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고쿠 시대 무장의 명암 - 세키가하라 전투의 배신과 음모
혼고 가즈토 지음, 이민연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름 일본 센고쿠-모모야마 시대 마니아가 아닌가라는 착각에 빠져 본다. 어쨌든 해당 분야의 책들이 나온다면 읽을 의양이 차고 넘친다. 이번에 혼고 가즈토의 <센고쿠 시대 무장의 명암>이라는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에 냉큼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무려 주중에 가서 빌려다 모두 읽었다. 감상에 앞서 다수의 오탈자와 등장인물들에 대한 일본어/한자어 이름의 혼란스러운 병기가 너무 신경이 쓰였다. 꼭 출판사에 출간 전, 세밀한 감수를 부탁하고 싶다. 이건 좀 너무 하지 않나.

 

타이틀은 비록 <센고쿠 시대>라고 했지만, 군웅할거의 시대가 아닌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천하를 두고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싸운 세키가하라 전투에 즈음한 이야기다. 이 전투를 효시로 에도 막부가 시작되었으니 굳이 분류하자면 센고쿠 시대의 마지막 전투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긴 하다. 역시 역사 해석의 차이니까.

 

도요토미 사후 전권을 장악하고 무소불유의 권력을 행사하던 미카와의 너구리 혹은 악질 아저씨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상경을 거부한 에치고의 우에스기 가게카쓰를 토벌하기 위해 서쪽으로 향했고,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시다 이쓰나리가 거병하면서 세키가하라 전투의 막이 오르게 된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원래 서군으로 참전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문치파의 영수 미쓰나리를 배신하면서 세키가하라 전역은 동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에 이르는 과정들은 이미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통해 읽어서 수월하게 읽을 수가 있었다. 다만 여전히 이름이 낯선 숱한 무장들의 이름과 관계도 그리고 옛 지명들이 귀에 들어와 박히지는 않는다. 하긴 뭐 내가 전문 역사가도 아니고, 어떤 부분들은 대충 넘어가도 되겠지 싶다.

 

혼고 가즈토에 따르면 일본 천하쟁패의 결정적 순간이었던 세키가하라 전투는 치밀하게 의도된 전투가 아닌 우연히 이루어진 그런 전투라는 게 분석이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들어 보면, 우선 도쿠가와 정예군을 이끌던 후계자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주력부대가 사나다 마사유키에 막혀 가장 중요한 전역인 세키가하라에 도착하지 못했다. 서군에서도 최강 부대라고 할 수 있는 다치바나 무네시게의 부대가 작은 성에 막혀 본진에 합류하지 못한 상황에서 결전이 이루어졌다. 문치파 미쓰나리와 달리 숱한 전장을 실제 경험한 미카와의 너구리 영감은 주력부대 없이 서군을 이길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전투를 개시했다. 그리고 그의 도박은 멋지게 들어맞았다. 역시 전장에서의 승리를 빠른 판단과 신속한 실행 그리고 과감한 결단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자신이 만약에 서군에게 패배한다고 하더라도, 도쿠가와 주력군이 후방에서 온전하게 전력을 유지하고 있으니 에도 250만석을 바탕으로 천하쟁패에 재도전할 수 있다는 속셈이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맨 끝에 배치된 도리 모토타다의 후시미성 분전에 대한 막부의 보상도 대단하지 싶었다. 두 번이나 가계가 끊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어린 시절 마쓰다이라 다케치요가 이마가와-오다 가의 인질로 잡혀 있을 때부터 시종한 친구이자 오랜 전우를 서군의 거병이 명확해 보이는 상황에서 총알받이로 남겨 두고 가는 미카와 너구리의 심정은 어땠을까 싶다. 후다이 가신단인 도리 가문과 달리 도자마 가신으로 합류한 이이 나오마사가 전장에서 공을 다툰 상황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너구리 영감은 오랜 가신단에 대해 논공행상이 무척이나 짰던 모양이다. 그런데 도자마 다이묘들에게는 상대적으로 후한 모습을 보여준다. 시즈카타케 칠본창의 일원이나 히데요시 가문의 오랜 가신이었던 가토 기요마사를 사위로 삼고,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기요마사(우리에게는 철천지 원수인 그 가등청정이 맞다)의 석고를 두 배로 튀겨 주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실질적인 이유보다는 이것 봐라, 내가 히데요시의 가신도 이렇게 등용하고 후하게 보답하지 않는가라는 점을 천하에 널리 선전하고 싶은 속셈이 배후에 숨이 있지 않나. 미카와 너구리 영감은 뛰어난 정치가답게 무엇 하나 순수하게 하는 게 없었다. 모든 게 치밀한 정치적 노림수였다고나 할까.

 

저자는 질 걸 뻔히 알면서도 동군 대신 서군에 가담한 오타니 요시쓰구나 우에스기 가문의 참모 나오에 가네츠구를 높이 평가하지 않나 싶다. 승자보다 패자에 대한 연민과 로망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초한쟁패에서도 한고조 유방에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면서도 결국 패배하고 허무하게 죽은 초패왕 항우를 사모하는 팬들이 지난 2천년 동안 생기지 않았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흥미롭게 느낌 점 중의 하나는 미카와의 너구리 영감이 천하통일을 꿈꾸었다면, 다른 센고쿠의 무장들은 여전히 군웅이 할거하는 난세를 꿈꾸었다는 점이다. 전자는 염리예토, 흔구정토라는 캐치 프레이즈로 이제 더 이상의 전란 대신 평화를 갈구한다는 정치적 구호를 전면에 내세웠다. 물론 도쿠가와 집안이 대대로 해먹는다는 전제 아래 말이다. 하지만 사나다 가문이나 시마즈 혹은 구로다 조스이 같은 센고쿠 시대의 전통적 사고에 젖은 무장들은 예전의 입장을 고수했다. 무장들에게 평화는

 

그 결과 우에스기 가게카츠는 세키가하라에서 동군과 서군이 맞붙었을 때, 전력을 다해서 도쿠가와의 후방을 치지 않고 전세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고만 있었다. 아니, 그들이 진정으로 군웅할거의 시대를 원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유력 다이묘들은 서군이나 동군의 일방적 승리 대신 적당한 균형을 유도해야 했다. 한신에게 천하삼분계를 고언한 괴철 같은 인물이 우에스기 가문에는 없었던 걸까. 그리고 간신히미카와 너구리 영감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었던 히데요시의 전우이자 충직한 가신이었던 가가의 마에다 도시이에가 좀 더 살아 남았다면, 세키가하라의 향방은 또 다르게 전개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여러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일되지 않은 주요 인물들의 이름에 대한 한자/일본어 병기 문제는 심각하다. 나는 우시 히데요시라고 해서, 히데요시의 다른 이름인 줄 알았는데 하시바의 한자 표기였다. 아니 그럴 거면 처음부터 우시라고 통일하던지 또 어디서는 하시바로 등장한다. 보다 정확한 감수가 많이 아쉬웠다. 좋은 콘텐츠인데 이런 이유로 책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전승, 민담 등 지금으로부터 무려 422년 전에 벌어진 일대 사건에 대한 고찰은 여전히 흥미로웠다. 명확한 기록의 부재는 그 여백을 채우기 위해, 오히려 독자와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던가. 저자의 말대로 진실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9-17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구리 ㅎㅎㅎ 매냐님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도 이 시대 좋아해요. 어릴적 아부지가 대망이며 이런 쪽 소설 좋아하셔서 이런저런 이야기 해주셔서인지 ㅎㅎㅎ 근데 얘네들 이름 너무 헷갈려요 성도 자주 바뀌고 ㅠㅠ 하시바가 한자로 우시군요. 매냐님 👍

레삭매냐 2022-09-17 22:12   좋아요 1 | URL
20년 전, 타루미의 어느 숙소
에서 일본 교수님과 어줍잖게
보신전쟁과 세이난전쟁에 대
해 이야기하던 생각이 나네요.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만 하더라
도 마쓰다이라 다케치요로
출발해서 모토노부, 모토야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까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죠.

그쪽 역사에 문외한이다 보니
너무 헷갈리더라구요.


얄라알라 2022-09-17 15: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항아리면....그래도 많이 이름 들어본 출판사인데 한자/일본어 병기 그렇게 심한가요?^^;; 근데 그만큼 레삭매냐님께서 박학하시고 애정 많으셔서 보이실터이고, 저같은 독자는 모르고 읽을 것 같아요. 엣이야기는 항상 강렬해요. 불과 1,2세대 이전분들 이야기도 재밌는데 400여년 전 일이면 몇세대일까...

레삭매냐 2022-09-17 22:13   좋아요 2 | URL
박식은 아니고 무식으로 ^^
슬쩍 평을 보니 저보다 고수
분들이 너무 평이하다는 평
을 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출판사에서 너무 감수나 교
정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금방 휘리릭 읽고 내일 반납
하는 것으로 :>

coolcat329 2022-09-17 15: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이름 읽다가 자꾸 막혀서 내용 연결이 힘드네요.😟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 싸우고 엎치락뒤치락 했으니 오죽 사람이 많았을까 싶어요.
저도 좋아하는 시대 있어서 공부하고 싶어집니다. ㅋㅋ

레삭매냐 2022-09-17 22:15   좋아요 2 | URL
관계도를 그리려면 아마 하루
종일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계속해서 작중에 등장하
는 인물들의 이름을 찾았답니
다.

일본에서는 센고쿠 시대와 막말
격변의 시기가 문학이나 드라마
로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