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 아파서 더 소중한 사랑 이야기
정도선.박진희 지음 / 마음의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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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품위를 지키며 개념있는 40대를 살고 싶었으나...40대가 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은 아들의 진학문제, 운영하는 학원의 유지비, 홀로 된 친정엄마의 안부 등 치열할만큼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대신 넓고 깊어진 안목으로 세상을 유유자적하며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정말 착각이었다. 치졸할 만큼 내 영역을 침범 받고 싶지 않았으며, 유치한 욕심을 버리기도 힘들었다.
이런 내면의 모습을 감춰보려고 열심히 책을 샀고, 틈나는 대로 읽기도 했다. 하지만 책 따로, 삶 따로...마치 이성과 육체가 분리된 사람처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날마다 갈등하며 살았다.

삶이 곤고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지만 잡다한 일상에 늘 묶여 있었다. 서점 평대에 놓인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라`, `후회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 `내가 위로해줄께` 라며 달콤하게 말하지만 허무한 말장난일 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데면데면해진 가족들과의 관계는 서글프기까지 했다. `사랑`은 멀리 있었고, `현실`은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한동안 이렇게 지냈다.

서점은 작은 우주와 같다.
서점은 치유와 위로의 장소였다.
서점을 사랑하고, 그 서점안에서 책과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소통을 꿈꾸는 청년 정도선과 절판된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
르크 평전을 소장하고 있던 박진희가 책을 매개로 만났다. 내가 이 책을 쓴 부부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낀 이유는 순전히 서점과 책 때문이었다. 20여년 전...9월 어느 날 나와 남편도 서점에서 처음 만났다. 일주일에 몇번씩 서점에서 만났고 함께 책을 읽었고, 선물했다. 무의식 속에 꼭꼭 봉합되었던 기억이 프루스트의 홍차와 마들렌처럼 이 책을 읽는 순간...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시간의 벽을 넘어서 20년 전 날 한없이 설레이게 했던 그 사랑 앞으로 다시 돌아갔다. 삶에서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삶의 무게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만약, 이 사람이 불치병에 걸린다면 내 일부분을 주고라도 살리겠다는 유치하지만 순수한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랑은 흐릿해졌고, 결혼과 함께 감당해야 할 현실은 총 천연색이었다.
혹여 남편이 감기에 걸려 힘들어 할 때면 심지어 귀찮기까지 했다. 당신이 없다면 나도 살 수 없다는 생각을 정말 내가 했었나,,, 우리는 잃어버렸고 잊고 지냈다. 하지만 이 책 한 권이 나를 몹시 부끄럽게 만들었다. 사랑을 현재진행형으로 유지하기 위해 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음을 절절히 깨닫게 한 책이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서 힘썼지,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부부가 쓴 에세이를 단숨에 읽어 내려가며 노력하지 않아 작아진 사랑과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미안했다. 카프카가 책은 도끼처럼 단단하게 얼었던 우리의 내면을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치료 대신 여행을 선택한 부부의 여행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여행을 통해 부부가 깨달았던 삶의 근본적 성찰이 담겨져 있다. 부유함대신 소박함을, 편안함 대신 불편함을, 소유 대신 나눔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어느 한 줄 버릴 것 없었지만...나에게는 이 부부의 댓가없고, 바램없는 사랑에 더 마음이 갔다. 앞으로 이 부부가 어떻게 살지 알 수 없으나 이 사랑의 마음을 잘 지킨다면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나를 오랫만에 서재에 이끌만큼 인상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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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개미 2015-11-2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래요..책 따로, 삶 따로 살며 이상과 현실 중간 어디쯤에서 가진 것과 놓여져있는 환경을 돌아보려는 마음 없이 저너머만을 보려고 했던 모습을 반성하게끔 하는 책이었어요.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게 만드는..착한시경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 아파서 더 소중한 사랑 이야기
정도선.박진희 지음 / 마음의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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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일상의 신변잡기를 다루는 에세이와는 다른~아우라가 느껴지는 책...9월 가장 기대되는 신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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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8-2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한시경님~~잘 지내셨죠~?^^
너무너무 오랫만이네요~!!! ㅎㅎㅎ
시경님이 가장 기대되는 신간이라 하시니
감사히 담아갑니다~~
좋은 주말, 좋은 가을 맞으세요~~*^^*

착한시경 2015-08-28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저를 다시 서재로 돌아오고 싶게 만든 책이니~관심있게 봐주세요~앞으로 자주 뵈요^^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는 예금 통장이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 천상병, 나의 가난은 -

북플 어플을 다운 받고, 예전에 서재에서 뵈었던 몇 분들께 친구 신청을 했다. 여전히 좋은 책을 읽고 계신 분들을 뵈니, 오랫만에 다시 와도 반갑다.
지난 주말... 대전에 있는 독립출판물 전문서점 도어북스에 다녀왔다. 시중에서 볼 수 없는 낯선 책들과 잡지 그리고 작가들이 만든 엽서와 포스터를 구경했다.
주로 1인 출판사에서 기획하고 만든 책들이었는데...대형 출판사에서 나온 책과는 달리 좀 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고 해야 할까? 올 곧은 소신이 책에 담겨 있다. 젊은 서점 주인은 책을 구경하며 듣고 싶은 LP를 직접 골라 보라고 권했다. 수 백장 LP도 인상적이었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그곳... 조용히 책 장 넘기는 소리와 천천히 흐르는 음악, 주인도 책을 읽고, 손님도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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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6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6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은 바람에 실려, 날숨과 들숨에 실려 세상을 떠돈다.
어느날 사랑이 찾아 왔을 때, 우리는 변한다. 어느 날 사랑이 떠났을 때도 , 우리는 변한다. 되찾은 사랑 앞에서도, 다시 잃은 사랑 뒤에서도 우리는 변한다. 사랑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사랑의 움직임을 좇아 우리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사랑은 우러만진다. 사랑은 할퀸다. 상처를 내는 것도 사랑이고, 상처를 아물리는 것도 사랑이다. 사랑은 약이면서 독이다. 사랑은 두사람의 코뮤니즘이다. 
- 고종석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개정판 서문 중에서 -
 
 
 
 
 
 

인간의 뇌는 애초부터 책 읽으라고 설계된 것이 아니다. 문자가 등장하는 역사는 5000년, 지금 같은 형태의 종이인쇄 책의 역사는 600년에 불과하다. 자연선택이 사냥과 채집 같은, 인간종의 생존에 필요한 다른 여러 기능들을 수행하도록 설계한 뇌 건축물의 부수적 파생 효과 가운데 하나가 책을 쓰고 책을 읽는 기능이다. 말하자면 그 능력은 덤으로 얻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덤'이 참으로 중요하다.
- 고독한 성찰과 불안한 의식의 극장 중에서 -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음 번엔 좀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를테다.
덜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하련다.
좀 더 편해질 것이며
지금보다 더 가득할 것이다.
진짜로, 심각한 일은 조금만 만들 것이며
덜 깔끔 떨련다.
위험을 더 감수할 것이며
더 많은 곳을 여행할 것이며
더 많은 석양을 볼 것이며
더 많은 산을 오를 것이고
더 많은 강에서 헤엄치련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갈테다.
아이스크림을 더 먹을 거고, 
콩은 조금만,
더 많은 (진짜) 근심거리를 가지고,
상상만 하는 일은 조금만 하련다.
나는 매 순간을 신중하고 풍성하게 살아갈 사람 중의 하나이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즐거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시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좀 더  좋은 순간을 위해 노력하련다.
인생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모른다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지어니
나는 체온계와 보온물병 그리고 우산과 낙하산 없이는
어느 곳도 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밝은 곳으로 여행할 것이다.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맨발로 일해 볼 것이다.
손수레도 더 끌어볼 것이다.
좀더 많은 일출을 바라보고, 더 많은 아이들과 놀테다.
내게 인생이 더 허락된다면 - 하지만 난 85세이다.
- 그리고 내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봄비가 꽃비와 함께 내리는 날... 
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개나리꽃과 흰 벚꽃들이 온통 도로 위를 수 놓았다. 가을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면 왠지 모를 우울에 빠져 드는데, 봄꽃들을 밟고 걸어야 하는 거리는 아쉬움 속에서도 생명이 느껴진다. 
꽃을 먼저 피우는 벚꽃은 단연 봄의 전령사이다. 
꽃을 살피면 소박하고 수수하지만 나무 전체를 바라보면 그 화려하고 화사한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특히 벚나무가 줄지어 선 도로를 지나다 보면 당장이라도 창문을 내리고 손을 뻗어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해마다 벚꽃길을 걸으면 기억 저편에서 불현 듯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초록 지붕 2층 작은 창문에 턱을 괴고 혼자 아름다운 상상에 빠져 있는 앤이 벚꽃과 함께 기억 속에서 살아난다. 
대청호 가는 길...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전군가도를 자전거로 달린 김훈을 떠올렸다.
속수무책으로 온 천지에 떨어지는 벚꽃을 맞으며 온 몸을 작게 웅크리고 쩔쩔 매었다는 김훈의 봄을 생각했다. 이 봄...나를 쩔쩔매게 하는 건 무엇일까 ? 사쿠라 꽃이 피면 여자 생각이 난다는 김훈의 문장을 읽으며 짜릿한 전율과 함께 절망했다.
김훈보다 더 고급스럽고 관능적이까지 한 봄의 문장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고운 벚꽃 잎이 바람에 흩어져 가는 풍경을 한없이 바라본다. 절정을 이루고, 절정에서 죽고, 절정에서 떨어져 내린다는 벚꽃...찰나의 운명을 지닌 벚꽃들이 아름답고 슬퍼서 오랫동안 바라봤다. 봄비가 절정으로 치닫아가는 봄을 한숨 돌리게 한다. 자기 열정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달리던 봄이 비를 만나서 숨을 고르며 느긋하게 우리 옆에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4월 첫주...봄꽃은 절정인데 봄바람의 끝은 매섭다. T.S 엘리엇이 말한 잔인한 4월의 시작은 뒤늦은 꽃샘 추위와 함께 찾아왔다. 죽었던 땅에 봄비와 봄볕이 와 닿으면 생명이 불어 넣어진다. 그 생명의 틈새로 땅은 녹고, 꽃은 핀다. 예전에도 내가 이렇게 봄을 좋아한 적이 있었던가 ? 자연의 변화에 예민해졌고, 그 작은 움직임에도 눈길이 간다.  지난 주에 대청호 둘레길로 두 번이나 벚꽃 구경하고 왔는데도 떨어지는 꽃잎은 늘 아쉽다. 일요일 오후..시내 서점에서 몇 권의 책을 구입했고, 커피를 마셨다. 지난 주에 알라딘에서 새책처럼 깨끗한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9권을 구입하며 당분간 책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사벨 아옌데의 수필집 '모든 삶이 기적이다'와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에세이 '보통의 독자'가 어느새 내 책상에 놓여 있다. 이 책을 언제 다 읽을 것인가 ? 대답은 언젠가는... 하워드진의 교육을 말한다와 필립로스의 '포트노이의 불평' 그리고 허밍웨이의 단편선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의 충만한 행복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최근에 내가 가장 관심있게 읽고 있는 책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다.

내가 그 동안 왜 이런 작품을 몰랐을까 ? 더 한심한 일은 이 작가의 책이 내 책꽂이에 두 권이나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분별한 구매가 불러온 부작용이다.

마르코 폴로와 칸의 대화를 통해 접하게 된 신비롭고 아름다운 도시들의 아포니즘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소설과 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름다운 문장들과 환상 속에 존재하는 도시들을 머릿 속에 그려본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걔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 보이지 않는 도시들 208쪽에서 -

 

 

 

 

 

보이지 않는 도시를 마무리하며 칼비노의 책을 알라딘 장바구니에 모조리 담아뒀다. 이 책을 읽고나니 작가의 나머지 책들이 너무 궁금했다. 교외로 나가는 시간보다 훨씬 더 즐거운 일요일 오후였다.  아메리카노 한잔과 오천원짜리 책 한권으로 세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아름다운 책을 만난 오늘 이 순간 나의 삶은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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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5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착한시경 2014-11-25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네,,,나름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북플 어플 다운 받고~바로 서니데이님께 친구 신청했어요~ㅎㅎ 앞으로 자주 뵙고~핸드메이드샵이라면 주로 어떤 제품들인가요? 앞으로 자주 인사해요~ 대전은 날씨가 우울해요~^^

서니데이 2014-11-25 12:19   좋아요 0 | URL
며칠만에 여기 날씨가 좋아요.^^ 실제로는 쌀쌀하지만 창문 밖으로는 따뜻해보이는 그런 날이에요. 여기도 한동안 흐리고 비오고 그랬거든요.
저희는 패브릭 소재로 만드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티코스터랑 파우치, 그리고 가방이나 주방에서 쓰거나 책상에서 쓸만한 것들을 만들어요. ^^ 상품란에 없는 것은 신청도 받는 중이구요. 연말과 크리스마스 앞두고 이것저것 살펴보는 중이에요.
북플이 생겨서 새 글을 읽고 왔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밤하늘의 별과 별 사이를 즐겁게 나는 상상력은 또 별과 인간을 잇고, 지상의 별들인 사람과 사람의 가슴 사이에, 사람과 개구리 사에 길을 놓는다. 이야기는 단순 오락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 반응이며 길 놓기이고 연결하기다. 이 연결의 능력이 상상력이다. 
 
-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19쪽에서 -
 
 
 
 
 

 
 
   

인생은 당신이 배우는 대로 형성되는 학교이다.
당신의 현재 생활은 책 속의 한 장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지나간 장들을 썼고, 뒤의 장들을 써 갈 것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 저자이다.
사람이 자기 조국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왜 국경에서 멈추는가 ?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사상을 하늘 위에 불로 새겨 놓은 것처럼 그렇게 사고 하라.
진실로 그렇게 하라.
온 세상이 단 하나의 귀만으로 당신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듯이
그렇게 말하라, 진실은 그렇게 하라.
당신의 모든 행위가 당신의 머리 위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행동하라.
진실로 그렇게 하라.
당신의 신이 존재 확인받기 위해 당신을 필요로 하듯이 살아라.
진실로 그렇게 하라    - 아름다운 사람, 사랑 그리고 마무리 중에서 -
 

 

 

백목련이 고운 자태로 봄의 시작을 알린다면, 꽃을 먼저 피우는 벚꽃은 봄의 절정을 예고한다. 분명 아침에는 봉우리 채로 서 있던 목련이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자 활짝 꽃을 피웠다. 담벼락을 타고 줄지어 핀 노란 개나리도 정겹고, 꽃집 앞에 이름모를 작은 화분들에도 저절로 눈길 간다. 

올 봄 내가 유난히 집착하는 건...꽃무늬 패턴이 그려진 옷들인데 옷가게 마다 나를 보며 손짓하는 꽃무늬 원피스를 보면 절로 지갑을 열고 싶어진다. 

 

평소 자주 입지 않던 옷도 입고 싶고, 머리 모양도 바꿔보고 싶어지는 건 아마 봄이 주는 마음이 아닐까 ? 나이를 먹으면서 계절의 변화가 더 섬세하게 관찰되고, 느껴진다. 최근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보라색 큰 꽃무늬가 한 눈에 들어오는 스커트를 사는 만행(가족들의 반응이다)을 저질렀다. 하지만 인생 뭐 있니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친구의 말에 힘입어 화사한 구두까지 사 신고, 뛰어보자 팔짝 하는 마음으로 신나게 다니고 있는 중이다.

 

라디오에선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모차르트 피아노 연주곡이 흐르고, 익숙한 목소리의 DJ는 소소한 일상의 사연들을 읽고 있다. 창가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는 이 시간과 제법 잘 어울리는 도정일의 에세이 두 권이 책 상위에 놓여 있으니 봄날 아침 풍경이 퍽 그럴 듯 하다.

봄은 햇살과 잘 어울려서, 여름은 더위를 피하는 시원한 카페가 좋아서, 가을은 이유없이 외로운 마음이 들어서 그리고 겨울은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책을 찾아 읽는다. 이른 아침 외출을 준비하면서 가방에 넣어 나갈 책을 고르는 일은 늘 황홀한 고민이다. 버스 안에서 읽기 딱 좋은 에세이 한 권도 좋고, 호흡이 짧은 아포니즘도 좋다. 지금 내 가방 안에는 도정일의 ‘별들 사이에 길을 넣다’와 강유원의 ‘책과 세계’가 들어있다.

 

 

 

 

며칠 전 자주 가는 서점 사장님이 도정일 에세이 서문에 자기 이야기가 나왔다며 반가워하셨는데, 정말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의 서문에 대전의 큰 책방 계룡문고 사장님과 작가의 인연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는 게 아닌가 ? 괜시리 내 얘기가 나온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어 호들갑스럽게 축하 인사를 건냈더니 사장님도 그동안 알고 지내 온 작가들과의 인연들을 신나게 이야기 하신다.

일행들과 커피를 마시며 한비야, 정호승, 도정일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작가들과의 에피소드를 듣는건 너무 신나는 일이다.

비록 도정일은 아니지만 계룡문고 사장님이 책에 나태주의 짧은 시를 넣어 사인을 해주셨다. 혼자 읽기보다는 모임에 속해서 함께 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저런 모임을 소개 받았다. 서점과 작가, 출판사 그리고 독자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싶다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어렸을 때부터 서점에서 꼭 한번 일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언제나 환영한다며 꼭 와서 일하라고 하신다. 청년 실업자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경력도 없는 아줌마에게 확실한 일자리까지 보장해주다니..역시 단골이 좋다.

특히 알라딘에 밀려 침체된 노랑 책방(계룡문고에서 운영하는 헌책방)의 텅빈 서가를 보니 마음이 아프다. 특히 노랑 책방의 판매 수익은 지역의 불우 아동들에게 책을 사주는 용도로 사용된다. 취지는 훌륭하지만 아무래도 구입할 책이 없다보니 나 역시 훓어 보고 나오기만 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

봄날 외출은 언제나 즐겁지만 이렇게 뜻하지 않은 만남과 대화가 있어 더 즐겁다. 다음 주에 서점에서 열리는 동화작가 엄혜숙의 그림책 콘서트에 초대를 받았다. 난 알라딘도 사랑하지만 사명감을 갖고 지역에서 열심히 독서 운동을 하는 계룡문고를 더 사랑한다.

나 역시 나름대로의 소신을 가지고 있어 신간은 계룡문고를 이용하려고 하는데,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서점에서 직접 구입해야 겠다.

파랑새가 집 안에 있었던 것처럼 지금 행복은 내 가방 속에 있다. 특별한 일이 없어 지루해 하기 보다는 아무 일 없음에 감사하고 싶은 봄날... 나른한 오후에 느긋하게 앉아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으니 기쁘다.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책을 쓰고 또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존재하니 나처럼 책 사는 일에 목숨 거는 사람이 즐겁게 살 수 있어 좋다.

 

 

2.

북 바인딩 2차 수업... 지난 주에 제도를 하고 하드 보드지를 이용해서 다이어리의 겉 표지를 완성했다. 드디어 이번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책을 직접 묶는 바느질 작업에 들어갔다.

아! 절망... 송곳으로 섹션 별로 구멍을 뜷을 때까지만 해도 속도를 내며 신나게 작업을 했는데, 면사에 초칠을 해서 홈질로 책을 꿰매는 작업을 하면서부터는 마치 수전증 환자처럼 손을 떨었다. 도대체 이미 뚫린 구멍으로 바늘을 넣었다 빼는 단순한 홈질을 반복하면 되는 데도 불구하고 어찌 그리 바늘은 미끄럽고 구멍은 작은지... 바느질 중간에는 길게 잘라 놓은 실이 꼬여 버렸고, 섹션끼리 연결하는 매듭 작업에서는 오른쪽과 왼쪽을 연거푸 헤매여서 계속 선생님~ 선생님을 불렀다. 7권의 얇은 섹션을 실로 연결한 후 다시 책등에 한지를 잘라 풀칠을 했다. 그리고 책갈피를 연결하고, 마감하는 작업을 하는데 꼬박 두시간 반이 걸렸다. 바늘은 손 끝에서 미끌미끌 따로 놀았으며, 불편한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작업을 하다보니 어깨와 목 결림까지 왔다.

 

 

 

 

 

 

 

 

이번 주까지 다섯 시간에 걸쳐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다이어리다.

아마 다음 주에 책과 표지를 연결하는 작업을 할 것 같다. 핸드 메이드 티를 팍팍 낸 나의 첫 작품...

분명 하얀색이였던 속지는 손 때를 타 회색빛으로 꼬질꼬질해져서, 졸지에 빈티지한 다이어리가 되어 버렸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선생님... 죽을 것 같아요~ 했더니 그냥 웃으신다. 성경과 내가 아끼는 책을 가죽으로 바인딩하겠다는 야무진 첫 다짐은 벌써 마구 흔들리는 중이다. 지금처럼 인쇄소에서 대량으로 책을 만들기 전까지는 분명 이런 작업들을 일일이 손으로 했다는 얘기인데, 정말 그 수고와 노력이 놀랍다.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즐거운 도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그만 두라는 주변 친구들 보란 듯이 멋진 책을 만들어 볼테다... 나의 첫 번째 작품을 가족들에게 선물하려 했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으니 내가 가져야겠다.

이렇게 확실한 핸드메이드 다이어리를 거부하다니.... 나중에 엄청 후회하게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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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3-29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빠라기가 새로운 판으로 다시 나왔군요!
아아. 언뜻 보기로도 예쁘게 나온 듯한데,
아무튼 언제나 문제는 번역일 테지요 ^^;

그나저나 대단한 공부를 하시네요.
책장과 얽혀서
이세 히데코 님이 선보인 그림책이 있어요.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였지 싶은데
차근차근 꼼꼼히 익히셔서
착한시경 님이 아끼는 책에
새로운 숨결 불어넣으시기를 빌어요.
두근두근 기다립니다 ^^

착한시경 2014-03-31 19:52   좋아요 0 | URL
소개해주신 그림책,,,꼬옥 읽어볼께요^^ 아끼는 책에 숨결을 불어 넣으라는 말씀~ 와 ~넘 멋져요~^^ 열심히 해보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3-29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계룡문고 사장님 말씀 들으니 이게 바로 서점이 살아나갈 수 있는 기회인것 같군요.
서점이 독자와 모임을 연결해서, 그러니깐 읽기 모임 같은 거 말이죠.
굉장히 좋은 기획인데요. 많은 소규모 서점들이 그런 모임을 주선했으면 하네요.

착한시경 2014-03-31 19:55   좋아요 0 | URL
지역서점이지만...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고 있는 서점이랍니다...
출판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서점, 독자, 작가 그리고 출판사가 서로 협력해서
공생해야 한다고 얘기하셔서~공감했는데...쉽지 않은 일일것 같아요~

그렇게혜윰 2014-03-2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주 이용하시는 서점도 있으시고...부럽네요^^ 북바인딩은 손과 힘이 많이 가는듯하여 선뜻 하겠다 용기낼순 없지만 시경님 작품 기대하겠어요^^

착한시경 2014-03-31 19:57   좋아요 0 | URL
제가 해보니...눈썰미와 꼼꼼함을 요구하는 작업이더라구요,,,
이번주 수요일에 드디어 첫번째 작품이 완성되겠네요~
제가 사진으로. 올릴께요^^

페크pek0501 2014-03-2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남의 서재를 구경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에요.
물론 서점에서 잘생긴 책들이 쌓여 있는 것도 좋은 구경이라서
동네 서점에 드나들지요.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책을 하나 사서
들고 오기도 하지요. 인터넷 서점이 책값이 싸긴 하지만 이렇게 동네 서점에서도
구입해야 동네 서점이 사라지지 않겠죠. 형편 어려워 문 닫는 서점이 많잖아요.

인터넷 서점이 계획적인 구매라면 동네 서점은 즉흥적, 충동적 구매예요.
둘 다 좋아요. ^^

착한시경 2014-03-31 20:00   좋아요 0 | URL
저도 꼬옥 한번 일해보고 싶기는 해요,,,
그냥 책이 많은 곳이 좋으니까요~ 사라져가는 동네 서점이나 참고서만 파는
서점을 보면 안타까울 뿐,,,앞으로는 좀더 자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들어요~