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의 부동산•카지노 재벌로 41세에 이미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지닌 부동산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그는 1968년 워튼 스쿨을 졸업한 후 건설업과 임대업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곧바로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어 아파트와 호텔을 사들이고 건축과 임대, 리모델링 사업을 벌였다. 1980년대 말에는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면서 1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채무 속에서 허덕이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미국 경제의 안정과 함께 재기에 성공하여 제2의 신화를 창조하게 된다. 이제 그는 초호화 빌딩과 카지노, 최상의 골프 코스, 세계적인 미인대회 개최권을 지닌 화려한 미국적 영웅의 모습으로 미국 경제의 부흥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또한 트럼프 타워, 트럼프 플라자, 트럼프 파크 애비뉴, 트럼프 팰리스 등의 트럼프 브랜드 주택은 곧 최고급 주거지와 동의어가 되었다.

2004년 「서바이버 Survivor」의 제작자 마크 버닛과 손잡고 만든 NBC TV의 「어프렌티스 The Apprentice」는 방송 전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는데 지원자 21만 명 중 선발된 16명은 길거리에서 레모네이드 팔기, 아파트 리모델링해서 임대하기, 카지노 매상 올리기 같은 각종 비즈니스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차례차례 탈락당하며 최후의 승자는 트럼프 그룹 계열사 CEO가 되었다. 진행자 트럼프가 탈락될 사람을 가리켜 내뱉는 “넌 해고됐어(You’re fired)”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자 그는 그 말의 특허 신청을 내기도 했다.

트럼프는 역대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집계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이 책을 비롯하여 『거래의 기술; 도널드 트럼프 자서전 The Art of the Deal』, 『정상으로 가는 길 The Way to the Top』, 『The Art of the Comeback』등 그의 저서는 수백만 부 판매를 기록했다. 그는 또한 열렬한 자선사업가로 알려져 있으며 수많은 시민단체 및 자선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MAIN IDEA




    "사람들이 나를 만나기 원할 때는 대부분 그들이 나를 통해 뭔가를 얻고 싶어할 때다. 제빵기술자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빵을 잘 구울 수 있을지 묻는 것이 보통이다. 또 억만장자를 만났을 땐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지 묻는다. 그 동안 백만장자가 쓴 돈 잘 버는 법에 관한 책은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억만장자가 그런 책을 쓴 경우는 흔하지 않다. 또 부동산, 카지노,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투자를 하고 있는 억만장자 저술가는 드물다. 게다가 맨해튼 고층빌딩을 갖고 있고 인기 TV 쇼에 출연하는 억만장자 저술가는 더욱 더 희귀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독보적인 존재다. 물론 오프라 윈프리가 책을 한 권 더 내고 부동산 분야에 뛰어든다고 한다면 또 모르지만 말이다."

    지난 1987년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바 있다. "나는 돈 때문에 사업을 하지 않는다. 난 이미 내가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난 사업 자체를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다. 거액이 오가는 거래는 내게 있어 일종의 예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캔버스 위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감동을 주는 시를 쓴다. 그 대신 나는 억대 거래를 하고 그것을 통해 쾌감을 느낀다. 2004년 지금까지도 나는 하루 온종일 돈 거래를 하지만 한 번도 돈 자체 때문에 거래한 적은 없다. 돈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이는 다만 사람들의 꿈을 성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뿐이다."


 


 



 

(1) 경영자는 군 지휘자와 같다. 사소한 일과 부딪칠 때는 항상 큰 그림을
염두에 둬야 한다

어떤 때는 직원들을 다그쳐서 최선을 다하도록 해야 하지만 또 어떤 때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군 지휘관은 그런 구분을 정확하게 할 줄 안다. 경영자라면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경영자는 비즈니스 전략을 제대로 수행하는 매니저를 곁에 가까이 두고 있기를 원한다. 유능한 매니저를 채용하고 회사에 오래 두려면 중요한 순간에 권한행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하여 내게 계속 일의 진전상황을 정확하게 알리도록 해야 한다. 사람을 채용할 때는 그 사람의 학벌이나 경력보다는 얼마나 태도가 좋은지 먼저 봐야 한다.



(2)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고 다른 모든 것들은 무시해도 좋다

절대로 공에서 눈을 떼선 안 된다. 주의 집중을 하지 못하면 비즈니스는 한 순간에 망해버릴 수 있다.


    "1980년대에 나는 정말 잘 나갔다. 어떤 잡지의 헤드라인에서 그런 상황을 잘 반영했다. 즉 '트럼프가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금으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가 부동산 시장의 불황으로 인해 정확히 92억 달러의 부채를 지게 됐다. 그 가운데 내 개인 채무는 10억 달러에 달했다. 나를 신뢰해 준 한 은행가 덕택에 비교적 유리한 부채상환 조건을 협상해낼 수 있었다. 80년대에 부동산 왕에서 90년대 초를 근근이 버티다가 90년대 중반에 들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나는 오늘날 70년대 젊은 시절만큼이나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내가 저질렀던 실수를 누구도 반복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한 번에 한 가지만 집중을 해야 한다."


(3) 비즈니스에서 모멘텀을 유지하지 못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관계 없이 최신 뉴스를 놓치지 말고 따라가야 한다. 과거 한 차례 성공했다고 해서 장래에도 계속 성공할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면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

내가 속한 비즈니스 분야에 대해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과거 한 차례 성공했다고 앞으로도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비즈니스 감각 하나로만 버틸 수 있다고 맹신해서는 안된다. 그런 대신 내 분야에서 일어나는 최신 경향과 새로운 기술에 대해 모든 것을 빠짐없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4) 유능한 비서를 곁에 둬라

계속해서 관리감독 해야 하는 사람 대신 완전히 신뢰하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주변에 둘 수 있다면 성공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자신의 최측근에 두는 사람들을 엄선해야 한다. 그럴 경우 일하는 게 아주 수월해질 수 있다. 그런 직원은 강인한 의지를 갖고 있으면서 영리하고 공손하며 피로를 모를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



(5) 나만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여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언제나 열정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직원들이 내 모습을 보고 그런 열정을 느끼지 못하면 이들도 동기부여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회사의 리더 자리에 있으면 모든 일이 내 결정 여하에 달려 있게 된다. 즉 전략에서 최종 결과 그리고 그 중간과정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 손끝에 달려 있다. 언제나 기준을 높게 설정하고 한 순간이라도 조직내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열심히, 더 오랜 시간을 일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내 능력을 발휘할 기회라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진다. 직원들에게 두려운 대상이 되기보다는 이들과 함께 상의를 함으로써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음을 항상 명심한다.



(6) 절대로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한다. 얼버무리는 것은 정치인들이나
하는 일이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생각이 났을 때 당장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


    "대충 얼버무릴 경우 이는 내가 하는 일에 자신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데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난 언제나 싫은 소리를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7) 언제나 다음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짐으로써 현실감각을 유지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다음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1. 이 일을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 그렇다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2. 내가 직시하길 원하지 않는 사실이 존재하는가? 즉 이 프로젝트에서 심각한 문제로 드러나고 있는 이슈가 있음에도 내가 회피하고자 하는 사실이 있는가?



(8) 인생에서 진실 호도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사킨다

내가 곧 해고될 것임을 감지했다면 그런 상황을 은근 슬쩍 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런 상황을 직시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좋다.

직장에서 쫓겨나길 원하지 않지만 주변 분위기가 계속 심상치 않다면 상사에게 면담을 신청한다. 그리고는 내가 과연 회사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솔직한 의견을 달라고 부탁한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도움을 청한다. 이렇게 한 다음에도 계속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 사표를 던지고 더 나은 직장을 찾는 게 현명하다.



(9) 누군가가 나를 채용할 때는 그 사람 입장에서 도박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신규채용 직원들이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든다.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낄 때 책임감 있게 행동한다.

유능한 직원들은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또한 자신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회사의 성공에 직결된다고 믿는다. 이런 사실은 이들이 회사의 돈을 언제나 자신의 돈처럼 신중하게 쓴다는 데서도 입증된다. 한 마디로 유능한 직원은 자기 스스로 가치를 높이는 법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조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일하고 그럼으로써 어떤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다.



(10)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데 인색해선 안 되지만 나 또한 정확한 판단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유능한 상사는 부하 직원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하지만 경우에 따라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아이디어에 대해선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를 즉시 상사에게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상사는 간결하고 요점 중심으로 그런 신선한 아이디어를 보고 받으면 매우 흡족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중요한 고객에 대한 프리젠테이션 기회로 생각하고 거기에 준하는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어떤 아이디어를 상사에게 보고할 때는 그 상사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큰 그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내 아이디어가 상사의 승인을 얻지 못하면 그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개발 중에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11) 부하 직원의 직책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의 재능을 더 중시해야 한다

직원의 직책을 조직내에서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로 삼아선 안 된다.


    "대개 내가 보유한 인적자원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과소평가하는 것을 싫어하고 나 또한 남들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람의 직위 이상의 것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럴 경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의외의 능력을 찾아낼 수 있다."


(12) 조직의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지 일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한다

유능한 상사는 직원들이 무엇을 통해 가장 동기부여를 받고 어떻게 해야 최선을 다하는지 안다. 언제나 단호해야 하지만 공평한 태도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어떤 결과를 성취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른 법이다. 직원 각자가 뭘 필요로 하는지 이해하고 이것에 맞춰 적시에 지원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제대로 할 줄 알면 유능한 매니저에서 최고의 매니저로 올라설 수 있게 된다.



(13) 언제나 열린 마음의 자세를 유지하고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운다고 생각한다

뭐든 다 안다고 뻐기는 상사는 부하 직원들의 마음을 열 수 없다. 언제나 마음을 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지금까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냈던 일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매일 같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몇 시간씩 학습을 하는 시간을 배정하고 이를 이행하다 보면 인생을 크게 바꿀 수 있다. 특히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 다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하다. 그것을 통해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4) 스케일 크게 놀 줄도 알아야 하고 꿈을 좇고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줄 도 알아야 한다

세상은 넓고 미처 발견되지 못한 것들이 널려 있다. 언제나 스케일 크게 놀고 뭔가 대단한 것을 추구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 브루클린의 험악한 동네에서 작은 집을 사는 것보다 맨해튼의 고층빌딩을 사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다. 그 어느 쪽이든 은행융자를 받아야 한다면 사람들은 범죄가 잦은 동네의 낡은 주택을 구입하느니 버젓한 빌딩을 사는 쪽을 택할 것이다. 고층빌딩의 경우 재수가 좋다면 횡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10만 달러 손해를 보는 것과 몇 억 달러 손해 보는 게 무슨 차이겠는가? 그 어느 경우나 돈을 잃는 건 마찬가지고 파산하는 것 또한 똑같다. 따라서 일단 스케일이 크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인생을 즐기려면 화끈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언제나 가능성은 주어지는 법이다. 너무 소심하게 생각하면 결과 또한 시원찮을 뿐이다."



     




 

(1) 취업면접을 할 때 주도권을 잡고 상황을 내쪽에 유리하게 몰고 간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인터뷰를 할 경우 채용회사가 나를 놓치면 큰 손해를 볼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한 달 동안 낮은 급여로 나를 채용했다가 회사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해고해도 좋다는 제의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주어진 일자리에 내가 잘 맞는다고 생각된다면 그런 방법은 일할 기회를 얻는 방법이 될 수 있다.



(2) 급여 인상을 요구할 때는 타이밍을 잘 잡는다

급여 인상을 요구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그런 요구를 하기 전에 상사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상사에게 급여 인상을 요청하는 타이밍을 잘 잡는 것도 능력이다. 그와는 반대로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렵거나 상사가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을 때 그런 요청을 한다는 것은 내가 다른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내 생각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3) 경력을 쌓을 경우 끈기와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성공적인 경력을 쌓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아무리 난관이 있다 해도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물고 그 속에서 계속 승진가도를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 회사 임원들 중에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뭔가 오래 가는 것을 쌓으려면 장기적 안목을 갖는 것이 필요 불가결하다. 세상 일 가운데 오래 기다려서 보상을 받는 것도 분명히 있다."


(4) 골프나 내가 몰두할 수 있는 다른 취미를 갖는다

골프 같은 스포츠를 배우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것도 인생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런 취미를 가지면 비즈니스 세계에 적용 가능한 교훈을 많이 얻을 수 있다.

골프를 칠 줄 알면 비즈니스에서 다음과 같은 이점을 얻을 수 있다.


  •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집중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 상황을 내 쪽으로 유리하게 이끌고 협상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 골프를 치러 나가는 자체는 맑은 공기를 마시고 좋은 환경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 골프 게임은 각계 요인들과 인맥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 골프는 기업 경영과 마찬가지로 고독한 게임이다.

    물론 골프를 치는 데 따르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뭔가에 몰두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데 있다. 이는 또 그런 열정을 돈 버는 기회로 전환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뭔가에 진정한 열정을 기울이는 사람은 끈질긴 성격의 소유자이고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비즈니스에서 그런 성격은 아주 바람직하다.


    (5) 나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나에 대한 홍보도 꺼리지 않는다

    내가 뭔가 그럴듯한 일을 했다면 이를 내 개인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최대한 이용하도록 한다.

    내가 뭔가 잘하는 일이 있다면 이를 숨기고 겸손하게 구는 것이 반드시 미덕은 아니다. 이를 떠벌리고 널리 알려도 아무도 질책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내 개인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훨씬 더 수월하게 될 수 있다.


    (6) 언제나 내 직관을 믿고 이에 따라 행동한다

    사업가는 언제나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내 능력과 직관을 믿고 이에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심리학자 칼 융은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두뇌 능력의 단 5%만을 사용한다고 했다. 우리가 무의식과 잠재의식 영역에 있는 95%의 두뇌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놀라울 수 있다."


    (7) 낙관적일 필요는 있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는다

    회사 일을 해 나가면서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런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숱하게 교차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 극히 신중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가 삶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현실감각을 갖고 긍정적인 사고를 한다고 할 수 있겠다."


    (8) 직업을 바꾸려 할 때는 진짜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심사숙고 한다

    야망이 큰 사람일수록 직업을 바꾸고 싶은 유혹이 많이 드는 법이다. 그러나 직장을 옮기기 전 그에 따른 이득과 손실을 정확하게 계산해봐야 한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어떤 분야에서든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 예를 들어 비즈니스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 중에는 정계에 뛰어들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들은 한 분야에서 성공했으니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환상과는 거리가 있다. 한 분야에서 성공으로 이끌었던 내 능력과 성격은 다른 분야에선 그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직장을 바꾸거나 일하는 분야를 옮기고자 할 때는 내 선택의 결과가 어떨지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또 새로운 일에 임하는 내 마음의 자세가 어떤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9) 연설을 해야 할 때는 청중들과 감정교류를 해야 한다

    원래 연설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면 연설을 해야 하는 것은 경력관리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연설을 잘할 수 있도록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유능한 연설가가 되려면,

    1. 언제나 청중을 생각한다 - 나를 평가하려고 주시하는 사람들로 생각하지 말고 대신 나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 하는 사람들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2. 청중들이 계속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 나 자신을 깎아 내리거나 내 개인이 겪었던 실패담을 얘기함으로써 관심을 유도한다.

    3. 철저한 준비를 한다 - 매일 두 세 시간씩 내 전문분야에 대해 글을 읽거나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4. 능력 있는 이야기꾼이 되도록 노력한다 -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통해 얻은 중요한 교훈을 오래 기억한다.

    5. 공통분모가 무엇이 될지 신경 쓴다 - 이런 태도는 가능한 많은 수의 청중들과 감정 교류를 하려면 필요하다.

    6. 흥미진진해야 한다 - 사람들은 우선 이야기가 재미 있어야 거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7. 연설 도중 제스처와 움직임을 동원한다 - 그것을 통해 얘기하는데 즉흥성을 도입할 수 있다.

    8. 일상적 생활에서의 경험을 적극 활용한다 - 이런 경험담은 연설할 떄 사례로서 아주 적당할 수 있다.

    9. 연설 자체를 즐긴다 - 내가 말하는 것을 즐기면 청중들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10. 전문가들이 어떻게 하는지 주시한다 - 예를 들어 쇼 진행자가 어떻게 하는지 주의 깊게 본다.


    (10)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되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업을 키우는 데 있어서 자신감과 열정을 갖는 것은 성공에서 절반의 조건이 된다. 항상 낙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도록 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그냥 내버려 뒀다가는 모든 것을 망치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그런 부정적 태도를 버리기 위해선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뛰어나야 한다.



  • 매일 잠시동안이라도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생각하고 앞으로도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본다.



  •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하고 자신감을 길러주는 책을 읽는다. Norman Vincent Peale의 「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 같은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칼 융과 같은 사람이 쓴 심리, 직관, 본능에 관한 책을 읽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다.



  • 잠시 시간이 났을 때 읽을 수 있도록 긍정적 사고를 돕는 책이나 인용문 같은 것을 항상 지니고 다닌다.


    (11) 자아가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남들의 비판에 쉽게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자아가 없는 사람은 추진력도 있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 특히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 자아가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한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어떤 일을 성취한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는다. 그러나 자아가 너무 강해도 문제이고 자아가 너무 없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일단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성을 짓고 그 다음 이를 현실세계의 것으로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언젠가는 비판을 받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 이 사람의 견해가 과연 그렇게 중요한가?


  • 이 비판에서 뭔가 받아들일만한 게 있는가? 즉 지금까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 무엇이었던가?

    나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는 내가 그만큼 성공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는 또 최소한 내가 뭔가 뉴스에 나올만한 일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한 번도 비판을 받아보지 못한 채 인생을 끝마친다. 따라서 구설수에 오른다는 것은 좋은 일일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12) 하루 아침에 성공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한다

    "성공이 일직선 형태로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하루 아침에 성공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성공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



  • 당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차별화되는 점을 발견하라. 실제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더라도 10배로 노력하고 준비하라.



  •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자신의 청사진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라.



  •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라. 이것은 확실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유일한 방법이며 해야 할 일을 체크할 수 있다.



  • 시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인식하라. 과거 유사한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측하는 능력을 키워라.



  • 성공을 치장하라. 당신이 일을 하고 반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라. 심미안을 발휘하며 최고의 판단력을 사용하라.




    (1) 재무에 관한 한 최고 1인자가 되도록 노력한다

    재무 조언자를 별도로 고용하는 일 없이 대신 내가 연구하여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원찮은 재무 조언자의 실수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은 엄청날 수 있다. 그런 대신 내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다. 재무 의사결정에서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 경제신문·잡지를 열심히 읽는다 - Wall Street Journal, Forbes, Business Week, Fortune 같은 신문 잡지를 꾸준히 읽어서 시장 상황에 대해 뒤쳐지는 일이 없도록 한다.



  • 일간신문에서도 경제란을 꼼꼼히 읽는다.



  • 장기간에 걸쳐 성공을 유지하고 있는 주식종목에만 투자를 한다. 투자 세계에서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종목은 반드시 폭락하게 된다. 물론 장기간에 걸쳐 좋은 투자실적을 거둔 조언자의 말을 믿을 필요는 있지만 그보다는 나 자신의 판단력과 상식을 믿는 것이 더 낫다.


    (2)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투자기회에만 돈을 투자한다

    박사학위 정도가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한 재무기법에 사로잡히는 일은 없도록 한다.

    투자세계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Alan Greenberg나 Warren Buffett 같은 자들은 투자 결정을 내릴 때 상식에 근거를 둔다. 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투자기회에는 절대로 돈을 넣지 않는다. 이들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3) 결혼을 하려면 반드시 혼전 동의서를 작성한다

    세상에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비즈니스와 사랑이다. 내가 벌어놓은 재산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며 그러려면 반드시 혼전 동의서를 작성하도록 한다.

    혼전 동의서는 결혼이 장래에 깨질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는 또 내 배우자를 언젠가는 사랑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혼전 동의서는 다만 인생이 생각보다 항상 복잡한 법이며 만약의 경우 내 재산과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생계수단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이 조언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여성들도 결혼하기 전에 똑같이 혼전 동의서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 여성들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재산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재정상의 어려움을 벗어나는 데 변호사의 도움을 청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변호사는 그저 중개인일 뿐이다. 재정상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일이 있다면 변호사를 통하지 말고 직접 은행을 찾아가도록 하라.

    은행이나 다른 대출업자로부터 돈을 빌렸다면 그런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돈을 빌려준 조직에서 누가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 사람과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과 인간 대 인간으로 거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변호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로 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 더구나 변호사는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을수록 돈을 더 벌게 되어 있다.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면 변호사 수임료는 적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5) 자녀들에게 돈의 중요성을 잘 가르쳐야 한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자녀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돈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만든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아이들이 내가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철저히 일을 처리하는지 목도하게 된다면 돈이 얼마나 중요하고 돈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체득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솔선수범이다. 내가 물질 소유보다도 교육과 사회 공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면 아이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따를 것이다.

    자녀들에게 경제관념을 심어주려면


  • 경제 잡지를 구독하라


  • 용돈을 절약하도록 격려하라


  • 자신이 쓸 돈을 직접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


  • 큰 기준을 세우고 성취감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라.


  • 실행할 수 있다면 가족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라.


  • 자신의 돈을 쓰는 방법에 신중하라





    (1) 협상 상대방을 압도하면 그 다음 일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는 것은 설득의 기법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누가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냐에 따라 결정된다.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파워는 능력에서 나온다. 내가 한 번 실수를 저지르면 그 다음부터 상대방은 나를 우습게 알 것이다. 협상에서 파워를 갖고 압도하려면 ;


  • 내가 무슨 요량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 비유나 은유를 활용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상대방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는 유머를 동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상대방 생각이 최고로 좋고 나는 단지 상대방의 상황을 돕기 위해 조언을 할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 상대방이 하는 말을 경청하고 상대방의 몸짓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상대방이 이 거래를 반드시 성사시키고 싶어하는지, 아니면 내게 자기가 똑똑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 판단할 수 있다.



  • 협상을 이끄는 게 필요하다면 때로는 소리 지르고 테이블을 내리칠 수 있어야 한다.



  •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절대로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것임을 상대방에게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반드시 돈이 아니라 다른 것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창조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 적절한 때에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 상대방과의 갈등은 상황을 호전시키는 데 아주 좋은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이 원하는 바와 상대방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2) 협상할 때는 합리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유능한 협상가는 유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를 갖는다.

    어떤 비즈니스 거래 협상을 할 때는 상황이 요구한다면 일상적인 비즈니스 관행 규범을 벗어날 수도 있어야 한다. 협상을 하는 데 있어 유연하면 할수록 이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3) 협상에 임할 때는 항상 내 직관을 믿는다

    사전에 충분한 연구를 해놓았다면 내 무의식에서는 직관을 통해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게 되어 있다. 그런 신호를 놓치지 않고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협상을 할 때는 직관적으로 오는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숨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전문가의 조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 대신 내 자신의 직관을 믿는 것이 좋다. 나의 비즈니스 판단력을 신뢰하고 이에 따라 결정을 내리도록 한다.


    (4) 협상을 하기 전 내가 정확하게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되 이를 절대로 상대방에게 드러내선 안 된다

    협상 중에 상대방에 무엇을 드러내야 할 지 신중을 기한다면 협상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내가 갖고 있는 기대에만 매달려서는 될 일도 안 된다. 때로 협상 과정 중에 전에 미처 생각하지도 않았던 좋은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 협상 초반에 그 조건을 너무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았다면 새로운 아이디어에 근거해 협상을 다른 방향으로 얼마든지 이끌 수 있다.


    (5) 전략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긴장을 풀고 상대방의 의중을 떠본다

    협상 중에 상대방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어떤 정보를 주거나 의외의 얘기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협상할 때는 둘만의 얘기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운을 떼면서 어떤 정보를 줘야 할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그에 대해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털어놓으면서 이제껏 밝히지 않던 자신의 입장을 드러낼 수 있다. 적어도 그럴 경우 상대방이 의외의 사태에 담담하게 대처하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경우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상대방의 스타일을 파악해야 한다. 그 사람의 평소 행적을 알고 있으면 그가 허세를 부리는지 아닌지 짐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상대방도 나에 대해 충분히 사전 지식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럴 경우 내가 상대방의 의중을 떠보고 있음을 알아챌 수도 있다.


    (6) 때론 고집을 부리는 것이 필요할 수 있으나 인내는 언제나 필요한 덕목이다

    가끔 고집을 피우는 것이 필요할 수 있으나 항상 필요로 하는 덕목은 인내다.

    고집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포기를 했어도 뭔가 결과를 얻기 위해 끝까지 버티는 것으로 협상에서 필요한 요건일 수 있다. 그러나 좋은 협상가가 되기 위해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을성이다.

    협상의 속도를 늦추고 다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을 얻기 위해서는(또 그럼으로써 상대방이 거래조건을 좀더 내게 유리한 쪽으로 제시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 상대방에게 몇 주동안 여행을 가기 때문에 여행을 다녀온 후 다시 만나자고 말한다.



  • 협상이 진전되기 전에 거래의 여러 측면에 대해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7) 때로 허세를 부림으로써 내가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상대방에 보여줘야 한다

    누군가가 내게 피해를 입히려 한다면 이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반격하는 것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비즈니스에서는 언제나 편집증 환자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내 돈을 훔치려 들거나 거래에서 나보다 더 이익을 추구할 경우 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이에 반격을 가해야 한다. 또 다른 사람이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야 할 경우도 있다. 내가 그렇게 할 경우 다른 사람들은 내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며 잘못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8) 협상에서 점잖게 거절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어떤 협상에서는 최선의 대답이 거절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럴 경우 다른 더 좋은 거래가 생겨날 수 있다.

    거래라는 것이 언제나 지금 상태에서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말든지 하는 양자택일의 경우밖에 없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첫 거래에서 거절을 하는 용기를 발휘했을 경우 이보다 훨씬 더 나은 거래건이 나타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Donald Trump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기업 경영인으로 부동산에서 카지노,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걸쳐 다수의 사업체를 갖고 있다. 최근 TV 쇼 The Apprentice에 고정 출연자로 나와 공전의 인기를 끈 바 있다. 저서로는 「The Art of the Deal」, 「Survival at the Top」, 「The Art of the Comeback」, 「The America We Deserve」 등이 있다. 이밖에 그는 자선사업 분야에서도 상당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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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한 상황속에서 자아는 무엇을 찾을 것인가?

    “마음이라는 것은 항상 무엇인가가 차 있다. 그것이 신념이든 분노이든 상관은 없다. 마음을 가득 메운 것으로 인해 사람은 집중할 수가 있으며 공포를 이겨낼 수가 있다. 하지만 마음의 문이 열리는 순간, 공포는 물 밀릴 듯이 밀려오고 급기야는 상황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체 스스로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보통 사람이 빠지는 일반적인 경우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공포가 엄습해와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며, 평상심을 유지할려고 한다. 어쩌면 지은이가 보여줄려는 것인 호랑이 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속담일런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진리는 상당히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파랑새 처럼 가까이에 있다. “

    승병선승이후구전(勝兵先勝以後求戰), 패병선전이후구승(敗兵先戰以後求勝)

    주인공은 몇 번의 극한 상황을 넘기게 됩니다. 그 첫번째가 첫권에 나오는 판단이다.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지 모르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댓가는 어마어마한 금액. 하지만 조건이 있다. 판단을 최대한 빨리 해야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절대숙명은, 시간은 금!! 시간을 늦출수록 돈은 줄어들고 급기야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은 사라지고 맙니다.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액수에 놀라고, 다시한번 시간과 금전 사이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합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사람들은 냉정하게 판단할 수가 있을까? 두번째는 희대의 살인마를 지키는 임무입니다. 물론 혼자가 아닌 몇 명이 하지만 교대로 돌아가며 그를 감시합니다. 하지만 살인자는 무차별적이며 동정심은 눈꼽 만큼도 없는 사람.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 냉정해질 수가 있을까요?

    지은이는 지피지기 백전불패라는 의미를 곳곳에 드러냅니다. 살인자와의 치열한 심리 게임이 벌어지는데, 이는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개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중간쯤에서 도박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치열한 심리와 머리싸움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만남이 동등한 게임이 아니라는 변수가 놓여져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주인공은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러한 진부한 상황의 전개는 내용을 자칫 지루하게 할 수가 있으며, 과연 "운"이라는 하나만으로 극을 풀어간다는 비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은이는 “히라이 킨지” 통해 우리(주인공)에게 죽음을 강요합니다. 죽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6권) 이 죽음의 의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가 무기를 든 자와 싸우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가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은연중에 일본의 현실을 비판합니다. 일본에서 부자가 되는 원칙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 1, 현금을 지니지 말 것. 2, 빚을 질 것. 3, 부동산을 닥치는 대로 사둘 것(5권) 항상 부동산을 사지만 현금이 없이 빚만 있습니다. 부채가 재산이라는 것은 경영학에서는 상식입니다. 부채가 재산으로 포함되니,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자산의 가치는 그만큼 높게 책정이 됩니다. 현금이 없으니, 세금 걱정도 없습니다.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부동산. 100원 짜리 과자 한봉지 팔아 30원 남기는 것이 아니라, 10억 짜리 아파트 사서 배로 등쳐 먹는 장사!(--이는 [한국의 부자들(위즈덤 하우스)]에서 부자들의 돈 버는 방법과 어느 정도 일치합니다. 그들은 돈을 빌려서 부동산을 산 다음에, 다시 팔아서 빚을 갚고 다음에는 재산을 늘린다. 여유자금이 있으면 주식에 투자한다. 열심히 땅 파서 혹은 믿음 하나라는 상도(商道)는 최씨의 소설에만 존재하는 듯… 즉 상도로 돈을 벌었다는 소식은 십년에 한 면 나올까말까하는 신문기사에 불과하다)

    긴지씨의 꿈은 재벌 위에 쓰는 것! 재벌 위에 군림합니다. 가능한 일인가라고 국회의원이 물어보자 그는 “대장성이 은행의 융자를 법적으로 제한을 한다”라는 법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은행이 스스로 돈 빌려준 것이 일본 거품 경제를 일으킨 주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대장성)은 돈을 빌려 주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검토 작업을 민간 용역을 맡기게 되고, 이를 무는 것은 긴지씨입니다. 과연 독점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가와 어떻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의 가치과 내지 철학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그가 아무런 문제 없이 처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점이 생기게 됩니다. 긴지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은행은 불량 채권을 무진장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거대 자본의 투입을 요합니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커다란 금융대란이 온다. 어디서 많이 듣을 내용이 아닌가요? 난 몇 년 전에 우리 언론에서 본 듯합니다. 어머어마한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는데… 그 뒤는 감감 무소식입니다. 옛말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경우는 경우가 아니라고 하는데… 정부에서는 내 세금을 어떻게 썼는가에 대한 회계감사라고 벌러야 하지 않는가요? 혹시 벌써 감사가 끝났나요? 아무튼 위와 같은 일이 일본에서 먼저 일어난 듯 합니다. 뛰어난 두뇌를 가진 킨지는 공적 자금의 투입을 예단하고…


    지은이는 심리학을 전공하였다고 합니다.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았든 하였든, 그의 작품에는 심리적인 흐름이 많이 풍깁니다. 이러한 연출이 실력이 아닌, 심리적 우위에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지 않는가라는 심리 만능을 연상시킵니다. 아울러 위에서 말했듯이, 사람을 가장 극한 상황까지 몰고가는 그의 심리 묘사는 어쩌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연관성이 많이 희석되었다고 밖에는 보여지지가 않습니다.

    아울러 작품이 가다 만 것을 11권을 읽고 나면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긴지씨가 꿈꾸는 세상이 과연 어떤 모습인가는 아직 꾸어야 할 머나먼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루 빨리 지은이가 방황에서 돌아와, 깊은 고뇌를 이야기를 풀어가길 기다립니다.

    덧붙임: 도박에 "도"짜도 모르는 내게 도박은 넘지 못하는 뫼이다. 온라인 게임의 맞고도 치지 못하는 내게, 지은이가 들려주는 도박은 많은 부담이 되며 그냥 따라 흘러갑니다. 치열한 심리묘사를 통해 이야기의 전개는 놓치지 않는다 하여도 극적인 재미는 반감되니 어쩔 수 없는 아쉬움입니다.


    지은이는 일본 현실과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할 말이 많은 듯합니다. 그래서 경마라는 거물 내기에서 경마를 통한 심리적인 묘사와 그의 꿈에 한발 다가가는 히라이 긴지에만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경마꾼을 사로잡는가에 대한 심리적인 묘사는 미미합니다. 그 긴 말을 다시 듣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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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난 월급이 28만원이었다.
    취사도 되지 않아 주인 몰래 부루스타에 해먹어야하는
    단칸방..
    100만원 보증금에 월세 13만원 지출하니
    달랑 남은 돈 15만원으로
    저축, 생활비 아무것도 할수가 없어
    뭘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다.

    1년후엔 500만원 짜리 옥탑 전세로 꼭 올라가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퇴근후 돈벌기.
    첫 알바자리는
    과외였으나 성격상 실패^^;;;(무쟈게 급해요)
    두번째..
    일산에
    원 할머니 족발집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30만원을 받고 일하기로 했다.
    배달은 가만히 보니
    하루 5-6개 정도 들어왔다.
    제안을 하였다.
    사장님!!! "하루 10개 이상 들어오면 한개에 2,000원 주실래요?"
    그리고 홀 매상이 2배로 늘어나면 제 월급도 두배로 주실껀가요?
    사장님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내 사무실은 50년 전부터 주 5일 근무에
    하절기엔 5시에 퇴근이다.
    그래서 퇴근과 동시에..그리고 토요일 일요일마다..

    스티커를 들고 주변에 아파트는 다 돌았다,
    그 덕분에 운동도 되어 지금 내 체력은 이천수다..
    한번은 백마 이마트 옆 금호 아파트 27층 사는 사람이
    쟁반 국수를 시켰는데
    엘리베이트가 수리중이였다.
    아마 그 사람도 내려오기 귀찮아서 시켜 먹었나보다.
    그래서 27층까지 한번도 안쉬고 뛰어 올라 간적도 있다.
    국수는 면발이 생명이기 때문이였다.

    암튼 스티커 돌리기 2주째 배달이 딱 10개 들어왔다.
    그 다음은 14개 그 다음은 20개..

    노하우는
    배달 갈때마다..배달 안할때도 한가할땐 사다드릴테니까
    담배, 음료수 쌀, 등등 필요한거 시키세요..돈은 한달후에 후불로 주세요.

    내 생각은 적중했다.
    배달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홀에 손님 많게 하는 노하우 :

    난 우선 인사를 기분 좋게 크게 하기..
    그리고 내가 앉기 편하게 테이블을 바꿨다.
    그리고 다른 알바 애들한테도 손님이 부르면 항상 대답 크게 하기..
    또는 손님이 눈만 굴려도 달려가기..
    항상 우리끼리 잡담하지말고 손님 주시하기...
    그래서 교육후 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면 손님이 달라고 하기도 전에
    우린 그 테이블로 가지고 갈수 있었다.
    물론 맛도 있었지만 써비스 전략이 더 효과적이였던거 같다.

    원할머니 족발 보쌈집에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4시간 알바한지
    4달만에 월 이백 오십을 받을수 있었다.

    난 5개월 후
    알바 시작한지 9개월만에
    꿈의 옥탑 500만원짜리가 아니라 옥상 넓은 1000만원짜리 옥탑으로 옮겼다.

    4시간 배달 알바하면서 한달에 이백 오십 버는 노하우 2탄(알바로 내집사기)
     
    번호:32803 글쓴이: 풀잎향수
    조회:1389 날짜:2004/09/17 11:57
     


    넓은 옥상이 있는 옥탑은 정말 꿈만 같았다.
    이제 시골에 다녀오면 나한테 연락도 없이
    제사랍시고 내방에 손님들이 가득하여 새벽에 내쫒기는 일은 없어서 좋다.
    난 빨간 돼지를 늘 한마리 키운다.
    애지중지하던 빨간돼지를 주인 아들이 손데는 일도 없을것이다.
    그 아이는 2년전 우연히 연희관 주차장에서 차를 주차하는데
    울학교 주차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어느듯 성장하여 나와 소주를 함께 나눌 나이가 된것에 놀라기도 했다.

    암튼
    다시 욕심이 생겼다.
    내 집이 가지고 싶었다.

    복지타운 옆에 상가엔 떡집이 있다.
    어차피 우린 5일 근무이니 토요일과 일요일을
    활용하면 될거란 계산이 나왔다.
    한번은 원할머니집에 좀 늦겠다고 전화를 한후
    그 떡집으로 찾아가서 혹 알바안구하냐고 물어봤다.

    마침 주말 새벽에 배달이 많은데 차 있느냐고 물어보신다.
    네 차있어요.
    바로 대답하고 다음주 토요일, 일요일
    새벽 4시 30분 부터 나가기로 하였다.
    오후 4시 30분까지 12시간 이틀이면 24시간을 또 활용할수가 있다.
    1시간에 1,500백원정도로 기억하는데 그건 확실치 않다
    1500백원 X 12시간 X 8일 = 144,000원

    원장님께 어디 중고차 싸게 살만한데 없냐고 여쭤보았다.
    원장님이셨던 박ㅇㅇ원장님께서 평소 예쁘게 보셨던지라
    당신이 타시던 프라이드를 어차피 잘 안타신다고 내게 무상으로 주셨다.
    나의 첫 차가 프라이드다,
    그래서 난 아직 프라이드를 좋아한다.
    지금은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시골에서 요양중이시다.

    떡집에는 떡을 만드는 곳이지만 기름도 짜고, 고춧가루도 빻고 한다.
    난 먼지 알러지가 있는데..
    고추가루 냄새를 맏으면 계속해서 재채기를 한다.
    떡집 내내 알바를 하는 동안 사장님은 내가 감기를 달고 사는줄 아셨다.

    가만히 보니 떡집 주변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그 절에만 들어가고 몇군데 안되는 어린이집 정도만 들어가고 있다.

    난 먼저 주변에 교회가 몇개인지 학교가 몇개인지를 파악해보고.
    교회, 학교, 어린이집, 그리고 각 가정에 배부할 스티커를 바로 만들었다.

    원할머니 족발집 스티커를 돌리며 함께 돌리니 일거 양득이였고..
    떡배달도 점점 늘어갔다.
    떡집에서 일한지 5개월만에
    당연히 내 배달료도 시간당 8천원으로 뛰었다.
    8000원 X 12시간 X 8일 = 758,000원


    실력을 갖춰야 월급도 더 많이 오를거 같았다.
    떡집에서 일할려면 손에 허물이
    세번에서 다섯번은 벗겨져야 떡을 만들수 있다.
    처음 막쪄낸 반죽은 보통 사람이면 뜨거워서 만지질 못한다.

    난 허물이 4번 벗겨지고서야 떡을 제데로 만들수 잇었다.
    그래서 지금도 뜨거운것은 잘 만지나보다^^
    내가 제일 잘 만드는 떡은 바람떡, 꿀떡 , 개떡이다.
    떡집에서 일한지 1년만에 난 사장님보다 바람떡, 꿀떡, 개떡은 더 잘 만들수 있었고..

    그 떡집은 상가 안쪽에 어두운 구석에 있었는데
    1000원에서 3000원짜리 묶음을 만들어 밖에 가판대를 만들었다.
    많이 팔렷다.
    난 1달에 8일 일하면서 1백만원을 받았다.


    알바생 여러분!!!
    시간으로 돈 계산안하고 월급으로 제데로 받을려면
    사장님보다 일을 많이 아시는게 가장 페이 결정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어쨌든 옥탑으로 옮긴지 2년만에 난 서울 천연동에 평수가 작은 집이지만
    서울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제일 꼭대기에 아파트를 마련하였다.

    이젠 내 집이다.
    아버님 돌아가신 이후로 처음 눈물을 흘렸다.

    [[아름다운미혼]] 4시간 배달 알바하면서 한달에 이백 오십 버는 노하우 3탄(알바로 학비벌기)
     
    번호 : 2699   글쓴이 : 상담사
    조회 : 13743   스크랩 : 0   날짜 : 2004.10.18 00:46
     







    4시간 배달 알바하면서 한달에 이백 오십 버는 노하우 3탄(알바로 학비벌기)
     
    번호:34475 글쓴이: 풀잎향수
    조회:844 날짜:2004/10/12 11:26
     



    12시 좀 지나서..
    전화가 왔다.

    요즘은 몸이 딸려 주말에 하지만,
    다행히 내일이 창립 기념일이라 휴무다.

    그전엔 나를 많이 애용해 주셨던 일산의 사장님..
    12시 50분에 연대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으나,
    이눔의 플래닛에
    미련이 남아 좀 늦게 나갔다.(이도 빨리 끊어야 하는데..)
    택시도, 기사도 있으련만
    늘.. 나를 찾아주셨던 그 사장님이 고마웠다.

    동문이래서
    또한,
    열심히 사는 모습이 자기 젊을때 같아서
    애용해 주시는거랜다.(근데 대화 나눠보니 미심쩍다..^^)

    그러면서도
    얌마!! 왜이렇게 늦어?
    돈 많이 벌었나보지?
    등등의 얘기는 거슬린다.

    더럽고 아니꼽게 보여도
    웃으며..
    그것에 반응안보이는것..
    그 모든것이 알바비에 함께
    포함된일이라 생각한지 오래다.
    난 술 취해도 안그러는데..(ㅡㅡ;;)

    그분은 늘 나의 말문이 터지길 원한다.
    왜 하느냐.. 돈이 그렇게 필요하냐?
    돈 필요하면 돈 많이 주랴?
    그러면서 주정도 부린다.
    (그래 난 돈이 필요하다..ㅡㅡ;;;)
    그냥 술주정으로 받아 들인다..
    구구절절이 얘기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웃으며...
    주무세요..
    도착하면 깨워 드릴께요..
    그래도 안자고 혼자 주절주절..

    내가 대리운전을 처음 시작할땐
    명함을 새겨서
    우리학교 교수님들..의사들..간호사들..
    같이 대학원 다니는 원생들..
    다 뿌렸다.

    나의 퇴근후 알바..
    내가 세운 솔로 회사는 "기분좋은 귀가" 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동 호수를 넣어 빌딩이라 하였고,

    나의 학교 이메일을 넣어 회사 주소라 하였고(그래야 동문이라 아니까)
    나의 핸드폰을 넣어..(주) 기분 좋은 귀가" 대표 ㅇㅇㅇ로 하였다.
    반응은 제로 였다.
    신뢰가 부족한듯 하였다.

    난 교육대학원이나,
    언론 홍보 대학원,
    경영대학원,
    또한,
    대학원의 모든 행사에 일부러 가서 사회도 보며,
    나에 대해 각인 시켰고..


    홍대입구, 합정동 등지의 룸싸롱, 가요주점 등지에 명함을 돌렸다.
    장난 삼아 타보는 사람이 하나둘 생겼다.
    차에는 항상 술 깨는 음료와
    피로회복제를 넣어 다니며
    나눠드렸다.

    명함을 뿌리고 2-3개월 지나니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학비 벌려고 한다며
    일부러 찾아주시는분도 한둘 늘었고,
    여학생들은 안전귀가의 보장성때문에
    웃돈 2-3천원을 더 줘가며 찾아주기도 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난 대학원 다니는 동안 한학기 5백만원을
    한푼도 월급에서 학비로 넣어 본적이 없다.
    5학기 2천 5백 여만원의 돈을 월급에서 한푼도 들이지않았다.

    그러면서 새벽 3-5시에 귀가..
    9시에 출근하고
    늘.. 점심은 우유한잔 꿀떡 꿀떡 마시고
    나머지는 잠으로 때웠다.
    근무중에 조는것으로 인해 책 잡히는것이 싫었다.

    간혹..
    졸다 걸리면 구박 받는게 죽음보다도 싫었기때문이다.

    주말은 늘..
    레포트에 치여서 학교 도서관에서 살아야만했다.
    그래서 올해 2월에
    난 아무나 받을수 없다는 독수리 황금패를
    모든 대학원생들이 보는 자리에서 받을수 있었다.
    또 다른 성취감이었다.

    암튼..
    그 선배라는 사장님은
    술만 취하면 날 찾았었는데..
    오랫만에 찾은걸 보니 그동안 안 마신듯하다.
    멀쑥한 모습과 금테 안경으로 보아 잘 나가는듯하나
    나는 뭐하냐느니? 그런 얘기는 한마디도 안한다.
    언젠가 얼핏 한 얘기로 보아
    철강회사 몇개를 운영하며,
    부부 불화가 잦은듯하다.
    좀 외로워 하는것 같기도 하다.

    난 평소처럼 3만원을 받고 가기로 하였다.
    빨리 내려 드리고 구리 가기로한 예약손님을 태우기 위해선
    연대 앞에 적어도 30분 후엔 도착하여야 한다.

    그 사장님은 날 더러 한잔하자고 한다.
    힘든일이 있나보다.
    술마시면 운전때문에 안된다고 극구 사양 하였지만..
    서울까지 대리운전 시켜준덴다.

    구리갈 손님 예약이 있다고 하였다.
    그 돈까지 합쳐서 돈을 준덴다.
    막무가네다.
    어쩌면 내 맘속엔
    횡재했네...가 더 차지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일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 한번도 보따리를 풀은적이 없지만,
    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뭐가 힘든지..
    나보다 네가 뭐가 더 힘든지..

    화장실에 다녀오니
    보도블럭 옆에 세워진 내차 와이퍼엔 10만원이 꽃혀있었고 그 사람은 없다.
    소주를 몇잔 마셨지만..
    돈 2-3만원때문에 서울나가는 대리운전은 싫었다.
    (내가 대리운전자인데...^^)
    다행히 안걸렸다.

    독립문에 도착하여..
    늘 자주 다니는 ..
    같은 임대 아파트에 사시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포장마차에 들렀다.
    오늘도 포장마차에 떨어지는 이 빗소리가 너무 좋다.

    2000년
    내가 독립문에 발을 들이고
    처음 이동네서 대리운전 알바를 하고 집에 가는길..
    눈이 엄청 내렸다.
    새벽 4시경..
    눈발이 그렇게 휘날리는데...
    오뎅국물 한그릇 더 주시며..
    사는게 다 그려!!
    하시던 할머니라..
    초라한 포장마차이지만..
    아직도 그 포장마차와의 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무릎이 많이 아프다 하여 파스를 사다 드렸더니..
    그 이후로 들리면 아들 대하듯 하신다.

    가락국수 하나에..
    오뎅국물..
    소주 한병..

    나보다 더 못한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술값 6천원 지불하고 나니
    9만 4천원 벌었다.

    빗방울이 굵어진다.
    이 비가 그치면 가을이 저만치 더 와 있겠지?
    가을을 즐기기엔 난 아직 부유하지 못하다.

    졸린다...

    알바생 여러분!!
    어떤 일이던
    더럽고 아니꼽게 보여도 그것에 반응하지말고
    그 모든것이 알바비에 함께 포함된일이라 생각하기 바란다.
    때론 나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당신은 세상을 이길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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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만으로 안된다, 목숨을 걸어라"
    "아버지 무패의 비결은 자기수양과 정진이었어요"… 아들, 최배달 일대기 엮어 책·영화화


    “아버님은 의외로 약한 분이었습니다. ‘무패의 파이터’였긴 했지만 말년엔 몸 이곳 저곳이 안좋아 자주 통증을 호소하곤 하셨습니다. 특히 관절이 좋지 않으셨어요. 손목이나 무릎 같은 곳이 심했습니다. 손목을 뒤로 젖히지도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머님이 아버님 팔·다리를 주무르며 마사지 해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3040세대에겐 ‘고우영, 대야망’으로, 2030세대에겐 ‘방학기, 바람의 파이터’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고 최배달(본명 최영의)씨. 전북 김제에서 출생, 1939년 17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1947년 도쿄 무도대회 가라테(空手) 부문서 우승한 뒤, 미국·남미·중국 등을 돌며 고수들과 무예를 겨뤄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전설적 인물. 그가 창시한 ‘극진(極眞) 가라테’는 오늘날 일본 공수도의 대명사로 군림하며 러시아·북한 등을 포함한 세계 100여개국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배달의 장남 최광범(30)씨는 강한 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레지던트라는 직업 때문인지 그가 풀어내는 ‘기억’엔 의사로서의 개인적 소견이 양념처럼 곁들여졌다.

    “젊었을 때 워낙 심하게 몸을 쓰셨던 것 같아요. 극한의 상황에서 계속 단련을 하셨으니까,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 없었을 테죠. 아버님은 생전에 약 100번에 걸쳐 황소와 대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47마리의 뿔을 꺾고, 4마리는 즉사시켰죠. 그때 쓰러지는 소에 무릎이 깔린 적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400㎏도 넘는 황소가 무릎을 덮쳤으니…. 제 생각으로는 당시 미세골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봅니다. 운동을 무리하게 하는 사람들은 퇴행성 관절염을 조심해야 하거든요.”

    쏘는 듯한 눈빛에 다부진 체격

    부친을 닮아 그럴까? 최광범씨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았다. 탱글탱글하니 쏘는 듯한 눈빛에 프로레슬러 같은 체구, 활기 넘치는 다부진 몸집이 사진으로 본 ‘최배달’을 쏙 빼닮았다. ‘한 가락’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하. 저희 3형제가 다 그래요. 저는 174㎝에 92㎏, 둘째는 175㎝에 95㎏, 막내는 181㎝에 95㎏입니다. 모두들 운동을 좋아하죠. 저는 킥복싱과 헬스를 했고요, 둘째(최광수·29)는 체육대를 나와 킥복싱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막내(최광화·23)는 아직 학생인데 검도를 익혀 서울 검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최광범씨는 만화가 방학기씨가 스포츠신문에 ‘바람의 파이터’를 연재(1989~1993년)할 때, 작가 앞에서 실전 자세를 시연해 이해를 도왔던 무술 모델. 그런 그가 왜 ‘극진 가라테’가 아닌 킥복싱을 배웠을까?

    “우리나라엔 가라테 도장이 없습니다. 아버님이 태권도와의 마찰을 우려, 고국에는 극진 가라테를 들여오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물론 가라테를 배우고 싶었었죠. 어렸을 때 아버님께 ‘좋은 도장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이 뜻밖의 대답을 하시더군요. ‘가장 가까운 곳이 가장 좋은 도장’이란 겁니다. ‘매일같이 갈 수 있고, 틈 나는대로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란 거지요.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장이 킥복싱 도장이었습니다.”

    ‘배달’은 자식들에게 “기본부터 착실히 다질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아버님은 항상 ‘내가 많은 사람들과 겨뤄 상대를 쓰러뜨렸지만, 그 비결은 결코 화려한 공중돌기나 발차기가 아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장의 무기는 오직 ‘정권치기’ 하나였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발차기가 화려할수록 위력적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전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님이 미국 프로레슬러 톰 라이슨과 붙었을 때 얘깁니다. 만화에선 공중에 붕 떠서, 링 3면을 돌아가면서 발로 차, 가속도를 붙여 그 힘으로 톰 라이슨을 가격한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상황은 그와 다릅니다. 상대도 평생을 갈고 닦은 고수 아닙니까? 그런 상대의 빈틈은 눈 깜빡하는 순간, 0.1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그 순간을 잡느냐 못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립니다. 그런 상대 앞에서 벽을 세 번씩이나 차면서 빙빙 돌면, 그게 통하겠습니까? 그때도 아버님의 무기는 단 한 방, 상대가 ‘깜빡’하는 그 틈을 파고든 정권치기였다고 합니다.”

    “기본에 충실하라” 역설

    최광범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버님을 보면 늘 ‘칼 끝에 서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아버님은 항상 자신을 다듬으며 정진하셨거든요. 집에서도 좌선을 하시고, 천천히 산책하며 차를 마시곤 하셨습니다.”

    “아버님에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그 말을 몹시 싫어하셨어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겠다는 말 아니냐’는 거죠. ‘자기 상황에 따라 단지 성실히 노력하는 정도로는 이뤄지는 것이 적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목숨을 걸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거다 싶으면 목숨 걸고 정진해야 한다’는 겁니다.”

    ‘배달’에게 최광범씨는 늦둥이다. 52세에 첫아들을 낳았으니 늦둥이도 이만저만한 늦둥이가 아니다. 무예를 위해 결혼마저도 뒤로 미뤘던 것일까?

    “어머님이 일본서 유학할 때 아버님을 만났습니다. 당시 어머님은 24세, 아버님은 45세였습니다. 사실 아버님에겐 어머님을 만나기 전,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사람이어서 집안 어른들이 인정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을 데려오자 집안 어른들이 비로소 인정했다고 합니다. 한국인이었으니까요. 1974년에 제가 태어나자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아버님은 귀국 후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며 생활하셨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공식적인 사회활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패의 파이터에게도 사생활은 있었을 터. 부부싸움이나 자녀 교육문제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배달’의 모습이 궁금했다.

    “아버님은 큰소리를 내지 않으셨어요. 소리지르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부부싸움은 제가 기억하는 한 한 번도 하지 않으셨어요. 트러블이 생길 것 같으면 어머님은 아무말도 않고 그냥 가만히 계시기만 했어요. 그럼 그냥 모든 것이 조용해졌습니다.”

    최광범씨는 ‘최배달’의 아들로서 “고교시절 동급생들의 눈길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딱 한 번 사고를 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후회했어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상대편 얼굴이 부서지다시피 했거든요. 의사가 보더니 ‘교통사고가 났느냐’고 물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애들이 ‘최배달 아들이 싸운다’며 우루루 몰려 나와 에워싼 채 구경하려 몰려들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우쭐해진 겁니다.”

    10여년 전 치료비로 400만원이 나왔을 정도라니, 집에서 엄청 혼났을 법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버님은 아무 표정도 없이 ‘무술은 너 자신을 닦는 거다’라고 딱 한마디만 하시더군요.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나중에 그러셨다더군요. ‘그래도 맞고 들어온 것 보단 낫다’라고요.”

    ‘최배달=일본인’ 일본 만화는 왜곡

    최광범씨는 바쁘다. 8월 12일 개봉되는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제작 자문을 맡았고, 부친의 일대기를 엮은 책 ‘This is 최배달’(찬우물)을 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레지던트 생활 아시잖아요? 병원 일을 보면서 인터뷰도 하고 하려니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아예 휴가를 냈습니다.”

    최씨는 인터뷰 말미에 최배달을 다룬 한 일본 만화에 대해 언급했다. 이 만화에는 최배달이 ‘가미카제’ 조종사로 묘사됐고 일본이 패망하자 ‘허망하다’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그려져 있다.

    “아버지는 도장의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귀화했지만, 죽을 때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창씨개명을 할 때도 ‘배달’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그런데 철저한 일본인으로 아버지를 묘사한 것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최씨는 “시정조치가 없을 때엔 극진회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법적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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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억 부자 가수방미의 놀라운 재테크 비법 첫 공개 80년대 ‘날 보러 와요’ ‘올가을엔 사랑할거야’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미모의 여가수 방미. 가수가 아닌 재테크 전문가, 100억원대의 자산가로 돌아온 그녀가 들려주는 실전 재테크 노하우. “오후에는 ‘7080 가요콘서트’ 공연이 있으니까 아침 일찍 오세요. 제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준비하고…. 9시 30분쯤 오면 되겠네요.”
    말투가 싹싹하고 시원시원했다. 집을 번듯하게 꾸며놓지 않아서 볼 건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오라고 화끈하게 OK한 가수 방미. 한강과 한적한 한남동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UN빌리지 언덕 위의 경치 좋은 집. 그녀는 현관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미드나이트블루 미니스커트와 톱을 차려입은 그녀의 이미지가 상쾌한 아침과 잘 어울렸다. 입구를 따라 거실에 도착했을 때 기자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거실에는 TV와 소파 2개, 안방에는 침대 하나, 작은 방에는 콘솔 하나가 전부였다.

     

    분명 그녀가 100억원대의 부자라는 소문을 듣고 갔는데 말이다. “아니, 필요한 가구만 있으면 되지, 뭘 더 사야 하나. 하나하나 다 갖춰놓고 살려면 한도 끝도 없고, 그런 게 다 사치예요. 하하.”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거실의 통유리창 옆에 있는 책상은 학원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얻어온 것이다. 아이들이 쓰던 책상이라 마징가Z부터 드래곤볼까지 스티커가 빼곡하게 붙여 있다. 부엌의 한 코너에는 스타벅스 커피잔이 소복이 쌓여 있다. 분리 수거를 잘 하는 구나 싶었다.

     

    “이거 종이컵 하나에 50원 주잖우. 60개 모으면 아메리카노 한 잔이 공짜라니까!” ‘하하하’ 웃다가 고개를 돌리니 커피숍에서 들고 온 냅킨 한 움큼이 시야에 들어왔다. 소박한 생활상이 신선했다. 부자는 어느 한순간에 되는 게 아니구나.

     

    종이컵 하나도 버리지 않는 짠순이 살림꾼 그녀는 원래 MBC 코미디언 공채 2기 출신이다. 그러나 가수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1980년 ‘날 보러 와요’라는 노래로 가요계에 데뷔했고,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데뷔하자마자 히트곡을 낸다는 게 어려운데, 참 운이 좋았어요. 갑자기 바빠지니까 혼자서 스케줄 관리를 못 하겠더라고요. 마음에 맞는 매니저도 만나야 하고 그래서 81년부터는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돼 일을 했어요.” 그때부터 영화와 CF에도 출연했고, 라디오 DJ로도 활약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화려한 시절이었다.

    그러다 93년 겨울, 그녀는 모든 활동을 접고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노래가 아닌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10대 댄스 가수들 중심으로 가요계 판도가 바뀌니까 설 자리가 없더라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제 노래가 댄스곡인가요? 아니면 발라드인가요? 그렇다고 트롯인가? 나이 든 가수가 노래 부르면 무조건 트롯이 되잖아요. 그렇게 어중간하게 분류되는 게 자존심 상하더라고요.

     

    ”구체적인 일정과 계획을 세우고 가지는 않았다. 일단 보스턴에서 1년 동안 영어 공부를 했고, 뉴욕으로 건너가서 연극 공부를 마쳤다. “미국에 있으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새로운 사람 만나면 말수도 없고, 내성적이었는데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그런 게 없어졌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사람들이 아는 척하는 게 싫었는데 미국에서는 유학생들이나 아줌마들이 조금만 아는 척 해줘도 너무 반갑더라고요.”

     

    그녀는 특히 뉴욕을 사랑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음악, 패션, 공연, 재즈, 영화, 미술, 건축, 새로운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곳.

    가수 생활을 하면서도 아파트 분양 재테크를 줄곧 해왔던 그녀는 미국에서도 일을 벌였다. 미국에 올 때 1달러당 800원이었던 환율이 IMF(98년)가 터진 뒤 1달러당 2200원까지 치솟은 것. 유학 자금으로 가져왔던 14만 달러와 집 안의 가구들, 고가로 구입한 벤츠 자동차까지 팔아서 한국으로 달러를 송금했다.

     한 달 만에 2배 이상의 환차익을 볼 수 있었고, 그 이익금을 뉴욕에서 콘도 분양받는 데 투자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타이밍을 잘 잡으니까 돈이 불어나더라고요. 미국에 있는 동안 환율의 힘이 꽤 무서운 거구나 느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재테크 공부를 했어요.” 뉴욕 부동산 시장을 누비다 생활력은 강했지만 수입과 지출 관리를 잘 못했던 어머니, 노름의 유혹에 빠졌던 아버지로 인해 부유하게 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그녀를 악착같이 만들었다. 가수 데뷔하기 전까지 줄곧 네 식구가 방 한 칸에서 함께 지냈단다. 그렇다 보니 아껴 쓰는 생활이 몸에 배었고, 돈 모으는 재미에 주파수를 맞추게 된 것이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 부동산 시장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꾸준히 부동산 전문 서적들을 읽으며 공부했다. LA와 뉴욕을 오가면서 지내다 작년 1년 동안은 뉴욕에 머물며 콘도를 사기 위해 수없이 집을 보러 다녔다. 가는 분양 하우스마다 한국인들이 있었고, 어떤 날은 아침 예약 다섯 팀 모두가 한국 사람인 날도 있었다. 뉴욕의 부동산에 동양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됐다. 그렇게 알게 된 부동산에 관심 많은 사람들과도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1년 전에 맨해튼72가 리버사이드 쪽에 있는 30달러짜리 콘도를 샀어요. 맨해튼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었죠. 그리고 몇 달 만에 60만 달러에 팔았어요. 일명 ‘치고 빠지기 작전’이라고 하잖아요.” 집을 살 때는 분양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분양 값과 감정가는 다르기 때문에 시세 파악을 정확하게 하고 나서 집을 사야 한다는 것. 특히 미국은 담보금을 50% 내고, 나머지는 대출을 받아 상환하는 방식으로 부동산 거래가 이루어지므로 융자 상품도 이자율을 꼼꼼히 따져서 결정해야 했다. 그녀는 한국에서도 가수 데뷔하면서부터 아파트 재테크를 줄곧 해왔다. 데뷔 당시 그녀의 재산은 한 달 월급 9만원. 비과세 정기적금 4개와 일반예금 통장 1개가 전부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밥값도 아껴 알뜰히 모으는 정도였다. 그러다 80년대 초반에 옴니버스 앨범 중 ‘One night two days’가 히트하면서 1200만원의 목돈이 생겼다. 그녀는 그 돈에 4개의 적금을 해약한 돈까지 보태 아파트를 계약했다. 방 한 칸에서 월세로 살던 처지를 청산하고 신반포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한 것. 아파트가 살기에 편하고 좋다는 걸 이십대 초반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 후 신반포 아파트를 내놓고 방배동 아파트를 매입, 10개월 만에 300만원의 차익을 봤다. 다시 여의도, 방배동에 있는 아파트를 옮겨가며 6개월~1년 주기로 매매와 매도를 했다. 1억원으로 샀던 여의도의 아파트가 2년 사이에 5억5000만원까지 치솟는 등 이익금도 커졌고, 평수도 조금씩 넓혀 갔다. “20년 동안 서른 번을 이사했어요. 부동산, 그것도 주택으로 재테크하려는 사람들은 집을 사서 평생 살겠다는 마인드를 바꿔야 해요. 재건축에 들어갈 집이나 꾸준히 집값이 오르는 아파트 등은 차익 실현을 하는 대로 치고 빠지는 거예요.” 현재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주택은 강남의 아파트 한 채, UN빌리지의 100평대 빌라, 논현동의 빌딩 한 채다. 100억원을 호가하는 자산이다. 그녀는 집을 살 때 반드시 대출을 받는다. “평수를 늘리거나 목이 좋은 데로 옮길 때마다 대출을 받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금이 그만큼 있으면서 뭐 하러 대출 받느냐고 해요. 아니 왜 은행 좋은 일을 시켜요? 은행은 돈을 빌려주는 곳이지, 우리가 돈을 갖다주는 곳이 되면 안 되죠.” 그녀의 은행 거래는 통장 2개가 전부다. 한 개는 3개월 동안 쓸 생활비가 들어 있는 저축통장이고, 또 하나는 대출 통장이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 전에 임대료 수익률을 미리 계산해 봐야 한다. 임대료로 대출 이자를 갚고도 돈이 남는지 따져보는 손익 계산은 필수 사항이다.

     

    한국의 ‘도널드 트럼프’를 꿈꾸는 파워 우먼

     

     행복의 기준이 뭐냐는 물음에 그녀는 서슴지 않고 ‘경제적 여유’라고 말한다.

     

    “돈에 혈안이 돼서 안달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돈이 있다면 분명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는 거죠. 그런데 그 돈이라는 걸 좋아해야 사방 천지에 돈 벌 거리가 보인다니까요. 돈을 사랑하고, 돈 벌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금융 교육을 하고 싶어요.”

    재테크는 이론 공부만으로는 안 된다. 실전 투자와 이론 공부를 병행해야 재테크 공식을 터득하게 되는 것. 아파트 부동산 투자와 뉴욕에서의 콘도 분양 투자 등 높은 실적의 포트폴리오를 구상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그녀에게는 꿈이 있다. “맨해튼 중심에 큰 콘도를 살 거예요. FTA도 체결이 됐고, 조만간 미국 가는 데 비자가 필요 없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누가 동남아 여행을 가겠어요. 비자 받는 게 까다로웠던 미국을 대거 여행이나 공부하러 올 테고, 특히 뉴욕에 엄청난 한국인이 들어올 거예요. 한국인들이 머무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사서 운영하고 싶어요.”

     

    뉴욕 하면 방미가 떠올랐으면 좋겠단다. 그것이 그녀의 사업 컨셉트다. 맨해튼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타임스퀘어와 록펠러센터 곳곳에 집과 빌딩을 갖고 있는 21세기 재벌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처럼 되고 싶다는 것. 부를 거머쥐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막 뉴욕 생활을 시작한 유학생들이나 여행객들에게 뉴욕 정보를 알려줄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벌써 2년 전부터 좋은 콘도의 자리와 투자 가치가 있는 매물을 찾고 있다는 그녀. 올가을쯤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려고 한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더 길어질 듯싶다. 외롭지는 않을까. “독신주의자는 아니에요. 같이 운동도 하고 진심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만나고 싶죠.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네요. 결혼은 더더욱 엄두가 안 나요. 제가 요리를 정말 못하는데 남자랑 맛있는 밥 사 먹을 돈은 있잖아요(웃음). 하루 세 끼 즐곧 사 먹자고 하면 남자가 도망갈까요? 하하.” 아직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많아서 혼자 지내고 싶다는 그녀. 8월에는 두 달 동안 토론토 여행을 다녀오려고 한다. 바쁜 일상이 휘몰아치기 전 자신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은 달콤한 시간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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