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송호수 근처에 산다.
주말에 갈 생각은 아예 안하고, 낮에도 잘 가지 않는다.
야행성인지 주로 밤에 움직인다. 저녁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갠춘한 브런치 카페가 있다 해서 출동해 봤다.
일단 주차장이 만석이었다. 차를 가지고 이동하다 보면 항상 주차장 걱정이 앞선다. 아니 주차장이 없다고 하면 아예 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아니 그럼 버스나 걸어서 가야 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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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제목을 좀 더 시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새우가 빠다 로제 파스타에 풍덩 빠진 날' 어떠함.)
일단 주문한 빠다 새우 로제 파스타가 먼저 나왔나 보다. 난 아메리칸 스탈의 푸짐한 셋트 메뉴를 시켰다. 오래 전에 내가 즐겨 먹던 녀석들이 푸짐하게 나와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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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엔, 마! 이기 어메리칸 스타일이다, 니 다 묵을 수 있나?)
팬케익은 진짜 오랜 만이었다. 오래 전에 아이홉에서 시도 때도 없이 먹던 생각이 솔솔났다. 커피 무한 리필에 24시간이어서 언제고 부담 없이 갈 수 있었다지. 아이홉 팬케익은 좀 밀가리 맛이 많이 났었는데 <37.5>에서 먹은 팬케익은 아주 야들야들했다.
한켠에는 메이플 시럽이 아기자기하게 담긴 작은 단지도 있었다. 예전에는 그야말로 쳐 발라서 먹다시피 했었는데, 요즘에 들어서 단 건 아예 땡기지도 않는다. 확실히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음료에 커피 등등 잔뜩 시켜 먹었지만, 다음 코스로 갈 곳이 있어서는 시아시된 레몬수만 마시고 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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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코스는 <초평가배>다.
최근에 생긴 카페인데, 기존의 카페와는 달리 한옥 스타일의 카페다. 제목부터 일단 가배라고 하지 않았던가. 주차의 공포 때문에 공간이 보여서 대고 갔는데, 카페 뒤편으로 넓은 주자창이 있더라. 괜한 걱정이었다. 장사가 잘되는 곳은 이유가 있는 법. 테이블 자리가 없어서 주문하기 전에 일단 자리부터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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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허구헌날 마시니, 난 뭔가 색다른 것으로 고고씽.
메론소다 에이드가 땡겼으나 나의 픽은 달콤새콤 오미자 에이드였다.
픽은 대성공이었다. 메론소다는 메로나를 녹인 게 아니냐는 말에 전의를 급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아 다시 생각해도 츄릅츄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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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아메리칸 푸짐 브런치를 잔뜩 먹는 바람에 이 맛난 에이드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니. 고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 사랑 해바라기 녀석들도 몇몇 보았으나 작년처럼 많이 피지는 않아 아쉬웠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해바라기 사진도 좀 찍어야 하는데 말이지. 집에 심은 해바라기들은 나름 무럭무럭 자라고 있더라.
이만 나의 왕송호수 나들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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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다리] 초평가배에서는 서양식 주전부리 말고 한식 스타일의
주전부리들을 팔더라.
그 중에 내가 어려서부터 좋아라하는 양갱이가 있어서 얼매나 반가웠던지.
어른들이 요깡이라고 해서 무언가 했더니, 진짜 니혼고로 양갱이가 요깡이었다.
가래떡구이가 5,500원이라고 하던데 좀 비싸 보이더라.
가래떡은 고저 꼬챙이에 꿰어서 연탄불에 구버 먹으면 – 쫀득쫀득한 맛 생각에 침이 절로 솟구쳤다는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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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다리2] 우리 책쟁이 뻬빠에 책 이바구가 또 빠지면 섭섭하니 추가추가.
지금 막 동료분이 전달해 주신 크리스티앙 보뱅 샘의 <작은 파티 드레스>를 까보았다.
책은 읽지도 못하면서 계속해서 사들이는 건 무엇.
알라딘에서 자꾸만 무언가 적립금이네 퀴즈 정답 포상금이네 하며 책사기를 독려하니 안 사고 배길 수가 없다. 분명 저들도 남는 게 있으니, 독자들에게 이렇게 뿌릴 터인데 아마 남는 게 훨씬 많지 않을까 추정해 본다.
어제는 보뱅 샘의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를 만났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문장들이 나오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나는 너는 사랑한다. 나는 너를 사랑하겠다. 저자가 시인이라고 했던가. 책을 읽기 전에 너튜브로 아시시 출신 청빈의 구도자, 가난과 결혼한 프란체스코의 일대기를 찾아보면서 한바탕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졌다. 백년마다 프란체스코 같은 분이 나온다면 이 세상은 구원받을 거라는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와 닿던지. 세상의 법도 지키지 않으면서 나대는 알박기 먹사가 횡행하는 세상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