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으로 가장 우울했던, 최소한 내 경험의 한도 내에서는 그럴 추수감사절과 연말이 오는 어귀에서 일요일을 보내고 있다. 답답함에 어제 서점에도 가봤지만 더 이상 서점 내에서 머무르며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거나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서 늘 가장 길게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약 20분 정도로 짧을 수 밖에 없다. 보통 이맘 때 같으면 카드나 선물을 사는 사람들과 서점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보여주는 사람들로 가득했을 연말의 설레임을 그 어디보다도 잘 느낄 수 있었을 공간이 우울하기 그지 없었다. 거의 literally 회색과 음울한 blue의 색이 서점 내부를 감싼 듯 묵직하고 숨이 막히는 그곳에서는 책 한 권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할 만큼 답답함만이 가득했으니 코로나로 인해 트럼프가 낙선한 것 말고는 정말이지 살면서 겪어본 최악의 시기가 아닌가 싶다.


책을 정리하려고 컴을 켰으나 고작 이 말만 나올 뿐, 메모해둔 글을 찾기도 싫어지는 일요일의 오후. 기대하고 사들여 읽은 책이 그 책이 속한 기획에 대한 심각한 불신을 불러일으킨 것도 기분이 나쁜 일이고 저자선정이 잘못됐다는 생각 외에도 상당 부분은 저자의 게으름과 무지 때문이라는 것도 모두 나를 우울하게 만들 뿐이다.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쓰려면 적어도 문학에 대한 것이라면 최소한 그 누군가에게 늘 관심을 두고 있었던 사람이면서 보다 더 해박한 지식과 부지런한 리서치를 수행할 수준의 사람은 되어야 한다. 


김중혁 작가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면인 바, 그가 고전문학을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특별히 읽을 생각이 없으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굳이 이들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여러 번 말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요즘의 작가들 일군에서 심심히 않게 발견이 되고 있는 현상으로 느낄 만큼 종종 기반지식이 약한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과도 연결이 되는 지점이다. 개발새발 써놓고 originality만 줄창 강조한다는 건데, 문제는 이런 작가들에게는 지식의 부재와 함께 게으름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수치를 제시할 만큼 정확한 건 아니지만 내가 읽는 현대의 한국작가들의 글에서 그런 냄새를 맡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건 그만큼 글쓰기 자체가 가벼워졌고, 저열한 글쓰기가 양산되는 환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어도 지식전달목적의 글을 쓰는 이가 특정분야에 대해 원래 아는 것이 전무하고 배경지식도 약하며, 철저한 조사 또한 수행하지 않고 대충 글을 쓴다면 그건 좋은 지식전달의 매개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소설을 비롯한 사회인문분야에서 글을 쓰는 이들의 무지와 게으름은 독창성이란 말로 퉁치는 것이 용납되는 걸까? 작가가 아닌 나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릴 때의 기억으로 생각하면 대충 300권, 많이 잡아도 500권 정도면 흔히 말하는 고전에 속하는 대표적인 책 혹은 작가들의 책을 상당한 수준으로 접할 수 있다. 이후 관심과 필요에 따라 특정한 작가나 시대 혹은 장르로 세분화하여 보다 깊고 넓은 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문학의 재미를 늦게 느낀 나는 무척 아쉽게 생각하는 바, 이런 300-500권 정도의 고전은 중고생때 좀 빠르면 국민학생시절부터 읽기 시작해서 아무리 늦어도 대학교시절이면 거의 다 볼 수 있고, 이때의 독서는 머리가 아주 fresh할 때의 힘으로 평생의 기억속에서 남은 생을 살면서 두고두고 찾아볼 수 있는 좋은 reference이자 지의 자양분이 된다. 


적어도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지 않을까. 기본적인 테크닉을 비롯한 기초공부가 없이 막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피카소나 칸딘스키의 그림이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고루한 관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작가로 활동하는 것이 너무 이상한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건 읽었겠지만 보편적인 기초지식이 없을 수준이라면 그 사람이 쓴 소설을 읽을 이유가 없다. 


불만이 가득한 겨울. 이렇게 쓰니 존 스타인벡이 떠오른다. 내 기분과 비슷한 이름의 작품과는 큰 연관성이 없지만 말이다. 


아직도 해가 짱짱한데 갈 곳이 없다.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연말연시를 넘어 정상화가 될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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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3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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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0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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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0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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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5 0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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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30 16: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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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0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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