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 아파서 더 소중한 사랑 이야기
정도선.박진희 지음 / 마음의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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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품위를 지키며 개념있는 40대를 살고 싶었으나...40대가 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은 아들의 진학문제, 운영하는 학원의 유지비, 홀로 된 친정엄마의 안부 등 치열할만큼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대신 넓고 깊어진 안목으로 세상을 유유자적하며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정말 착각이었다. 치졸할 만큼 내 영역을 침범 받고 싶지 않았으며, 유치한 욕심을 버리기도 힘들었다.
이런 내면의 모습을 감춰보려고 열심히 책을 샀고, 틈나는 대로 읽기도 했다. 하지만 책 따로, 삶 따로...마치 이성과 육체가 분리된 사람처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날마다 갈등하며 살았다.

삶이 곤고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지만 잡다한 일상에 늘 묶여 있었다. 서점 평대에 놓인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라`, `후회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 `내가 위로해줄께` 라며 달콤하게 말하지만 허무한 말장난일 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데면데면해진 가족들과의 관계는 서글프기까지 했다. `사랑`은 멀리 있었고, `현실`은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한동안 이렇게 지냈다.

서점은 작은 우주와 같다.
서점은 치유와 위로의 장소였다.
서점을 사랑하고, 그 서점안에서 책과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소통을 꿈꾸는 청년 정도선과 절판된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
르크 평전을 소장하고 있던 박진희가 책을 매개로 만났다. 내가 이 책을 쓴 부부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낀 이유는 순전히 서점과 책 때문이었다. 20여년 전...9월 어느 날 나와 남편도 서점에서 처음 만났다. 일주일에 몇번씩 서점에서 만났고 함께 책을 읽었고, 선물했다. 무의식 속에 꼭꼭 봉합되었던 기억이 프루스트의 홍차와 마들렌처럼 이 책을 읽는 순간...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시간의 벽을 넘어서 20년 전 날 한없이 설레이게 했던 그 사랑 앞으로 다시 돌아갔다. 삶에서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삶의 무게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만약, 이 사람이 불치병에 걸린다면 내 일부분을 주고라도 살리겠다는 유치하지만 순수한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랑은 흐릿해졌고, 결혼과 함께 감당해야 할 현실은 총 천연색이었다.
혹여 남편이 감기에 걸려 힘들어 할 때면 심지어 귀찮기까지 했다. 당신이 없다면 나도 살 수 없다는 생각을 정말 내가 했었나,,, 우리는 잃어버렸고 잊고 지냈다. 하지만 이 책 한 권이 나를 몹시 부끄럽게 만들었다. 사랑을 현재진행형으로 유지하기 위해 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음을 절절히 깨닫게 한 책이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서 힘썼지,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부부가 쓴 에세이를 단숨에 읽어 내려가며 노력하지 않아 작아진 사랑과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미안했다. 카프카가 책은 도끼처럼 단단하게 얼었던 우리의 내면을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치료 대신 여행을 선택한 부부의 여행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여행을 통해 부부가 깨달았던 삶의 근본적 성찰이 담겨져 있다. 부유함대신 소박함을, 편안함 대신 불편함을, 소유 대신 나눔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어느 한 줄 버릴 것 없었지만...나에게는 이 부부의 댓가없고, 바램없는 사랑에 더 마음이 갔다. 앞으로 이 부부가 어떻게 살지 알 수 없으나 이 사랑의 마음을 잘 지킨다면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나를 오랫만에 서재에 이끌만큼 인상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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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개미 2015-11-2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래요..책 따로, 삶 따로 살며 이상과 현실 중간 어디쯤에서 가진 것과 놓여져있는 환경을 돌아보려는 마음 없이 저너머만을 보려고 했던 모습을 반성하게끔 하는 책이었어요.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게 만드는..착한시경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