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좀 지나서..
전화가 왔다.
요즘은 몸이 딸려 주말에 하지만,
다행히 내일이 창립 기념일이라 휴무다.
그전엔 나를 많이 애용해 주셨던 일산의 사장님..
12시 50분에 연대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으나,
이눔의 플래닛에
미련이 남아 좀 늦게 나갔다.(이도 빨리 끊어야 하는데..)
택시도, 기사도 있으련만
늘.. 나를 찾아주셨던 그 사장님이 고마웠다.
동문이래서
또한,
열심히 사는 모습이 자기 젊을때 같아서
애용해 주시는거랜다.(근데 대화 나눠보니 미심쩍다..^^)
그러면서도
얌마!! 왜이렇게 늦어?
돈 많이 벌었나보지?
등등의 얘기는 거슬린다.
더럽고 아니꼽게 보여도
웃으며..
그것에 반응안보이는것..
그 모든것이 알바비에 함께
포함된일이라 생각한지 오래다.
난 술 취해도 안그러는데..(ㅡㅡ;;)
그분은 늘 나의 말문이 터지길 원한다.
왜 하느냐.. 돈이 그렇게 필요하냐?
돈 필요하면 돈 많이 주랴?
그러면서 주정도 부린다.
(그래 난 돈이 필요하다..ㅡㅡ;;;)
그냥 술주정으로 받아 들인다..
구구절절이 얘기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웃으며...
주무세요..
도착하면 깨워 드릴께요..
그래도 안자고 혼자 주절주절..
내가 대리운전을 처음 시작할땐
명함을 새겨서
우리학교 교수님들..의사들..간호사들..
같이 대학원 다니는 원생들..
다 뿌렸다.
나의 퇴근후 알바..
내가 세운 솔로 회사는 "기분좋은 귀가" 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동 호수를 넣어 빌딩이라 하였고,
나의 학교 이메일을 넣어 회사 주소라 하였고(그래야 동문이라 아니까)
나의 핸드폰을 넣어..(주) 기분 좋은 귀가" 대표 ㅇㅇㅇ로 하였다.
반응은 제로 였다.
신뢰가 부족한듯 하였다.
난 교육대학원이나,
언론 홍보 대학원,
경영대학원,
또한,
대학원의 모든 행사에 일부러 가서 사회도 보며,
나에 대해 각인 시켰고..
홍대입구, 합정동 등지의 룸싸롱, 가요주점 등지에 명함을 돌렸다.
장난 삼아 타보는 사람이 하나둘 생겼다.
차에는 항상 술 깨는 음료와
피로회복제를 넣어 다니며
나눠드렸다.
명함을 뿌리고 2-3개월 지나니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학비 벌려고 한다며
일부러 찾아주시는분도 한둘 늘었고,
여학생들은 안전귀가의 보장성때문에
웃돈 2-3천원을 더 줘가며 찾아주기도 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난 대학원 다니는 동안 한학기 5백만원을
한푼도 월급에서 학비로 넣어 본적이 없다.
5학기 2천 5백 여만원의 돈을 월급에서 한푼도 들이지않았다.
그러면서 새벽 3-5시에 귀가..
9시에 출근하고
늘.. 점심은 우유한잔 꿀떡 꿀떡 마시고
나머지는 잠으로 때웠다.
근무중에 조는것으로 인해 책 잡히는것이 싫었다.
간혹..
졸다 걸리면 구박 받는게 죽음보다도 싫었기때문이다.
주말은 늘..
레포트에 치여서 학교 도서관에서 살아야만했다.
그래서 올해 2월에
난 아무나 받을수 없다는 독수리 황금패를
모든 대학원생들이 보는 자리에서 받을수 있었다.
또 다른 성취감이었다.
암튼..
그 선배라는 사장님은
술만 취하면 날 찾았었는데..
오랫만에 찾은걸 보니 그동안 안 마신듯하다.
멀쑥한 모습과 금테 안경으로 보아 잘 나가는듯하나
나는 뭐하냐느니? 그런 얘기는 한마디도 안한다.
언젠가 얼핏 한 얘기로 보아
철강회사 몇개를 운영하며,
부부 불화가 잦은듯하다.
좀 외로워 하는것 같기도 하다.
난 평소처럼 3만원을 받고 가기로 하였다.
빨리 내려 드리고 구리 가기로한 예약손님을 태우기 위해선
연대 앞에 적어도 30분 후엔 도착하여야 한다.
그 사장님은 날 더러 한잔하자고 한다.
힘든일이 있나보다.
술마시면 운전때문에 안된다고 극구 사양 하였지만..
서울까지 대리운전 시켜준덴다.
구리갈 손님 예약이 있다고 하였다.
그 돈까지 합쳐서 돈을 준덴다.
막무가네다.
어쩌면 내 맘속엔
횡재했네...가 더 차지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일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 한번도 보따리를 풀은적이 없지만,
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뭐가 힘든지..
나보다 네가 뭐가 더 힘든지..
화장실에 다녀오니
보도블럭 옆에 세워진 내차 와이퍼엔 10만원이 꽃혀있었고 그 사람은 없다.
소주를 몇잔 마셨지만..
돈 2-3만원때문에 서울나가는 대리운전은 싫었다.
(내가 대리운전자인데...^^)
다행히 안걸렸다.
독립문에 도착하여..
늘 자주 다니는 ..
같은 임대 아파트에 사시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포장마차에 들렀다.
오늘도 포장마차에 떨어지는 이 빗소리가 너무 좋다.
2000년
내가 독립문에 발을 들이고
처음 이동네서 대리운전 알바를 하고 집에 가는길..
눈이 엄청 내렸다.
새벽 4시경..
눈발이 그렇게 휘날리는데...
오뎅국물 한그릇 더 주시며..
사는게 다 그려!!
하시던 할머니라..
초라한 포장마차이지만..
아직도 그 포장마차와의 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무릎이 많이 아프다 하여 파스를 사다 드렸더니..
그 이후로 들리면 아들 대하듯 하신다.
가락국수 하나에..
오뎅국물..
소주 한병..
나보다 더 못한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술값 6천원 지불하고 나니
9만 4천원 벌었다.
빗방울이 굵어진다.
이 비가 그치면 가을이 저만치 더 와 있겠지?
가을을 즐기기엔 난 아직 부유하지 못하다.
졸린다...
알바생 여러분!!
어떤 일이던
더럽고 아니꼽게 보여도 그것에 반응하지말고
그 모든것이 알바비에 함께 포함된일이라 생각하기 바란다.
때론 나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당신은 세상을 이길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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