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감정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3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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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제주도로 떠나는 길에 꺼내든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2월 26일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읽고 있다..

 

왠지 굉장히 오랫동안 집을 떠난 듯한 느낌이다..

그 사이에 줄곧 뭔가 다른 책을 꺼내 읽기도, 또 간단한 필드조사를 하기도 했지만, 제발트의 이 책은 끝내 읽지 못하다가, 오늘 왠지모를 의무감때문에 다시 꺼내들어 읽었다..

제발트의 이 여행기는 홀로 떠나는 여행자/방랑자가 플랫폼에서 전차를 기다리며, 혹은 기차 안에서 지나가는 풍경에 지겨울 때쯤 꺼내 읽는다면, 훨씬 몰입도가 높았겠지만..

이번 내 여행은 거의 모두 동행들이 있었기 때문에-더구나 연일 저녁이면 벌어졌던 술자리의 후유증 때문에- 사실 한낮에 한가로이 책을 꺼내들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왁자지끌한 여행과 제발트라니 얼마나 어울리지 않은 조합인가..

 

나로서는 <아우스터리츠>-<공중전과 문학>-<토성의 고리들>에 이어 네번째 접하는 제발트의 작품이지만, <현기증. 감정들>은 이전의 저작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소름끼치는 메시지 혹은 감각적 떨림같은 것은 없었다..  

1813년 스탕달의 이탈리아 여행, 1913년 카프카의 이탈리아 여행..,

그리고 제발트 자신의 1987년 이탈리아 여행.. -2013년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과,

30여년간 떠나 있던 고향으로의 여행-귀향

이라는 네 개의 성좌를 카프카의 짧은 소설, <사냥꾼 그라쿠스>의 모티브를 통해 연결시키려는 제발트의 집요한, 그리고 꽤 성공적인 시도에는 나름의 평가를 보낼 수 있겠지만, 그런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지적 즐거움을 과연 어느 수준의 독자가 향유할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어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는 모임에서 잠깐 나왔던 이야기지만..

<율리시스>는 이미 조이스 자신이 상정한 아주 극소수의 독자를 위한 작품일 지도 모르겠다는..

그런데 그 극소수의 독자들과 자신을 위해 천 페이지가 훌쩍 넘는 이 난해한 작품을 쓴다는 행위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이야말로 <모더니즘>의 기획이라고 해야겠지만..

세계사에서, 그리고 사상사에서 모더니즘의 출현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는 뜬구름같은 생각이 얼핏 들었는데..

제발트 역시 그 계보에 속하는 것일까..

<1913년>에 대한 의미부여에서 그 혐의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긴 한데.. 

 

1913년은 특별한 해였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때였으며, 점화된 불꽃이 풀숲 사이를 미끄러지는 뱀 모양의 도화선을 따라 불안한 섬광을 발했다. 지상의 모든 장소에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격하게 피어올랐다.

 

....

 

그럼에도 역시 줄을 긋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들.. 

 

우리가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인물은 항상 간절함이 사라진 다음에야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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