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단 1 : 소년의 전쟁
진 루엔 양 지음, 윤성훈 옮김 / 비아북 / 201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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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굽시니스트 작가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를 열독 중이다. 어제도 최근작인 18편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가장 궁금한 파트가 바로 <의화단>이었는데 아직 그 지점까지 가지 못했다. 대한제국 시절 독립협회가 중심이 되어 <헌의6>를 발표하고, 나름대로 디모크라시가 진행되는 지점까지 읽었다. 오늘 도서관에 갔다가 <의화단>이라는 중국계 미국인 작가가 그린 그래픽노블을 읽게 됐다. 내가 그 전에 이 책을 읽었던가? 그런데 왜 리뷰 기록이 없는 걸까. 게을러서 리뷰를 쓰지 않았던 걸까.

 

이야기는 의화단 운동이 시작되기 6년 전인 1894년 산둥성의 어느 마을에서 출발한다. 시골 소년 바오는 서양 출신 천주교 베이 신부의 뒷배를 믿고 시장에서 설치는 마을의 무뢰한을 권법으로 단박에 제압하는 아버지의 실력에 감탄한다. 참고로 바오는 당시 거의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경극 매니아였다. 청조 말기, 서구 열강의 압력에 이기지 못한 서태후의 청나라(황제는 광서제였다)는 나라의 이권을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하나하나 침탈당하고 있었다.

 

마을 대표로 현장에게 천주교 신부의 개입에 대한 항의를 하러 길을 나섰던 아버지는 서양 군대에게 혹독한 매질을 당하고 결국 폐인이 되었다. 그러던 중, 마을에 나타난 주홍등이라는 청년이 의술로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마을 청년들에게 권법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나중에 드러나게 되지만 주홍등은 대도회라는 비밀결사 조직의 일원이었다. 주인공 바오도 주홍등에게 권법을 배우려고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손위 형님들처럼 정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주홍등은 바오가 가진 권법 재능을 보고 그에게 남몰래 권법을 가르쳐 준다.

 

대도회의 부름으로 양귀들과 상대하기 위해 주홍등은 마을을 떠나면서 바오에게 비밀쪽지를 하나 남긴다. 마을 근처에 있는 산에 사는 배불뚝이 도사를 찾아가 그에게 제대로 된 권법을 배우게 되는 바오. 바오가 처음에 땅에 박혀 있는 배불뚝이 도사의 칼을 뽑으려는 장면은 아더왕 전설의 엑스칼리버 생각이 났다. 역시 서사는 이렇게 변주되어 반복되는 법인가.

 

바오가 의화단 운동에 투신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바로 주홍등의 죽음이었다. 대도회 활동에 나섰던 주홍등은 관군에게 체포되어 참수되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등장한 관군을 상대로 바오가 배불뚝이 도사에게 배운 주술을 이용해서 타격을 가하면서 비로소 바오의 의화단 활동이 시작된다.

 

일단 <부청멸양>이라는 기존의 존왕양이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청나라 인민들은 양귀들을 상대로 학살을 일삼았다. 바오는 의화단 5개조를 주장하면서 어린아이와 여자들은 해치면 안된다고 동지들을 제지했지만, 전투 주술 의식에서 경극의 검은 상제 그러니까 진시황으로 등장하는 경극 분신(?)은 계속해서 바오를 자극한다. 그런 소의 따위에 휘둘리지 말고, 모든 양귀들과 그들에게 부역하는 모든 중국인들도 과감하게 처단하라고 사주한다.

 

중국식 민족주의 운동이 태아가 된 의화단의 강령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시행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결국 바오는 베이 신부가 죽고 그의 성당에 모여든 사람들을 가두고 불을 질러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죽였다. 바로 이 지점이 의화단 운동의 성패가 갈린 그런 지점이 아닐까.

 

그리고 계속되는 황군과의 전투에서 서양식 무기인 총에 맞아 같이 기의한 동지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간다. 자신의 형제들도 차례로 전사했다. 여성 동지인 메이원이 홍등조가 되어 양귀들과의 전투에서 남성 동지들 못지 않은 전투력을 과시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역사에 실제로 십대소녀들로 구성된 홍등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점들을 보면, 진 루엔 양이 상당히 많은 고증을 거쳐 <의화단 소년의 전쟁>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청나라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서태후는 중국 각지에서 날뛰는 무법자 집단을 황군을 동원해서 제압해 달라는 서양 열강의 요청을 무시했다. 오히려, 근친왕인 애신각라 재의(단왕)는 은밀하게 의화단을 지원하기도 했다. 감군을 지휘하던 동복상군과 만나 바오군도 잠시 긴장모드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초록은 동색이라고 훗날 아군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1900년 여름 바오군은 드디어 청나라의 수도인 베이징에 진입했다. 단왕과 동복상 제독의 지원을 받던 의화단의 기세가 찌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거의 사이비 집단에 가까웠던 의화단 운동의 한계는 분명했다. 아무리 권법을 수련한다고 해서,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을 이길 수는 없었다. 굽시니스트도 한중일 세계사에서 언급했다시피, 민중의 운동과 엘리트 계급이 서로 협력해야 무언가 새로운 개혁이 그나마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막무가내로 서양인들을 양귀 취급하던 의화단 활동에 청나라 지식인들은 넌더리를 쳤다. 물론 나중에 의화단 진압에 나선 서구 열강 역시 의화단이나 다를 바 없는 그런 모습을 주였지만 말이다.

 

일찍이 중국 사상 처음으로 분서갱유로 악명을 날린 진시황 분신은 열강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수천년 역사가 담긴 한림원을 불태우라고 바오를 부추긴다. 결국 바오는 한림원에 불을 지르고, 지식인을 대표하는 메이원은 불타오르는 한림원에서 책을 구하다 허무하게 죽고만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의화단 동지들을 규합해서 다시 한 번 공격에 나서지만, 구원에 나선 열강 군대에 의해 전장에서 장렬하게 산화한다.

 

중국은 이 의화단 운동의 실패로 결국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자국의 이익을 침탈하는 외세를 배격한다는 취지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폭력적이었다. 청나라 조정은 의화단원들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대신, 오히려 그들을 이용했고 나중에 필요가 다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외면해 버렸다. 처음부터 의화단이 가지고 있던 무력은 서구 열강들의 무력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 결과, 청나라 황실이 도주하고 빈 베이징을 점령한 열강들은 무차별적 약탈과 방화에 나섰다. 특히 독일 외교관이 살해당한 독일 제국군의 복수가 심했다고 한다.

 

아까 내친 김에 <의화단 소녀의 전쟁>도 마저 빌렸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오가 중국 측에서 의화단을 바라본 시선이라면, <소녀의 전쟁>의 주인공인 비비아나는 반대편의 시각이라고 한다. 굽시니스트 작가의 <의화단>을 마저 읽으면 좀 더 의화단 운동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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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6-17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기 작품 중 펄벅의 대지 3부작이 제일 먼저 생각나네요. 아마도 제일 먼저 만난 작품이어서일 듯해요. 이 책 저도 언젠가 읽어보겠습니다. < 본격 한중일 세계사>도 함께!

레삭매냐 2024-06-19 14:15   좋아요 1 | URL
펄 벅의 <대지>도 읽어 보고 싶긴
한데... 마음에 드는 출판사가 없네
요.

본격 한중일 세계사, 요즘 역사
이렇게 셋트 구성으로 읽다 보니
아주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