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야단법석,,,,고3 아들의 정신 없었던 수시 일정이 거의 마무리되어 간다. 경부선 타고 서울 톨게이트 지나가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기본 50대 1이요,, 60대 1의 경쟁률을 보며 망연자실했던 가슴을 진정 시키고 도시락까지 싸 가면서 수시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부족한 아들의 실력을 엄마의 지극 정성으로 채워볼 요량으로~ 신을 한번 감동시켜 운명의 지침까지 돌려 보겠다는 열혈엄마의 의지로 버텼다. 아니 그냥 견뎠다.

공부도 마찬가지겠지만 입시 당일 컨디션과 조별 배정 시간, 실기 순서 추첨까지 음대 입시내내 살얼음판 딛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긴장때문에 첫 음을 놓치면, 피아노 앞에 줄지어 앉은 10명의 교수님들이 뿜어내는 포스 앞에 주눅이 들어 박자를 제대로 못 잡고 들어가면 혹은 덜덜 떨리는 다리가 주책없이 페달을 잘못 눌렀다면...첫음 시작과 동시에 딱 1분 30초만에 끝나는 입시가 주는 중압감을 누가 알까?
입실한 이후 아이와는 완전 단절이다. 아이가 나올 때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바라 본 캠퍼스...입시생 부모에게는 그곳이 유토피아다. 캠퍼스를 오가는 대학생들은 대체 어떻게 그 지옥같은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서게 된 걸까? 애써 잡념을 밀어내며 그저 간절하게 애타는 마음으로 실수가 없기를 그리고 후회없이 잘 표현하고 내려오길 기도했다.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린다.
오랫만에 몇 권의 책을 구입했다. 집 뒷편 단풍나무 가로수길을 걷다보면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아담한 카페가 있다. 깊어가는 가을 그 카페에 앉아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보겠다.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첫번째 관문 앞에 선 아이에게 온 기운을 몰아주고 싶다. 책을 읽기 위해 찾은 카페에서 나는 오직 아이의 생각만 하다 오겠지....리베카 솔닛에게는 미안하지만 당분간 어쩔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은 바람에 실려, 날숨과 들숨에 실려 세상을 떠돈다.
어느날 사랑이 찾아 왔을 때, 우리는 변한다. 어느 날 사랑이 떠났을 때도 , 우리는 변한다. 되찾은 사랑 앞에서도, 다시 잃은 사랑 뒤에서도 우리는 변한다. 사랑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사랑의 움직임을 좇아 우리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사랑은 우러만진다. 사랑은 할퀸다. 상처를 내는 것도 사랑이고, 상처를 아물리는 것도 사랑이다. 사랑은 약이면서 독이다. 사랑은 두사람의 코뮤니즘이다. 
- 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개정판 서문 중에서 -
 
 
 
 
 
 

인간의 뇌는 애초부터 책 읽으라고 설계된 것이 아니다. 문자가 등장하는 역사는 5000년, 지금 같은 형태의 종이인쇄 책의 역사는 600년에 불과하다. 자연선택이 사냥과 채집 같은, 인간종의 생존에 필요한 다른 여러 기능들을 수행하도록 설계한 뇌 건축물의 부수적 파생 효과 가운데 하나가 책을 쓰고 책을 읽는 기능이다. 말하자면 그 능력은 덤으로 얻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덤'이 참으로 중요하다.
- 고독한 성찰과 불안한 의식의 극장 중에서 -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음 번엔 좀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를테다.
덜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하련다.
좀 더 편해질 것이며
지금보다 더 가득할 것이다.
진짜로, 심각한 일은 조금만 만들 것이며
덜 깔끔 떨련다.
위험을 더 감수할 것이며
더 많은 곳을 여행할 것이며
더 많은 석양을 볼 것이며
더 많은 산을 오를 것이고
더 많은 강에서 헤엄치련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갈테다.
아이스크림을 더 먹을 거고, 
콩은 조금만,
더 많은 (진짜) 근심거리를 가지고,
상상만 하는 일은 조금만 하련다.
나는 매 순간을 신중하고 풍성하게 살아갈 사람 중의 하나이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즐거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시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좀 더  좋은 순간을 위해 노력하련다.
인생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모른다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지어니
나는 체온계와 보온물병 그리고 우산과 낙하산 없이는
어느 곳도 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밝은 곳으로 여행할 것이다.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맨발로 일해 볼 것이다.
손수레도 더 끌어볼 것이다.
좀더 많은 일출을 바라보고, 더 많은 아이들과 놀테다.
내게 인생이 더 허락된다면 - 하지만 난 85세이다.
- 그리고 내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봄비가 꽃비와 함께 내리는 날... 
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개나리꽃과 흰 벚꽃들이 온통 도로 위를 수 놓았다. 가을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면 왠지 모를 우울에 빠져 드는데, 봄꽃들을 밟고 걸어야 하는 거리는 아쉬움 속에서도 생명이 느껴진다. 
꽃을 먼저 피우는 벚꽃은 단연 봄의 전령사이다. 
꽃을 살피면 소박하고 수수하지만 나무 전체를 바라보면 그 화려하고 화사한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특히 벚나무가 줄지어 선 도로를 지나다 보면 당장이라도 창문을 내리고 손을 뻗어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해마다 벚꽃길을 걸으면 기억 저편에서 불현 듯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초록 지붕 2층 작은 창문에 턱을 괴고 혼자 아름다운 상상에 빠져 있는 앤이 벚꽃과 함께 기억 속에서 살아난다. 
대청호 가는 길...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전군가도를 자전거로 달린 김훈을 떠올렸다.
속수무책으로 온 천지에 떨어지는 벚꽃을 맞으며 온 몸을 작게 웅크리고 쩔쩔 매었다는 김훈의 봄을 생각했다. 이 봄...나를 쩔쩔매게 하는 건 무엇일까 ? 사쿠라 꽃이 피면 여자 생각이 난다는 김훈의 문장을 읽으며 짜릿한 전율과 함께 절망했다.
김훈보다 더 고급스럽고 관능적이까지 한 봄의 문장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고운 벚꽃 잎이 바람에 흩어져 가는 풍경을 한없이 바라본다. 절정을 이루고, 절정에서 죽고, 절정에서 떨어져 내린다는 벚꽃...찰나의 운명을 지닌 벚꽃들이 아름답고 슬퍼서 오랫동안 바라봤다. 봄비가 절정으로 치닫아가는 봄을 한숨 돌리게 한다. 자기 열정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달리던 봄이 비를 만나서 숨을 고르며 느긋하게 우리 옆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4월 첫주...봄꽃은 절정인데 봄바람의 끝은 매섭다. T.S 엘리엇이 말한 잔인한 4월의 시작은 뒤늦은 꽃샘 추위와 함께 찾아왔다. 죽었던 땅에 봄비와 봄볕이 와 닿으면 생명이 불어 넣어진다. 그 생명의 틈새로 땅은 녹고, 꽃은 핀다. 예전에도 내가 이렇게 봄을 좋아한 적이 있었던가 ? 자연의 변화에 예민해졌고, 그 작은 움직임에도 눈길이 간다.  지난 주에 대청호 둘레길로 두 번이나 벚꽃 구경하고 왔는데도 떨어지는 꽃잎은 늘 아쉽다. 일요일 오후..시내 서점에서 몇 권의 책을 구입했고, 커피를 마셨다. 지난 주에 알라딘에서 새책처럼 깨끗한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9권을 구입하며 당분간 책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사벨 아옌데의 수필집 '모든 삶이 기적이다'와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에세이 '보통의 독자'가 어느새 내 책상에 놓여 있다. 이 책을 언제 다 읽을 것인가 ? 대답은 언젠가는... 하워드진의 교육을 말한다와 필립로스의 '포트노이의 불평' 그리고 허밍웨이의 단편선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의 충만한 행복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최근에 내가 가장 관심있게 읽고 있는 책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다.

내가 그 동안 왜 이런 작품을 몰랐을까 ? 더 한심한 일은 이 작가의 책이 내 책꽂이에 두 권이나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분별한 구매가 불러온 부작용이다.

마르코 폴로와 칸의 대화를 통해 접하게 된 신비롭고 아름다운 도시들의 아포니즘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소설과 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름다운 문장들과 환상 속에 존재하는 도시들을 머릿 속에 그려본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걔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 보이지 않는 도시들 208쪽에서 -

 

 

 

 

 

보이지 않는 도시를 마무리하며 칼비노의 책을 알라딘 장바구니에 모조리 담아뒀다. 이 책을 읽고나니 작가의 나머지 책들이 너무 궁금했다. 교외로 나가는 시간보다 훨씬 더 즐거운 일요일 오후였다.  아메리카노 한잔과 오천원짜리 책 한권으로 세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아름다운 책을 만난 오늘 이 순간 나의 삶은 풍요롭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1-25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착한시경 2014-11-25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네,,,나름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북플 어플 다운 받고~바로 서니데이님께 친구 신청했어요~ㅎㅎ 앞으로 자주 뵙고~핸드메이드샵이라면 주로 어떤 제품들인가요? 앞으로 자주 인사해요~ 대전은 날씨가 우울해요~^^

서니데이 2014-11-25 12:19   좋아요 0 | URL
며칠만에 여기 날씨가 좋아요.^^ 실제로는 쌀쌀하지만 창문 밖으로는 따뜻해보이는 그런 날이에요. 여기도 한동안 흐리고 비오고 그랬거든요.
저희는 패브릭 소재로 만드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티코스터랑 파우치, 그리고 가방이나 주방에서 쓰거나 책상에서 쓸만한 것들을 만들어요. ^^ 상품란에 없는 것은 신청도 받는 중이구요. 연말과 크리스마스 앞두고 이것저것 살펴보는 중이에요.
북플이 생겨서 새 글을 읽고 왔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 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 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D에게 보낸 편지 88~89쪽 중에서)

 

 

 

 내가 만일 플라타너스라면 그 그늘에 들어가 쉴테요

 내가 만일 책이라면 잠 없는 밤, 지침 없이 읽을 테요

 내가 만일 연필이라면

 손가락 사이에서 나른히 있지만은 않을 테요

 내가 만일 문이라면

 선인에겐 열어 주고 악인에겐 닫아걸 테요

 내가 만일 창이라면, 커튼이 달려 있지 않은 드넓은 창이라면

 온 도시 전체를 내 방으로 불러들일 테요

 내가 만일 하나의 단어라면

 아름다움을 공정함을 진실함을 요청할 테요

 내가 만일 말이라면

 나는 내 사랑을 나직이 말할 테요.

 ( 존 버거의 모든 것을 소중히하라 44~45쪽 중에서)

 

 

1.

칼로 오려낸 것인가 ?  붓으로 그려 낸 것인가 ?

조화신공(造化神功)이 사물마다 야단스럽다.

정극인의 상춘곡의 한 구절로 봄의 즐거움에 빠져 있는 내 마음을 대신해 본다. 고전문학을 읽다보면 옛 사람들의 풍류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수풀에 우는 새는 봄 기운을 이기지 못하여 소리마다 교태로다...

엊그제 겨울을 지나고 봄이 찾아오니, 연두빛 싹들이 소리없이 땅 위로 올라오고, 온갖 꽃나무들은  봉우리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울을 이겨낸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들의 생명력을 조물주의 신기한 재주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주인없는 자연은 누구나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참 공평하고 감사한 일이다. 따사로운 봄 기운은 세상의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을 가릴 것 없이 희망을 안고 다가 온다.  부귀도 날 꺼리고. 공명도 날 꺼리니 바람과 달 이외에 어떤 벗이 있겠냐고 말한 정극인의 마음에 100배 공감하는 이 봄이 그냥 좋다. 마냥 좋다. 

물론 나에게 특별히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생긴 것은 아니다. 난 여전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내고 있지만 계절이 주는 특별한 힘이 나를 즐겁게 한다. 봄 기운을 이기지 못한 새처럼... 봄이 되면 자꾸만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사로 잡힌다. 지난 주부터 시작한 북바인딩 수업은 또 다른 도전이다. 난 유난히 손재주가 없는 편인데, 예를 들어 바늘을 잡으면 손이 떨리고 자꾸만 땀이 난다. 그리고 뜨개질이나 십자수을 하다보면 두통까지 와서 끝까지 완성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손으로 제도를 하고 하드 보드지로 표지를 재단한 후 꼼꼼하게 풀칠을 해서 연결하는 작업을 하는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너무 재미있게 했다. 아직은 표지를 만드는 작업만 완성된 상태인데, 속지를 실로 엮는 바인딩 작업이 너무 기대된다. 지금은 가장 기초가 되는 다이어리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인데 최종적으로는 아끼는 책들을 새롭게 바인딩해서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책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올 겨울 쯤이면 내가 가장 아끼는 책을 가죽으로 새롭게 바인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 뭔가 배우는 일은 언제나 신선한 자극이고 즐거움이다.

그리고 아주 아주 멋 훗날, 알라딘 서재에 쓴 내 글들을 모아서 바인딩해두고 싶다. 세상에서 유일한 핸드 메이드 책으로... 늘 이렇듯 생각만 야무지다.

 

 

 

 2.

욕망과 욕심의 차이는 무엇일까 ?

욕심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것을 정도에 지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며, 욕망은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람 또는 그러한 마음을 의미한다.

이번 달에도 나는 욕심인지 욕망인지 알 수 없는 마음에 사로잡혀 여러 책들을 구입했다. 나름대로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선별해서 구입하려고 마음 먹었지만 서재에 올라온 리뷰를 읽거나, 책을 읽다가 작가가 인용한 책을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든다. 신간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김중혁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과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 그리고 앙드레 고르의 D에게 보낸 편지를 구입했다. 최근에 가장 관심있게 읽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은 존 버거이다.  거짓과 불의, 새로운 형태의 독재에 대해 저항라고 말하고 있는 그는 스스로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밝히고 있다.  몇해 전부터 열화당 사진문고 시리즈를 꾸준히 모으고 있는 중인데 존 버거의 대다수의 책들이 열화당에서 출간되어 더 반가웠다.

 

모든 욕망이 다 자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유란 하나의 욕망이 인정받고 선택되고 추구되는 과정과 경험에 다름 아니다. 욕망의 목표는 대상에 대한 소유가 결코 아니다. 욕망의 목표는 대상의 변화다. 욕망은 바라는 것이다. 바로 지금 바라는 것이다. 그 바람에의 성취가 모두 자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는 그 바람이 지고(至高)함을 확인해 준다.

하느님은 지금 가난한 자의 곁에 계신다.

(존 버거의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13쪽에서)

 

 

 

 

 

 

 

 

 

 

 

 

 

 

 

 

 

 

 

 

 

 

 

 

 

 

 

제목과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 그리고 목차와 머릿말이나 옮긴이의 말, 뒷표지만 읽어도 책에 대한 기본 예의는 지킨 것이니 책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말자. 인생은 길고, 시간은 많다. 느긋한 마음으로 마음가는대로 읽어보자... 이번 주에 읽은 책 중 단연코 최고의 책은 D에게 보낸 편지이다. 남편 앙드레가 거리막염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아내에게 쓴 가슴 저린 편지글이다. 서로 만난지 60년 만에, 결혼한 지  58년 만에 오랫동안 살아온 정든 집에서 함께 삶을 마감한 부부의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국내 작가의 소설을 참 오랫만에 구입했는데, 김중혁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날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3.

크기는 작았지만 탱글탱글한 딸기가 향이 너무 좋아 한 바구니를 구입했다. 그런데 너무 작아서 그냥 먹기는 좀 그렇고, 우유와 꿀을 넣어서 갈아 먹으니 한결 맛이 좋다. 이른 저녁을 먹고 출출한 마음이 들어 오랫만에 야식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번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최근 주부놀이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열심히 만들었다.하지만 먹고 나니 느는 것은 몸무게요, 쌓이는 것은 설거지 뿐... 식구들의 반응은 뭐 그닥 그랬다. 도대체 감사를 모르는 족속들이다. 편하게 앉아 개콘을 보며 일요일 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을 참고 열심히 닦고 썰고, 사리면까지 삶아서 만들었는데... 맛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아니 그냥 침묵하며 먹는다. 아들을 키우는 일은 참 드라이 한 일이다. 도통 재미가 없다. 결국 내가 만들어서 내가 제일 많이 먹어서 슬프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울 2014-03-24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마지막에서 그만......빠 ㅇ! 지송~~

착한시경 2014-03-27 19:58   좋아요 0 | URL
ㅎㅎ 누가 가을이 식욕의 계절이라고 했을까요~ 전 봄이 되니 세상 모든 음식이 너무 맛나서 고민이예요,,, 제가 만들고 제가 다 먹고~^^

서니데이 2014-03-24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엄마가 많이 먹어, 하고 말하면, 이 글 생각날 거 같아요. ^^;;
(그렇지만 사진 속의 간식은 좋아 보이는데요??)

착한시경 2014-03-27 20:00   좋아요 0 | URL
그쵸,,,사진은 그럴 듯 하죠~ 전 먹을만 하던데~ 그들은 너무 MSG에 익숙한지 앞으로는 사다 먹자고 하네요 ㅠ.ㅠ 흑~

잘잘라 2014-03-26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도대체 감사를 모르는 족속들이다. 에서 한 번,
내가 만들어서 내가 제일 많이 먹어서 슬프다. 에서 또 한 번.
빵 터집니다. 아이고. 이를 우째.. 저 눈물 맺혔어요. ㅎㅎㅎㅎㅎㅎㅎ

착한시경 2014-03-27 20:02   좋아요 0 | URL
샤방샤방한 원피스 입으려면 몸무게 감량에 돌입해야 하는데,,, 어쩜 좋죠~ 하여튼 그날 혼자 배터지게 먹고,,, 서러운 맘에 잠들었어요~ㅎㅎ
 

 

 

 

 

 

 

 

 

 

 

 

 

 

 

 

 

 

 

 

 

 

 

 

 

 

 

 

 

 

 

 

 

 

 

 

 

 

 

 

 

 

 

 

 

 

 

 "사람들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람들을 사랑하라."

"당신이 착한 일을 하면 사람들은 다른 속셈이 있을 거라고 의심할 것이다. 그래도 착한 일을 하라."

"당신이 성공하게 되면 가짜 친구와 진짜 적들이 생길 것이다. 그래도 성공하라."

"오늘 당신이 착한 일을 해도 내일이면 사람들은 잊어버릴 것이다. 그래도 착한 일을 하라."

"정직하고 솔직하면 공격당하기 쉽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게 살아라."

"사리사욕에 눈 먼 소인배들이 큰 뜻을 품은 훌륭한 사람들을 해칠 수도 있다. 그래도 크게 생각하라."

"사람들은 약자에게 호의를 베푼다. 하지만 결국에는 힘 있는 사람 편에 선다. 그래도 소수의 약자를 위해 분투하라."

"몇 년 동안 공들여 쌓은 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도 탑을 쌓아라."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면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덤빌 수도 있다. 그래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라."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헌신해도 칭찬을 듣기는커녕 경을 칠 수도 있다. 그래도 헌신하라."

- 켄트 케이스의 그래도 중에서 -

 

봄이 왔다. 하늘하늘한 꽃 무늬 원피스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옷장에서 꺼내 입으려다 아직은 이른 감이 있어 약간 도툼한 옷을 입고 외출을 했는데...

웬걸,,, 길거리에는 샤랄라한 옷차림으로 활기차게 다니는 사람들로 넘쳐 나고 있었다.

봄의 기운은 참 특별한 힘이 있어... 다들 적당히 상기된 얼굴 표정들로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

봄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우선 이번 봄에는 빈 화분들에 예쁜 꽃들을 심었다.

그리고 김치를 직접 담가 먹었다. 난 오늘 저녁에도 마트에서 산 배추 한통을 이용해서 겉절이를

담가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무우 생채를 시작으로 해서 배추 겉절이 그리고 오이 소박이

를 만들어 볼 예정이다. 배추 한 통을 사서 반은 겉절이를 담고 반은 배추전과

배추쌈까지 만들어 먹었다. 식구가 적고, 친정과 시댁에 김치를 가져다 먹을 수 있어 한 번도 김치

를 담그지 않았는데 해보니 제법 재미가 있어 요즘 열심히 만들어 보는 중이다.

따사로운 봄의 기운을 받아 기분도 업 시키기 위해서... 무언가를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오후 내내 문화센터와 평생교육원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강좌를 찾아 봤는데

마음에 와 닿는 배울꺼리가 눈에 띄었다. 물론 책과 관련된 일인데,,,, 좋은 취미가 될 성 싶다.

새로운 피아노 레슨 선생님을  만든 아들이 요즘 피아노 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레슨곡만 연습했는데

요즘은 집에서도 혼자 악보를 찾아서 다양한 곡을 연주해 나를 즐겁게 해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주제곡들을 연습하는 중인데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연습 중이다. 아들은 정말 피아노를 칠 때만 제정신인 듯 싶다. 나머지 시간들은

대체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 같다는 생각 밖에는 안 든다. 지구인이라면 저럴 수 없다는 생각

이 절로 든다. (신은 나에게 도민준 같은 외계인을 안 보내주셨다... 짱구를 보내줬다)

출장을 간 남편을 시내에서 만나기로 해서 오후에 혼자 시내에 갔다.

서점에서 책을 몇 권 구입했고, 혼자 아이스 커피를 마셨고, 유니클로에 가서 구경을 하다가 예쁜

반팔 티셔츠를 두 장 구입했다. 29,000원짜리 옷을 5,000원에.... 기쁜 맘으로 친구에게 줄 티셔츠도

한장 골랐다.

나이를 먹는걸까 ?? 자꾸만 화사한 꽃무늬 옷이 입고 싶다...

주절주절 썼다.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이번 주부터는 책을 정말 열심히 읽을테다 다짐을 하지만

도통 지켜지지 못하고 있으니 문제다.

지난 주에는 한강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그리고 장영희의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읽었다. 3월 달에 새로 산 책들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니 이번 주에는 차분하게 책을

좀 읽어야 겠다. 그렇지만 봄바람이 불고 햇빛이 좋으면 어찌될지 알 수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4-03-17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과 김치와 피아노와 예쁜옷과 봄빛이 여러모로 잘 어울리지 싶어요~ 아침볕이 참 곱습니다~^^

hnine 2014-03-1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김치 담그려고 배추 두통 사다놓았네요. 아직도 잘 못 담그지만 계속 하다보면 조금씩 나아질지 모르겠어요. 맛없는 김치 먹어주는 식구들에게 고맙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몇해전부터 저도 화사한 꽃무늬 옷에 자꾸 눈길이 가는게, 나이먹는 증거였나봐요.
책과 관련된, 새로운 배울꺼리 찾아내셨다는것이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저도 지난 주부터 배우기 시작한게 있는데 책과 관련된건 아니고요.
아드님은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것 같아요.
 

 "만약 당신이 젊은 시절 파리에서 살게 되는 행운을 얻는다면 그 후에 당신이 어느 곳에서 살든 파리는 당신을 따라다닐 것이다. 파리는 움직이는 축제니까" 20대 젊은 시절 6년 동안 파리에서 살았던 헤밍웨이가 만년이 돼서 젊은 작가에게 한 말이다. 그의 말 그대로 "움직이는 축제"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회고록에는 그가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파리 시절 생활에 보탬을 준 은인으로 '실비아 비치가 경영하는 서점이자 도서관'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등장한다. 그 밖에도 이곳에는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에즈라 파운드, 그리고 스콧 피츠제럴드같은 작가나 시인들이 모였다.

- 책 160쪽에서 -

 

 

 

 

1.

봄! 봄! 봄! 봄이 왔네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때의 향기 그대로.... 이 봄이 가기 전에~

하루 종일 봄,봄,봄을 흥얼거리며 이 노래를 100번 쯤 들었다.

이른 아침...며칠째 계속되는 꽃샘 추위에도 목련 나무에 여린 꽃봉오리가 맺혀 있다. 보송보송한 솜털에 쌓인 봉오리를 보고 있자니 얼마나 신기하고 기특하던지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완연한 봄이라고 하기에는 바람이 제법 차게 느껴졌지만 단연코 3월은 봄봄봄...봄인게 틀림없다.

낮이되면 따사로운 햇살을 받은 어린 잎사귀들이 봄바람에 나폴거리고, 아스팔트 좁은 틈새로 작은 풀꽃들이 앞 다투어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은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에서 봄은 다가온다. 나는 이 봄의 발랄함과 경쾌함을 긴 겨울동안 그리워했다. 막연히 봄이되면 즐거운 일, 기쁜 일이 나에게 다가올 것만 같은 기대에 가슴이 설레인다. 행여 우울한 일이 생기더라도 금방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계절이 봄이다. 짧은 봄은 우울해하거나 슬퍼할 겨를 조차 없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시인 김영랑처럼 봄이 지나면 그 뿐 나의 한해는 다 가고 말아 나는 하냥 섭섭할테고 다시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찬란한 봄을...너무 찬란해서 슬퍼지는 봄을 말이다.

봄이 되니 우선 마음에 이유없는 기쁨이 강처럼 넘치고, 다양한 나물들로 식탁이 풍성해지고, 새학년이 시작되어 아들이 학교에 다니니 다시 자유가 찾아왔다. 아파트 상가 앞에 나물을 내어 놓고 파는 노점상 좌판을 구경하는 재미도 크다. 달래와 냉이, 취나물, 돌나물, 참나물, 방아나물... 그리고 향기 좋은 딸기는 보기만 해도 상큼하다. 그저 봄에는 땅에서 자란 나물을 막 삶아서 무쳐내거나 바로 물에 씻어 송글송글 물기가 맺힌 상태로 쌈을 싸 먹는것이 제일 좋다. 마트에서 랩에 포장된 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는 재래시장이나 노점에서 소쿠리에 푸짐하게 담긴 것을 사는게 좋다. 무엇보다 한 줌 더 집어 넣어주는 덤이 있어 좋고 봄의 기운까지 더불어 오니 흥겹다. 식구가 적다며 극구 사양하지만 할머니는 꼭 한 주먹을 더 넣어 주신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한 잎도 헛으로 버리지 못하겠다. 어제도 속이 노랗게 꽉찬 배추를 한 포기 사서 된장국을 끓이고 듬성 썰어 겉절이를 해서 먹었다. 깨소금과 매실청, 고추가루를 넣어 버무린 겉절이를 보니 식탁에도 봄이 한가득이다.

나는 풍성한 이 봄이 너무 좋다.

 

 

 

 

2.

재활용 수거일에 버리려고 모아 두었던 쥬스병을 이용해서 색연필 꽂이를 만들었다. 씻어서 색연필만 담아 두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여서 면 레이스로 장식을 해 보니 제법 그럴 듯 해 보였다.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어 사진까지 찍어두고 가족들에게 자랑을 했다. 다이소에서 천원 주고 산 레이스 끈을 크기에 맞춰 자르고 글루건을 이용해서 고정시켰다. 12개 음료수 병 중 4개는 색연필꽂이로 사용하고 나머지 4개는 원두를 넣어 방향제로 쓸 예정이다. 그리고 나머지 4개 병은 지끈으로 묶어서 화병으로 사용할까 ?

바쁘게 지낼 때는 필요한 것은 대부분 돈으로 해결했는데 요즘은 느긋한 오전 시간에 청소를 하거나 빈 화분에 꽃을 심거나 아니면 이렇게 손으로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지난 주에는 원단 시장에 가서 연두색 체크 무늬 천과 광목 천을 떠서 커텐을 만들어 왔다. 큰 돈이 아니어도 좋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그 작고 소박함이 좋아졌다. 천원짜리 작은 화분에 오백원짜리 다육 식물을 옮겨 심으며 느꼈던 흙의 감촉과 정겨움이 좋아서... 그저 봄이 되면서 새롭게 시작된 모든 일들이 고맙고 기쁘다.

내가 손수 심고 보니 다 예쁘고 귀하다. 빈병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고 다 쓸모있어 보인다.

손을 움직여 하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지 알아가는 봄이다.

 

 

 

 

3.

우리 가족은 봄이 되면 꼬옥 전주 나들이를 간다. 차분한 마음으로 전동 성당을 둘러보고, 고즈넉한 한옥마을 골목들을 느릿느릿 걸으며 예쁜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도 기웃거려보고, 길거리에서 파는 군것질거리들로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하지만 몇 해전부터는 도이름도 알 수 없는 간식들과 줄을 길게 선 식당들로 인해 도통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외할머니 솜씨와 풍년제과 그리고 수제만두 가게는 줄이 너무 길어서 뭔가를 먹거나 사겠다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이런 번잡함 자체가 싫다. 시끄러움을 피하고 싶어서 찾았던 곳이 점점 상업화되는 게 씁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팡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니며 먹고 있었고, 꼬치를 한입 가득 물고 있거나 사람 머리보다 큰 솜사탕을 손에 든 사람들도 많았다.

요즘 전주는 사람 구경하러 간다고 하는게 더 맞다. 남편과 함께 예쁜 소품 파는 가게에 들렀는데 노숙자인 듯 한 할아버지 한 분이 지팡이로 가게 바닥을 치며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낮부터 술을 드신 듯... 알아들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가게 입구를 막고 계시니 다시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워 참 난감했다.

젊은 가게 주인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는데... 남편이 할아버지 옆에 앉아 조근조근 말을 붙이고 있는게 아닌가 ? 좁은 마음에 손을 뻗어 남편의 어깨를 쿡쿡 찌르며 눈짓을 마구했다. 괜시리 끼여들었다가 술 취한 할아버지가 휘두르는 지팡이에 맞기라도 하면 어쩔까 ? 그리고 가게 주인이 해결해야 할 일을 왜 나서고 그럴까 ? 하지만 남편은 아랑곳없이 할아버지 옆에 찰싹 붙어 앉아 뭘 도와드리면 되겠냐고 친철하게 묻는다.

112를 불러달라고 하시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갑자기 낡은 신발을 벗기 시작하신다.

겨우내 꽁꽁 얼어 동상에 걸린 발은 검붉은 색으로 변하여 퉁퉁 부어 있었다. 발이 아프다며 112를 불러 달라고 하신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차분하게 다 들어주니 할아버지의 화도 조금은 누그러지신듯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우지셨다. 우리는 112를 불러 상황을 이야기 한 후 가게를 나왔다.

누군가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좀 더 빨리 귀 기울였다면 그리 화를 내지 않으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할아버지가 겪은 겨울이 얼마나 혹독하고 힘들었을지를 그 발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 아픈 발로 온 거리를 헤매고 다니셨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니 아프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저녁값이라도 드리고 올 걸 하는 후회를 했다. 착한 일을 할 기회였는데 또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다. 그 할아버지에게도 이 봄이 희망이 되길 기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한 남편의 마음을 배우고 싶다.

 

4.

 

 

 

 

 

 

 

 

 

 

 

 

 

 

 

 

 

 

 

 

 

 

 

 

 

 

 

 

 

최근에 장영희 수필집을 읽고 있는 중이다. 이 봄에 읽기 좋은 편안한 문장들과 소개된 시와 책들이 참 좋다. 그리고 박완서의 노란집은 하루종일 세 군데의 카페를 돌아다니며 커피를 네 잔 마시며 다 읽었다. 이 봄이 가기 전에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 그런데 봄 햇볕이 좋은 날은 책을 읽기보다는 꽃구경을 갈 예정이다. 나는 지금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14-03-11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씨가 할아버지 마음을 읽으셨나 봐요.
아저씨한테서는 맑은 빛이 흘러나오는가 봐요.
그 맑은 빛이 온 집안에 감돌기에
착한시경 님도 예쁜 손을 놀려
멋진 연필꽂이를! 책꽂이에 살포시 얹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