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 미국이 낳은 열병의 정체
모리모토 안리 지음, 강혜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모리모토 앙리의 <반지성주의>를 읽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부터 계속 반지성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겨서, 이런저런 책들을 검색하다가, 지난 가을 일본에 갔을 때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었는데, 중반까지 읽다가 조금 지루해져서 덮었던 책이었다..

일본 평단의 요란한 관심에 왠지모를 궁금증이 일기도 했었는데..

번역본이 나온 것에 감사하며 어제 밤 내내 편안히 읽었다..

 

책을 완독한 후의 느낌은..

일본 평단 혹은 매스컴의 요란한 말들은 다소 과장이고..

다만, 미국 사회에서 반지성주의가 출현하게 된  배경으로 미국 사회의 개신교가 갖는 독특함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개설서같은 느낌이었다.. 

  

호프스태터의 <미국사회의 반지성주의>가 아직 번역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이처럼 개설서와 같은 느낌의 일본 책이 나오는 한국의 출판시장이 흥미로웠고.. 이러한 상황은 지성intellect의 맥락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요지는 단순명료하다..

1. 반지성주의란 "지성 자체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지성이 세습적인 특권적 계급의 소유물이 되는 것에 대한 반감"과 같은 것으로, 종교적 확신을 근거로 한 철저한 평등관이 지배적인 미국 사회의 특유한 정신구조라는 것.. 

2. 종교적 기득권층(공정교회)에 대한 반감은 침례파나 감리교 등 소수파 기독교와 세속적 합리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완전히 비종교적인 계몽주의의 합리적 정신과 경건한 복음주의의 뜨거운 신앙심이라는 기묘하지만 무척이나 강한 연대가 <정교분리>라는 독특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

3. 이러한 종교적 기득권에 대한 반감이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크게 보면) 4차에 걸쳐 나타난 신앙부흥(리바이벌리즘)으로 이어졌으며, 이 리바이벌리즘에 비즈니스적 실용주의가 더해진 것이 미국 사회의 반지성주의의 원형이라는 것..

이다..

 

물론 이는 철저히 현상적인 분석이며, 미국 사회 반지성주의의 종교적 기원을 잘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나름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다음 과제는 이러한 선택적 친화가 왜 발생했는가, 즉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일 것이며, 또 그러한 종교적 기원이 미국의 반지성주의의 모든 면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규명일 것이다..  

또한 미국사회의 반지성주의를 미국 예외주의의 부산물로 단정지어버리기보다, 미국 사회의 반지성주의와 일본, 혹은 한국의 반지성주의는 어떠한 지점에서 서로 결을 같이 하며, 또 어떤 점에서 특수한 것인지.. 그리고 그 특수성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지, 적어도 일본 사회의 맥락 속에서 분석해냈다면, 한국 사회의 반지성주의를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여전히 이 부분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유교적 앎이 통치의 근간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식민지, 포스트 식민지, 그리고 최근의 글로벌화의 파고 속에서 흔들리면서, 전 사회에서 지성의 힘이 소멸해가고 있는(심지어 지성의 상징이라는 대학의 교수 임용도 영어 경시대회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를 <반지성주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러한 반지성주의가 출현하게 된 배경들은 무엇일까..

 

아니, 오히려 호프스태터가 예리하게 지적한 것처럼, 반지성주의 자체도 지성의 권력화에 대한 일종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지성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지성을 스스로 값싸게 팔아버리고 있는, 혹은 그 현실을 수수방관하며 "내가 어쩔 수 있겠나"며 체념하면서 그 경향에 동조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상황은 도대체 뭐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몇 년전부터 일본 사회에서는 그나마 반지성주의에 대한 하나의 담론이 형성되면서, 그 수준이 어찌됐건 사회 일각에서 조금씩이나마 논의가 이루어지는 듯 하다.. 하지만 글로벌, 혹은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에 영혼을 팔아넘기면서 스스로 지성을 포기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아카데미는 현재의 위기에 대한 자각마저 결여하고 있다..

 

이 도저한 <비지성주의> 앞에서 글 쓰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참담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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