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뚱이의 사랑하는 울 아빠
오진희 지음, 신영식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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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질 않아서 어른이 된 지금도 난 아빠라고 부른다. 시골에서 풍족하지 못한 삶이었지만 마음만으로는 무엇이든 다 해주려 노력하셨던 아빠를 생각하면 잘해 드려야지 마음먹었다가도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어느 순간 잊고 만다.

짱뚱이가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부족한 때였기에 엄마는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아둥바둥 하므로 다정다감한 모습보다는 야단치는 모습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아빠에 대해 좋은 추억이 많은 것은 당연하겠지. 여기서도 대개 엄마는 짱뚱이를 야단치고 아빠는 그런 짱뚱이를 감싸는 역할로 주로 나온다. 그래서 아빠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일 게다.

천방지축 말썽만 부리던 짱뚱이도 동생이 생기자 그 자리를 본의 아니게 동생들에게 내준다. 게다가 동생들은 남자 쌍둥이니 얼마나 극성 맞을까. 가난한 추석이지만 온 식구가 도란도란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 모습이나 마당 한켠에 자그마한 꽃밭을 만들어 항상 꽃을 가꾸는 모습은 경제적 풍요가 꼭 정신적 풍요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아마 그런 정신적 풍요가 있었기에 이런 푸근한 글을 쓴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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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뚱이의 우리 집은 흥부네 집
신영식 그림, 오진희 글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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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에게 짱뚱이 4번째 책을 가져 오랬더니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그냥 온다. 나중에 내가 찾아서 읽고 있으니 그거 '우리집은 흥부네집' 아니냐고 물어본다. 숫자만 나와도 제목이 어떤 것인지 아는가보다. 완전 짱뚱이 도사다.

작은 이불을 서로 덮겠다고 끌어당기는 짱뚱이와 언니. 동상 걸린 언니가 콩 양말을 신고 잤는데 잠결에 벗어버려서 얼굴이 곰보처럼 된 이야기는 분명 어려운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이건만 전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마음이 푸근했기 때문 아닐까.

곗날이면 온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놀고 먹는다는 이야기를 읽으니 예전부터 내려오는 어떤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 여자들은 함부로 외출도 하지 못했던 시절에 하루종일 놀 수 있도록 허락된 날이 있다고 한다. 짱뚱이네 마을도 일종의 그런 날인 셈이다. 저녁을 못 챙겨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맨날 선머슴처럼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면서도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머리도 기르고 치마도 입고 싶어하는 짱뚱이. 그러나 막상 그렇게 해주면 하루도 못참고 예전이 좋았다고 했을 것이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쿡쿡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상당부분 내 어린시절이 오버랩된다. 우리 엄마도 그 시절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를 가끔 하신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만 했던 시절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나도 그렇다. 지금이 훨씬 편하고 누리는 것이 많은데도 그 시절이 가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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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뚱이의 보고 싶은 친구들
오진희 글, 신영식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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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게 일이었다는 그 시절. 겨울이면 방안에서 놀고 대보름이면 돌아다니며 더위 팔고...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는 대보름 전날 저녁에 즉 오곡밥을 하는 날에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밥과 나물을 훔쳐서 다함께 비벼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겨울이기 때문에 모일 집을 정하고 방에 따끈따끈하게 불도 때놓고 온갖 나물을 넣고 슥슥 비빈 밥맛은 최고였다. 게다가 집집마다 음식맛이 다르니 똑같은 이름의 나물이라도 맛이 다 달랐다. 그런데 짱뚱이네 동네는 손이 귀한 집 아들만 그런 풍습이 있었단다. 아무렴 어떤가. 풍습은 달라도 마음만을 똑같은 것을.

이가 빠지면 노래 부르며 지붕으로 던지는데 요즘은 그럴 지붕이 없다. 대신 외국의 풍습이 들어왔다. 바로 베개 아래에 이를 넣어 놓으면 이 대신 돈을 놓고 간다지. 점점 사라져가는 전통놀이를 생각하면 참 안타깝다. 단순히 놀이만을 되살린다고 되는 일도 아니라서 더욱 안타깝다. 

지금은 문방구에 가서 돈 주고 사던 찰흙도 그 시절에는 직접 흙을 파서 가지고 갔었다. 그런데 짱뚱이처럼 여러번 치대야 찰흙이 말랑말랑해진다는 것은 몰랐다. 온 동네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함께 학교 숙제도 하고 놀기도 했으니 정이 많이 들 수밖에 없겠다. 지금의 아이들은 그런 친구가 있기나 한지... 물론 그 시절에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먼저 떠나보내는 친구도 있었겠지. 길숙이처럼. 한번 이사가면 그만인 현대의 아이들은 과연 나중에 커서 마음에 남는 친구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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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뚱이의 우리는 이렇게 놀았어요
오진희 글, 신영식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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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편에서 일곱 살이었던 짱뚱이가 여덟 살이 되어 입학을 한단다. 당시 입학할 때 모습이 그대로 나와있다. 난 기억은 안 나지만 부모님이 하시는 이야기와 비교해 보면 정말 똑같다. 그때는 코 흘리는 아이들도 참 많았지.

소풍은 또 어땠고. 지금이야 소풍을 차 타고 멀리 가지만 그때만 해도 걸어서 갔었다. 게다가 저학년 때는 부모님도 따라오셨던 기억이 난다. 십 리가 되는 학교를 걸어갔다가 다시 소풍지까지 걸어가면 돌아올 때는 기진맥진이다. 그 먼 길을 쬐그만 아이들이 어떻게 걸어다녔나 모르겠다. 그래도 결석 한 번 안 하고 학교를 갔으니 거의 인간승리다. 지금 같으면 도저히 못할 것이다. 그렇게 시키는 부모도 물론 없을 것이고.

긴긴 겨울밤에는 심심하니까 아이들끼리 이불 속에서 놀이도 했다는데 난 동생과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러지는 못했다. 대신 동네 아이들과 모여서 이야기하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짱뚱이 언니는 얌전하게 그려져서 동생을 잘 돌보고 이해심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평범한 언니의 모습이다. 동생이 더 좋은 걸 가지고 있으면 샘이 나서 어떻게든 빼앗으려 궁리하고 아쉬우면 잘 데리고 노는 전형적인 언니.

그때는 참외 서리를 해도 먹을 만큼만 따 가라고 할 정도로 인심이 좋았는데 지금은 바로 경찰서에 갈 각오를 해야한다. 그만큼 인심이 팍팍해진 탓일 게다. 한번은 앞집 동생이 우리집에 와서 수박을 서리했는데 하나도 안 익어서 못 먹고 버렸다고 엄마 있는데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 말을 가만히 듣던 우리 엄마, '얘, 그거 우리 밭이야!' 그래도 혼나는 일은 없다. 돌이켜 보니 마음만은 부자였던 시절이다. 문득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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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뚱이의 나의 살던 고향은 신영식 오진희의 고향 만화 1
오진희 지음, 신영식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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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아이가 과연 읽을까 약간 걱정했었다. 물론 만화니까 보기야 하겠지만 전혀 공감을 못 할까봐 은근히 걱정했었다. 그러나 역시 아이들은 적응이 빠르다. 어찌나 재미있어 하던지... 몇 번씩 본다.

소나기가 막 내리기 시작할 때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 이야기가 맨 앞에 나온다. 이 책을 엄마에게도 읽으시라고 드렸더니 그 이야기를 하신다. 나도 그 부분에서 깊이 공감했는데, 지금은 맡기 힘든 냄새가 되어버렸다. 지금과 같은 한여름이면 채송화가 꽃밭의 바깥 부분에 피어 테두리 역할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보기 힘든 꽃이 되었다. 이처럼 이 책은 처음부터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엄청 극성맞은 짱뚱이의 어린 시절을 따라가다 보면 비록 넉넉하지 못한 시대였어도 참 행복했구나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행동은 부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당시 학교 선생님이었다니 모르긴 해도 동네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는 편 아니었을까.

어쨌든 처음에 짱뚱이가 체를 가지고 고기를 잡는 모습부터 너무 낯익은 모습에 내 어린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나와 내 아버지는 물이 무서워서 그런 것은 하지 않았지만 동네 아이들은 그러고 놀았으니까. 어디 그 뿐인가. 설이 다가오면 강냉이 튀기는 아저씨가 동네마다 돌아다니신다. 그러면 모두 쌀을 들고 나가 튀겨왔던 기억도 난다. 우리는 옥수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주로 쌀만 튀겼었다. 그림에 나오는 장면은 정말이지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것과 똑같다. 따스한 겨울 볕을 받으며 아이들과 몰려 다니며 놀았던 일이 아련히 떠오른다. 모처럼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보니 괜히 마음까지 따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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