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송호수 근처에 산다.

주말에 갈 생각은 아예 안하고, 낮에도 잘 가지 않는다.

야행성인지 주로 밤에 움직인다. 저녁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갠춘한 브런치 카페가 있다 해서 출동해 봤다.

일단 주차장이 만석이었다. 차를 가지고 이동하다 보면 항상 주차장 걱정이 앞선다. 아니 주차장이 없다고 하면 아예 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아니 그럼 버스나 걸어서 가야 하나 어쩌나.



(음식 제목을 좀 더 시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새우가 빠다 로제 파스타에 풍덩 빠진 날' 어떠함.)


일단 주문한 빠다 새우 로제 파스타가 먼저 나왔나 보다. 난 아메리칸 스탈의 푸짐한 셋트 메뉴를 시켰다. 오래 전에 내가 즐겨 먹던 녀석들이 푸짐하게 나와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경우엔, 마! 이기 어메리칸 스타일이다, 니 다 묵을 수 있나?)


팬케익은 진짜 오랜 만이었다. 오래 전에 아이홉에서 시도 때도 없이 먹던 생각이 솔솔났다. 커피 무한 리필에 24시간이어서 언제고 부담 없이 갈 수 있었다지. 아이홉 팬케익은 좀 밀가리 맛이 많이 났었는데 <37.5>에서 먹은 팬케익은 아주 야들야들했다.


한켠에는 메이플 시럽이 아기자기하게 담긴 작은 단지도 있었다. 예전에는 그야말로 쳐 발라서 먹다시피 했었는데, 요즘에 들어서 단 건 아예 땡기지도 않는다. 확실히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음료에 커피 등등 잔뜩 시켜 먹었지만, 다음 코스로 갈 곳이 있어서는 시아시된 레몬수만 마시고 버팀.



다음 코스는 <초평가배>.

최근에 생긴 카페인데, 기존의 카페와는 달리 한옥 스타일의 카페다. 제목부터 일단 가배라고 하지 않았던가. 주차의 공포 때문에 공간이 보여서 대고 갔는데, 카페 뒤편으로 넓은 주자창이 있더라. 괜한 걱정이었다. 장사가 잘되는 곳은 이유가 있는 법. 테이블 자리가 없어서 주문하기 전에 일단 자리부터 잡았다.


 

커피는 허구헌날 마시니, 난 뭔가 색다른 것으로 고고씽.

메론소다 에이드가 땡겼으나 나의 픽은 달콤새콤 오미자 에이드였다.

픽은 대성공이었다. 메론소다는 메로나를 녹인 게 아니냐는 말에 전의를 급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아 다시 생각해도 츄릅츄릅~~~



그놈의 아메리칸 푸짐 브런치를 잔뜩 먹는 바람에 이 맛난 에이드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니. 고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 사랑 해바라기 녀석들도 몇몇 보았으나 작년처럼 많이 피지는 않아 아쉬웠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해바라기 사진도 좀 찍어야 하는데 말이지. 집에 심은 해바라기들은 나름 무럭무럭 자라고 있더라.

 

이만 나의 왕송호수 나들이 끝.



[뱀다리] 초평가배에서는 서양식 주전부리 말고 한식 스타일의

주전부리들을 팔더라.

그 중에 내가 어려서부터 좋아라하는 양갱이가 있어서 얼매나 반가웠던지.

어른들이 요깡이라고 해서 무언가 했더니, 진짜 니혼고로 양갱이가 요깡이었다.

 

가래떡구이가 5,500원이라고 하던데 좀 비싸 보이더라.

가래떡은 고저 꼬챙이에 꿰어서 연탄불에 구버 먹으면 쫀득쫀득한 맛 생각에 침이 절로 솟구쳤다는 건 안 비밀.




[뱀다리2] 우리 책쟁이 뻬빠에 책 이바구가 또 빠지면 섭섭하니 추가추가.

지금 막 동료분이 전달해 주신 크리스티앙 보뱅 샘의 <작은 파티 드레스>를 까보았다.

책은 읽지도 못하면서 계속해서 사들이는 건 무엇.

알라딘에서 자꾸만 무언가 적립금이네 퀴즈 정답 포상금이네 하며 책사기를 독려하니 안 사고 배길 수가 없다. 분명 저들도 남는 게 있으니, 독자들에게 이렇게 뿌릴 터인데 아마 남는 게 훨씬 많지 않을까 추정해 본다.

 

어제는 보뱅 샘의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를 만났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문장들이 나오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나는 너는 사랑한다. 나는 너를 사랑하겠다. 저자가 시인이라고 했던가. 책을 읽기 전에 너튜브로 아시시 출신 청빈의 구도자, 가난과 결혼한 프란체스코의 일대기를 찾아보면서 한바탕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졌다. 백년마다 프란체스코 같은 분이 나온다면 이 세상은 구원받을 거라는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와 닿던지. 세상의 법도 지키지 않으면서 나대는 알박기 먹사가 횡행하는 세상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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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9-15 15: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짜 괜찮아보여요!!! 좋은 곳에 사시는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2-09-15 16:10   좋아요 2 | URL
무신 말쌈을 그리! 저는
시골에 산답니다.

초평가배 옆에는 논이 있고,
벼가 자라고 있구요 ㅋㅋ

연휴 끝날에 친구덜 만나러
서울 가서 ‘시골쥐 서울왔다‘
라며 신나게 떠들고 놀았답
니다.

얄라알라 2022-09-15 16: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왕송호수라...귀에 익은 듯 하여 검색해보니 의왕이네요. 아름다운 호수와 한옥 까페, 넘 잘 어울립니다!

레삭매냐 2022-09-15 16:49   좋아요 2 | URL
호수 컷도 하나 넣었어야 했는데
입에 먹을 것을 욱여 넣느라 정신
이 팔려서리 그만...

맨 끄트머리에 해바라기 사진을
하나 넣었으면 완벽했을 텐데
아숩네요.

다락방 2022-09-15 16: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팬케익 사진보니 너무 먹어보고 싶어서 왕송호수 검색했더니 제가 사는 집에서는 두시간 이상 걸리네요 ㅠㅠ

레삭매냐 2022-09-15 16:50   좋아요 2 | URL
호곡, 그리 멀리 사시나요.

저희 나와바리라 선선해지면
가서 바람도 쐬고 좋습니다.

팬케익은 정말, 다시 생각해
도 쵝오였습니다. 또 먹고잡
네요.

mini74 2022-09-15 16: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황금벼 옆에서 밀을 흡입하신겁니까 ㅎㅎ 넘 부럽습니다. 오미자는 다행히 보유하고 있습니다. ㅎㅎ배고파요!!

레삭매냐 2022-09-15 17:08   좋아요 2 | URL
미니님의 글을 보고 나설라무네...

혹시 내가 낮에 먹은 밀들이 흑해
바다를 건너 온 유크레인의 밀가리
가 아닌가 하는 엄한 생각을, 쿵야.

푸지게 먹었는데 또 배가 고픕니다.
허기와 꽉채움의 무간반복인가요 우리.

페크pek0501 2022-09-15 1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보니깐 냠냠 먹고 싶잖아요. 특히 두 번째 사진에 나온 거, 무자게 당깁니다.^^

레삭매냐 2022-09-15 17:57   좋아요 2 | URL
여러 메뉴가 있었으나 역시나
저의 픽이 탁월했더라는 ㅋㅋ

미미 2022-09-15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레삭매냐어가 풍년이군요ㅎㅎ
올려주신 모든 사진이 다 예쁘고
먹음직스러워요.*^^*

한옥카페 전망도 그럴싸한데요? 저도 기회되면 가보고 싶어요.

레삭매냐 2022-09-15 19:0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오늘 여정을 되짚어
보니 역시나 대박이었지 싶네요 :>

파스타와 어메리칸 브런치
오미자 에이드까지 하나 빠지는
게 없다는.

카메라를 들고 갔다면 좀 더 갠
춘한 사진들을 담았을 텐데,
핸드폰 카메라로 찍다 보니 제
대로 구현을 못하지 않았나 합
니다.

기대 이상이라 더 마음에 들었습
니다. 닝겡이들이 많다는 게 좀
흠이랄까요.

blanca 2022-09-15 18: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한옥 까페 완전 취향저격이네요. 보뱅은 정말 놀랍죠! 그냥 책 전체가 거대한 산문시 수준인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2-09-15 19:04   좋아요 2 | URL
새로 생겼다는 걸 알고는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오늘
타이밍이 되어 들렀는데
마음에 들더라구요 :>

그런 데서 책이나 실컷 읽
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보뱅의 글들은 예술입니다.

프레이야 2022-09-15 19: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해바라기를 사랑하신단 말씀이죠^^
왕송호수, 초평가배 찜!
왕송호수 주변 부런치 부러 먹으러…
경기도 가게 되면 꼭 가보는 걸로요.
언제가 될지 기회를 만들어야겠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2-09-16 10:18   좋아요 1 | URL
주말에 오심 아마 차가
많아서 고생하시지 싶어요.

가능하시다면 평일 낮을
추천해 드립니다 :>

초평가배 짱! 부런치 굿 !!!

서니데이 2022-09-16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의 음식들이 요리책에서 바로 나온 것처럼 근사해보여요.
떡구이는 좋아하지 않는데도 맛있을 것 같을 정도예요.
적립금이랑 상품권은 구매의 마중물 같은 건가봅니다.
저도 어제 적립금 남은 날짜가 적어서 책과 굿즈를 샀어요.
레삭매냐님, 사진 잘 봤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2-09-17 09:59   좋아요 1 | URL
알라딘이 주는 적립금/상품권
의 지옥은 정말 무시무시하네요.
천원 쓰려고 만원을 소비하게
만드니깐요 참으로 대단합니다.

새삼 음식 플레이팅의 중요성
을 깨닫게 되더라구요 :>

즐거운 주말 되세요.
 
눈먼 자들의 도시 (100쇄 기념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수년간 나의 책장에서 잠자고 있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마침내 읽었다. 결국 언제고 읽을 책은 읽게 된다. , 그전에 이미 영화화된 <눈먼 자들의 도시>는 봤다. 확실히 영화로 담아낼 수 있는 서사의 밀도와 깊이는 원작의 아우라를 넘어설 수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우리는 눈으로 모든 정보를 뇌에 전달하고, 뇌에 내린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 그런데 만약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바로 그 백색 질병이 퍼진 사회의 몰락을 그린다.

 

보통 사람들은 정상의 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상에 아무런 불편이 없이 생활한다. 하지만 당장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책을 읽다 말고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암흑이 내리고 답답해서 잠시도 견딜 수가 없었다.

 

도시에 이런 정체를 알 수 없는 백색 질병이 속수무책으로 퍼지면서 공포가,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야말로 전염병처럼 퍼지기 시작한다. 첫 번째 환자를 필두로 해서 정부는 초기 발병환자들을 격리 수용에 나선다. 낡은 정신병원에 그들을 가두어 버렸다. 주제 사라마구 작가는 여기에 아주 중요한 캐릭터를 하나 배치한다. 안과 의사의 아내가 요주의 인물이다. 그녀는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이다. 백색 질병의 원인을 알 수가 없듯이, 유일하게 그녀가 눈이 멀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그들이 격리 수용된 병동은 조금씩 지옥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당장의 먹을 것이 없어 그들은 굶주리게 된다. 그들은 포위하고 있는 군인들은 그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지만 그들 역시 곧 눈이 머는 건 시간문제였다. 눈이 먼 사람들은 격리된 공간에서 생존하기 위해 조직과 협력이 필요하지만, 그 대신 다른 선택을 하면서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대신 짐승이 되는 길을 택한다. 소설의 엔딩을 장식하는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안과 의사의 아내는 인도주의 정신으로 최대한 타자를 도우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사회적 노력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말을 주제 사라마구 작가는 하고 싶었던 걸까? 도대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먹을 것에 대한 집착과 자연스러운 생리현상 때문에 발생한 악취와 비위생적 상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들이, 비상상황에서는 얼마나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게 되는지 작가는 절절하게 표현한다.

 

그나마 격리된 수용소에 사람들이 적었을 적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눈이 멀고 총까지 지닌 악질 깡패들이 등장하면서 수용소는 지옥으로 한걸음씩 다가선다. 자신도 눈이 멀지 모른다는 공포에 질린 군인들은 선을 넘어서려는 재소자들에게 총격을 가한다. 자신들이 무력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빚어낸 우발적 사고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한다. 군인들이 지급하는 식량을 독점한 좌병동의 깡패들은 다른 이들에게 귀중품과 돈을 식대로 요구하고, 다음에는 더한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한자.

 

아무 것도 볼 수가 없기에 대항할 수도 없었던 다른 병동의 사람들은 무력하게 좌병동 깡패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에 사람들은 분열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얼마나 인간이 바닥까지 추락할 수 있단 말인가. 더 이상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던 의사의 아내는 가위를 들고, 깡패들을 응징하러 나선다. 그리고 곧 전쟁이 벌어지고 깡패들이 바리케이드처럼 설치한 매트리스에 용감한 한 여성이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서 전체 건물에 불이 붙어 버렸다.

 

불에 타죽지 않기 위해 군인들이 총격을 할 지도 모른 상태에서 탈출을 감행하지만, 군인들 역시 모두 눈이 멀어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찾아온 실명만큼 재소자들의 자유 역시 그렇게 찾아왔다. 다음 단계는 의사의 아내를 필두로 해서 생존과 자구에 나서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 버린 도시 역시 생존에 적합하지 않았다. 도시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물과 전기가 공급이 되지 않는 소비처인 도시에서 먹을 게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슈퍼마켓은 이미 약탈된 지 오래다. 거리에는 죽은 사람들이 즐비하고 야생화된 고양이와 개들이 그곳을 누비고 있다.

 

그리고 안과 의사의 집에 안식처를 마련한 7명의 일행들에게 결국 광명의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주제 사라마구 작가는 눈이 멀어버린 도시에서 철저한 익명성을 바탕으로 아포칼립스적인 서사를 이어간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름이라는 개인의 고유성마저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는 설정이었을까. 그런 익명성 뒤에는 위선과 허위가 비집고 들어선다. 공교롭게도 우병동 1호실에는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부터 시작해서 안과 의사와 접촉한 이들이 모이게 된다. 검은색 안경을 쓴 여자는 자신의 정체가 들어날 위기에 처하자 슬그머니 검은색 안경을 벗는다.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자신을 보호하고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행동이었을까.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타인을 위한 이타주의가 구원의 길인 것처럼 묘사되기도 하다가, 또 반대편에서는 약한 사람들이 죽든 말든 자기들의 욕망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극한의 이기주의가 발현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익명성은 최악의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잘 아는 이들에게 그런 악행을 저지를 수는 없었으리라. 나와 나의 동지들이 아닌 철저하게 타자화된 이들을 착취하는 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서라는 변명으로 자신의 양심을 가릴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영화에서 아주 잘 묘사되었는데, 텅 비어 버린 도시에서 안과 의사의 아내가 먹을 것을 구하다가 잠시 안식을 위해 들른 성당에서 성상들이 모두 눈을 가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는 시퀀스는 과연 압권이었다. 신마저 보는 것을 거부했다는 표현일까. 과연 다시 볼 수 있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마저 사라졌다는 걸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그런 장치는 아니었을까. 공존이 아닌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식의 사고로 뒤뜰의 토끼와 닭을 잡아먹으며 생존하는데 성공했던 어느 노파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의사의 아내는 좌절한다.

 

모든 희망과 구원에 대한 기대를 접으려던 그 순간에 사람들은 시력을 되찾기 시작한다. 이 얼마나 절묘한 타이밍이던가. 그 뒤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후속작으로 <눈뜬 자들의 도시>가 있는 모양이다.

 

가볍게 시작했으나 종말 서사가 인도하는 어둠은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금방 읽은 걸 보면 그만큼 매력적이었다는 말이겠지. 역자는 주로 영문학을 번역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버전은 영어판의 번역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주제 사라마구 작가 특유의 문장 끊지 않고 쓰기와 사뭇 다르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아마 영어판 독자들을 위한 배려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건조한 스타일의 번역이 아포칼립스적인 분위기가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아니 보기를 거부하는 이들을 위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한 비판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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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9-13 12: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앗 표지가 바뀌었네요 하고 봤더니 특별판이네요. 전 이 책 아주 예전 추석에 큰아주버님이 기차 타고 오면서 다 읽었다고 남편에게 넘겨서 ~ 무섭고 잔인하고 질서라는게 얼마나 손쉽게 무너지는지 허망했던 기억도 납니다. 저도 영화도 좋았어요 *^^*

레삭매냐 2022-09-13 13:33   좋아요 3 | URL
표지 갈이하고 단가가 거의
두 배가 되었답니다...

인간의 본성을 극단까지 밀어
붙이는 작가의 근성에 그만
질려 버릴 정도였습니다.

질서의 허망함이랄까요...

페크pek0501 2022-09-13 13: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기념 에디션이군요.
어느 팟케스트에서 이 작품을 읽어 줘서 들었어요. 그래서 내용을 알죠.
갑자기 눈이 멀게 되는 장면부터 참신하면서 충격적이라고 느꼈어요.

레삭매냐 2022-09-13 13:35   좋아요 4 | URL
사실 전 구판으로 읽었답니다.
너무 오래 전에 쟁여둔 책이라 -

명절에 집에 갔다가 집어서 읽
기 시작했는데 손에서 뗄 수가
없더라구요.

아이디어 하나는 기발했습니다.

미미 2022-09-13 14: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팟케스트에서 초반 스토리를 듣고 읽기가 두려웠어요. 영화도 그랬지만 모두가 눈이 안보인다는 설정이 그 어떤 설정보다 공포라고 생각했거든요. 의사의 아내는 비참한 상황의 유일한 목격자군요.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다‘는
말이 날카롭게 느껴집니다.
저도 결국은 읽게될 책인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2-09-13 15:15   좋아요 3 | URL
보이지 않는 백색의 공포 -

우리 인간이 지닌 오감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비주얼이 아
닌가 싶습니다. 그런 시각이
사라진다면... 상상하고 싶지
도 않네요.

시간이 많이 흘러도 언젠가
는 꼭 읽게 되시리라고 믿슙
니다.

바람돌이 2022-09-13 15: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었을 때 충격이 잊히지 않아요. 인간이라는 존재의 밑바닥을 너무나도 철저하게 파고든다는 느낌이었던것 같습니다. 이후로 이 작가의 팬이 되었는데 이후 읽은 책들 중 이 책을 능가하는 책이 없었다는 슬픔이.... ^^

레삭매냐 2022-09-13 17:45   좋아요 2 | URL
전 13년 전에 <수도원의 비망록>
과 <죽음의 중지> 읽고 나서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바람돌이님처럼 아마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네요.

Falstaff 2022-09-13 16: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오, 이 책, 이거 정말... 좀.... 아니, 과하게 적나라하지 않았나요?
어후, 전 이 작품 써 놓고 리스본 아파트 꼭대기에서 낄낄대면서 군중들을 내려다볼 사라마구가 연상되어 소름이 다 끼치던 것을요. ㅎㅎㅎ

레삭매냐 2022-09-13 17:53   좋아요 3 | URL
너무 적나라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만들어 버리더군요.

세상의 그 누구도 눈먼 자들
의 도시에 가져다 놓으면 그들
처럼 되어 버리지 않을까 싶습
니다.

역시 작가가 고수가 아니었을
까요.

coolcat329 2022-09-14 07: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잊을 수가 없어요. 가끔 운전하다 눈 부시면 이 소설 생각납니다. 눈이 머는 상상하곤 해요.

레삭매냐 2022-09-14 11:45   좋아요 3 | URL
운전하다 눈이 멀게 된다면 정말 -

어떻게 보면 아포칼립스라기 보다
호러에 가까운 소설이 아닌가 싶기
도 하더라구요.

젤소민아 2022-09-14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도 영화도 제목이나 발상 등 많은 오마쥬를 낳은 걸작이죠~~저도 다시 읽고프네요~~서브텍스트의 압권이랄까요~~

레삭매냐 2022-09-14 13:34   좋아요 1 | URL
오오 이미 읽으셨군요 ^^

전 이번에 처음 읽었는데
내용을 모두 알고 봐도 넘
재밌더라구요. 역시 콘텐츠
의 힘인가 봅니다.

서니데이 2022-09-14 18: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00쇄 기념 에디션도 나온지 몇 년 되었네요.
이 책 영화로도 나오고 많이 소개되긴 했는데, 그래도 100쇄면 읽은 분이 많겠어요.
레삭매냐님, 연휴 잘 보내셨나요.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2-09-15 08:56   좋아요 2 | URL
우와 100쇄라니 상상도
못할 일이네요.

해냄은 이 책으로 노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연휴가 어떻게 갔는지 모
르게 그렇게 지나가 버렸
네요, 감사합니다.
 

사람은 겉모습에 속기 쉽다는 것, 사람의 얼굴이나물렁물렁한 몸으로 마음의 힘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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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거창하게 뽑았으나 사실 내용은 역시나 책읽기에 대한 것이다.

 

4일전에 중고서점에서 냉큼 줍줍한 오르한 파묵의 <페스트의 밤>에 빠져 버렸다. 원래 이번 명절에는 보뱅의 책을 읽으려고 했으나... 아직 명절이 끝나지 않았으니 보뱅의 책도 최소한 한 권은 읽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두툼한 책의 포스에 눌린 나머지, 사두기만 하고 아예 펴볼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다. 어젯밤에 침대 머리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뒷장에 실린 창궐하는 페스트(질병)의 존재를 부인하는 장면에서 코로나 대유행 시절이 생각났다.

 

이거 또 참을 수가 없네 그래.

 

사실 그동안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오르한 파묵의 책들을 만나 보겠다고 몇 번이나 시도를 했으나 한 번도 완독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내 이름은 빨강>을 필두로 해서 그 뒤에도 몇 권이 더 있다. , 이 참에 읽다만 책들을 다시 끝내야 하나 어쩌나.

 

사실 독서는 시의성, 다른 말로 하자면 타이밍 정도가 되겠다.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작가들도 코로나 시대에 전염병을 다룬 책들을 펴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 들어올 적에 노를 저어야 한다는 걸까. 너무 시니컬하게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파묵의 <페스트의 밤>1901년 민게르섬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중국에서 도래한 신종 페스트가 퍼지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제 막 결혼한 누리 파샤와 파키제 술탄 부부는 중국 무슬림에게 전할 술탄의 메시지를 들고 중국행에 오른다. 한편, 술탄은 오스만 제국 동지중해 최대 항구인 이즈미르에 퍼진 페스트를 신속하게 진압하는데 성공한 제국의 보건위생의이자 방역전문가 수석 검사관 스타니슬라프 본코프스키 파샤를 페스트 전염이 심각한 양상을 띤 민게르섬에 파견한다.

 

<페스트의 밤>은 역사소설인 동시에 추리소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사냥한다. 외부로부터 고립된 민게르섬은 소설적 재미를 위한 충분조건을 갖춘 상태다. 참고로 진짜 민게르섬이 존재하는지 지도로 찾아보는 우는 범하지 않도록. 가상의 섬이라고 한다. 우선 민게르섬에는 그리스에게 빼앗긴 지중해 동부의 터키 영역에 가까운 섬에서 피난온 혹은 강제추방된 무슬림들과 그전부터 살아온 기독교도인들의 비율이 거의 50:50이었다.

 

그리고 보니 방역은 처음부터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개화된 룸 사람(기독교도)들은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방역과 격리를 해야만 살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즈미르에서의 방역 성공도 이들의 협력이 절대적 공헌을 했다고 본코프스키 파샤는 증언한다. 반대로 무슬림들은 이웃 크레타섬의 경우처럼 페스트를 이용해서 서방세계와 그리스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섬을 빼앗으려는 고도의 정치적 음모라는 점을 이유를 들어 방역에 반대한다. 아니 총독인 사미 파샤는 처음부터 자신이 통치하는 섬에 페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 존재를 부정한다. 이미 이즈미르를 능가하는 페스트의 명백한 징후를 보이는 사망자가 능가했음에도 말이다.

 

이런 와중에 적극적으로 페스트 발병 사실을 선포하고, 방역에 나서려던 본코프스키 파샤가 암살당하면서 <페스트의 밤>은 그 피치를 올리기 시작한다. 아주 적절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중국으로 향하던 젊은 전문의 누리 파샤 부부에게 술탄의 비밀 명령이 떨어지고 누리 파샤와 파키제 술탄 부부는 다시 민게르섬으로 향한다.

 

파묵 선생은 20세기 초반, 유럽의 환자라는 별명으로 수백년 동안 지배해온 북아프리카와 발칸반도에서 영향력을 급속도로 상실하고 있던 조국 터키(이제는 튀르기예라고 불러야 하나, 난 계속해서 터키로 부를란다)의 운명은 그야말로 등전등화 같은 상황이었다. 그리스를 필두로 해서 유럽의 모든 영토를 잃었으며 이집트와 튀니지 마저 각각 영국과 프랑스에게 빼앗겼다. 부동항을 얻기 위해 남하하던 러시아 제국과 전쟁을 벌여 역시 흑해 연안의 영토들도 상실했다. 과연 이게 수세기 전 빈을 포위하면서 전유럽을 공포에 몰아 넣었던 오스만 제국이란 말인가.

 

산업혁명을 계기로 눈부신 경제 및 과학의 발전을 이루어가던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과는 달리 여전히 중세 무슬림 율법에 안주해 있던 터키는 그야말로 열강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어 버렸다. 동방에서 도래한 페스트가 창궐해도, 터키는 제대로 된 방역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물론 술탄은 그전부터 이런 사태를 대비했지만 페스트에 대한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제한적인 방역과 격리 말고는 다른 대처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코로나라는 이전에 보지 못한 가공할 위력을 지닌 바이러스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2년 전의 기억이 이 책을 통해 다시 소환되었다. 그나마 페스트는 공기 중의 오염으로 전파되지 않지만, 마스크를 써도 막을 수 없었던 코로나의 확산은 우리의 삶을 B.C.(Before Corona)와 그이후로 100% 바꾸어 버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 주변을 떠돌면서 위협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전염병이다.

 

, 지금 다시 책을 살펴 보다가 파묵 선생이 정한 민게르섬의 위치를 책에 실린 지도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놀랍게도 크레타섬과 로도스섬 사이 가상의 공간에 민게르섬을 배치했다. 개인적으로 더 아래쪽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터키 위정자들이 우려한 대로 섬이 페스트 사태를 통해 그리스의 지배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게 됐다.

 

짧게 탁탁 치고 넘어가는 <페스트의 밤>이 지닌 구성 때문인지 두께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소화 중이다.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 술탄이 파견한 수석 검사관이 피살되면서 발생한 미스터리까지 해결해야 하는 해결사로 등장한 누리 파샤와 그의 아내로 이 모든 걸 기록한 파키제 술탄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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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9-10 12: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780쪽의 두꺼운 책이네요! 오르한 파묵이 집필을 마칠 무렵
코로나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본인도 많이 놀랐을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2-09-11 23:41   좋아요 1 | URL
역시 책은 타이밍이지 싶습니다.

파묵 샘들의 책이 예전만 인기가
없지 싶네요. 노벨상 특수를 가장
많이 탄 작가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데 말이죠.

새파랑 2022-09-10 19: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파묵 항상 읽어보고 싶지만 손이 잘안가는 작가 입니다 ㅋ <하얀성> 한편만 읽었는데 좀 어려웠습니다 ㅎㅎ 왠지 좀 비슷한 느낌이 드네요~!!

레삭매냐 2022-09-11 23:42   좋아요 1 | URL
앗~! 저도 <하얀성> 도서관
에서 빌려다 읽다 말고 반납
했는데 -

<페스트의 밤>이 좀 더 완성
도가 높지 않나 싶네요.

coolcat329 2022-09-10 21: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실물보고 두께에 놀랐습니다. 오르한 파묵 이젠 <내 이름은 빨강>읽어보고 싶은데, 손이 안 가는 작가입니다.

레삭매냐 2022-09-11 23:48   좋아요 2 | URL
저도 그러하답니다 -

그래도 무려 노벨문학상 작가
라고 하니, 한두권씩 쟁이다
보니 ㅋㅋ

얄라알라 2022-09-11 1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다가 종종 단어에서 막히면, 네이버 검색하고 다시 돌아와 읽는 저같은 독자에게 하시는 말슴 같아서 뜨끔.

‘민게르섬‘ 검색해볼 뻔 ㅋㅋ
가상의 섬이어도, 나름 위치성이 분명하게 있네요
근데 크레타섬과 로도스섬, 이 섬들의 위치도 다시 검색하러 가봐야겠어요 ㅎㅎ 레삭매냐님 페이퍼를 읽다보면 왜 이리 검색할 일이 생기는지 . 배움 주시는 레삭매냐님.

레삭매냐 2022-09-11 23:49   좋아요 2 | URL
부족한 닝겡이의 허접한 글을
좋게 봐주시니 고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야말로 아예 네이버와 위키
피디아 그리고 구글맵을 달고
산답니다 ^^

서니데이 2022-09-11 1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 보면 잘 모르겠는데, 페이지가 두꺼운 책인 모양이네요.
레삭매냐님, 추석 잘 보내셨나요.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좋은 주말 되세요.^^

레삭매냐 2022-09-11 23:4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명절이 그렇게 설렁설렁
지나가고 있네요.

얄라알라 2022-09-11 2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레삭매냐님 저 방금 ˝닝겡˝ 검색하고 다시 왔어요 ㅎㅎ

레삭매냐 2022-09-13 13:34   좋아요 0 | URL
저도 일본어 하는 동료에게
배운 말인데, 나름 갠춘한 것
같아서 종종 쓴답니다 :>
 



이틀 전에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 <인간, 즐거움>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어제는 <가벼운 마음><그리움의 정원에서>를 각각 새책으로 그리고 중고책으로 사들였다. 두말할 것 없이 이번 추석은 보뱅과 함께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인간, 즐거움><환희의 인간>이라는 타이틀로 재출간됐다.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그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도대체 얼마나 갈고 닦아야 이런 문장이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먼저 세상을 떠난 연인에 대한 연가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에게는 꽃을 사랑하게 된 자신의 경험을 들려 주기도 한다.

 

자신에게 영원히 필요한 것은 결국 책과 활자라는 고백 앞에서는 절로 선밴님이 외쳐지기도 했다.

세상에 나같은 책과 활자 중독자가 또 있었구나, 우리 북플동지들 같은 사람들이 바다 건너에도 있구나 싶은 마음에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그의 문장을 책쟁이의 기준에 맞게 패러디해 본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자신의 모습이 변한다.

-> 무엇을 읽느냐에 따라 자신의 모습이 변한다.

 

우리 위대한 선밴님은 그의 글과 만나게 되는 세상의 모든 책쟁이들에게 지령을 내리셨다.

읽고, 쓰고 사랑하라고.

 

읽은 닝겡은 쓸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그것이 감상이던, 개인의 기록이던 간에 읽은 닝겡들은 모두 쓰기에 나선다. 이미 현재가 된 미래의 너튜브 세상에서는 동영상 콘텐츠로 기록이 남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읽기가 입문이라고 한다면 쓰기는 1단계 액션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이 완성이라는 말일까.

 


읽기를 통해 무언가 깨달음을 느꼈다면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으리라. 울 선밴님이 그랬던 것처럼, 염통에서 쿵쾅거리는 느낌을 어떤 방식이로든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병이 되지 않을까. 아 몽땅 때려치우고, 실컷 책이나 읽었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속한 속세의 시덥잖은 사무들이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구나.

 

빛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는 보뱅의 책들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즐거운 9월의 명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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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9-08 11: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뱅님의 문장이 오랜 수련(갈고 닦음) 끝에 나온 건가봐요? 아 레삭매냐님께서 극찬하시니 이거 진짜 궁금해지는데요

9월의 명절, 보뱅님과 친해지시며 행복하게 보내시어요~~

레삭매냐 2022-09-08 14:51   좋아요 1 | URL
고수님들이 좋아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가 봅니다.

아주 절절하게 느끼고 있답니다.

얄랴알라님께서도 메리 추석이
되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22-09-08 1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생겼는지 그 자태나 보게 해 주시지 안쿠. ><;;
어제 적립금도 받으셨겠다 정말 넉넉하고 즐건 명절이 되시겠습니다.
보행과 함께 행복한 명절되시길.^^

레삭매냐 2022-09-08 14:51   좋아요 1 | URL
넵, 바로 영롱한 자태의 사진
을 올려 보았습니다.

카메라가 집에 있는 지라 -

제프 다이어와 크리스티앙 보뱅
의 책들을 사냥하는 것으로 이번
추석을 보내볼까 싶습니다만.

서니데이 2022-09-08 1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오늘부터 연휴 시작입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2-09-09 09:2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명절되세요.

mini74 2022-09-09 1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뱅 넘 좋지요 매냐님 ~ 매냐님 말씀하신 책들 다 사고 싶어요 ㅎㅎ 전 작은 파티드레스 빌렸다가 결국 구매했어요 ~~ 매냐님도 즐거운 추석보내세요. ~

레삭매냐 2022-09-10 08:33   좋아요 0 | URL
결국 그리하야 순차적으로 책을
사들이고 있답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책 사들이는
속도가 책 닐는 속도를 훨씬
넘어 넘더라는. 그랬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젤소민아 2022-09-14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뱅을 아직 영접하지 못했습니다~~~일단 뭐부터 볼까요~~~

레삭매냐 2022-09-14 16:07   좋아요 0 | URL
외람되지만 저도 보뱅을 지난
주부터 읽고 있는 지라 추천
하기가 쫌 그렇습니다.

책은 세 권 수배해 두었답니다.
일단 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