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스 크로싱
존 윌리엄스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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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궁 모임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미루고 있던 존 윌리엄스의 <부처스 크로싱>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밀러가 버펄로 사냥대를 이끌고 들어간 비밀의 계곡에서 미친 사냥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밀러의 광기가 번득이는 순간까지였다. 그리고 일행에게 이번 버펄로 사냥에서 가장 큰 고난이 이제 막 시작될 판이다.

 

'완벽한 소설'로 널리 알려진 <스토너>로 처음 만난 존 윌리엄스가 1960년에 발표한 두 번째 소설이 바로 <부처스 크로싱>이다. 참고는 그는 평생 네 편의 소설만 썼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책이 육지판 <노인과 바다>라는 생각과 버펄로 사냥에 미친 밀러의 모습에서 <모비딕>의 에이햅 선장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동부 하버드 출신 23세의 청년 윌 앤드루스가 캔사스에 있는 가공의 마을 부처스 크로싱에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의 서부는 미국 청년들에게 하나의 이상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서 랄프 왈도 에머슨의 영향을 받은 윌은 버펄로를 잡아 보겠다는 호승심에 힘입어 사냥대를 조직한다. 그는 버펄로 사냥에 경험은 없지만, 사냥대를 조직할 만한 넉넉한 돈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역시 쩐주에게 힘이 실리는 법이다. 아버지의 소개로 알게 된 버펄로 가죽 거래업자 JD 맥도널드를 찾아가 조력을 구하는 윌. 노련한 장삿꾼은 헛심 쓰지 말라고 애송이를 타일러 보지만 어디 애송이들이 경험자들의 말을 듣던가.

 

패기에 넘치는 윌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버펄로 사냥꾼 밀러를 만나 자신이 원하던 버펄로 사냥대를 조직한다. 그리고 10년 전, 버펄로 떼로 넘치는 평원이 있다는 밀러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서부 콜로라도로 향한다. 물자를 잔뜩 실은 마차는 밀러의 파트너 찰리 호지가 맡고, 역시 버펄로 가죽 벗기는데 탁월한 실력을 가진 프레드 슈나이더도 팀에 합류한다.

 

, 그럼 그들이 예상 대로 쉽게 버펄로 떼를 찾아냈을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버펄로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미 버펄로 사냥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진 바람에 버펄로들은 거의 멸종 위기에 처했다. 그러니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오지로 도망갔을 것이다. 밀러 팀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강줄기를 타고 가지 않고, 시간을 단축하겠다고 황야길을 선택했다가 물을 구하지 못해 거의 탈수증으로 죽을 뻔한 위기를 맞기도 한다.

 

투덜이 슈나이더는 끊임없이 팀의 리더인 밀러에게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순전히 감만 가지고 오래 전 기억을 더듬어 일행을 인도하는 밀러에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사실 황야에서 길을 잃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 것도 사실 밀러 때문이 아니던가. 팀의 물자 수송을 담당한 말과 소들이 물을 마시지 못해 탈수로 거의 죽을 뻔한 장면을 묘사할 때는 마치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중계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위기 정도는 극복해내야 비로소 자신들이 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삶의 간단한 진리를 존 윌리엄스는 아주 간단하게 포착해냈다.

 

결국 이런 간난신고 끝에, 일행은 버펄로들로 가득한 비밀의 계곡을 발견하는데 성공한다. 자 이제부터 광기 어린 버펄로 사냥이 시작될 판이다. 일행은 사냥에 앞서 버펄로들을 사냥하는데 쓸 납탄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아주 엉터리 같은 집단일 줄 알았는데 나름 준비가 철저하다. 그리고 바로 광기 어린 버펄로 사냥이 시작된다.

 

인간의 총탄 공격에 무력한 버펄로들은 그렇게 무력하게 쓰러져 간다. 버펄로들이 평화롭게 살던 공간을 침략한 인간 무리들에게 자비는 없었다. 특히 무려 십 년이란 인고의 세월을 기다린 밀러에게는 특히나. 계곡의 모든 버펄로들을 죽여야 그간의 한이 풀리겠다는 듯, 밀러는 쉴 새 없이 버펄로들에게 총알 세례를 퍼붓는다.

 

한편, 윌 앤드루스는 버펄로 사냥에 나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앳된 소년에 가까운 청년이었다면 이런 광란의 버펄로 사냥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다음 단계의 인간으로 변신한다. 이런 과정은 어쩌면, 폭력과 전쟁으로 점철된 미국이란 나라의 건국사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내면에는 어쩌면 이런 일련의 폭력적 과정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국가적 성장 그리고 나아가 개인이 삶에서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없는 그런 부족한 존재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소설 <부처스 크로싱>의 정점은 거의 버펄로 사냥이 마무리되어 갈 때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눈폭풍이 발생시킨 위기상황이었다. 그것은 마치 죄 없이 죽어간 버펄로 떼들을 위한 거대한 자연의 복수라고나 할까. 역시나 우리의 투덜이 슈나이더는 밀러 탓을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결국 그들은 차고 넘치는 버펄로 가죽으로 방한자루를 만들어 동사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긴다. 밀러의 임기응변이 아니었다면, 모두가 그 자리에서 눈보라에 휩싸여 얼어 죽었을 것이다.

 

폭설로 계곡에 갇힌 4인조 버펄로 사냥대는 눈이 녹아 계곡을 탈출하게 될 날을 6개월 동안 기다린다. 참을 수 없는 침묵과 서로를 향한 비난 그리고 통나무집 열병(cabin fever)으로 알려진 서로간의 불화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계속해서 계곡을 떠나자는 슈나이더를 말리던 밀러는 드디어 봄이 와서 땅이 녹자 부처스 크로싱으로 귀환을 결정한다. 그렇게 해서 버펄로 도살자들의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 물론 아니다.

 

부처스 크로싱에서 사냥대를 기다리고 있는 건, 하나 같이 좋지 않은 소식들뿐이다. 그들이 떠날 때와 너무 상황이 달라져 버렸다. 그들이 부처스 크로싱에 돌아온 1874, 가죽 시장의 판도는 완전 달라졌고, 맥도널드의 사업도 완전 망해 버렸다. 버펄로 가죽의 인기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자연을 알고 싶어서, 서부를 알고 싶어서 먼 길에 나선 윌 앤드루스에게 상상 속 불변의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무엇이었다.

 

문명화되었다고 착각하는 인간은 대자연의 비밀과 속내를 알고 싶어 하지만, 자연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연이 미약한 존재들인 인간을 타는 목마름과 압도적으로 출렁이는 물로 징벌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결국 많은 재화를 약속했던 들소 가죽이 아무런 가치도 없게 되어 버리자, 광기에 사로 잡힌 밀러가 모두 불 질러 버리는 장면은 찰리 호지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성경에 나오던 <소돔과 고모라>의 불의 징계가 연상됐다.

 

자연을 알아보겠다고 나선 윌 앤드루스의 모험은 그렇게 부질없이 끝나 버렸다. 존 윌리엄스는 정통 서부 소설을 통해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무엇인가를 이루어 보겠다는 시간과 자본을 투자한 이들의 손에 쥐어진 건 결구 푸른 허무와 덧없음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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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4-05-23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 앞에 영화 한 편 지나간 것 같아요@_@;;;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4-05-24 13: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니 영화도 있다고
하는데 내일 출격하기 전에 오늘 저녁에
한 번 봐야지 싶습니다.

블리저드 장면과 버펄로 가죽을 마차에
싣고 강물을 건너는 장면이 어떻게 연출
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레이스 2024-05-27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햅과 노인과 바다라니 급 관심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