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나가는 것 같다. 여전히 말을 안 듣는 사람이 더 많고 한국이나 여기나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라서 내년의 전망도 썩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돈을 버는 건 주식시장과 과열된 주택경기가 전부이고 소상공인을 넘어 중소기업들의 경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모두 그럭저럭 버텨낸 한 해에서 하룻밤을 자고나면 아무것도 바뀌는 것 없이 2021년이 시작된다. 


백 권이 넘게 나와있으니 다 모아서 읽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읽으면서 내내 느끼는 건 집요한 맛의 추구가 아닌 만화에서 보이는 일본의 마지막 호시절이다. 세계정복에 나선 냥 모든 걸 사들이던 그 때 마치 일본이 미국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던 그 직전의 거품속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금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감탄스러운 건 없고 그저 극상의 맛을 추구하면서 도의 경지를 이야기하는 것도 결국은 돈지랄 같아 보인다. 만화의 유명세나 상징성도 그렇고 요리의 세계와 자세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건 맞지만 나에겐 시대상을 보여주는 사료로 남을 것 같다.


80년의 평화와 함께 공고히 자리잡은 현 체제속에서는 이미 타고난 천운을 거스를 수 있게 하는 요소가 거의 없다. 어려운 집에서 태어났다면 공부를 잘해야 대기업취업이나 공무원이 되는 것이 고작이고 그나마도 좋은 학교일수록 부잣집 아이들이 들어갈 확률이 갈수록 늘고 있다. 기회의 균등, 결과의 자유라는 자본주의의 법칙은 이제 먹힐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떻게 말해도 균등할 수 없는 기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 내가 가진 모든 요소에서 좋은 것들 중 상당한 부분은 그저 운의 작용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4년 후 트럼프 2.0을 경고하는 이 책을 보면서 미국의 자부심이자 민주주의의 큰 지지세력이었던 블루컬러 중산층의 붕괴를 생각해보니 오바마 2기가 될 수도 있는 바이든의 4년이 왠지 불안하게 느껴진다. 80년의 평화를 끝으로 체제변혁을 수반할 거대한 시대의 힘이 다가오는 건 아닌지. 무력한 바이마르 공화국이 낳은 히틀러의 시대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아무리 노력해서 일자리는 늘어나기 보다는 줄어들 것이니 강한 중앙정부의 통제와 법으로 기업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결국 트럼프 2.0의 시대가 올 수도 있음이다. 4년 내내 불안에 떨며 이런 저런 살아갈 궁리를 해야할 것 같다. 지금으로 보면 바이든은 오바마가 한 걸 반복하면서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인생회고록과도 같은 William Shirer의 20세기 3부작을 다 읽은 건 금년의 독서에서 큰 수확이라고 본다. '제3제국의 흥망'이 유일하게 한국에 번역된 적이 있으나 저자는 유럽특파원으로 20세기의 가장 큰 사건들의 한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고 많은 사건을 직접 경험하고 겪은 바, 특히 트럼프의 대두와 4년의 폭정에서 트럼프 2.0과 파시즘의 새로운 대두를 걱정하는 지금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이 외에도 굵직한 인물들에 대한 증언도 흥미로웠으니 비극을 잉태한 20-30년대의 유럽은 그것과는 별개로 무척 exciting한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지겹고 숨막히는 중서부에서 태어났지만 좋은 교육과 독서, 그리고 훌륭한 견문을 바탕으로 마지막까지 progressive한 견해로 일관한 그의 삶에서 배울 것이 많다. 


심심할 때 조금씩 읽은 두 권도 꽤 즐거웠는데 아쉬운 건 밴 다인의 전작으로 기획된 책이 두 권에서 끝났다는 것이다. The Quiet Don의 경우 60-70년대의 미국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즐거운 르포였는데 영화 아이리시맨을 보고 책을 읽고나서 넘어온 것이 무척 오래 붙잡고 있었기에 연말이 다 되어갈 무렵 끝낼 수 있었다. 










멋지고 엄청나게 긴 판타지의 첫 권을 읽은 것도 이번 연말에 이룬 성과(?)가 아닌가 싶다. 하나씩 구해놓은 hardcover로 그렇게 읽어갈 것이다. 대략 만 페이지 정도에 1400만자 정도라고 하니 시간이 많이 걸릴 듯. 첫 권이 나온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작으로 꼽히는 서사시.







사람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사람을 잘 쓰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한 금년의 경험에서 볼 때 아마 우리 회사는 이렇게 나를 중심으로 더 이상의 확장은 없이 돌아갈 것 같다. 사람에 기대하고 사람에 실망하면서 사는 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내 생활과 삶에 그리고 업무에 너무 안좋은 영향을 끼친 탓에 여전히 자책하면서 화도 내면서 삭이고 있다. 15년의 방황과 자존감, 그리고 이미지 세우기의 끝에 그 자신의 껍데기만 남은 듯한 녀석의 모습에서 씁쓸함과 연민을 함께 느낀다.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지만 여전히 중요한 갈래마다 이때의 일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한 해가 이렇게 지나가버렸고 나는 한 살을 더 먹었으며 또다른 한 해의 바퀴를 굴려가야 한다. 산다는 건 즐거운 일도 있고 이렇고 저렇고 하지만 가끔 생각하면 너무도 지난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다. 아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 2020년이 그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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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2 1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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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4 04: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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