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오르간 마음이 자라는 나무 15
유모토 가즈미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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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너무 순해서 누나에게 맨날 지기만 한다. 그나마 요즘은 조금씩 반항을 하기도 하고 대들기도 하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엄마보다 누나를 더 무서워했던 아이다. 현재 6학년인 딸은 얼마나 말이 빠르고 기가 센지 항상 동생을 들들 볶는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이 꼭 우리집 아이들 같았다. 나이도 비슷하고 누나와 동생이 있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동생은 늘 무엇이든 괜찮다고 하기 때문에 누나가 시기하는 것도 비슷하다. 물론 우리집 동생이 그 동생처럼 책만 보는 그런 모습은 전혀 아니지만.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도모미가 성장해 가는 이야기라는 것은 눈치로 알겠는데(책을 하도 보니 그 정도 눈치는 생겼다.) 어떤 식으로 성장을 나타낼까 내지는 오르간은 무슨 역할을 할까에 너무 집착했던 것 같다. 책을 덮을 때까지도 오르간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큰 역할을 하진 않았다. 병약한 동생과 함께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며 남매 간의 정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과연 우리집 아이들은 그런 정을 알까. 괜히 감상에 젖어 책 내용과는 상관없는 곳에 관심을 가져보기도 했다. 

사실 요즘에 보았던 전개가 빠른 책을 보다가 이걸 읽으니 시간도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이런 책은 읽고 나면 뭔가 묵직한 것이 느껴지고 잔잔함이 길게 남는다. 가족의 해체 위기에 놓여있는 것을 도모미는 옆집 할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생 데츠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옆집 할아버지를 곤경에 빠트리려 하고 이유없이 미워하는 것이다. 물론 도모미 엄마와 아빠가 별거를 한 데에는 옆집의 영향도 있지만 그것은 최초의 원인에 지나지 않는다. 

아빠가 집을 나가고 남은 식구인 할아버지를 포함한 넷은 거의 남이다시피 생활한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데츠와 함께 폐품을 버리는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남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남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알고 남에게 관심을 가져야 가능하다. 그러나 도모미 가족은 그동안 그것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원만히 해결되어 온 가족이 함께 살게 되면서 도모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제 더이상 예전의 아무 의미없이 생활하는 도모미가 아니며 올해의 봄은 작년의 봄과 다르며 내년의 봄도 분명 올해의 봄과 다를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예전의 자신을 잃어버린 어른들이 보기에 도모미가 이번 봄을 지낸 것은 단지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학교를 다른 곳으로 다닌다는 의미겠지만, 도모미가 느끼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마음의 성장이라는 것 아닐까. 

그런데 초반에 나오는 도모미의 꿈이 중간에도 계속 반복되는데 그 꿈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기 보다는 내용을 너무 가라앉게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어린 시절 고양이를 키웠던 것과 동생과의 일들을 기억하며 썼다는데 거기에 도모미의 꿈이 과하게 결합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래도 사춘기를 제대로 치르고 그것을 잘 극복하기 시작한 도모미가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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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8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김정우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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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많이 인용되는 책이라 '사실 나 이 책 읽지는 않았다'라고 고백하기가 두려운 책이다. 교과서에 조금 나왔었으니 전혀 안 읽은 것은 아니라고 마음 속으로 우겨보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책을 읽고 나니 교과서에서 본 아주 일부를 가지고 '내용을 안다'고 생각했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지한 행동인지 알겠다. 마치 큰 그림을 앞에 놓고 그 중 한 귀퉁이에 있는 사물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유럽의 문화에서 기사라는 것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저 한때의 유행이거나 직업 그 이상인 것 같다. 오죽하면 기사에 관해 다룬 동일 출판사의 <기사 수업>이라는 책도 있을까. 처음에 그 책을 접할 때는 뭔 시덥지 않은 것을 다루는 책도 있나 싶었는데 그들의 문화를 조금은 알고 나니 시덥지 않은 책이 아닌 것이다. 그들에게는 전통과 역사에 관해 배우는 것의 일부가 아니었을까싶다.

돈 키호테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변했다고 한다.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그저 흥미거리를 제공해 주는 책으로 여겨졌고 18세기 합리주의자들은 돈 키호테를 이성이 결여된 바보로 보았다. 낭만주의자들은 이상주의자로 평가했으며 도스토예프스키는 기독교의 순수함과 선행을 보았다지.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몰락한 귀족의 대표였으며 실존주의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한 개인으로 보았다고 한다. 어쩌면 이렇게 온 시대를 관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해석을 낫게 했을까. 그들은 각각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해석을 한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전혀 엉뚱한 해석도 아니다. 그래서 항상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으로 느껴지는가보다.

망상에 사로잡혀 기이하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그때를 사는 등장인물도)도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그것만 받아들인다. 때로는 미쳤다고 내치다가도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여 자신에게 득이 될 것 같으면 요구를 들어주지 않던가. 아마도 작가는 그런 인간의 속성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돈 키호테는 주위에 진정한 친구들을 두었다. 돈 키호테를 억지로 끌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을 최대한 인정해 주며 집으로 올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었으니까. 어쩌면 노인네의 말도 안 되는 고집과 망령쯤으로 여겨질 수 있는 행동들임에도 돈 키호테를 순수한 이상주의자처럼 생각할 수 있도록 한 원인이 바로 주위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당시 스페인의 현실을 비판하고 싶었을지라도(비록 읽으며 그것을 느낄지라도) 그런 내용보다는 돈 키호테와 산초가 벌이는, 시침 뚝 떼고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웃기는 작가의 재치가 훨씬 크게 느껴진다. 직접 책을 읽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귀중한 경험이다. 왜 최고의 작가들이 그토록 이 작품을 사랑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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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6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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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읽고 나서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나보다. 바로 써야 감동이 그대로 묻어나는 건데... 그래도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그 때 느꼈던 감동을 되짚어 가며 써 보련다.

찰스 디킨스는 워낙 시대를 풍자하고 비꼬기를 잘 하는 작가로 알고 있다. 언제나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려 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보는 그의 삶의 방식이 어쩌면 내 성향과 비슷해서 더 공감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단순히 허구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사랑만을 위해 이야기하는 것을 요즘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은 이제 소녀 적의 그런 낭만이 사라졌다는 씁쓸한 현실에 기인하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요즘 주로 읽는 책이 우리 역사를 재조명하거나 그것을 매개로 한 책이었는데 이제는 그 범위를 세계사로 넓힌 셈이 되었다. 이것은 프랑스 혁명을 무대로 한 소설이니까.

처음에 시작을 그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가는 것으로 시작하는 그야말로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는 게 안개 속을 걸어가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면 그동안 만났던 인물이나 지나쳤던 주변경관들이 그냥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씨실과 날실이 정확하게 교차하며 하나의 천이 완성되듯이 이 이야기도 여러 이야기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게 되어 있다. 얼마 전에 이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책을 만난 적이 있는데 170여 년 전에도 그런 방식을 구사한 작가가 있었다니... 작가의 다른 책을 읽은 기억은 있지만 당시에는 그저 내용에만 집착하느라 다른 것은 생각도 못했고 그런 걸 알아챌 능력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동양적인 입장에서 영국이나 프랑스를 유럽이라는 동일범주로 생각하지만 그 두 나라는 예로부터 라이벌 관계였기에 미묘한 경쟁심이 있었다. 지금도 그 두 나라의 관계가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두 나라의 수도인 런던과 파리를 무대로 숨가쁘게 전개된다. 언제나 한 제국이 무너지려고 할 때면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게 마련인지라 프랑스에서도 민중들은 극심한 가난에 허덕이는 반면 극소수의 지배층은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억눌렸던 민중들의 감정이 최고조에 도달하면 결국 밖으로 분출되어 무서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이 혁명이라 불리는 일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고.

그러나 이 책은 모든 촛점을 프랑스 혁명에만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혁명은 배경일 뿐이고 주인공들의 삶은 혁명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혁명이 주인공들을 둘러싸고 있어 결국 혁명의 중심부에 본의 아니게 서게 되고, 거기서 간신히 빠져 나온다. 인물들의 애궂은 운명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독자는 가슴 두근거리며 속도를 내게 된다. 그리고 간신히 그들이 빠져나왔을 때에서야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한숨을 돌리며 안도하기에는 뭔가 아릿함이 남는다. 그건 바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던 한 남자(시드니)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사랑하는 여자의 남편을 위해 숭고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그동안의 모든 무미건조한 삶이 아름다운 삶으로 승화되는 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읽기 전에는 표지에 있는 뜨개질이 무슨 의미일까, 내지는 참 예쁜 문양이라 생각했었는데 책을 덮는 순간에 본 그것은 결코 예쁜 문양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가 없었다. 무시무시한 살생부였으니까. 어디서나 혁명의 양상은 비슷한가보다. 온건파와 강건파가 있다는 것도 그렇고. 19세기에 씌어진 이야기들이 21세기인 현재에도 유효한 것들이 많다는 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세상은 어차피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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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누구인가? - 세계지도를 완성한 역사 속 탐험가 30인의 생애와 모험 주니어김영사 청소년교양 1
크리스티네 슐츠-라이스 지음, 배수아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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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거나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탐험가들을 무작정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탐험가들이 여기저기 발견함으로써 유럽은 굉장히 발전했지만 반대쪽에서는 식민지가 늘어났고 사람들은 많은 피해를 보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들은 절대 영웅이 아니라고 폄하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둘을 적절히 보완해서 당시의 시대상으로 읽으려하고 있다. 역사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판단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래도 탐험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두군거리는 것은 그들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맞다.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을 때 끊임없이 도전하고 모험한 것은 분명 대단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흔히 알고 있는 콜럼버스, 마젤란, 바스코 다 가마 등과 함께 정화(아마 유일한 동양인일 것이다.)나 조지 맬러리 등 잘 몰랐던 인물들에 대한 것도 나온다. 정화에 대해서는 다른 책에서 얼핏 보기도 했다. 또 이븐 바투타는 그림책으로 만났기에 괜히 친숙하다. 저자는 그 둘을 언급하며 생소할 것이라고 했는데 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뿌듯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하나의 인물에 대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물어본다. 그는 누구일까라고. 그러나 이 단서를 가지고 인물을 맞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내가 이쪽에 지식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전에 다른 책에서 탐험가들에 대한 것을 여러 번 읽었지만 이상하게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급기야는 다 섞여서 헷갈리기 일쑤다. 그러니 못 맞추는 게 당연하지. 헌데 문제는 이 책에서도 한 인물에 대해 읽고 다음 인물에 대해 읽을 때 쯤이면 벌써 아까 읽었던 인물은 헷갈리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읽어나간 책이다.

저자가 외국인이라 그런지 솔직히 내용에 몰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서술 방식도 좀 색달라서 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한 권에 30명의 인물을 만난다는 것은 매력이 아닐 수 없다. 탐험이라 하면 항로를 개척하거나 극지방을 찾아 나선 것을 생각했는데 범위를 우주까지 확장시켰다. 그리고 다이앤 포시라고 고릴라 밀렵을 반대하며 원시림에서 살았던 여인을 마지막으로 이야기한다. 그녀는 비록 지나친 행동을 해서 좋지 않은 최후를 맞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남긴 성과는 컸단다. 이렇듯 작은 것이라도 알고 있는 것과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은 차이가 크다. 그래서 사람은 언제나 읽고 배워야 하나보다. 그러고보니 이 책이 청소년교양 시리즈 중 한 권이던데 딱 맞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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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씨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9
너대니얼 호손 지음, 김욱동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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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였던가, 중학교 때였던가 앞부분 읽다가 진도가 너무 안 나가서 포기했던 책. 그래서 누가 이 책을 이야기하면 굉장히 난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읽어보니 전혀 아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놓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럼 예전에는 왜 그랬을까. 이것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해서 조금 쉽게 풀어놓아서 그런 걸까. 글쎄, 그렇게 보아지진 않는다. 아무래도 경험의 폭이 넓어졌고 생각의 범위도 넓어졌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싶다.

헤스터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처럼 비난받으며 평생을 죄인처럼 살아야 할 일이 아니겠지만 언제나 시대적 기준이라는 게 있어서 당시 상황으로는 중대한 죄에 해당하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하긴 당시엔 말도 안 되는 마녀사냥도 있던 시대였으니 이 정도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겠지. 그래도 헤스터는 강한 의지를 가졌기에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딤스데일은 겉으로는 존경받을 만한 인물일지 모르나 너무 나약해서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몰아간다. 게다가 그런 약점을 알고 있는 헤스터의 전 남편도 딤스데일을 서서히 옥죈다.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순결과 절제를 강조하는 교육을 받으며 자란 호손이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며 반항이 아니었을까. 물론 호손이 활동한 19세기에는 자유주의가 퍼지고 있던 시기였다해도 자신이 자란 풍습을 꼬집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결국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또 그렇기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일 게다.

딤스데일은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그의 연설은 많은 감동을 주었기에 그가 자신의 죄를 사람들 앞에서 속죄하고 난 후에도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들이 가만 놔두었을까. 헤스터처럼 그런 사람이었다면 말이다. 오죽하면 그의 말이 의미하는 진실을 외면한 채 그를 성스러운 존재로 여기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그것도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높고 강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대중들의 속성. 아직도 남아 있는...

그런데 읽는 내내 헤스터와 딤스데일은 어떻게 만났으며 얼마나 사랑했을까 하는 의문을 버릴 수가 없었다. 작가는 그런 유치한 사랑 놀음보다는 매서운 시선을 갖고 종교와 사람들의 내면을 바라보려 하는데도 말이다. 요즘의 매체(책도 포함)들이 지나치게 친절해서 모든 사건을 다 설명해 주는 것에 너무 익숙해서 그런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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