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르와디'라는 사막의 우물 파는 인부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세기 말 사하라 북부, 한 모금의 물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그곳, 그저 숨 쉬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곳에서 아마도 자신의 가족과 마을을 위해 모래뿐인 사막을 하염없이 걸었을 인부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수맥이 있다고 생각되는 곳을 80미터 가량 파고 내려갑니다. 그렇게 지구의 모세혈관과도 같은 물줄기를 엄청난 압력으로 막고 있는 석회암판까지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이가 가장 많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지상으로 올라오죠. 땅 속의 인부는 남은 자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석회암판을 부수는 마지막 곡괭이질을 합니다. 엄청난 압력으로 수맥이 터지는 순간 늙은 인부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숭고한 죽음으로 완성된 우물은 마을의 고귀한 생명을 향해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80미터짜리 우물이 만들어집니다.
- 내가 믿는 이것 중 6쪽에서 -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 딴에는 곧게 자란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 걸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 줄 마음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부족한 내게 그것도 기쁨이겠기 때문이다
- 도종환의 가죽나무 -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입니까 ?
만약 내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
정의, 희망, 평등, 다양성, 자유, 자기실현, 공동체, 민주주의, 생명, 자연, 아름다움, 사랑...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가치가 결국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사느냐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인디고 서원에서 엮은 '내가 믿는 이것'이라는 책을 읽었다.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읽었다기 보다는 목차를 훓어본 후, 읽고 싶은 가치를 찾아 먼저 읽었다. 책에서 제시한 열 두가지 가치들 모두 너무 아름답고 숭고한 것들이다. 내 삶을 지배했던 가치는 무엇일까 ? 부끄럽지만 나는 뚜렷한 삶의 가치를 갖지 못한 채 살았던 것 같다. 정의롭지도 못했으며, 희망보다는 부정적인 상황들을 먼저 생각하며 늘 염려했다. 다양성과 자유를 추구했지만 내 삶은 틀에 박힌 사고와 고정관념으로 가득찬 편협된 모습이었다. 생명과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문명이 주는 편리를 더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가장 큰 대전제 앞에서 다시금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가치관을 하나로 포용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 '사랑'이라는 가치이다.
저급하고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관용과 희생이 있는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리르와디 사막에서 우물을 파는 늙은 인부의 숭고한 사랑이나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팔 한짝
짤라 줄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산다는 가죽나무의 사랑... 죽음조차 초월할 수 있는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랑의 가면을 쓰고 벌어지는 개인과 집단 이기주의, 부조리와 억압 등을 본다. 모든 것들 위에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가치가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될때 많은 문제들도 올바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철새의 이주, 썰물과 밑물의 갈마듦, 새봄을 알리는 작은 꽃봉오리, 이런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뿐더러 어떤 상징이나 철학의 심오함마저 갖추고 있다. 밤이 지나 새벽에 밝아오고,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오는 일, 이렇게 되풀이되는 자연의순환 속에서 인간을 비롯한 상처 받은 모든 영혼이 치료받고 되살아난다.
- 레이첼 카슨의 센스 오브 원더 중 18쪽에서 -
'침묵의 봄'의 작가 레이첼 카슨이 쓴 작품으로 '당신의 자녀가 자연에서 놀라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개재했던 글이다. 작년에 인디고 서원에 방문했을 때 아들에게 선물한 책인데, 도통 읽을 생각이 없는 아들을 대신해서 내가 먼저 읽었다.
우선은 책의 내용도 훌륭했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 자연의 놀라움을 느끼게 해 준 아름다운 사진때문에 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끼와 파도, 바람, 인적이 드문 우거진 숲과 곧게 뻗은 나무들, 긴 시간 파도에 깎여진 몽돌, 회오리 이는 강물,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입은 동굴, 매서운 추위에 그대로 얼어 버린 폭포와 따뜻한 기운을 받아 녹아내리는 강물... 사진으로 느껴지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대부분 눈으로 봄으로써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그러나 아무리 시력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눈을 모두 뜨지는 못한다. 미처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그런 눈, 그런 눈을 뜨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스스로에게 늘 이렇게 물어보자.
"지금 보고 있는 이것이 내가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라면 ? 지금 보고 있는 이것을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다면 ?" - 책 76쪽에서 -
눈을 감으니 깊이와 넓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거칠 것 없이 몰아치는 파도와 그런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바위가 보인다. 그 가운데 서 보니 지금 내가 하는 고민과 걱정들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일인가 ? 자연의 놀라운 섭리 앞에서 인간은 참 어리석고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다. 자연은 이렇게 넉넉하게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의 지혜를 자연에서 찾지 못하니 어리석을 따름이다.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단편적인 지식과 책이 주는 간접 체험은 결국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오랫만에 다시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음의 짐을 덜어버리는 조금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말처럼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 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때 자연을 온전히 경외할 수 있다.
레이첼 카슨은 밤의 고요와 신비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한다. 나 역시 새벽 두시가 넘는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가장 적막한 시간이지만 어떤 시간보다 평온하다. 낮에 읽은 책을 이렇게 정리하는 일도 즐겁고 다른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 때 무언가 한다는 것 자체가 비밀스럽다.
센스 오브 원더는 겨울방학동안 아들에게 꼭 읽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을 발견하고 그 책을 다 읽고 난 후 느껴지는 이 뿌듯함... 뭔가를 깨닫고 난 후의 흐뭇함이 너무너무 좋다.
행복한 밤..아니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