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나이를 먹고 시간의 흐름속에서 변해간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자연의 섭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건 노화를 늦추거나 조금 더 천천히 변해가는 것, 딱 그 정도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70대가 마라톤을 달리거나 3대 500을 칠 수 있다고 해서 20-30대가 될 수 없고, 요가, 운동, 좋은 식습관, 심지어 보톡스까지 해서 육체나이와 외모를 젊게 가져가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그 나이대의 젊음이지 이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고 꿈꾸고 살아가고 견딜 수 있는 힘이 그 시간의 흐름, 기승전결이 있는 사이클 덕분이라니. 


최근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두 권을 모두 읽고 나서. 무엇인가 정리하려는 듯한, 의도했든 아니든, 그런 글이 나오는 것 같다.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있고 세상을 둘러보고 느끼면서 새로운 걸 이야기하는 시기는 옛날에 지나가버렸고, 그 지나간 시점에서 다시 10년이 넘게 흘렀으니까. 여전히 달리고 수영하고 건강하게 규칙적인 글쓰기를 할 것으로 추정되는, 어쩌면 보기 드문 꾸준함으로는 이미 노벨상을 탔어야 할것만 같은 그 또한 그 이전의 모든 작가들이 그러했듯이 peak가 있었고 이젠 노년이 작가가 되어 있었다. 그저 건강히 오래 살아서 계속 단편이든, 개작이든, 장편이든 글을 쓰고 책을 내주었으면 한다. 2012년 그의 전작을 하고 그가 사는 삶의 담백함에 빠져 지금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나 또한 꾸준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그의 책을 통해 좀더 클래식과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책을 통해 맺어진 좋은 인연이 아니겠는가. 어쩌다 보니 그의 첫 작품과 가장 최근에 나온 소설집을 한 시기에 보게 되어 더더욱 좋은 비교가 되었다.



동시대의 두 작가를 나란히 놓고 책을 보았다. 두 작가의 유명한 작품도 몇 권 읽었고 영화나 에세이를 통해 이 둘에 대한 이야기도 이미 익히 알고 있었기에. '헤밍웨이'의 작품과 인생의 여정을 따라가는 여행에서는 글쓴이 자신의 지식과 교양이 뒷받침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피츠제럴드는 그런 면에서는 너무도 실망하여 이 기획 전체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더 읽고 사들이는 것에 대한 재고를 하게 되었다. 


어떤 작가나 대상에 대한 글을 쓰려면 최소한 그 작가나 대상에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야 한다. 지식전달 혹은 자계서수준의 책이야 간단한 리서치를 적당히 버무려 나오는 걸 많이 봤고 조악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니 논외로 치더라도 피츠제럴드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최소한 그와 그의 작품을 평소에도 읽어왔어야 한다는 것. 더구나 문학상 수상이력까지 있는 소설가가 이 기획에 참여하고 나서야 피츠제럴드를 읽었다는 것, 그런 사람이 이 기획에 참여했고 하필이면 피츠제럴드를 맡았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몇 군데에서 보이는 shallow함도 더더욱 맘에 들지 않았다. 천주교성당을 이야기하면서 '교회'와 '예배'라는 표현을 버젓이 쓰더니 다른 곳에 가서는 멀쩡하게 다시 성당으로 번역하고, 그의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교의 Firestone도서관에 가서는 'firestone이 부싯돌이니 도서관의 책을 부싯돌 삼아서 공부하라는 뜻에서 이름을 그리 지었나보다'라는 괴랄함이라니. 한국도 요즘은 전주의 이름을 따서 건물을 짓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미국은 옛날부터 많이 그래왔고 무엇보다 이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무래도 동양의 문화가 아닌가 싶은데. 문득 의심이 들어 정말이지 5초만에 구글링을 해서 찾은 결과 도서관의 이름은 Harvey S. Firestone Memorial Library였으니 그 유명한 Firestone Tire의 창업주 되시겠고 더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전주였거나 뭔가 기여한 바가 컸던 바, memorial이 들어갔으니 아마 기념도서관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쓰는 사람이 그 정도의 조사도 없이 부싯돌 어쩌고를 주절거리면서 그걸 책에 써놓았으니. 당시의 느낌을 회화화 했다면 최소한 주석이라도 달아놓았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한 권씩 모으려던 계획이 조금 보류되고 있는데 미술이나 철할 등 내가 모르는 분야의 작가들을 다루는 책이라면 이런 오류가 있어도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라서, 그리고 다른 작가애 대해서도 그런 정도의 책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기에.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번역)출간된 두 권인 듯, 책의 디자인과 폰트가 거의 같다. 책디자인과 폰트를 비롯한 다양한 것들은 시대에 따라 시기에 따라 변해왔기에 가끔 이렇게 완전히 예전의, 지금이라면 좀처럼 볼 수 없는 디자인에서 시각적인 즐거움과 질감을 느끼는 것도 책읽기에서 가끔 얻는 기쁨이다. 영미권하고는 많이 다른 느낌의 두 이야기들은 각각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뭔가 사이코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고정된 일상에서 행복을 찾다가 우연한 걔기로 방황하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 (비둘기)과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역시 시작부터 균일하고 안정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내는 모습 (제로 전투기)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연달아 읽게 되었으니 기막힌 운명의 타이밍? 이 두 권 모두 비슷한 2012-2013년 언젠가 사들여 지금까지 보관해오다가 읽었다는 건 이들 두 권이 내가 꾸민 책세상속에서는 뭔가 강력한 운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 


아직 남은 여섯 권 정도는 지금 읽고 있는 Shirer의 20세기 3부작의 마지막을 끝내면 다시 정리해볼까 한다.


그간 해온 근육운동이 빛을 발하는 듯 어제 산을 6마일 탄 몸이지만 알이 배긴 곳이 없다. 뭐든 꾸준히 하는 건 근사한 것 같다. 다만 이런 저런 것들을 섞어주어야 덜 지겹고 부상도 예방하고 몸의 곳곳을 사용할 수 있다.


70의 내가 여전히 서재에 글을 쓰고 있다면 나도 하루키처럼 과거를 회상하면서 잡다한 이야기를 할 것 같다. 하다못해 아직 오지 않은 오십대나 육십대조차도 먼 과거의 일이 되어있을테니까. 언제나 내가 가장 젊은 건 오늘이라는 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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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2-07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전 지금 4권 읽었는데 저자에 따라서 약간씩 퀄리티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은 특별히 문제삼을 정도는 아니엇는데 피츠제럴드 읽을 때는 님의 글이 도움이 될 거 같네요.

transient-guest 2020-12-08 02:07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에 이다혜 기자의 ‘코넌 도일‘로 시리즈를 시작했어요. 참신한 계획이고 내용도 좋아서 시리즈를 모을 생각을 했는데 이번 피츠제럴드에서 고민하게 됐네요. 책을 못 썼다기 보다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 약간은 무성의함, 무엇보다 저자가 피츠제럴드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많이 실망했어요.

다락방 2020-12-07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키 좋아해서 대부분의 작품을 읽었고 그래서 당연히 신간도 사서 읽고 있는데, 단편 앞에 두 편을 읽고는 이게 뭔가...싶어지고 있어요. 저는 하루키 소설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ㅠㅠ

transient-guest 2020-12-08 02:36   좋아요 0 | URL
저는 하루키에게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어서 그저 그의 작품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작가가 많이 늙었다는 세월의 무상함 내지는 뭔가 뭉클함 같은 감정이었어요. 언젠가 이 사람이 쓴 새로운 글을 읽지 못하는 날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콕 찝어서 말하긴 어려운데 읽는 내내 작가가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걸 느끼면서 봤어요.ㅎ

다락방 2020-12-08 08:28   좋아요 1 | URL
저도 그건 자연스레 느끼게 되더라고요. 아, 하루키 이제 늙었구나, 하는거요. 어디에서 그렇게 느끼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었어요.

transient-guest 2020-12-08 09:41   좋아요 0 | URL
그쵸? 역시 저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었을만큼 자연스럽게 모든 곳에 베어있었나봐요. 읽는 내내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맘이 아프기도 하고, 세월의 무상함 같은 걸 느끼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얄라알라 2020-12-07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가 계속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어요 책 좋아하시는 분들과 이렇게 대화나누는 행복이^^

transient-guest 2020-12-08 02:3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계속 이어지겠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