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난 월급이 28만원이었다.
취사도 되지 않아 주인 몰래 부루스타에 해먹어야하는
단칸방..
100만원 보증금에 월세 13만원 지출하니
달랑 남은 돈 15만원으로
저축, 생활비 아무것도 할수가 없어
뭘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다.

1년후엔 500만원 짜리 옥탑 전세로 꼭 올라가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퇴근후 돈벌기.
첫 알바자리는
과외였으나 성격상 실패^^;;;(무쟈게 급해요)
두번째..
일산에
원 할머니 족발집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30만원을 받고 일하기로 했다.
배달은 가만히 보니
하루 5-6개 정도 들어왔다.
제안을 하였다.
사장님!!! "하루 10개 이상 들어오면 한개에 2,000원 주실래요?"
그리고 홀 매상이 2배로 늘어나면 제 월급도 두배로 주실껀가요?
사장님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내 사무실은 50년 전부터 주 5일 근무에
하절기엔 5시에 퇴근이다.
그래서 퇴근과 동시에..그리고 토요일 일요일마다..

스티커를 들고 주변에 아파트는 다 돌았다,
그 덕분에 운동도 되어 지금 내 체력은 이천수다..
한번은 백마 이마트 옆 금호 아파트 27층 사는 사람이
쟁반 국수를 시켰는데
엘리베이트가 수리중이였다.
아마 그 사람도 내려오기 귀찮아서 시켜 먹었나보다.
그래서 27층까지 한번도 안쉬고 뛰어 올라 간적도 있다.
국수는 면발이 생명이기 때문이였다.

암튼 스티커 돌리기 2주째 배달이 딱 10개 들어왔다.
그 다음은 14개 그 다음은 20개..

노하우는
배달 갈때마다..배달 안할때도 한가할땐 사다드릴테니까
담배, 음료수 쌀, 등등 필요한거 시키세요..돈은 한달후에 후불로 주세요.

내 생각은 적중했다.
배달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홀에 손님 많게 하는 노하우 :

난 우선 인사를 기분 좋게 크게 하기..
그리고 내가 앉기 편하게 테이블을 바꿨다.
그리고 다른 알바 애들한테도 손님이 부르면 항상 대답 크게 하기..
또는 손님이 눈만 굴려도 달려가기..
항상 우리끼리 잡담하지말고 손님 주시하기...
그래서 교육후 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면 손님이 달라고 하기도 전에
우린 그 테이블로 가지고 갈수 있었다.
물론 맛도 있었지만 써비스 전략이 더 효과적이였던거 같다.

원할머니 족발 보쌈집에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4시간 알바한지
4달만에 월 이백 오십을 받을수 있었다.

난 5개월 후
알바 시작한지 9개월만에
꿈의 옥탑 500만원짜리가 아니라 옥상 넓은 1000만원짜리 옥탑으로 옮겼다.

4시간 배달 알바하면서 한달에 이백 오십 버는 노하우 2탄(알바로 내집사기)
 
번호:32803 글쓴이: 풀잎향수
조회:1389 날짜:2004/09/17 11:57
 


넓은 옥상이 있는 옥탑은 정말 꿈만 같았다.
이제 시골에 다녀오면 나한테 연락도 없이
제사랍시고 내방에 손님들이 가득하여 새벽에 내쫒기는 일은 없어서 좋다.
난 빨간 돼지를 늘 한마리 키운다.
애지중지하던 빨간돼지를 주인 아들이 손데는 일도 없을것이다.
그 아이는 2년전 우연히 연희관 주차장에서 차를 주차하는데
울학교 주차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어느듯 성장하여 나와 소주를 함께 나눌 나이가 된것에 놀라기도 했다.

암튼
다시 욕심이 생겼다.
내 집이 가지고 싶었다.

복지타운 옆에 상가엔 떡집이 있다.
어차피 우린 5일 근무이니 토요일과 일요일을
활용하면 될거란 계산이 나왔다.
한번은 원할머니집에 좀 늦겠다고 전화를 한후
그 떡집으로 찾아가서 혹 알바안구하냐고 물어봤다.

마침 주말 새벽에 배달이 많은데 차 있느냐고 물어보신다.
네 차있어요.
바로 대답하고 다음주 토요일, 일요일
새벽 4시 30분 부터 나가기로 하였다.
오후 4시 30분까지 12시간 이틀이면 24시간을 또 활용할수가 있다.
1시간에 1,500백원정도로 기억하는데 그건 확실치 않다
1500백원 X 12시간 X 8일 = 144,000원

원장님께 어디 중고차 싸게 살만한데 없냐고 여쭤보았다.
원장님이셨던 박ㅇㅇ원장님께서 평소 예쁘게 보셨던지라
당신이 타시던 프라이드를 어차피 잘 안타신다고 내게 무상으로 주셨다.
나의 첫 차가 프라이드다,
그래서 난 아직 프라이드를 좋아한다.
지금은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시골에서 요양중이시다.

떡집에는 떡을 만드는 곳이지만 기름도 짜고, 고춧가루도 빻고 한다.
난 먼지 알러지가 있는데..
고추가루 냄새를 맏으면 계속해서 재채기를 한다.
떡집 내내 알바를 하는 동안 사장님은 내가 감기를 달고 사는줄 아셨다.

가만히 보니 떡집 주변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그 절에만 들어가고 몇군데 안되는 어린이집 정도만 들어가고 있다.

난 먼저 주변에 교회가 몇개인지 학교가 몇개인지를 파악해보고.
교회, 학교, 어린이집, 그리고 각 가정에 배부할 스티커를 바로 만들었다.

원할머니 족발집 스티커를 돌리며 함께 돌리니 일거 양득이였고..
떡배달도 점점 늘어갔다.
떡집에서 일한지 5개월만에
당연히 내 배달료도 시간당 8천원으로 뛰었다.
8000원 X 12시간 X 8일 = 758,000원


실력을 갖춰야 월급도 더 많이 오를거 같았다.
떡집에서 일할려면 손에 허물이
세번에서 다섯번은 벗겨져야 떡을 만들수 있다.
처음 막쪄낸 반죽은 보통 사람이면 뜨거워서 만지질 못한다.

난 허물이 4번 벗겨지고서야 떡을 제데로 만들수 잇었다.
그래서 지금도 뜨거운것은 잘 만지나보다^^
내가 제일 잘 만드는 떡은 바람떡, 꿀떡 , 개떡이다.
떡집에서 일한지 1년만에 난 사장님보다 바람떡, 꿀떡, 개떡은 더 잘 만들수 있었고..

그 떡집은 상가 안쪽에 어두운 구석에 있었는데
1000원에서 3000원짜리 묶음을 만들어 밖에 가판대를 만들었다.
많이 팔렷다.
난 1달에 8일 일하면서 1백만원을 받았다.


알바생 여러분!!!
시간으로 돈 계산안하고 월급으로 제데로 받을려면
사장님보다 일을 많이 아시는게 가장 페이 결정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어쨌든 옥탑으로 옮긴지 2년만에 난 서울 천연동에 평수가 작은 집이지만
서울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제일 꼭대기에 아파트를 마련하였다.

이젠 내 집이다.
아버님 돌아가신 이후로 처음 눈물을 흘렸다.

[[아름다운미혼]] 4시간 배달 알바하면서 한달에 이백 오십 버는 노하우 3탄(알바로 학비벌기)
 
번호 : 2699   글쓴이 : 상담사
조회 : 13743   스크랩 : 0   날짜 : 2004.10.18 00:46
 







4시간 배달 알바하면서 한달에 이백 오십 버는 노하우 3탄(알바로 학비벌기)
 
번호:34475 글쓴이: 풀잎향수
조회:844 날짜:2004/10/12 11:26
 



12시 좀 지나서..
전화가 왔다.

요즘은 몸이 딸려 주말에 하지만,
다행히 내일이 창립 기념일이라 휴무다.

그전엔 나를 많이 애용해 주셨던 일산의 사장님..
12시 50분에 연대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으나,
이눔의 플래닛에
미련이 남아 좀 늦게 나갔다.(이도 빨리 끊어야 하는데..)
택시도, 기사도 있으련만
늘.. 나를 찾아주셨던 그 사장님이 고마웠다.

동문이래서
또한,
열심히 사는 모습이 자기 젊을때 같아서
애용해 주시는거랜다.(근데 대화 나눠보니 미심쩍다..^^)

그러면서도
얌마!! 왜이렇게 늦어?
돈 많이 벌었나보지?
등등의 얘기는 거슬린다.

더럽고 아니꼽게 보여도
웃으며..
그것에 반응안보이는것..
그 모든것이 알바비에 함께
포함된일이라 생각한지 오래다.
난 술 취해도 안그러는데..(ㅡㅡ;;)

그분은 늘 나의 말문이 터지길 원한다.
왜 하느냐.. 돈이 그렇게 필요하냐?
돈 필요하면 돈 많이 주랴?
그러면서 주정도 부린다.
(그래 난 돈이 필요하다..ㅡㅡ;;;)
그냥 술주정으로 받아 들인다..
구구절절이 얘기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웃으며...
주무세요..
도착하면 깨워 드릴께요..
그래도 안자고 혼자 주절주절..

내가 대리운전을 처음 시작할땐
명함을 새겨서
우리학교 교수님들..의사들..간호사들..
같이 대학원 다니는 원생들..
다 뿌렸다.

나의 퇴근후 알바..
내가 세운 솔로 회사는 "기분좋은 귀가" 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동 호수를 넣어 빌딩이라 하였고,

나의 학교 이메일을 넣어 회사 주소라 하였고(그래야 동문이라 아니까)
나의 핸드폰을 넣어..(주) 기분 좋은 귀가" 대표 ㅇㅇㅇ로 하였다.
반응은 제로 였다.
신뢰가 부족한듯 하였다.

난 교육대학원이나,
언론 홍보 대학원,
경영대학원,
또한,
대학원의 모든 행사에 일부러 가서 사회도 보며,
나에 대해 각인 시켰고..


홍대입구, 합정동 등지의 룸싸롱, 가요주점 등지에 명함을 돌렸다.
장난 삼아 타보는 사람이 하나둘 생겼다.
차에는 항상 술 깨는 음료와
피로회복제를 넣어 다니며
나눠드렸다.

명함을 뿌리고 2-3개월 지나니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학비 벌려고 한다며
일부러 찾아주시는분도 한둘 늘었고,
여학생들은 안전귀가의 보장성때문에
웃돈 2-3천원을 더 줘가며 찾아주기도 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난 대학원 다니는 동안 한학기 5백만원을
한푼도 월급에서 학비로 넣어 본적이 없다.
5학기 2천 5백 여만원의 돈을 월급에서 한푼도 들이지않았다.

그러면서 새벽 3-5시에 귀가..
9시에 출근하고
늘.. 점심은 우유한잔 꿀떡 꿀떡 마시고
나머지는 잠으로 때웠다.
근무중에 조는것으로 인해 책 잡히는것이 싫었다.

간혹..
졸다 걸리면 구박 받는게 죽음보다도 싫었기때문이다.

주말은 늘..
레포트에 치여서 학교 도서관에서 살아야만했다.
그래서 올해 2월에
난 아무나 받을수 없다는 독수리 황금패를
모든 대학원생들이 보는 자리에서 받을수 있었다.
또 다른 성취감이었다.

암튼..
그 선배라는 사장님은
술만 취하면 날 찾았었는데..
오랫만에 찾은걸 보니 그동안 안 마신듯하다.
멀쑥한 모습과 금테 안경으로 보아 잘 나가는듯하나
나는 뭐하냐느니? 그런 얘기는 한마디도 안한다.
언젠가 얼핏 한 얘기로 보아
철강회사 몇개를 운영하며,
부부 불화가 잦은듯하다.
좀 외로워 하는것 같기도 하다.

난 평소처럼 3만원을 받고 가기로 하였다.
빨리 내려 드리고 구리 가기로한 예약손님을 태우기 위해선
연대 앞에 적어도 30분 후엔 도착하여야 한다.

그 사장님은 날 더러 한잔하자고 한다.
힘든일이 있나보다.
술마시면 운전때문에 안된다고 극구 사양 하였지만..
서울까지 대리운전 시켜준덴다.

구리갈 손님 예약이 있다고 하였다.
그 돈까지 합쳐서 돈을 준덴다.
막무가네다.
어쩌면 내 맘속엔
횡재했네...가 더 차지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일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 한번도 보따리를 풀은적이 없지만,
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뭐가 힘든지..
나보다 네가 뭐가 더 힘든지..

화장실에 다녀오니
보도블럭 옆에 세워진 내차 와이퍼엔 10만원이 꽃혀있었고 그 사람은 없다.
소주를 몇잔 마셨지만..
돈 2-3만원때문에 서울나가는 대리운전은 싫었다.
(내가 대리운전자인데...^^)
다행히 안걸렸다.

독립문에 도착하여..
늘 자주 다니는 ..
같은 임대 아파트에 사시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포장마차에 들렀다.
오늘도 포장마차에 떨어지는 이 빗소리가 너무 좋다.

2000년
내가 독립문에 발을 들이고
처음 이동네서 대리운전 알바를 하고 집에 가는길..
눈이 엄청 내렸다.
새벽 4시경..
눈발이 그렇게 휘날리는데...
오뎅국물 한그릇 더 주시며..
사는게 다 그려!!
하시던 할머니라..
초라한 포장마차이지만..
아직도 그 포장마차와의 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무릎이 많이 아프다 하여 파스를 사다 드렸더니..
그 이후로 들리면 아들 대하듯 하신다.

가락국수 하나에..
오뎅국물..
소주 한병..

나보다 더 못한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술값 6천원 지불하고 나니
9만 4천원 벌었다.

빗방울이 굵어진다.
이 비가 그치면 가을이 저만치 더 와 있겠지?
가을을 즐기기엔 난 아직 부유하지 못하다.

졸린다...

알바생 여러분!!
어떤 일이던
더럽고 아니꼽게 보여도 그것에 반응하지말고
그 모든것이 알바비에 함께 포함된일이라 생각하기 바란다.
때론 나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당신은 세상을 이길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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