르고 마침내 그 심장에 칼을 꽂기 전에 이미 공화국은 내분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무정부주의 vs. 공산주의.. 파시즘의 위협 앞에서 공화국을 수호해야 하는 절대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어느 노선이 옳았는가에 대한 답을 앤터니 비버는 교묘히 피해간다. 패자에 대한 감정적 연대 속에서 공산당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심지어 혁명을 위해 함께 싸웠더 과거의 동지들로부터 무장해제를 당하거나 심지어 반역죄와 같은 무고죄로 처형당해야 했던 아나키스트들에게 좀 더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듯 하지만, 아나키스트의 낭만주의적 전술이 1930년대 당시의 현대전에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다는 점도 공정하게 기술하고 있다..

어쩌면 저자에게 역사란, 그가 인용하는 W. H. Auden의 말처럼, "패자에게 "아, 가엾어라!"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패자를 돕거나 용서할 수는 없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당연히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의 소위 '민주주의 국가'들의 불간섭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해둘 필요가 있다.. 물론 저자 역시 이 부분을 몇 차레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부분은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

뭇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 파시스트 병사들의 노골적인 개입,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서 실질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독일 콘도르 군단(비행대)와 같은 화려한 팀플레이에 비해, 서구의 '소위' 민주주의 국가들은 공화국의 운명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당시 그들이 진정 두려워했던 것은 <파시즘>이 아니라 <공산주의>였기 때문일까.. 아니, 프랑코적인 권위주의 체제가 그들의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에 더 들어맞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내전은, 그것도 이념의 충돌에 의해 빚어지는 내전은, -누가 승리하든-, 그 사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생채기를 낸다.. 스페인, 한국, 칠레.. 이 나라들은 모두 근대사에서 내전과 그에 버금가는 쿠데타를 겪었고, 그 상처는 민주주의로의 이행 이후에도 아물지 않은 채 계속해서 고통을 주고 있다.

몇 개월째 지속되는 촛불집회, 그리고 이를 저지하고자 나선 정체불명의 <반촛불집회>(태극기집회?)를 보며 그런 생각이 부쩍 들었다.. 얼마 전 심지어 군대에 <궐기?>를 호소하는-한 마디로 쿠데라를 권유하는 <반촛불집회> 참가자들의 무시무시한 선동을 보면서 그들의 행동을 단지 <광기>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들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레드 컴플렉스>, 그리고 그 공포를 밑바닥에서 만들어내는 감정의 구조에 대해 우리 사회가 깊이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러한 감정의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는 양자 사이의 이성적인/합리적인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절망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탄핵이 되든, 되지 않든 이 사회의 분열의 고랑은 당분간 메워질 수 없을 것 같다.. 따라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그 밑바닥의 감정의 구조를 밝혀내고, 이를 통해 이해의 가능성을 넓히는 것이 학문의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선의>를 이야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물론 그 어려운 분석 작업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다..  방법론조차도 떠오르지 않는다.. 공동작업이 아니면 불가능할텐데.. 과연 선입견을 버리고 선뜻 시작할 사람들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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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감정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3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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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제주도로 떠나는 길에 꺼내든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2월 26일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읽고 있다..

 

왠지 굉장히 오랫동안 집을 떠난 듯한 느낌이다..

그 사이에 줄곧 뭔가 다른 책을 꺼내 읽기도, 또 간단한 필드조사를 하기도 했지만, 제발트의 이 책은 끝내 읽지 못하다가, 오늘 왠지모를 의무감때문에 다시 꺼내들어 읽었다..

제발트의 이 여행기는 홀로 떠나는 여행자/방랑자가 플랫폼에서 전차를 기다리며, 혹은 기차 안에서 지나가는 풍경에 지겨울 때쯤 꺼내 읽는다면, 훨씬 몰입도가 높았겠지만..

이번 내 여행은 거의 모두 동행들이 있었기 때문에-더구나 연일 저녁이면 벌어졌던 술자리의 후유증 때문에- 사실 한낮에 한가로이 책을 꺼내들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왁자지끌한 여행과 제발트라니 얼마나 어울리지 않은 조합인가..

 

나로서는 <아우스터리츠>-<공중전과 문학>-<토성의 고리들>에 이어 네번째 접하는 제발트의 작품이지만, <현기증. 감정들>은 이전의 저작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소름끼치는 메시지 혹은 감각적 떨림같은 것은 없었다..  

1813년 스탕달의 이탈리아 여행, 1913년 카프카의 이탈리아 여행..,

그리고 제발트 자신의 1987년 이탈리아 여행.. -2013년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과,

30여년간 떠나 있던 고향으로의 여행-귀향

이라는 네 개의 성좌를 카프카의 짧은 소설, <사냥꾼 그라쿠스>의 모티브를 통해 연결시키려는 제발트의 집요한, 그리고 꽤 성공적인 시도에는 나름의 평가를 보낼 수 있겠지만, 그런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지적 즐거움을 과연 어느 수준의 독자가 향유할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어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는 모임에서 잠깐 나왔던 이야기지만..

<율리시스>는 이미 조이스 자신이 상정한 아주 극소수의 독자를 위한 작품일 지도 모르겠다는..

그런데 그 극소수의 독자들과 자신을 위해 천 페이지가 훌쩍 넘는 이 난해한 작품을 쓴다는 행위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이야말로 <모더니즘>의 기획이라고 해야겠지만..

세계사에서, 그리고 사상사에서 모더니즘의 출현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는 뜬구름같은 생각이 얼핏 들었는데..

제발트 역시 그 계보에 속하는 것일까..

<1913년>에 대한 의미부여에서 그 혐의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긴 한데.. 

 

1913년은 특별한 해였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때였으며, 점화된 불꽃이 풀숲 사이를 미끄러지는 뱀 모양의 도화선을 따라 불안한 섬광을 발했다. 지상의 모든 장소에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격하게 피어올랐다.

 

....

 

그럼에도 역시 줄을 긋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들.. 

 

우리가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인물은 항상 간절함이 사라진 다음에야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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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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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바뀌었지만, 내가 페소아를 알게 된 것은-안다는 것의 의미가 좀 더 분명해져야 겠지만-

안토니오 타부키를 만난 이후였다.. 이탈리아인이었던 타부키는 페소아와, 그가 살았던 도시 리스본에 매료되었고, 페소아가 남긴 글들을 번역하면서, 리스본을 무대로 한 소설들을 써내려갔다..

타부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페소아는, 어딘지 몽환적이었고 마치 타부키의 작품에 드리워진 아우라같은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내 서가에는 세 권의 페소아가 들어와 앉아 있지만, 이 책들 모두 한동안 먼지만 쌓인 채 꽂혀 있었다..

까치에서 번역되어 나온 축약본

배수아의 독어 번역판

그리고 문동의 포르투칼어 번역판..

 

아무래도 단장으로 이루어진 글이라, 책상 앞에 앉아 있기에는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 명절때 틈틈이 읽어볼까 하고 오랜만에 꺼내보았지만, 역시 이래저래 분주한 명절과 페소아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루종일 그의 평생의 업이었던 문학과는 전혀 관계 없는 사무실 책상에서 일하다가 하숙집(단칸방)에 돌아와, 책상에 앉아 지친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독백같은 문장들로 짜여진 이 텍스트는 아무래도 여느 소설책들처럼 읽어내려가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직접 만나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겠지만, 결코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틈 같은 것을 줄 것 같지 않은 이 고독한 독신의 시인/소설가가 늦은 밤 자신에게 나긋나긋하게 말을 거는 듯한 이 작품을 읽다보면 가끔, 아니 종종 보석같은 구절들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졌다고밖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내가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마음 깊이 절실히 느끼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낌을 가지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생각을 가지고 느끼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에게는 느끼는 것이 사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살지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고, 느끼는 것은 생각을 키우는 양식이다.

 

모든 환상과 환상에 속한 모든 것-환상을 잃어버림, 환상을 갖는 일의 부질없음, 결국은 잃어버리기 위해 환상을 가져야 하기에 미리 느끼는 피곤함, 환상을 가졌던 것에 대한 후회, 그렇게 끝날 걸 알면서도 환상을 가졌던 자신의 지성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인한 피로.

삶의 무의식에 대한 자각은 지성에 부여된 가장 오래된 세금이다. 영혼의 섬광, 이해의 흐름, 불가사의와 철학 등은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지성이다. 이들은 신체의 반사작용과 비슷해서 간과 신장이 분비물을 내듯 저절로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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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 - 미국이 낳은 열병의 정체
모리모토 안리 지음, 강혜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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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리모토 앙리의 <반지성주의>를 읽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부터 계속 반지성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겨서, 이런저런 책들을 검색하다가, 지난 가을 일본에 갔을 때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었는데, 중반까지 읽다가 조금 지루해져서 덮었던 책이었다..

일본 평단의 요란한 관심에 왠지모를 궁금증이 일기도 했었는데..

번역본이 나온 것에 감사하며 어제 밤 내내 편안히 읽었다..

 

책을 완독한 후의 느낌은..

일본 평단 혹은 매스컴의 요란한 말들은 다소 과장이고..

다만, 미국 사회에서 반지성주의가 출현하게 된  배경으로 미국 사회의 개신교가 갖는 독특함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개설서같은 느낌이었다.. 

  

호프스태터의 <미국사회의 반지성주의>가 아직 번역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이처럼 개설서와 같은 느낌의 일본 책이 나오는 한국의 출판시장이 흥미로웠고.. 이러한 상황은 지성intellect의 맥락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요지는 단순명료하다..

1. 반지성주의란 "지성 자체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지성이 세습적인 특권적 계급의 소유물이 되는 것에 대한 반감"과 같은 것으로, 종교적 확신을 근거로 한 철저한 평등관이 지배적인 미국 사회의 특유한 정신구조라는 것.. 

2. 종교적 기득권층(공정교회)에 대한 반감은 침례파나 감리교 등 소수파 기독교와 세속적 합리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완전히 비종교적인 계몽주의의 합리적 정신과 경건한 복음주의의 뜨거운 신앙심이라는 기묘하지만 무척이나 강한 연대가 <정교분리>라는 독특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

3. 이러한 종교적 기득권에 대한 반감이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크게 보면) 4차에 걸쳐 나타난 신앙부흥(리바이벌리즘)으로 이어졌으며, 이 리바이벌리즘에 비즈니스적 실용주의가 더해진 것이 미국 사회의 반지성주의의 원형이라는 것..

이다..

 

물론 이는 철저히 현상적인 분석이며, 미국 사회 반지성주의의 종교적 기원을 잘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나름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다음 과제는 이러한 선택적 친화가 왜 발생했는가, 즉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일 것이며, 또 그러한 종교적 기원이 미국의 반지성주의의 모든 면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규명일 것이다..  

또한 미국사회의 반지성주의를 미국 예외주의의 부산물로 단정지어버리기보다, 미국 사회의 반지성주의와 일본, 혹은 한국의 반지성주의는 어떠한 지점에서 서로 결을 같이 하며, 또 어떤 점에서 특수한 것인지.. 그리고 그 특수성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지, 적어도 일본 사회의 맥락 속에서 분석해냈다면, 한국 사회의 반지성주의를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여전히 이 부분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유교적 앎이 통치의 근간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식민지, 포스트 식민지, 그리고 최근의 글로벌화의 파고 속에서 흔들리면서, 전 사회에서 지성의 힘이 소멸해가고 있는(심지어 지성의 상징이라는 대학의 교수 임용도 영어 경시대회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를 <반지성주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러한 반지성주의가 출현하게 된 배경들은 무엇일까..

 

아니, 오히려 호프스태터가 예리하게 지적한 것처럼, 반지성주의 자체도 지성의 권력화에 대한 일종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지성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지성을 스스로 값싸게 팔아버리고 있는, 혹은 그 현실을 수수방관하며 "내가 어쩔 수 있겠나"며 체념하면서 그 경향에 동조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상황은 도대체 뭐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몇 년전부터 일본 사회에서는 그나마 반지성주의에 대한 하나의 담론이 형성되면서, 그 수준이 어찌됐건 사회 일각에서 조금씩이나마 논의가 이루어지는 듯 하다.. 하지만 글로벌, 혹은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에 영혼을 팔아넘기면서 스스로 지성을 포기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아카데미는 현재의 위기에 대한 자각마저 결여하고 있다..

 

이 도저한 <비지성주의> 앞에서 글 쓰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참담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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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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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우스터리츠>, <공중전과 문학>에 이어 읽은 제발트의 세 번째 책..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쉼없이 계속 <토성의 고리>를 읽었다..

오늘 집을 나서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꺼내들고 나온 책이었다..

그러고보니 지난 가을에 읽다가 중도에 그만 둔 기억이 난다.. 왜 멈춰섰던 것일까.. <폐허>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글을 쓰다가 아무래도 제발트의 글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꺼내들었다가, 다른 바쁜 일들에 밀려 한동안 펴보지 못한 채, 책상 앞 책꽂이에 그대로 놓아둔 것 같다..

먼지가 부옇게 쌓여 있다..

4장까지 읽은 흔적은 나는데, 앞부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갈까 하다 5장부터 읽기 시작.. 언젠가 다시 읽을 날이 또 오겠지..

버스 차창으로 펼쳐지는 눈이라도 내릴 듯한 음산한 겨울 풍경과 제발트의 소설은 왠지 썩 나쁘지 않은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토성과 발터 벤야민의 삶을 엮어 꽤 흥미로운 스케치를 해낸 수전 손택의 에세이를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제발트 역시 토성과에 속하는 인물..

문장 곳곳에 멜랑콜리의 검은 담즙이 배어나온다.. 제발디언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 역시 아마 거기에 있겠지.. 나는 제발디언은 아니기에 이 책의 모든 장들이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래도 낯선 영국 지역에 대한 여행의 기록을 다루는 장들은 조금 지루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마주친 어떤 사물/풍경에 정신을 빼앗기면서, 거기서부터 자유연상이 전개되는, 그의 독서의 기록을 다루는 5장, 6장은 낯설면서 아름다웠다.. 

 

5장은 여행지의 한 호텔방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로저 케이스먼트의 다큐멘터리로부터 시작해서, 콘래드로, 그리고 케이스먼트로, 다시 콘래드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케이스먼트와 콘래드의 연결고리는 그들이 만났던 콩고였다. 콘래드는 탐욕으로 타락해가는 콩고의 유럽인들 가운데 오직 케이스먼트만을 올곧은 사람으로 여겼다고 한다- 콩고의 열대에서 암흑의 핵심을 보아버린 콘래드에게 벨기에 왕국의 수도인 브륏셀의 화려한 풍경은 "검은 시신더미 위에 솟아오른 묘비"와 같은 것이었으리라.. 브륏셀 거리의 행인들에게서 콩고의 어두운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콘래드의 시선을 의식하며, 오늘날까지 콩고 식민지를 서슴없이 약탈하던 시대의 낙인이 찍힌 특정한 살롱들의 섬뜩한 분위기와 주민들의 눈에 띄는 기형에서 드러나는 특이한 추함을 목도하면서-이러한 기형은 그들이 자행한 폭력과 식민주의의 죄과라는 것일까-, 19세기 유럽 제국주의의 추악한 면모를 기록하는 제발트의 음울한 기술은 읽는 이들의 마음에 비통함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한다..

 

로저 케이스먼트의 생에 대한 간략한 역사도 특기할만한 것이다.. 케이스먼트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예전 마이클 타우직의 푸투마요 인디언 사회에 대한 섬뜩한 민족지에서 처음 접한 적이 있었다.. 타우직 역시 푸투마요 인디언에 대한 케이스먼트의 리포트로부터 폭력과 폭력에 저항하는 문제에 대한 사유를 풀어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제발트는 영국의 외교관이었던 그의 반제국주의적 성향이 점차 자신의 조국이자 고향인 아일랜드의 식민지적 상황에 대한 각성과 독립운동으로, 그리고 결국 독립운동이 무위로 끝난 채 체포되어 반역죄로 교수형에 처하게 되는 그의 비극적 일대기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체포된 케이스먼트의 가택수색 과정에서 동성애 관계가 기록된 일기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 일기의진위여부를 둘러싸고 영국 측의 흑색선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한동안 제기된 적도 있지만-실제로 아일랜드 측은 독립투사인 그가 제국의 오염된 악의 산물인 동성애에 빠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그 일기는 나중에 케이스먼트가 쓴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 대해 제발트는 오히려 "이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바로 케이스먼트의 동성애가 그에게 사회계급과 인종의 벽을 넘어서 권력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억압과 착취, 노예화와 불구화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주었다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정치적 입장(지지/반지지)에 상관없이 소수문학의 힘에 대한 인정이라는 점에서 그의 평가는 정당하다고 생각된다..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낯선 여행의 기록을 남길만한 여력이 지금의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 그런 공간이 나에게 허여되어 있기는 한 것일까..  

 

  

여전히 대부분 기록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식민주의의 역사를 통틀어 이른바 콩고의 개발보다 더 어두운 장(章)은 없다. 1876년 9월에는 지극히 선량한 의도가 선포되고 모든 민족적, 사적 이익을 제쳐둔다고 선언되는 가운데, 아프리카 연구와 문명을 위한 국제협회가 창립된다. 사회 전영역의 최고 인사들, 상류 귀족과 교회, 학계, 경제 및 금융계의 대표자들이 창립총회에 집결하고, 이 모범적인 기업의 후원자인 레오폴드 왕은 인류의 벗들이 오늘 더할 나위 없이 고상한 목적을 위해, 다시 말해 지금까지 문명의 은총을 받지 못한 지구의 마지막 부문의 희망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고 선언한다. 이어서 레오폴드 왕은 여전히 여러 민족들이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어둠을 부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이 세운 기획이야말로 진보의 세기를 비로소 완성으로 이끌 십자군의 기획이라고 강조한다. 이 선언문에서 표현된 드높은 대의가 이후 날이 갈수록 퇴색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885년 콩고자유국 군주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된 레오폴드는 이미 이때부터 누구 앞에서도 책임을 질 의무가 없는 단독 지배자로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강 유역 백만 제곱마일을 포괄하는, 다시 말해 모국보다 면적이 백배나 큰 영토를 마음대로 통치하고, 이 땅의 무한한 자원을 가차없이 착취하기 시작한다. 착취의 도구는 콩고 상업주식회사와 같은 무역회사드인데, 이 회사가 오래지 않아 획득한 전설적인 이득은 모든 주주와 콩고에서 활동한 모든 유럽인에 의해 승인된 강제노동체계와 노예체계에 바탕하고 있다. 콩고의 여러 지역에서 원주민 인구는 강제노역으로 급격히 감소하고,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과 대서양 너머에서 강제로 끌고 온 사람들도 이질과 말라리아, 천연두, 각기병, 황달, 기아, 기력소진과 쇠약으로 집단사망한다. 1890년에서 1900년까지 매년 50만 명의 이름없는 사람들, 어느 연감에도 기록되지 않은 희생자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에 콩고 철도회사의 주식은 320 벨기에 프랑에서 2850 벨기에 프랑으로 급등한다.

오스텐드에 도착하자마자 마르그리트 보라도브카가 사는 브뤼셀로 떠난 코르제니오프스키는 이제 날이 갈수록 거창해져가는 벨기에 왕국의 수도를 검은 시신더미 위에 솟아오른 묘비처럼 느낀다. 거리의 행인들도 그의 눈에는 저마다 콩고의 어두운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실제로 벨기에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콩고 식민지를 서슴없이 약탈하던 시대의 낙인이 찍힌, 특정한 쌀롱들의 섬뜩한 분위기와 주민들의 눈에 띄는 기형에서 드러나는 특이한 추함이 발견되는데, 이런 종류의 추함은 다른 데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쨌든 나는 나는 1964년 12월 브뤼셀을 처음 방문했을 때, 다른 곳에서는 일 년 동안 볼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곱사등이와 정신병자를 보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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