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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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바뀌었지만, 내가 페소아를 알게 된 것은-안다는 것의 의미가 좀 더 분명해져야 겠지만-

안토니오 타부키를 만난 이후였다.. 이탈리아인이었던 타부키는 페소아와, 그가 살았던 도시 리스본에 매료되었고, 페소아가 남긴 글들을 번역하면서, 리스본을 무대로 한 소설들을 써내려갔다..

타부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페소아는, 어딘지 몽환적이었고 마치 타부키의 작품에 드리워진 아우라같은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내 서가에는 세 권의 페소아가 들어와 앉아 있지만, 이 책들 모두 한동안 먼지만 쌓인 채 꽂혀 있었다..

까치에서 번역되어 나온 축약본

배수아의 독어 번역판

그리고 문동의 포르투칼어 번역판..

 

아무래도 단장으로 이루어진 글이라, 책상 앞에 앉아 있기에는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 명절때 틈틈이 읽어볼까 하고 오랜만에 꺼내보았지만, 역시 이래저래 분주한 명절과 페소아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루종일 그의 평생의 업이었던 문학과는 전혀 관계 없는 사무실 책상에서 일하다가 하숙집(단칸방)에 돌아와, 책상에 앉아 지친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독백같은 문장들로 짜여진 이 텍스트는 아무래도 여느 소설책들처럼 읽어내려가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직접 만나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겠지만, 결코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틈 같은 것을 줄 것 같지 않은 이 고독한 독신의 시인/소설가가 늦은 밤 자신에게 나긋나긋하게 말을 거는 듯한 이 작품을 읽다보면 가끔, 아니 종종 보석같은 구절들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졌다고밖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내가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마음 깊이 절실히 느끼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낌을 가지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생각을 가지고 느끼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에게는 느끼는 것이 사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살지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고, 느끼는 것은 생각을 키우는 양식이다.

 

모든 환상과 환상에 속한 모든 것-환상을 잃어버림, 환상을 갖는 일의 부질없음, 결국은 잃어버리기 위해 환상을 가져야 하기에 미리 느끼는 피곤함, 환상을 가졌던 것에 대한 후회, 그렇게 끝날 걸 알면서도 환상을 가졌던 자신의 지성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인한 피로.

삶의 무의식에 대한 자각은 지성에 부여된 가장 오래된 세금이다. 영혼의 섬광, 이해의 흐름, 불가사의와 철학 등은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지성이다. 이들은 신체의 반사작용과 비슷해서 간과 신장이 분비물을 내듯 저절로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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