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도대체 소로는 어떤 사람인가 ?

내가 말하는 사람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의미에서, 내 유년기와 이른 청년기의 친구이자 생사를 넘어 나를 도운 은인이다. 이런 도움에 감사하고, 그와의 추억에 경의를 베푸는 일은 당연한 의무라 하겠다. 더군다나 그의 이름과 며예, 삶과 가르침이 머스케타퀴드 근처에 사는 아이들만의 유산이 아니라 미국의 국가적 자신이 된 마당에는 더 그렇다.

- 소로와 함께한 나날들 중 23쪽에서 -

 

 

 

 

 

그는 또한 우리에게 숲 속에서의 예의범절을 가르쳤다. 숲은 소란한 자와 부주의한 자에게는 어떠한 보물과 지혜도 나눠주지 않는 법임을. 인간은 뱀이 흉측하다고 죽여서도 안되며, 놀라게 했다고 복수해서도 아니 됨을. 아무리 열심히 새알을 모으는 사람일지라도 대부분의 알을 어미새에게 남겨야 하며, 둥지를 보려 너무 자주 가서도 안된다는 이치를 알려주었다.

- 소로와 함께 한 나날들 중 20쪽에서 -

 

또한 그녀는 대단히 사려 깊었고, 얼마 안 되는 돈으로도 즐거운 가정을 꾸리는 데 비범한 재주를 가졌다. 검소한 식단과 소박한 식재료를 토속의 향미료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명랑함으로 조리함으로써 맛나게 만들었다. 이 착한 부인은 일과 보살핌을 제자리에 둘 줄 알았으며, 삶과 사랑을 무엇보다 앞세울 줄 알았다. 가까운 이웃이자 친구가 전한 바에 따르면 이 집안에서는 수년 동안 평일에는 차나 커피, 설탕, 그리고 다른 사치품을 사용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딸들을 위해 피아노를 사줄 수 있었고, 모든 아이들의 교육비를, 특히 둘째 아들의 대학 교육비를 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녀의 식탁은 항상 매력적이었으며, 음식은 풍족했고 맛깔스러웠다. 그녀에게는 두 딸과 두 아들이 있었는데, 헨리는 둘째 아들이었다.

- 소로와 함께 한 나날들 중 33쪽에서 -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만약 내가 나의 오전과 오후를 모두 사회에 팔아야만 한다면, 내게 살아갈 만한 가치를 느끼게 할 어떤 것도 남지 않게 되리라 확신한다. 나는 그렇게 한 사발 죽을 위해 생득권을 팔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 아주 근면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생계를 벌기 위해 자기 삶의 더 큰 부분을 소비하는 사람만큼 치명적인 실패자는 없다. 위대한 과업은 자기를 부양하는 일이다. 예컨대 시인은, 증기기관 대패가 깎아낸 대팻밥으로 보일러를 끓이듯이 시로써 자신을 부양해야 한다. 당신은 사랑으로 생계를 벌어야 한다."

- 소로와 함께 한 나날들 중 75쪽에서 -

 

소로와 같은 마을 이웃으로 살았던 저자 에드워드 월도 에머슨이 바라본 소로 이야기... '소로와 함께 한 나날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소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풀어보려는 저자의 의도보다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더 마음을 끌었다. 월든과 시민 불복종으로 너무나 유명한 소로... 그런 소로와 이웃하며 따뜻하고 순수한 우정을 나눈 저자가 부러울 따름이다. 아직 읽고 있는 중인데 좋은 문장들이 많아 열심히 밑줄을 긋고 있는 중이다.

 

갖가지 질병과 낙담, 그리고 황폐함의 근원은, 자신의 나날들이 어떻게 지니가는지 멀리 떨어져 조망할 여유도 없이, 모두가 그러하듯이 순간순간 살아가고, 그리하여 하루가, 일 년이, 한 평생이 오로지 살기 위한 준비 속에 지나가버린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살게 되는 시간은, 적어도 지상에서는 결코 오지 않게 된다. 소로는 이런 삶을 살 수 없었다. 그는 지상을 조망하고 방향과 거리를 재는, 또 다른 의미의 측량기사였기 때문이다. 월든에서의 그의 삶은 수단과 목적이 적정의 관계에 있게 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그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 소로와 함께 한 나날들 중 74쪽에서 -

 

 

옥천에서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 외딴 국도변을 지나는 중 차에 치여 도로 한 복판에 죽어 있는 고라니를 발견했다. 차 창 밖으로 차디찬 도로 한가운데 고개가 꺾인 채로 누워 있는 고라니가 보였다. 요즘 국도변이나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면 이런 동물들의 죽음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세계 속에서 그들과 함께 공존할 방법은 없는 걸까 ?

인간의 편리를 앞세운 무분별한 개발 논리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동물들을 보니 안타운 마음 뿐이다. 자연과 공존을 추구했던 동양과는 달리 서양은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놓고 자연을 인간이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산과 강이 있던 자리에 도로가 만들어지고, 인간의 거주 공간이 자연 속으로 확장되어 가면서 점점 그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게 되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 잠깐 마주한 모습이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차를 돌려 죽은 고라니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미 해가 어둑 어둑해지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고라니를 발견하지 못한 차들은 무참하게 그 여린 몸을 밟고 지나 갈 것이 뻔한 일이었다. 비록 이미 죽어 식어가는 몸이지만 그 몸이 형태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짓밟힌다면...그건 한번의 죽음이 아닌 것이다.

마음같아서는 땅을 파서 묻어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우선은 추위에 언 땅을 팔 도구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남편이 고라니를 도로 갓길로 옮겨 놓고 있는 중, 마을 주민인 듯한 아저씨 두 분이 오셔서 뒷 처리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마을 주민 분이신 것 같았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죽은 고라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

그 고라니에게도 가족과 친구가 있지 않을까 ?

어미 고라니는 돌아오지 않은 새끼를 얼마나 기다릴까 ?

왜 산에서 도로로 내려왔을까 ? 고라니가 살았던 산에는 먹이가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

여러가지 생각에 마음이 심란했다. 작은 여린 고라니의 선한 눈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늘 '소로와 함께 한 나날들'을 읽으며 어제 우리가 만난 고라니와 소로의 삶이 떠올랐다. 앞으로만 나가려는 속도의 법칙을 버리고 뒤를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멈춰야 보이고, 천천히 보아야 차세히 볼 수 있다. 그래야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작은 것은 아름답고 모든 것은 소중하다. 자연의 작은 소리와 몸짓에도 귀 기울린다면... 고라니의 불행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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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12-27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게 고라니였군요.
제 책상에 앉아있으면 창문을 통해 바깥 낮은 언덕이 보이는데 어느 날 창문 밖을 내다보니 저렇게 생긴 동물이 휙 지나가는 거예요. 아마 먹이를 찾아 내려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는지. 저게 무얼까 했는데 고라니였네요. 그 고라니는 차가 다니는 길까지 내려가는 일이 없어야할텐데.

착한시경 2013-12-27 09:42   좋아요 0 | URL
자연과 함께 상생할 방법을 모색하는데...요즘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하지만 늘 이론만 있을 뿐 실제 제 삶도 그렇지 못해 부끄러워요,,,
차가운 도로에 죽어있는 고라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서 마음이 아프네요...
나인님말처럼 이런 일이 없어야 할텐데...저두 그 생각 뿐...

플라타나스 2013-12-27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은 참으로 소중한 울타리이죠...
돌아오지 않는 새끼 고라니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미 고라니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집니다..

바쁘게 앞으로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던길을...
이제는 잠시멈추어 주변을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할 때입니다..

소중한 사람, 소중한 가족, 소중한 자연....
이 보다 더큰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진정 아름다움은 이 모든것을 지키고 보호할때
비로소 가치가 있겠지요..

착한시경 2013-12-27 09:44   좋아요 0 | URL
새끼 고라니는 왜 혼자 큰길까지 내려온걸까요 ? 어미 말을 듣지 않고 호기심에 세상으로 내려온걸까 ? 아니면 먹이가 없어 찾으러 내려온걸까 ?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늘 감탄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진 않았던 것 같아 부끄럽네요...

appletreeje 2013-12-2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로와 함께한 나날들>은 저도 즐겁게 읽었는데 착한시경님의 좋은 글로
다시 읽으니, 더욱 반갑고 좋네요~

이 글을 읽으며 유홍준님의 <북촌-까마귀>속
작가의 '어느 살생자(殺生者)의 수기'라는 부제가 붙은 자서전에도
'고라니의 죽음'에 대한 많은 아픈 이야기가 나오는데...시경님의 고라니 이야기를
읽으니 또 그 이야기들이 떠오르고 더욱 마음이 아프네요..
그나저나, 차를 돌려 죽은 고라니를 갓길로 옮겨놓고 오신 두 분의 마음에
고맙고 따스함이 흐르는 시간입니다.

착한시경님! 오늘도 좋은 글 덕분에 또 우리가 함께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생각케 해주셔서 감사해요.^^
오늘도 아름답고 좋은 날 되세요~*^^*

착한시경 2013-12-27 16:03   좋아요 0 | URL
트리제님은 벌써 읽으셨구나,,, 저도 오늘 마무리될수 있을 것 같아요~
고라니는 지금도 맘이 짠하고~ 뭔가 근본적인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유홍준의 책도 한번 꼬옥 읽어보고 싶어요~ 따사로운 금요일밤 되세요^,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 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의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의 무엇이 성공인가 -

 

 

조용한 크리스마스 이브... 늘 하던 일을 하고,  남편은 직장에서, 아들은 학원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기념 가족여행을 다녀온 터라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차분하게 보낼 계획이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터는 크리스마스에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선물과 카드를 주고 받으며 들떴던 마음보다는 그저 주중에 선물처럼 주어진 공휴일이 되었다.
은행동으로 나간다면 소란스럽지만 활기차고 흥겨운 크리스마스가 될수 있겠지만,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냥 빈둥빈둥 뒹굴며"보내야 할 것 같다.

 

크리스마스하면 떠오르는 영화... 나홀로 집에 보다는 러브 액추얼리

짝사랑, 어린 아이의 첫사랑, 친구의 아내를 사랑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 특히 스케치북 편지 프로포즈와 휴그랜트가 혼자 관저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들은 정말 잊을 수 없다. 특히 올 겨울 개봉한 어바웃 타임을 본 후, 러브 액추얼리를 다시 보니 감동이 두배 !!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세상 사는 것이 울적해 질 때면, 나는 공항에서 재회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보편적으로 우리는 증오와 탐욕 속에 산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굳이 심오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딸, 아내와 남편......남자 친구, 여자 친구, 오랜 벗..... 무역센터가 비행기 테러로 무너졌을 때, 그곳에서 휴대폰으로 사람들이 남긴 마지막 말은 증오나 복수가 아닌 모두 사랑의 메세지였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사랑은 실제로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영화 러브액추얼리 중에서 -

사랑을 빼면 우리 삶에서 남은 것이 무엇일까 ?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도 사랑의 결정판인 것을... 우리의 삶이 유한한데 마치 영원한 시간 속에 사는 것처럼 미움과 욕심 속에 사는 게 부끄럽다. 이번 겨울에는 다 용서하고 싶다. 우선은 실수투성이인 나를 용서하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도 용서하고, 내가 미워했던 자들도 용서하고 싶다. 결국 사랑만이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다.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거리에 사람들은 모두 선물을 한아름 들고 바쁘게 집을 향해 가고 있다. 엄마 신발을 신고 거리로 나와 추위에 떨면서 성냥을 파는 소녀에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소녀는 따사로운 불빛이 새어나오는 어느  집 창 밑에서 성냥을 하나씩 켜며 서서히 죽어간다.

언제 들어도 마음이 짠하게 슬퍼지는 동화... 안데르센은 왜 이렇게 슬픈 동화를 많이 쓴걸까 ?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는 꼭 이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이 난다. 특히,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에게 신발을 뺏긴 후, 맨발로 거리를 걷던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린시절 애니메이션으로 본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어 꼭 내가 맨발로 눈 위를 걷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언제나 떠오르는 동화...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외롭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을 아이들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

 

책읽기는 영혼을 놀라게 한다. 책읽기는 자신의 내부에 등록된 모국어, 그곳에서 속삭여지며 의식의 형태로 감시하는 반향 효과를 흐트러뜨린다. 책읽기는 사고의 시공을 확장시킨다. (214쪽)

모든 강물은 끊임없이 바다로 휩쓸려 들어간다. 나의 삶은 침묵으로 흘러든다. 연기가 하늘로 빨려들 듯 모든 나이는 과거로 흡수된다.

(11쪽)

배우는 것은 강렬한 쾌락이다. 배우는 것은 태어나는 것에 속한다. 몇 살을 먹었든 간에 배우는 자의 육체는 그 때 일종의 확장을 체험한다. (29쪽)

-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에서 -

파스칼 키냐르....국내에 번역된 9권의 책을 모두 구입했지만 제대로 읽은 책은 세상의 모든 아침 뿐이다. 2014년 독서 목표는 밀란 쿤데라와 파스칼 키냐르를 전적 독서하기로 세웠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심란한 연말을 지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1월부터 도전해야 겠다. 읽다가 덮어 둔 은밀한 생부터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키냐르와 쿤데라가 나를 진정으로 만나주기를 소망한다.

 

 

 

 

조용하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살짝 서운했는데, 남편이 퇴근 길에 케익과 샴페인을 사가지고 왔다. 가족들끼리 샴페인을 마시며, 크리스마스를 축하했다. 부드럽고 달콤한 생크림 케익과 톡 쏘는 맛을 내는 사과맛 샴페인을 함께 마셨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은 처음 마시는 샴페인에 흥분했고 그런 아들을 보니 제법 컸구나 싶은 마음에 흐뭇했다. 우리 부부는 전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아들과 샴페인을 마시는다는 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몇 번의 크리스마스를 온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을까 ?

이제 중3이 되는 아들은 친구와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내년 쯤은 우리 부부만 집에 남게 될 것 같다.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겠지... 아니 어쩌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며 즐거워했던 아들의 어린 시절을 못 견디게 그리워할 수도 있다. 

지난 일들은 왜 이리 아름다운 걸까 ?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어린 아들의 앳된 모습이 눈에 선하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그 많은 레고는 다 어디로 간 걸까 ? 그 작고 앙증 맞은 손으로 레고를 조립하며 즐거워하던 아들은 어디로 가고 스마트폰이 없으면 머리를 쥐어 뜯으며 괴로워하는 사춘기 소년만 남은 것일까 ?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은 조용히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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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5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나이가 들어도 아이와 함께 누릴 수 있는 기쁜 빛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하루하루 아름답게 품으셔요.

모레가 되고 글피가 되면
오늘이 또 애틋한 이야기로 되살아나겠지요.

착한시경 2013-12-25 10:19   좋아요 0 | URL
행복한 크리스마스~ 내년 크리스마스도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보내고 싶은 바램이예요^^아들이 커가면서 서운한 마음도 들고 기특한 마음도 들고 그러네요~^^

마녀고양이 2013-12-2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마트폰 좋아하고 친구가 우선인 사춘기 딸 여기 하나 더 있답니다. ^^
하지만 아직도 집이 최고, 엄마랑 있는게 가장 편해~ 라고 해주니 고마운 마음도 들구요,
제가 우리 딸에게 좋은 엄마구나 하는 자랑스러움도 쪼~~~금 있습니다.

한 발자욱씩 제게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아이를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고...
수많은 힘든 아이들과 부모들을 보면서 잘 자라는 딸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함께 느끼고 있어요.

착한시경 2013-12-25 10:28   좋아요 0 | URL
저희 아들은 요즘 혼자놀기를 제일 좋아하는 듯 싶어요~ㅠ.ㅠ 그래도 곁에 있는 지금이 행복한거겠죠^^ 내년에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한발짝 뒤에서 응원하고 싶어요,,, 마고님도 가족들과 해피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appletreeje 2013-12-2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분들과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셨군요~
'성냥팔이 소녀'는 늘 이맘때만 되면 생각나는 동화지요.^^
저도 지금도, 크리스마스만 되면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눈의 여왕'과 함께
아련하고 알싸하게 떠올리는 책.
서재분위기가 더욱 예뻐졌어요~
프로필 사진,의 인디고 서원의 모습도 참 좋네요~
착한시경님! 오늘도 행복하고 좋은 날 되세요~*^^*



착한시경 2013-12-26 20:33   좋아요 0 | URL
인디고서원....언제가도 예쁘고 반가운 곳이예요^^ 전 트리제님 덕분에 늘 좋은 시를 읽게되니...고마운 맘이 커요~ 새해에는 서재에서 더 자주 뵈어요~^^
 

두 번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연습없이 태어나서

실습없이 죽는다.

 

인생이란 학교에서는

꼴찌라 하더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같은 공부는 할 수없다.


어떤 하루도 되풀이 되지않고

서로 닮은 두 밤()도 없다.

같은 두 번의 입맞춤도 없고

하나같은 두 눈맞춤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곁에서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내겐 열린 창으로

던져진 장미처럼 느껴졌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난 얼굴을 벽 쪽으로 돌렸네.

장미? 장미는 어떻게 보이지?

꽃인가? 혹 돌은 아닐까?


악의에 찬 시간, 너는 왜

쓸데없는 불안에 휩싸이니?

그래서 넌 - 흘러가야만해

흘러간 것은 - 아름다우니까


미소하며, 포옹하며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방울의

영롱한 물처럼 서로 다르더라도.

- 쉼보르스카의 두번이란 없다 -

 

눈을 비비고,  손등을 살짝 꼬집어 봐도 분명 꿈은 아니다.
남해의 푸른 바다와 철썩이며 다가오는 하얀 파도...나는 부산 앞바다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하다.
햇빛은 환하고, 바람은 따사로운 기운을 살랑살랑 몰아 온다.  추위를 대비해 겹겹이 끼워 입었던 옷차림이 부끄러울만큼 좋은 날씨였다.

우리 가족은 해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부산 여행을 하는데 매번 즐겁고 재미있는 추억들만 가득하다.
이기대해상공원, 감천문화마을, 국제시장, 자갈치 시장, 보수동 책방, 부산타워, 피프거리, 인디고서원, 백년어서원, 범어사 그리고 해운대와 광안리, 송정과 용궁사... 잊혀지지 않는 봄날처럼 따뜻한 날씨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나는 부산 밤거리의 활기참과 분주함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둔 토요일 밤, 피프 거리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롤과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전등과 트리 그리고 수많은 사연을 담은 사람들의 표정들이 어우러져 특별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사람들에 휩쓸려 거리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점에서 파는 재미있는 물건들과 맛난 먹거리들을 구경했다.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으나 푸짐한 저녁을 먹은 후라서 대부분 눈 구경으로 만족한 것이 제일 후회스럽다.

 


 

부산 여행을 갈 때마다 행복한 추억을 주는 장소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은 단연코 인디고서원이다.
나는 몇년 동안 인디고잉을 정기구독해서 읽고 있으며,  그곳 아이들이 쓴 책을 대부분 소장하고 있을만큼 그곳을 좋아한다.

 


 

 

 

 

 

 

 

 

 

 

 

빨간머리 앤에 나오는 초록 지붕 집을 연상하게 하는 인디고 서원은 1층에서는 주로 간단한 소품(노트, 포스터, 필기류 등)과 초등학교 아이들 책 위주이고, 2층은 성인과 중고생들 책들을 판매한다. 매달 초에 인디고 서원 사이트에 올라오는 추천 도서를 참고해 책을 구입하는터라 이 곳에서 선별해 판매하는 책들에는 특별한 관심과 믿음이 간다.
튼튼한 나무 책장에는문학, 역사, 철학, 글쓰기, 환경, 생태, 교육, 사회로 분류되어  책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인디고 서원 아이들이 수업하는 책들도 함께 구경할 수 있었는데,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들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좋은 선생님과 함께 토론 수업을 하며  공감할수 있다니 부러울 뿐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좋은 수업이라 할지라도 수강료를 낼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허락되는 아이들에게만 허용된다는 것이다. 좋은 수업인 것은 분명하지만, 비싼 수강료를 감당해야 하니

선택받은 소수의 아이들만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다.
교도소의 제소자들이나 노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자아존중감을 찾아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소외 계층이나 다문화 가정, 왕따나 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이런 수업은 절실하다.
나 역시 부산에 거주한다면 다른 과외를 줄이더라도 이곳에서 진행되는 수업을 선택했을 것이다.
네루다의 시집, 알랭 바디우의 사랑예찬, 소로우, 번역가 김남주의 수필,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경제제적 여건이 허락한다면 더 많은 책을 사고 싶다는 마음에 힘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에 너무 많은 책을 구입했고, 자제해야 겠다는 마음도 들어 몇권만 구입했다.
사실 인디고서원은 정가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부담도 있었다.

 



 

 

 

 

 

 

 

 

 

 

따생각해 보면 가장 적은 비용에 오랫동안 만족과 기쁨을 주는 건 책 밖에 없는데 많은 책을 다 정가로 구입하자니 부담스럽기도 했다.
문제집이 펼쳐진 아이들의 책상과 장식용이 되어버린 수백 권의 책들 대신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책... 삶에 영향을 줄 만한 책들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부모의 관심과 보호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제한 당하는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책이 필요하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다면 이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때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 점에서도 부산 인디고 서원은 의미가 크다.
철학과 문학, 역사를 통해 세상을 읽는다. 아름다움보다 추함과 저급함 그리고비열함이 많은 세상을 아이들은 보게된다.  하지만 그 안에 희망의 씨앗과 따뜻한 인류애가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한때 나도 사라 스튜어트의 도서관에 나오는엘리자베스 브라운처럼 개인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한적한 교외에 작은 집을 짓고 넓은 마당을 만든다. 그리고 마당에는 계절별로 아기자기한 야생화를 싶어두고 싶었다. 나무로 직접 짠 책장에 내가 그동안 모아 온 책들을 빼곡하게 꽂아두고, 자주 듣던 음악을 늘 틀어놓는다. 운치 있게 턴테이블이 구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텃밭이 있어 옥수수와 감자 그리고 채소를 심어 먹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니어링 부부처럼 노동의 즐거움과 지적 성장을 경험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친구들을 이 곳에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다.

인디고서원에 흐르는 분위기.... 삶과 문학을 향한 그들의 끊임없는 탐구와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크리스마스보다 더 들뜨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 남편과 함께 러브액추얼리를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 낮에는 가족들에게 줄 크리스 마스 카드 두 장을 살 예정이다. 마음만은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소망해 본다.

 

"세상 사는 것이 울적해 질 때면, 나는 공항에서 재회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보편저긍로 우리는 증오와 탐욕 속에 산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굳이 심오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딸, 아내와 남편......남자 친구, 여자 친구, 오랜 벗..... 무역센터가 비행기 테러로 무너졌을 때, 그곳에서 휴대폰으로 사람들이 남긴 마지막 말은 증오나 복수가 아닌 모두 사랑의 메세지였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사랑은 실제로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영화 러브액추얼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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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4 0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책방마실만큼
즐겁게 한 해 마지막날
아름답게 누리셔요~

착한시경 2013-12-24 10:5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아이들과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아직까지는 차분한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별다른 계획은 없지만 왠지 설레는 날이예요^^

미스코리아 뚱 2013-12-24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서재를 읽어나가면서 드는 이포만감...독서를 즐겨하지않는 존재인데,,님이 올려준 책들과 간단한 문구만으로도 다~읽은듯힌 이뿌듯함...감솨^^,,메리 크리스마스!!

착한시경 2013-12-24 18:18   좋아요 0 | URL
감사^^ 한해를 또 떠나보내며 후회와 회한만 남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읽었던 몆권의 책들이 유일한 위안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시간들 잘 마무리하시고 행복하세요^^

마녀고양이 2013-12-25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에 가본지가 너무 오래되었어요.
며칠 잡아서 놀러가고 싶다는 그냥... 소망만 품고 있는 중이랍니다.
하기사 여행다운 여행을 언제 가보고 못 가봤는지. ㅠ

인디고 서원 참으로 예쁘네요.
그냥 주저앉아서 책 읽고 싶은 분위기네요.

즐거운 성탄절 되셔요.
 

                               - 따뜻한 1월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간 부산 감천벽화 마을에서 -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

- 천상병의 행복 -

 

찬 바람을 뚫고 오랜만에 환한 햇빛을 볼 수 있는 날이었다.

바람은 서럽도록 차가운데 왜 햇볕은 따사롭게 느껴질까 ?

나이를 먹으면서 사소한 날씨의 변화에 예민해짐을 느낀다.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행은 겨울에 몰아서 왔다는 친구는 이 겨울 추위를 몸서리치게 싫어한다. 나 역시 본래 가을, 겨울을 더 좋아하고 기다렸는데, 요즘은 봄과 여름이 좋아진다.

아마 내 삶의 나이가 여름을 지나 가을로 향해 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리라.

새로운 일에 열정적으로 도전하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 혹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게 순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난하지만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세계에서 살다가 시인 천상병을 떠올렸다.

어이없게 연류된 동백림 사건은 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고,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행려병자로 전락하게 된다. 시인이 몸과 마음이 망가져 자신을 잃고 세상을 떠도는 동안 주변 친구들은 유고시집 ‘새’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그 후 친구의 여동생 목순옥과 결혼해서 가난하지만 평온한 삶을 누리며 담백하고 순수한 시 세계를 고집한다.

희미한 기억 속에  천상병 시인의 삶을 극화한 드라마를 본 기억이 난다.

아내가 시인의 시 제목을 딴 '귀천'이라는 작은 전통 찻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그들은 늘 가난했다. 하지만 가난을 불평하지 않으며 오히려 가난에서만 찾을 수 있는 감사와 행복의 조건을 시로 표현했다는 것은 늘 놀랍다.

특히 돈이 없으면 어떤 것도 불가능해진 이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가난해진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는 공포에 가깝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 천상병의 가난은 -

 

 

“이 초록별에서 우리 인간들이 만들 수 있는 삶의 가능성 가운데 지금 이것이 최선일까 ? 여러 가지 발견과 발명 덕분에 우리는 자연과 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는데, 그 힘을 갖고 고작 이런 아귀 다툼이나 벌여야 할까 ?“

나는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낭비되는지 화가 날 지경이었다. 우리는 부질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음식을 낭비하고, 생산에 쓰여야 할 에너지를 낭비하고, 재능을 낭비하고 있었다. 인간의 삶은 얼마든지 훌륭하고 풍요롭고 보람찰 수 있는데, 이렇게 낭비되어 버리는 것들 때문에 정말 보잘 것 없고, 천박하고, 이기적이고, 분별없고, 어지럽게 되어 버렸다.

- 스콧 니어링의 희망 중 11쪽에서 -

 

 

자본이 힘이 되어버린 이 세상을 살면서 인간의 품위를 정신적인 차원에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생각의 끝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자본이 할 수 없는 영역, 설령 자본이 개입된다 하더라도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결국 순수한 예술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문학과 철학 그리고 음악과 미술... 가난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 갔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고고한 정신 세계가 빚어낸 아름다운 문학작품들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고 정신을 풍요롭게 만든다.

시인 천상병 역시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눈을 가졌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행복의 많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결핍을 먼저 떠올리며 살았다. 행복에 감사하기보다는 결핍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고, 때로는 노력의 댓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삶을 절망했다.

 

복의 일곱가지 조건

1.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 기제(베일런트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많고 적은가'보다는 '그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

2. 교육

3. 안정된 결혼생활

4. 금연

5. 금주

6. 운동

7. 알맞은 체중

베일런트의 또 다른 주요 관심사는 인간관계의 힘이었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갈지를 결정짓는 것은 지적인 뛰어남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관계이다." 행복의 조건에 따뜻한 인간관계는 필수다. 베일런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사실이다."라고 대답했다.   -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 중에서 -

 

만약 행복의 8가지 조건을 만든다면꼭 '감사'를 넣고 싶다.

아침에 마시는 한잔 커피와 담배 그리고 막걸리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행복 조건 0순위 아닐까 싶다. 감사가 크다면 고통에 대응하는 여유있는 마음도 생길 것이고 결혼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도 줄어들 것이다.

나는 오늘 '하루'라는 시간을 선물받았고, 가족과 친구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기뻐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내가 사고 싶은 책을 살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는 내 일도 했다.

부족하지만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었고, 지금은 따뜻한 곳에 앉아 책을 읽고 알라딘 서재에 글을 쓴다. 그리고 감사와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한 해가 한점 소리없이 조용히 가고 있다..

천상병의 시를 읽으며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나는 이 한해동안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왔을까 ?

니어링의 말처럼 천박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끊어내지 못해 감사를 잊고 지내지는 않았는지..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얼마나 놓치고 살았는지 생각해 본다.

삶의 우선 순위에 감사를 놓고 살고자 노력해야겠다.

 

디까지 방황하며 멀리 가려느냐 ?

보아라, 좋은 것은 여기 가까이 있다

행복을 잡는 방법을 알아두어라

행복이란 언제나 네 곁에 있다

- 괴테의 경고 -

 

산문 ‘생활의 8가지 행복’이란 행복론을 써서 모든 생활인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었던 독일의 대문호 괴테도 일생동안 행복했던 시간은 겨우 17시간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몇 년 전 어느 책에서 그 고백을 읽고 나는 무척 충격을 받았었다. 독일 문학의 거장이며 세계 4대 시성의 한 사람이기도 한 괴테가 평생을 통틀어 17시간 밖에 행복하지 못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불행은 노력하지 않아도 오는데 행복은 노력해도 잘 오지 않는다.’는 말을 몇 번이나 꼽씹어 보았다.    -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160쪽에서 -

 

창 밖으로 눈이 내리고 겨울 밤은 깊어 간다. 아름다운 시와 문장들을 읽으며 정신적 풍요를 경험한다. 그리고 천상병의 시처럼,, 어느 날 홀연히 구름이 손짓하며는 아름다운 소풍을 끝내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삶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수의 인간들에게서 희망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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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면서도 늘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는 하루를 누리셔요~

착한시경 2013-12-21 09:41   좋아요 0 | URL
넵^^ 감사합니다,,, 늘~ 그런 맘으로 살고 싶어요~
 

오늘 나와 함께 한 세 권의 책들...

 

덕보다는 악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 본질적으로 악은 적응력이 강한 것이어서 서로 돕고 서로에 대해 너그러운 반면, 덕은 시샘이 많아 서로 다투고 서로를 죽이며, 모든 것에서 편협함과 타협 불가능성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고문하지 않으면, 언어를 부수어 버리지 않으면, 어떤 문학적 독창성도 있을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표현하려고 집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는 여기서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시작된 변함없는 요구를 만나게 된다.

 

인간은 시간에 치명상을 입을수록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흠없는 한페이지의 글을 쓴다는 것은, 아니 한 문장이라도 쓴다는 것은 생성과 부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언어를 통하여, 노쇠의 상징 그 자체를 통하여, 파괴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은 죽음을 초월한다.

 

순수한 시간, 사건과 존재와 사물에서 벗어난 해맑은 시간은 밤의 어떤 순간들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그 때 오직 당신을 파국으로 끌어가려는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당신은 느낄 것이다.

- 에밀 시오랑의 지금 이순간, 나는 아프다 중에서 -

 

 오늘 밤, 별들의 미세한 불빛 속에서

 나무와 꽃이 상쾌한 향기를 퍼뜨려왔다.

 나는 그 사이를 걸었으나,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따금 잠잘 떼

내가 가장 완벽하게 그들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점차 희미해갔다.

 누워 있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러면 하늘과 내가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

 마침내 내가 누워 있을 때 나는 쓸모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무는 한 번쯤 나를 만질 테고, 꽃은 나에게 시간을 내어

 줄 것이다.

- 실비아 플라스의 나는 수직이다 중에서 -

 

 

좋은 소설이란 '답'이 아닌 그 시대를 산 인간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것으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밖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질문에 대한 답은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 고전이 매번 사람들에게 다르게 읽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 작가들이 꼽은 최고의 고전문학 안나 카레리나, 백영옥 편에서 -

 

 

 

 

 

 

 

 

 

에밀 시오랑의 '지금 이순간, 나는 아프다...부제는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를 읽고 있는 중이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의 저자이기도 한 에밀 시오랑은 생전 어떤 문인들과도 교류하지 않았고 언론의 인터뷰도 사양했다. 그리고 두번이나 권위있는 문학상을 거부하며 평생을 철저한 고독 속에서 살아왔다.

일반적으로 태어남은 축복, 죽음은 불행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에밀 시오랑은 진정한 불행은,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태어남이 하나의 파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인정할 때, 삶은 마침내 견딜 만한 것이 되고, 마치 항복한 다음 날처럼 투항한 자의 홀가분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245쪽에서 -

 

한번 읽어서는 의미를 파악할 수 없으니,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본다. 태어났다는 것이 불행임을 잊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을 다양한 비유와 상징으로 이야기 한다.

이 책 역시 목차와 상관없이  눈에 띄는 문장을 읽어도 되니...난 그 무질서함이 좋다.

햇빛이 환한 낮에 읽기 보다는 모든 것들이 잠들어 있는 조용한 밤...읽기 좋은 책이다. 물론 너무 어려워 납득이 불가능해지는 상태가 오면 아마도 스르륵 잠드는데도 도움을 줄만한 책이기도 하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 ?

- 내 자신을 견딥니다.

 

살면 살수록 살아왔다는 것이 점점 더 쓸데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미칠 듯한 괴로움 혹은 끈질긴 불안을 이겨 내기 위해 자신의 장례식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루에 여러 번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려면 아침에 눈뜨는 즉시 그 효과를 느껴보다는 게 좋을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 ? 누군가 나에게 이 말을 묻는다면...난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 열흘 남짓 남은 이 한해를 나는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

돌이켜 보면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무분별하게 사용했던 시간들이다. 절제하지 못하고 함부로 사용했던 시간들은 늘 깊은 후회를 남긴다.

우주 속으로 흩어져 버린 나의 시간들... 그리고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한정된 시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찰나의 순간들조차 소중하다.

늘 나에게 너그러웠던 삶의 태도를 성찰하며 좀 더 이성적으로 나를 바라보기로 한다.

문제들 속에 파묻혀 허우적대는 삶이 아니라, 그 상황 밖으로 나와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많은 문제들은 좀 더 쉽게 해결될 것 같다.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감성보다는 이성을 선택하기로 한다. (늘 다짐하지만 정말 잘 안되는 것 중 한 가지이다.)

 

 

학교 급식에 나온 달걀을 가져와 수줍게 내미는 윤희...

나는 그런 윤희가 좋다. 웃을 때 반달이 되는 작은 눈도 예쁘고, 중학생답지 않게 작고 앙증맞은 손도 예쁘다. 특히 여리고 착한 마음이 가장 맘에 든다.

물론 윤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학교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윤희의 말을 가만가만 들어보면...윤희의 마음이 보인다.

오랫만에 삶은 계란을 보니, 아주 오래 전 기억 저편에 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막내 동생을 낳은 엄마를 대신해서 초등학교 1학년 첫 소풍을 외할머니와 함께 갔다.

그 때... 엄마가 싸 준 도시락 안에 담긴 삶은 계란과 김밥 그리고 칠성 사이다 병이 떠오른다.

첫 손녀였던 나를 지극하게 아껴주셨던 외할머니...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했던 손길과 눈빛은 지금도 아련하게 내 기억속에 남아있다.

세로줄 성경책과 주절주절 외우시던 주기도문 그리고 맛깔스러운 할머니의 반찬들, 내 손에 쥐어주던 사탕이나 과자들, 따뜻한 방바닥에서 함께 누워 먹었던 달콤한 귤의 향기를 잊지 못한다.

윤희가 건넨 삶은 달걀 하나가 아픈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뵙던 날, 나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며 반가워하시던 할머니의 모습과 야윈 할머니를 보며 서럽게 울었던 기억들을 모조리 불러 냈다.

할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랫동안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아무런 조건없는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왜 이렇게 그리운걸까 ? 이제는 할머니의 얼굴은 희미한 이미지로만 남았지만 아직도 껍질을 깐 삶은 달걀을 보면 갑자기 울컥한 마음이 든다.

햇살 따뜻한 봄날, 첫 손녀의 소풍을 즐겁게 따라 나섰던 할머니도 오랫동안 그 시간을 잊지 못하셨다. 이렇게 내 삶 속에서 사리진 사람들의 기억은 늘 아픈 아름다움이고 뼈아픈 후회들이다.

 

내가 경험했던 죽음들은 모두 겨울이다. 그래서 나의 겨울은 아프고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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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타나스 2013-12-1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틋한 할머니의 사랑이 느껴지는군요
사랑은 이처럼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고
또한 한없이 슬프게도 하는군요....
겨울을 너무 아파하지 마세요....겨울은 봄을 잉태하고 있잖아요
좋은하루 되세요~

착한시경 2013-12-18 14:53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환한 햇빛을 보니,,, 기분이 넘 좋아져요^^
겨울이 있기에...봄이 더 따뜻한거겠죠~ 조건없는 따뜻한 사랑을 받았던
기억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플라타나스님도 편안한 오후 보내세요~

마녀고양이 2013-12-18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달걀이 참 맛있어 보여요.

방금 전화 한통을 받았는데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은 상처를 쉽게 받아서
그것이 예술의 깊이를 주거나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데 분명 큰 자산이 되겠지만
가능하면 안 겪고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에밀 시오랑의 글을 읽으니 다시 생각나네요.

하지만......
저에게 지난 고통을 포기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변을 하지 못할 것 같네요. 제 딸아이는 분명 겪지 않았으면 하고 금방 네! 대답을 할건데요.


착한시경 2013-12-18 14:56   좋아요 0 | URL
역시 삶은 계란은 사이다에 먹어야 하는데,,, 사이다가 빠져서 좀 아쉬웠어요~
우리 삶에 고통이 있기에 행복이 상대적으로 더 소중해지는거 같아요~그래도 고통은 언제나 견디기 힘든 짐이니...저두 피할 수 있으면 피해버리고 싶긴 해요..
에밀 시오랑 책을 읽기에는 날씨가 넘 좋아요~^^

baby 2014-01-04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렵네요...^^; 한 문구가 제 마음과 같아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