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영웅전 2 - 비무초친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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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조영웅전>에 푹 빠져 산다. 마침 60부작 드라마 <사조영웅전 2024>가 상영 중이라, 드라마도 보면서 기존의 2017 사조영웅전과 비교도 하고 또 원작도 보는 삼박자 합이 기가 막히다. 이번 드라마 시리즈에서는 곽정의 몽골 행적이 몇 컷으로 처리되고 드러내 버렸는데, 원작에서는 상당한 비중을 몽골 부분에 할애하고 있었다. 7년 전, 드라마도 현재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원작에 충실하게 담아냈다.

 

물론 허구의 이야기겠지만, 곽정이 테무친 대칸의 몽골 통일에 한몫한다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테무친 대칸이 어릴 적 맹우이자 라이벌이었던 자무카와 왕칸을 격멸하고 결국 몽골의 지배자가 됐다. 이렇게 실제 역사에 가공의 인물을 슬쩍 끼워 넣으면서 무협소설의 재미를 배가하는 기술을 김용 선생의 전매특허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근 천년 전의 일에 대해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만.

 

훗날 대칸 섭정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테무친의 4남 툴루이를 곽정의 의형제로 삼고, 대칸의 막내딸 화쟁의 부마가 되는 과정이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결국 그에 대한 보상으로 대칸이 곽정에게 많은 금품을 하사하는데, 곽정이 중원 장가구에 등장해서 마구 돈을 쓰는 장면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소설을 보고 나니 바로 이해가 됐다. 도대체 꼬마 소년이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지? 그리고 영웅하면 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탈것 아닌가. 한혈보마의 내력을 지닌 소홍마를 등장시켜 곽정의 파트너로 만들어준다. 아마 요즘으로 치면 벤틀리나 람보르기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장가구에서 곽정은 운명의 연인 황용(이하 용아)을 만나게 된다. 나중에 드러나게 되지만, 용아는 동해 도화도에 칩거 중인 동사 황약사의 딸로 무공 실력은 고수들에 비해 모자라지만, 어려서부터 익힌 여러 지식과 잡기 그리고 임기응변에 능한 그런 캐릭터로 그려진다. 연인 곽정을 위해서라면 그야말로 불속에라도 뛰어들 그런 기세를 지닌 주인공이다. 용아는 왠지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장취산의 짝 은소소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이런 방식으로 슬쩍 베끼면서 소모하는 걸까.

 

몽골 파트를 제외하면, 새로운 드라마는 원작과 거의 유사한 궤적을 그린다. 장가구에서 비무초친에 나선 목역(양철심)과 목염자 부녀를 만나고 또 이 작품에서 악역을 자처하는 완안강(양강/소왕야)과의 악연도 시작된다. 자신을 돕다가 라마승 영지상인의 독사장에 당한 왕처일 선배를 구하기 위해 조왕부에 용아와 뛰어든 곽정은 한바탕 소동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 가운데 완안강의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고, 양철심-포석약 부부는 18년만의 꿈같은 해후도 맞이하게 된다. 그들의 행복한 만남은 해피 엔딩이 아닌 비극으로 마무리되지만 말이다.

 

강남칠괴 사부들은 곽정을 중원에 내보내면서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고수들이 넘실거리는 강호에 철부지 어린아이를 내보내는 심정이 아니지 않았을까. 하지만 또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로소 강호에 나가봐야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시절에 강호에 출진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치러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싸워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튀라는 말을 제자에게 남긴다.

 

어떻게 보면 비겁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병법에도 삼십육계가 나와 있는 것처럼 실전에서 내가 상대하는 상대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만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자신의 실력이 상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고, 대결에서 물러나면 살 수 있겠지만 만약 살수로 공격하는 고수를 상대하다가 애꿎은 죽음을 당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들의 눈은 정확했다. 10년을 곽정에게 무공을 전수했지만, 아둔한 이 청년이 깨친 무공 실력은 강호에서 데뷔전을 치르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강호에 나오자마자 바로 완안홍열 휘하에 포진한 다수의 고수들과 목숨을 건 혈투에 휘말리게 되었다. 몽골 사막에서 체력 단련을 하고 강남칠괴 선배들에게 수련을 쌓은 게 1단계 수업이었다면, 이제부터 실전 2단계 수업이 시작된 셈이다. 뭐랄까 이건 마치 게임에서 미션 클리어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조왕부에 잠입한 곽정이 양자옹이 애지중지하던 각종 보양식을 먹이면서 12년간 기른 뱀의 피를 빨아 먹으면서 단박에 내공치가 올라가 버렸다. 이건 또 일종의 치트키라고 해야 할까. 작가가 준비한 치밀한 빌드업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노고가 수포로 돌아간 양자옹이 곽정의 피를 빨겠다고 덤비는 장면은 그야말로 코미디처럼 다가왔다. 아니 지가 무슨 뱀파이어도 아니고 말이지. 문득 여기서 착안한 뱀파이어 무협 드라마는 어떨까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조왕부 산하 네 고수와 백타산 바람둥이 구양극까지 가세해서 곽정과 용아를 위기로 몰아가던 순간, 조왕부 마른 우물 지하에 숨어 있던 완안강의 비밀 스승 매초풍(매약화)이 등장하면서 밀리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된다. 주화입마에 빠진 매초풍을 돕던 곽정은 우연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바람에 매초풍의 손에 죽을 위기에 처한다. 숨막히는 무공 대결에 이은 이런 극적인 상황전환까지,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드라마에 등장한 귀운장 육승풍에 대한 이야기를 매초풍이 들려준다. 황약사의 제자들은 모두 풍자 돌림이고 죽은 자신의 남편 진형풍과 매초풍이 황약사의 2-3번째 제자이고, 육승풍이 4번째 제자였다고 알려준다. 죽은 남편 진형풍과 사랑에 빠져 스승의 구음진경 하권을 들고 오지 몽골로 튀어서 비전을 수련하다가 강남칠괴들과 곽정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금나라 장종의 여섯 번째 아들이라는 조왕 완안홍열의 존재 역시 허구의 설정이다. 몽골 사신으로 파견되어, 부족간의 이간책으로 몽골인들의 분열을 획책했고 일찍이 테무친의 몽골사단이 훗날 금나라의 위협이 될 거라는 점도 파악했다. 자무카와 왕칸을 부추겨서 테무친의 배후를 치게 한 것도 알고 보면 결국 조왕의 계략이었다. 송나라의 충신 악비가 남긴 병서인 무목유서를 찾으라고 완안강과 수하들에게 닦달해대고, 또 자국에 대항하는 송나라와 몽골의 동맹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분쇄하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는 인물이 바로 완안홍열이었다. 그리고 보면 양부 홍열과 양자 강의 콤비가 빌런 2대를 구성하고 있었다.

 

드라마가 재미라면, 원작은 드라마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들을 보완하는 교보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곽정의 무공이 어디까지 도달하게 될지 그리고 곽정-용아 커플의 모험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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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27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별점은 세 개네요.
아직도 중국에서는 60부작도 있군요. 예전 80년대만 해도
드라마 100회한다면 막 서로 축하하고 난리였는데
지금 미니시리즈 16회도 너무 길다하여 12회로 끝나는 드라마도 많이 있더군요.
주말 드라마도 30부가 최장이구요.
김용 번역연구회가 있다니 대단한가 봐요. 읽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